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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3717078 / 388쪽 153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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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신윤복, 이쾌대, 윤석남, 신경호, 송현숙, 홍성담, 정연두, 미희……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만난 조국의 미술과 미술가들 “언제 어디서든 미술작품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기쁨이다. 먼 외국의 작가라던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도 작품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일지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때로는 정겹게 대화하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도 벌여본다. 마음속에서도 그럴 정도인데 살아있는 미술가와 실제로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은 더욱 각별해진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20년,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또... 신윤복, 이쾌대, 윤석남, 신경호, 송현숙, 홍성담, 정연두, 미희……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만난 조국의 미술과 미술가들 “언제 어디서든 미술작품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기쁨이다. 먼 외국의 작가라던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도 작품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일지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때로는 정겹게 대화하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도 벌여본다. 마음속에서도 그럴 정도인데 살아있는 미술가와 실제로 만나게 되면 그 기쁨은 더욱 각별해진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20년,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또 다른 미술 순례기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저자로서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번역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은 이제는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거의 하나의 분야로 자리 잡은 ‘미술 기행’의 거의 첫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되는 몇 안 되는 미술 기행기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통해 그림 읽기의 새롭고도 친근한 방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조국에서 옥살이를 하는 형들(서승, 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는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에게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저자는 그 책에서 기록한 바 있다. 예술이 역사와 현실과 삶과 독특하게 뒤섞이며 서로를 해석하거나 확장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그 책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저자는 이제 60대가 되어 유럽의 미술관이 아닌 한국의 미술관들을 순례한다.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이 집착했던 주제들, 죽음, 섹슈얼리티, 가족, 민족…… 같은 것들이 여전히 60대 재일조선인 노교수의 눈과 귀와 온갖 감각들을 사로잡고 날카로운 통찰들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삶의 변화를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 지점들 역시 드러난다. 가령 저자는 이제 홀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과 고독하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F와 함께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조국’의 미술관을 찾는다. 그리고 정말로 원한다면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과 직접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조국은 더 이상 그가 70년대에 보았던 군사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또 이제 형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조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와 활동을 위해 찾게 되었다. 이렇듯 달라진 상황에서 저자는 20년 전, 30년 전 그림들 앞에서 던졌던 것과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번에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전에는 단순히 목격자에 머물 수 있었던 독자들을 이번 순례에는 더 깊이 동참시킨다. 위의 답을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20~30년 전의 그 순례와 지금의 이 순례의 미묘한 차이들을 읽어내는 것은 작가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나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이 된다. 한편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나란히 놓고 보는 일은 마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나란히 걸린, 렘브란트의 34세 때와 63세 때의 자화상을 보는 일 같기도 하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삶의 질문,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는 그 빛나는 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미술 사이에 빗금을 긋다 저자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지식인으로서 점차 우경화하는 일본의 국민주의와 극우 내셔널리즘을 예리하게 비판해왔다. 또 그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가주의적 폭력의 생생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디아스포라’라는 더 보편적인 정체성으로 확장시켜왔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개념에 균열을 일으킨다. 저자가 굳이 ‘한국 미술’이나 ‘우리 미술’이 아닌 ‘조선 미술’이라는 표현을 고집한 것도 이런 독특한 관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집단적 미의식의 문제에 골몰하면서, 예술이 배타적인 ‘국민화’의 도구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순간들에 대해 탐색한다. 나아가 그러한 성찰과 긴장을 통해, ‘한국 미술’이 더 열린, 더 보편적인 공동체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숙고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과 근대의 문제, 리얼리즘의 문제가 다양하게 거론되고, 또 서양과 일본의 다양한 미술적 사건들이 참조점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 미술 기행이지만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민족’ 미술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독특한 순례가 된다. ‘조선’이라는 용어를 고른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말이 ‘학대’를 받아온 호칭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던 나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민족의 호칭은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는 차별의 멍에를 지게 되었고, 민족 분단 과정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짐을 떠안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 긴장과 불안, 때로는 공포마저 느껴왔는데, 이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정직한 반영이다. 나는 억울함을 당한 이 호칭을,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학대’에서 더욱 구출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대의 원인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10쪽) ‘우리 미술’이라는 개념이 형식화되고 고정되면 쉽사리 권력으로 변한다. 가령 어떤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만이 ‘우리’이며 ‘우리’란 어떤 특정한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순환논리는 배타적인 자의식을 공고히 한다. ‘언어’를 ‘미의식’으로 치환해보면 ‘우리 미술’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닌 위험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와 마찬가지로 미술학교, 미술관, 공공 전시회, 미술 시장의 형성 등을 통해 만들어진 ‘미술’이라는 제도 역시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며 국가주의와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치 독일도, 천황제 국가 일본도 저들이 이해하는, 저들만의 ‘우리 미술’을 자민족 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구축해갔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미술’이라는 말에 굳이 칼집처럼 빗금을 넣어 ‘우리/미술’로 표기하려 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11~12쪽) 이번 ‘우리/미술 순례’를 쓰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신경호 선생을 등장시킨 것은 나에게 가장 친근한 한국의 미술가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단지 그뿐만은 아니다. 그의 분위기, 말과 행동이 무척 흥미로운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어 어쩌면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 자체가 그에게 체현되어 있는 듯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5?18의 생생한 증인이기도 했다. ‘5?18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는 ‘우리/미술’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제임에 틀림없다.(23쪽)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표현이겠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보고 무척이나 ‘한국적’이라고 느꼈다. 「보라매 댄스홀」 , 「상록타워」 에 등장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표정과 자세, 복장에서 드러나는 취향, 이 모든 것이 뭐라 말할 수 없이 ‘한국적’이었다. 목소리가 들리고 냄새마저 느껴진다. 정연두의 작품은 현대 ‘한국인’의 초상이자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선택하여 카탈로그 사진을 찍으려 했을 리는 없다. 그는 피사체인 인물에 흥미와 애착을 느끼지만, 대상에 정서적으로 일체화되지 않으면서 차가운 객관성을 잃지 않고 관찰한다. 그런
목차
책을 펴내며
긍지 높은 촌놈 / 신경호
완고한 맏아들 / 정연두
우아한 미친년 / 윤석남
분열이라는 콘텍스트 / 이쾌대
성별조차 초월한 이단아 / 신윤복
이름이 많은 아이 / 미희
부록
사람이 아름다웠?다 / 홍성담
붓질 / 송현숙
후기를 대신하여
옮긴이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