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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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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44699 / 313쪽 / 313g / 124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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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환상과 욕망을 유예하지 않고 미지의 여정을 이어가는 이들
선택과 책임의 순간마다 깃드는 은연한 천사의 숨결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작가 함윤이 첫 소설집

뚜렷한 색채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해온 소설가 함윤이의 첫번째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안정적인 문장과 전개, 각각의 인물이 주는 독특한 매력, 독자가 흥미롭게 채울 수 있는 여백”(심사평) 등 다채로운 역량을 선보이며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함윤이는 그해 여름 「강가/Ganga」가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되면서 “특별한 사건이나 스토리의 주제 의식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분위기 전체를 장악하는 문체적 역량을 갖춘, 보기 드문 스타일리스트의 등장을 예”(선정의 말)고했다. 「천사들(가제)」을 통해 이러한 예견을 사실로 굳히며 “함윤이의 문장은 대체할 수 없는 스타일을 이루어가는 것 같다”(심사평)라는 찬사 아래 2024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매끄럽고 스타일리시한 문장 사이 갑자기 입을 다물게 하는 아교”를 이번 소설집 위에 “장인의 인장”(소설가 이희주)처럼 찍는다.

소수의 동질적 인물들의 성찰 대신 다수의 이질적 인물들의 역동적인 조합을 다루면, 당연하게도 다종다양한 힘의 경합이 두드러진다. 확률이나 합리의 힘처럼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법칙 또는 공식적인 규범이 아닌 주술의 힘, 미신의 힘, 마법의 힘, 기도의 힘, 우정의 힘, 연대의 힘, 상상의 힘, 죄의식의 힘 등 온갖 자잘한 힘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오해하지 않길. 힘은 주변이 요동하도록 반향을 일으킬 뿐, 결코 선도 정의도 보장하지 않는다. 소문의 힘, 거짓의 힘, 저주의 힘, 적대의 힘처럼 부정적인 힘도 존재하고, 공포의 힘, 불안의 힘, 원한의 힘, 슬픔의 힘처럼 강렬한 정동 역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미지의 힘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힘과 운동이 연결되는 과정은 이음새를 노출하며 덜컥거리기 마련이고, 이렇게 그려진 힘들의 지도는 독특하게 소란한 함윤이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소 해설, 「유토피아는 아닌 것들」에서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성원을 고루 받은 「강가/Ganga」 「천사들(가제)」, 202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자개장의 용도」 등 일곱 단편이 묶인 함윤이의 이번 소설집은 “정동의 파도를 따라 넓어지고 흩어지는 원심력과 특정한 사물이나 장소로 응축되는 구심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역장”이다. 여러 갈래의 힘이 교차하며 뒤엉키는 이 경합의 장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각각의 힘 사이에서 갈등과 투쟁이 아닌 조력과 연결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 “앙금이나 자국으로 남”을지언정 나가떨어지거나 탈락하는 힘은 없으므로 그의 소설은 점차 중심보다는 변방에, 전형보다는 이형에, 고요보다는 역동에 가까워지며 강력하고 무이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마치 “독특한 패치워크”와도 같은 함윤이의 ‘헤테로토피아’에서 우리는 “삶을 운영하기 위해 풀어야 할 유일한 문제”를 성실하게 들여다보면서도 “다른 차원의 힘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은 “여러분을 지지”하며 “어떤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작가의 말’)다.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사라가 미지근한 숨을 내쉰다. 보배야, 부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여기까지 걸어온 덕에 우리가 이걸 볼 수 있는 것 같아.
달이 손을 놓듯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별 대신 흰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우리는 다시 한낮 속에 서 있다. 아이섀도와 립스틱으로 반짝이는 얼굴의 여자들이 나를 본다. 나는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웃는다.
―「구유로舊遊路」(pp. 83~84)

무조가 내 목에 양 손끝을 올렸다. 엄지와 검지로 경동맥을 짚었다. 숨 참아. 그가 말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쇠처럼 차가운 손끝이 목울대를 누르고, 이내 그리운 하얀 점들이 나타났다. 눈보라가 불어오고 있었다. 이 풍경과 마주할 때마다 늘 떠올리던 생각이 또 한 번 솟았다. 이게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조용하고 안전한 곳에 쭉 머물 수 있다면……
선우야.
무조가 말했다.
너 정말 그러지 좀 마.
나는 눈을 떴다. 흰 점들은 온데간데없고, 두 손을 늘어뜨린 무조만 서 있었다. 넌 전부터 그랬지. 그가 말했다. 너는 참 쉽게 포기해. 포기할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아. 무조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돼?
―「수호자」(pp. 155~56)

나는 위로 삼아 내 규칙 위반의 역사를 말해주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 빨간 펜으로 이름을 쓰다가 할머니에게 호되게 맞고서 공책을 버렸던 경험, 애인에게 운동화를 사 줬다가 이튿날 차였던 일, 어른이 되어서도 몇 번이나 선풍기를 켠 채로 잠들 뻔하다 경련하듯 깨어났던 기억 등등.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십대 시절에는 문턱을 밟고 중얼대기도 했다.
난 지금 노인들의 목을 밟고 있어, 내 보호자들의 목 말이야.
“이런 일들을 저질렀어도 난 여태 살아 있잖아. 원래 다들 틀려가며 배우는 거야.”
―「규칙의 세계」(p. 181)

얘들아, 제대로 떠올려봐. 너희가 거리에서 서로를 찾아낸 날 있잖니. 내가 태어난, 발명되었던 날 말이야. 그날 너희는 완전히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잖아.
유성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인지 천사의 말씨는 묘하게 어색하다. 목소리 또한 갈라져 있다. 기이하게도 그 모든 요소가 죽기 직전 발악하는 천사의 태도에 잘 달라붙는다.
너흰 나아질 거야. 천사가 속삭인다. 같이 살 방법도 더 많이 배울 거야. 너흰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를 이미 좋아해보았으니까. 연인은 반응하지 않는다. 각자 눈을 비비거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릴 뿐이다. 천사는 집요하다. 그는 연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말한다. 난 기억해. 너희도 기억하지? 서로가 좋은 사람인 걸 깨달은 순간 말이야. 그 전까지는 그런 사람을 달라고 기도도 했잖아. 연인이 운다. 천사가 말한 기억들이 그들을 엄습하는 듯하다. 우는 연인을 본 천사는 우뚝 멈춰 선다. 달그락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멎는다.
―「천사들(가제)」(p. 269)

 

저자 소개

  • 저자 : 함윤이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목차

자개장의 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 세계
나쁜 물
천사들(가제)

해설 | 유토피아는 아닌 것들 이소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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