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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1954105 / 528쪽 / 648g /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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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홀란트 단체초상화』는 리글이 당대를 특징짓는 것으로 여긴 유아론에 대한 비판이다. 이 책은 재현적 미술조차도 재현의 문제를 어떻게 초월할 수 있었는지를 시사한다. 단순히 세계를 재현하는 데 기여하는 대신 미술은 관람자와 더불어 세계를 공유하기를 열망할 수 있었다.
― 매거릿 올린
알로이스 리글과 더불어 빈 학파의 저자들은 로마 말기와 비잔틴 시대의 산업을 분석하면서 예술적 실천에 내포된 역능과 사회적 모델의 총체를 해명하고 이것들의 존재론적인 다원결정을 파악한다. 이들은 예술의욕(Kunstwollen), 즉 예술을 실천하려는 특별한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예술의욕은 자신의 시대를 혁신하는 지향성이다.
― 안또니오 네그리
빈학파를 대표하는 미술사가 알로이스 리글의 『홀란트 단체초상화』는 미술을 개인적 표현이나 자연의 모방으로 설명하는 대신 한 시대의 예술의욕이 시각적 형식으로 조직되는 방식을 탐구한 고전이다. 리글은 장식문양과 공예 같은 ‘순수미술’이 아닌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예술을 집합적 역사 경험의 산물로 이해했고,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이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된 후기 저작이다.
리글은 이 책에서 17세기 홀란트 단체초상화에 대한 연구로 ‘예술의욕’ (Kunstwollen)이라는 개념을 입증한다. 17세기 홀란트 사회에서는 자경단을 포함한 길드 같은 단체들이 활발하게 결성되었고 그 구성원들을 한 화면에 담은 단체초상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리글에 따르면 17세기 홀란트의 단체초상화는 개인의 위신이나 영웅적 서사를 강조하지 않고 병렬적 구성과 공공적 정체성을 시각화함으로써 시민 사회의 미감과 세계관을 형식화했다. 리글은 이 장르야말로 17세기 홀란트의 예술의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또 『홀란트 단체초상화』는 관람자를 미술사 분석의 핵심 요소로 진지하게 고려한 선구적 작업이기도 하다. 리글이 제시한 ‘주의’(Aufmerksamkeit) 개념은 그림 속 인물들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그림 밖의 관람자와 맺는 시선의 관계를 분석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리글의 관점은 이후 발터 벤야민의 미학과 역사철학, 나아가 안또니오 네그리의 미학, 정치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이 책은 미술사 연구를 넘어, 예술과 사회 및 집단적 삶의 형식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이론적 고전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출판사 리뷰
알로이스 리글과 『홀란트 단체초상화』
알로이스 리글은 1858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린츠에서 태어나 빈에서 학문적 생애 대부분을 보낸 미술사학자이자 문화재 전문가이다. 빈 대학에서 철학과 역사, 고고학을 공부한 그는 1886년부터 10년간 오스트리아 미술공예 박물관에서 재직하며 본격적으로 미술사 연구를 시작했다. 박물관 재직 기간 후반부에 리글은 직물 담당 부서의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경험은 첫 저서 『고대 동방의 양탄자』(Altorientalische Teppiche, 1891)로 이어졌다. 이 시기 리글은 회화나 조각처럼 전통적으로 ‘순수미술’로 분류되는 작품 장식 문양과 공예품을 직접 다루었고, 이러한 실무 경험이 미술사를 보는 그의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897년 빈 대학 교수로 임용된 이후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며 고대, 중세, 근세를 아우르는 야심 찬 이론적 구상을 전개했지만, 1905년 마흔일곱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많은 기획을 미완으로 남겼다. 『홀란트 단체초상화』(1902)는 리글이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저작이다.
리글이 혁신적인 미술사학자로서의 명성을 확립한 것은 그의 두 번째 저서인 『양식의 문제: 장식사의 기초』(Stilfragen: Grundlegungen zu einer Geschichte der Ornamentik, 1893)였다. 이 책에서 리글은 장식 문양이 외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는, 연속적이며 자율적인 ‘장식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기술하려 했다. 이를 위해 리글은 아라베스크와 같은 특정 장식 모티프들을 고대 ‘근동’에서 고전 고대, 나아가 초기 중세와 이슬람 미술에 이르기까지 추적했으며, 그 과정에서 ‘예술의욕’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디르크 야콥스, 암스테르담 총병단 경비병들 (1529)
예술의욕(Kunstwollen)
알로이스 리글은 예술의욕 개념을 정식화한 미술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예술을 개인 천재의 표현이나 단순한 모방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집합적 의지가 조형적 형식으로 드러난 결과로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리글에게 예술은 특정한 시대와 사회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세계와 관계 맺고자 하는지를 형식으로 조직한 결과이다.
예술의욕 개념에 대한 가장 분명한 정의는 1901년에 출간된 리글의 『로마 말기의 미술산업』의 마지막 장에서 제시된다. 그 책에서 리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모든 의욕은 개인의 내부에서 그리고 개인을 넘어서서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만족스럽게 형성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조형적 예술의욕은 감각적으로 지각 가능한 사물의 외양과 인간의 관계를 규율한다. 시적인 예술의욕은 인간이 사물을 어떻게 상상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듯이 미술은 사물의 형상과 색채를 인간이 어떻게 보고자 하는지를 표현한다. 인간은 단지 수동적인 감각적 수용자에 그치지 않고, 욕망을 지닌 능동적 존재로서, 세계를 자신의 욕망에 가장 명확하고도 순응적으로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한다(이러한 해석 방식은 민족, 지역,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의욕의 성격은 우리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세계관이라 부르는 것 속에 담겨 있다. 즉 종교, 철학, 과학, 나아가 국가 운영과 법에까지 담겨 있다.”(위키피디아) 다시 말해서 예술의욕은 곧 세계관이 미적 형식으로 드러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렘브란트, 직물 견본 검사관들 (1662)
단체초상화가 보여주는 17세기 홀란트의 예술의욕
알로이스 리글은 『홀란트 단체초상화』 서문의 24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 작품에서 현대의 취향에 들어맞는 요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탄생시키고 바로 이와 같이 만들어 낸 예술의욕을 규명하는 것이 미술사의 과제임을 인식하는 즉시, 우리는 단체초상화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홀란트의 예술의욕을 드러내는 고유한 성격에 가장 적절한 영역임을 깨닫는다.” 『홀란트 단체초상화』에서 리글은 예술의욕의 규명을 미술사의 과제로 규정하면서 단체초상화야말로 홀란트의 예술의욕을 잘 보여준다고 보았다.
17세기 홀란트에서 단체초상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된 배경에는 정치, 종교, 사회 조건의 급격한 변화가 놓여 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독립 전쟁과 종교개혁 이후 형성된 네덜란드 공화국은 군주나 귀족이 아닌 시민 공동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회였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정치, 경제, 상업의 중심지였던 서부 연안 지역, 즉 역사적으로 ‘홀란트’라 불린 지역에서 암스테르담과 하를럼은 상업과 행정, 시민 조직이 밀집된 도시로 기능했으며, 공공적 단체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단체초상화는 바로 이러한 시민 사회의 구조 속에서 등장한 시각적 형식이었다.
작자미상, F분대의 사수 열일곱 명 (1557)
『홀란트 단체초상화』의 부제는 “자경단 시대의 예술의욕”이다. 자경단은 17세기 홀란트에서 흔한 단체 형태였다. 자경단은 정규군과 달리 도시의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방위 조직으로, 17세기 홀란트에서는 주로 상업과 행정을 담당하던 부르주아 계층의 남성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사비로 무기를 마련하고 단복을 갖추었으며 평상시에는 도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다가 필요할 때 치안 유지와 방위를 맡았다.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니라 시민 공동체가 공공의 책임을 스스로 수행한다는 자치적 시민의식의 표현이었고 리글에 따르면 이러한 성격은 단체초상화에서 평등한 병렬 구성과 집단적 정체성의 시각화로 나타난다.
단체초상화 속 인물들은 가족이나 사적 친분으로 묶인 존재들이 아니라, 자경단이나 길드, 자선 기관과 같은 공공적 목적을 지닌 조직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각자 독립적인 개인이면서도, 특정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결합한 집단으로서 재현된다. 따라서 단체초상화는 개인초상화처럼 한 인물의 위신이나 개성을 강조하지도, 역사화처럼 영웅적 서사를 중심에 두지도 않는다. 시선과 몸짓은 과도한 서사적 행위를 지양한 채, 서로를 의식하거나 관람자를 향해 열려 있는 상태를 취한다. 단체초상화는 17세기 홀란트의 시민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이미지다. 이러한 이유에서 리글은 단체초상화를 17세기 홀란트 예술의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르로 평가했다.
발터 벤야민 (1892~1940)
리글과 현대 사상가들 : 발터 벤야민, 안또니오 네그리
리글의 예술의욕 개념은 이후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동시에 많은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리글이 이른바 ‘데카당스’나 ‘야만주의’로 폄하되던 영역을 예술 발전론의 틀에서 해방시킨 점에 주목했다. 벤야민의 초기작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리글의 영향이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벤야민에게 리글은 중심에서 밀려난 형식과 장르를 통해 근대 이전의 세계관과 정동을 사유할 수 있게 한 선구적 이론가였으며, 이는 벤야민 자신의 역사철학과 미학적 방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프린스턴 대학교 독일어과 부교수 토머스 레빈에 따르면 “리글의 작업 중에서도 특히 예술의욕이라는 개념은 벤야민의 초기 저작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리글과 마찬가지로, 벤야민 역시 자신의 작업을 ‘예술작품을 하나의 시대가 지닌 종교적, 형이상학적, 정치적, 경제적 경향들의 완전한 표현으로 간주하는 분석을 촉진하려는 시도로 이해했으며, 따라서 그러한 분석은 특정한 학문 분야로 한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 후기 로마 공예에 대한 리글의 재평가는, 이전까지 폄하되었던 17세기 독일 비애극 장르를 벤야민이 재평가하는 작업의 하나의 유비로 기능했다.”(레빈의 논문)
이러한 계보는 21세기에 이르러 안또니오 네그리에게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네그리는 리글의 “예술의욕” 개념이 “예술을 만들어내는 특이한 의지”(네그리의 글)를 포착했다고 본다. 네그리는 저서 『예술과 다중』에서 리글의 예술의욕 개념을 직접 언급하며 다중의 생산성과 창조력이 조직되는 방식이자 사회적 힘과 정치적 가능성이 응축된 장으로 해석한다. 정치철학자 조정환의 『예술인간의 탄생』에 따르면 네그리는 예술의욕이 “기존의 형식들을 초과하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을 일관되고 지속적인 기획으로 조직하면서, 그때그때의 예술사적 문턱과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예술활동의 양식을 창출하는 구성적 힘”이라고 말한다(228쪽).
안또니오 네그리 (1933~2023)
주의와 관람자 : 시선이 만드는 관계
코르넬리스 케텔, 디르크 야콥스 로젠크란스 대장과 부관 파우의 민병대 (1588)
『홀란트 단체초상화』에서 리글은 ‘주의’(Aufmerksamkeit) 개념을 제시했다. 리글의 ‘주의’ 개념은 그의 미술사 이론에서 의지(Wille)와 감정(Gefuhl) 사이에 놓인 제3의 심적 상태를 가리킨다. 의지가 서사적 행위와 지배, 종속의 관계를 조직하는 힘이라면, 감정은 인물들 사이의 정서적 결속을 강조한다. 주의는 이 둘의 극단을 피하면서, 과도한 행위나 정서에 치우치지 않은 채 서로를 향해 ‘집중하되 무관심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상태다. 리글은 이 개념을 통해 단체초상화가 왜 영웅적 서사도, 친밀한 감정극도 아닌 독자적 장르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단체초상화에서 주의는 등장인물들의 시선과 자세로 가시화된다. 인물들은 하나의 공적 목적 아래 모여 있으되, 각자의 초상적 자율성을 잃지 않는다.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만 누구도 중심적 주인공으로 돌출되지 않으며, 행위는 중단된 듯 고요하다. 이 균형이 바로 17세기 홀란트 단체초상화의 미학적 핵심이다. 주의는 인물들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면서도 집단의 통일성을 성립시키는 원리로 작동한다.
이 개념은 관람자와 대상의 관계로 확장된다. 주의는 그림 속 인물들 사이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 밖의 관람자를 향해 열리는 시선을 통해 외적 통일성도 만든다. 관람자는 극적 사건을 ‘보는’ 대신, 인물들이 유지하는 고요한 집중의 장에 ‘초대’된다. 이 점에서 주의는 이후의 수용미학이나 시선 이론과 연결될 여지를 갖는다. 단체초상화는 관람자를 배제하지도, 감정적으로 끌어들이지도 않으면서,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 지속적인 주의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장르로 이해될 수 있다.
단체초상화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인물, 관람자, 공간이라는 삼자 관계를 조직하는 이미지로 이해되며, 이는 이후 수용미학이나 시선 이론에서 본격화될 문제의식을 선취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옮긴이 해제 8
발행인 머리말 17
서문 19
I. 전 단계 29
종교적인 역사화와 관련된 최초의 단체초상화 :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헤르트헨 판 하를럼의 세례자 설화 그림에 등장하는 요한 기사수도회원들 31
종교 단체의 독립적 단체초상화 가운데 최초인 예루살렘 순례자 초상 57
얀 판 스코럴이 그린 하를럼의 예루살렘 순례자 단체초상화 59
얀 판 스코럴이 그린 세 점의 위트레흐트 예루살렘 순례자 단체초상화 63
안토니스 모르의 위트레흐트 예루살렘 순례자 단체초상화 72
베네치아의 단체초상화 75
플란데런의 단체초상화 82
II. 홀란트 단체초상화의 제1기 1529~1566 85
디르크 야콥스의 1529년 작 사수단 그림 87
작자미상의 1531년 작 사수단 그림 102
코르넬리스 토이니센의 1533년 작 사수단 그림 109
디르크 야콥스의 1532년 작 사수단 그림 124
작자미상의 1534년 작 사수단 그림 130
1554년~1566년 사이, 상징주의적인 첫 번째 시기 단체초상화의 두 번째 계열 134
작자미상의 1554년 작 사수단 그림 136
작자미상의 1557년 작 사수단 그림 146
첫 번째 상징주의적 시기 후반에 그려진 디르크 야콥스의 사수단 그림 153
디르크 야콥스의 1563년 작 사수단 그림 157
디르크 바렌츠 169
디르크 바렌츠의 1562년 작 사수단 그림 172
디르크 바렌츠의 1566년 작 사수단 그림 180
홀란트 미술에서 풍속화적인 것의 도래와 의미 187
III. 홀란트 단체초상화의 제2기 1580~1624 197
코르넬리스 케텔이 그린 디르크 야콥스 로제크란스 대장의 분대 201
피터르 이삭스의 1596년 작 사수단 그림 220
아르트 피터르스 228
아르트 피터르스의 1599년 작 사수단 그림 230
해부학 교실과 간부진 그림의 등장 236
아르트 피터르스의 <세바스티안 에흐베르츠 박사의 해부학 수업> 237
대 피터르 피터르스의 1599년 작 간부진 그림 241
하를럼 단체초상화의 시초 246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의 1583년 작 사수단 그림 248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의 1599년 작 사수단 그림 259
프란스 피터르스 드 흐레버가 1619년에 그린 사수단 그림 267
암스테르담 단체초상화에서 공간과 시간의 외적 통일성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법 272
코르넬리스 판 데르 포르트의 1618년 작 간부진 그림 276
일명 피터르 하설라르 소위의 분대 282
랜스의 숲이 보이는 사수단 그림 283
베르너 판 덴 발커르트 288
베르너 판 덴 발커르트의 1624년 작 간부진 그림 289
베르너 판 덴 발커르트의 1625년 작 사수단 그림 294
니콜라스 엘리아스의 1628년 작 간부진 그림 298
IV. 홀란트 단체초상화의 제3기 1624~1662 303
토마스 드 케이저 304
드 케이저가 1619년에 그린 <세바스티안 에흐베르츠 브레이 박사의 골학 강의> 304
토마스 드 케이저의 1632년 작 사수단 그림 308
토마스 드 케이저의 1633년 작 사수단 그림 313
토마스 드 케이저의 1638년 작 암스테르담 시장들 320
렘브란트 324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326
렘브란트의 음영법 334
<야경> 343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 364
<직물 견본 검사관들> 369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르 헬스트 388
대장 룰로프 비커르와 부관 얀 미힐스 블라위의 중대 390
1648년 작 <사수단 만찬> 395
1653년 작 성 세바스티아누스 길드 간부진 그림 400
관학적 경향의 출현 405
호베르트 플링크 409
페르디난트 볼 416
니콜라스 마스 422
1616년~1667년 하를럼의 단체초상화 424
프란스 할스 426
1616년의 성 게오르기우스 사수단 그림 427
하를럼 성 하드리아노 사수단 조합을 그린 1627년 작 434
1627년 작 하를럼의 성 게오르기우스 사수단 그림 438
1633년 작 하를럼의 성 하드리아노 사수단 그림 440
<빈약한 중대> 445
1639년의 하를럼 성 게오르기우스 길드 사수단 그림 449
하를럼에서 간부진 그림의 등장. 하를럼 성 엘리사벳 병원의 간부들 452
1664년 작 <하를럼 양로원의 남성 운영자들>과 <하를럼 양로원의 여성 운영자들> 464
헨드리크 폿의 하를럼 성 하드리아노 길드 사수단 그림 470
하를럼 사수단 그림 말기. 피터르 사우트만 475
하를럼 단체초상화의 마지막 시기 478
이 시기 단체초상화에서 나타나는 노벨라적 성격의 본질 479
얀 드 브레이 482
회고 493
편집자 후기 499
편집자 참고문헌 513
도판 차례 518
인명 찾아보기 523
용어 찾아보기 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