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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3664162 / 336쪽 / 336g / 125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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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우주와 인류의 근원을 다루는 창세기 1~11장을 신학적으로는 원(原) 역사라 부른다. 이 책은 원 역사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 세계의 ‘인지환경(당시 공유된 지적·문화적 세계관)’ 속에서 본문을 해석하며, 이 이야기가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체계와 치열하게 논쟁했던 ’위대한 계시’임을 밝혀낸다. 단순히 ‘창조냐 진화냐’를 논하는 과학 책이 아니라, 폭력과 착취가 난무하던 고대 사회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간이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임을 선포한 혁명적인 문서였음을 역설한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 신화에서 계시로』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인 고대 근동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보려는 입문자부터, 그 통찰을 성경 해석에 바르게 녹여내고 싶은 분들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하나님께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성경은 이미 “빛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빛은 여타 피조물들과 다릅니다. 성경은 빛이 하나님의 본성이자 하나님 자신이심을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가리켜 ‘빛’이라 부르고, 그 빛이 어둠에 비취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빛과 어둠을 나누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넌지시 암시합니다. 급기야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은 완전히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에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으며 밤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있으라고 명령되었지만 사실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밝은 빛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첫 번째 피조물처럼 되셔서 창조의 서막을 친히 여신 셈입니다.
--- p.27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선과 악을 본인이 스스로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이미 사사시대에도 나타났던 모습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고, 역사적 사실마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부정되거나 왜곡됩니다. 학살자가 영웅이 되고, 선함과 정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로 취급되며, 사익과 욕망만을 좇는 삶이 지혜로운 것처럼 여겨집니다. 도덕적 기준이 점점 모호해지는 오늘날의 세상이, 사랑과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질서가 사라진 ‘혼돈’ 그 자체로 되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 p.40
신의 아들이자 형상은 이처럼 권력층에만 적용되던 개념입니다. 고대인들은 신화를 통해 세상을 설명했고, 거기에 나오는 신들의 통치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따라서 신의 형상 혹은 아들이라 불린 이들의 지배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하늘신, 태양신, 달신, 강물의 신 등은 각 자연 영역의 지배자들이었는데, 지배계급은 그 신들의 형상이자 자손이 바로 ‘왕’이고 ‘귀족’이라 홍보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정당화했습니다. 현실을 설명하고자 만든 ‘신화’(Myth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악용된 것입니다.
--- pp.50-51
최초의 성전은 단순히 크고 장엄한 종교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평범하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굳이 그리스도교적 상징들로 가득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적 언어들로 가꾸고 기계적 신앙고백들로 삶을 덧칠해야만 우리 몸이 성전이 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인정하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꾸미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됩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고 일상을 안온한 정원과 같이 조성해 가는 것이야말로 우주적 성전의 청지기로 창조된 우리의 진정한 ‘부르심’입니다,
--- pp.68-69
고대근동 세계는 여성에게 매우 억압적이었지만, 성경은 일관되게 남녀의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돕는 배필’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지나치게 축소해서 받아들였습니다. ‘돕는 배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이 없으면 나는--- p.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옆에서 잡일만 해주는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남성은 그 자체로 미완성입니다. 여성이 함께함으로써 남성은 비로소 한 ‘인간’으로 완성됩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갖는 의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성과 여성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등한 배필’이 보다 정확한 의미입니다. 신구약의 표현을 빌리자면 ‘돕는 배필’이란 바로 ‘형제자매’요 ‘이웃’입니다.
--- pp.87-88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신화에서 심판은 인류의 멸절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의 판결문 끝에는 기이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장면입니다. 에덴에서의 추방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가 공존할 수 없기에 발생한 아픈 이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화염검으로 길을 막으시는 동시에(보호, 가죽옷을 통해 그들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배려하십니다(은혜. 이는 심판의 목적이 파괴가 아니라 장차 임할 완전한 회복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 p.127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 전에 먼저 예배자를 받으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의 예배는 그저 종교의식에 불과합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허례허식이자 영적인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자신이라는 우상에게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시며 절대로 우리에게 속지 않으십니다. 가인이 아무리 정성스레 많은 예물들을 준비했다 한들 하나님은 예배자가 아닌 그의 예배를 받으실 수 없었습니다.
--- pp.140-141
가인에서 라멕으로, 그리고 훗날 네피림까지 이어지는 죄악의 족보는 사실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웃을 해치고 죽음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 폭력과 음란으로 남을 다스리는 라멕들이 존재합니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하나님의 원칙을 무시하고, 정욕을 따라 마음대로 짝을 취하는 이들 역시 라멕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조차 없이 그것을 즐기는 이들, 하나님의 존재를 멸시하고 조롱하면서 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자들은 가인의 후손 곧 ‘뱀의 후손’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교회 밖은 물론 교회 안에도 무수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p.153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신자들은 개인의 윤리적 탁월함은 물론 사회적이고 공적인 차원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 즉 정의와 상생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뤄낼 책무가 있습니다. 교회의 일원이라 자부하면서 세속의 가치관들, 즉 강자의 군림이 당연하고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당연하다는 그런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를 나누고 차별하고, 직분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해서 대하며, 힘과 돈의 논리로 공동체를 운영하려고 한다면, 그런 우리가 바로 ‘네피림’인 것입니다. 심판의 대상은 바로 우리가 될 것입니다.
--- pp.183-184
대홍수 심판 내러티브를 읽으며, 최종적 심판과 구원의 그날이 오기까지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이 루틴(종말과 죽음/새창조와 새 출발의 반복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단 한번의 심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개입이 일어나 마치 종말과 새시작의 구도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어쩌면 중요한 결정이나 사건의 모양으로 시시각각 종말의 순간들이 임하고, 그렇게 다시 출발하게 되는 새 창조와 같은 순간들의 반복이 인간의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p.216-217
무지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케세트’입니다. 한데 사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활’입니다. 전쟁할 때 쓰는 무기인 활말입니다. 사실 근동지역에서는 무지개를 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매우 건조한 기후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무지개를 의미하는 독자적인 단어가 없고 무지개가 활의 모양과 비슷하기에, 그 단어에 무지개라는 뜻도 담아서 함께 병행해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무지개 곧 ‘활’을 구름 사이에 걸어두셨다는 이미지는, 생각해 보면 이제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이 더 이상 땅을 향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활은 하늘, 곧 하나님을 겨누는 모습입니다. 인간의 여전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에게 활을 겨누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스스로에게 겨누십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쏘심으로,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심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분이 되시는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먼 훗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악을 담당하고 죽음을 맞이하시는 모습의 원형(原形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p.252
여는말 ‘창세기 1-11장’을 읽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 10
1장 창조의 시작 · 1:1-5 14
2장 보시기에 좋았더라 · 1:6-23 29
3장 하나님의 형상과 안식 · 1:24-2:3 47
4장 최초의 성소 · 2:4-17 62
5장 나와 너, 그래서 우리 · 2:18-25 80
6장 최초의 범죄와 타락 · 3:1-13 95
7장 최초의 징벌과 심판 · 3:14-24 113
8장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 4:1-15 129
9장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 4:16-26 143
10장 경건한 자들의 계보 · 5:1-32 158
11장 하나님의 눈동자에 새겨진 사람 · 6:1-8 173
12장 내 언약을 세우리니 · 6:9-22 191
13장 새로운 시작을 위한 완전한 종말 · 7:1-24 206
14장 기억하시는 은혜 · 8:1-22 222
15장 언약의 무지개 · 9:1-17 238
16장 포도주에 취한 노아 · 9:18-29 258
17장 축복과 저주 · 10:1-32 277
18장 바벨에 임한 심판 · 11:1-9 295
19장 멈춰 선 소명 · 11:10-32 314
맺는말 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