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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5552087 / 232쪽 / 325g / 128 x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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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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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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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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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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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은밀하게 실바람에도 낙엽은 저를 키운 등걸 위로 하나둘씩 내려앉는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가는구나. 설핏 쓸쓸하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해 찻잔을 꺼냈다. 잘 끓어오른 찻물을 천천히 부어 우려낸 보이차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자, 가을 햇살 한 조각이 슬며시 잔 위로 내려앉는다. 잠시 우주가 내려온 듯 온몸이 따스하다. 혈관을 따라 온기가 몸에 퍼진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차였는데 돌아보니 운이었다. 한 줌도 되지 않은 차 한 모금이 해를 거듭하며 심신을 씻어 주고 은밀한 안온함을 갖게 해 줄 줄은 미처 몰랐다. 카인과 아벨의 아픔이 악몽처럼 앞을 가로막고 캄캄하기만 할 때였다. 마음의 상처가 몸의 고통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삶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심신이 피폐해져 병원 문턱도 꽤 드나들었지만 온갖 몸부림이 허사였다. 그때 나도 모르는 사이 차는 나를 다독이고 위로해 주며 내 마음 안에 안식처 하나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차를 마주하고 있을 때 비로소 가슴속 불길이 잦아든다는 것을 알았다. 웃음을 밀어내고 고통이 들어앉았던 마음속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오롯이 찻잎을 살피고 차향을 맡으며 찻물 색과 빛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은 무위이고 무심이었다. 잃어버렸던 웃음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좋은 차는 마음을 씻어내고 기운이 살아나게 한다는 것을 선인들도 아셨다. 경치 좋은 자연에서 그 맛을 아는 도반들과 함께 마시는 차는 무아지경에 오르게 하고 정신을 바로잡아 준다고 한다. 차를 마시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그렇듯 소중하다는 의미다. 아직 내게는 아득한 경지다. 그래도 이젠 남편과 하루의 시작을 차를 마시며 열어 간다. 함께 살아낸 날들을 돌아볼 때면 잔잔한 미소와 눈물이 찻잔에 아롱진다. 차가 있어 가능해진 교감이고 사랑이다. 시간과 공간을 나눈 사이를 벗이라 한다는데, 차 마시며 취향까지 나누니 진짜 지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다. 이 차 한 잔이 내게 오기까지 숱한 정성과 수고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사람의 언어로 뜻을 주고받는 상대가 아님에도 오래 묵은 인연인가 싶기도 하다. 찻잎인들 얼마나 아팠으랴. 봄에 막 눈을 뜨자마자 사람의 손끝에 뜯기어 뜨거운 솥 안에서 볶이며 말려지는 수차례의 과정은 그들에게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제 몸이 부서져 진액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으깨지고 비틀리는 고통을 견디고 나서야 수십 가지 서로 다른 맛으로 세상을 만나 다시 의미를 얻었을 것이다. 차를 알기 전에는 내게도 찻잎처럼 으깨지고 볶이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은은한 맛과 숨이 트이듯 깊은 향을 뽑아내기 위해 모진 인내가 필요했다는 것도. 차가 내게 이른다. 번뇌는 지우기 위해서 존재한다. 인내는 희망으로 안내하는 안내자다. 그곳에는 아직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는 희망이 있느니라. 그러니 너무 해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붙잡지 마라. 흐르는 물에 번뇌를 띄워 보내라. 새 물이 곧 채워질 것이다. 이제는 해묵은 번뇌를 애써 지우려 하지 않는다. 감정의 찌꺼기들이 떠오르면 곱게 우려낸 차를 풀어놓고 마음을 기울여 그 맛을 음미한다. 거친가, 떫은가, 익었는가. 찻물이 곱다. 온 세상을 휘돌다 온 바람도 차향에 취해 잠시 머뭇거리다 간다. 어둠이 내리고 다시 내일이 오면 내밀하게 우려낸 차를 마시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은밀하게 시작되리라. 솜이불 같은 사람이 철따라 음식이 바뀌듯 이불도 제철을 안다. 얇은 옷 위에 겉옷을 하나 끼워 입으면 홑이불도 간절기용으로 바뀐다. 며칠 전만 해도 인견으로 된 홑이불이었는데 이제는 가벼운 누비이불이 잠자리를 같이한다. 머지않아 찬바람이 불면 이번에는 두꺼운 이불로 바뀔 것이다. 옷이 유행에 민감하듯 이불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유행을 쫓아서 마련한 이불이 이불장을 채우고도 남는다. 아마도 어린 시절 이불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불은 많은 걸 품어 주었다. 귀신이 나올 것처럼 캄캄한 밤도 이불을 쓰면 무섭지 않았다. 부모님께 꾸중 듣고 속상할 때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나면 눈 녹듯 설움이 가라앉았다. 이불 밖의 두려움이나 헛헛하던 것들이 이불 안에서는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 이불은 피난처인 셈이었다. 일 년에 서너 번 이불 홑청을 빨고 풀하는 것은 이불에 대한 예의였다. 볕 좋은 날 빨래터는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빨래를 삶고 말리기도 했다. 너럭바위와 밭담 위에 널어놓은 이불 홑청은 태양을 향해 경건하게 순결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삶고 풀하고 말리고, 빨래터에서의 하루는 숨 가쁘게 순서대로 돌아가야 끝이 난다. 해가 넘어갈 즈음이면 태양의 은총을 받은 이불 홑청은 순결한 신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깨끗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날은 힘들고 지친 영혼이 평온하게 안식을 취하는 날이기도 했다. 일터를 옮겨 다니며 자취하던 아버지의 이불을 꿰매 드리고 잠자리에 들 때도 그랬다. 이불은 아버지에게 고단한 하루를 쉬고 내일의 기운을 얻을 수 있게 마법 같은 힘을 주었다. 그 마법의 힘으로 어른들은 버티고 견뎌 내어 오늘을 이루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본다. 아버지와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풋풋한 꿈을 꾸던 소녀는 열네 살이었다. 이불이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에는 혼수 목록에 이불이 빠질 수가 없었다. 이불이 몇 채냐에 따라서 빈부귀천이 나뉘기도 했다. 동네 잘사는 집 언니가 시집을 가면서 보기 드물게 트럭 가득 장롱과 이불을 실어 보내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러워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누구는 이불 다섯 채를 혼수로 해 왔고 누구는 열 채를 해 왔느니 하면서 새색시들을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열 채는 고사하고 겨우 서너 채를 해 왔으니 가난하게 시집을 온 셈이다. 가난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이불을 장만하면서도 목화솜 이불에 대한 느낌이 남다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무심코 던진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께 가볍고 따뜻한 명주솜 이불과 오리털 이불을 사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만에 보니 묵은 이불을 덮고 계셨다. “왜 무거운 솜이불을 덮으세요?” “이것저것 다 덮어봐도 솜이불만 한 게 없다. 가벼운 이불은 덮은 것 같지 않고 허한데, 목화솜 이불은 묵직해서 뼈에 바람 드는 것을 막아 줘서 좋다. 사람도 가벼운 사람보다 묵직한 사람에게 믿음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이불이 하찮은 것 같아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고 하셨다. 넓고 큰 이불은 생긴 것만큼이나 품어서 삭이고 다독이는 데 손색이 없으니 너그러운 사람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만의 인생철학일까. 그래서 아버지는 말을 아끼고 속이 깊은 사람으로 살다 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솜이불은 아껴 두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평소에는 세탁이 쉽고 꿰매기 쉬운 이불을 덮는다. 한 번씩 자고 가는 손님도 많아서 일일이 이불 꿰매는 일을 덜기 위해서는 편하게 사용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모셔 놓은 솜이불은 일 년에 한두 번 장롱에서 꺼내 가을볕에 말려 주기만 한다. 눌렸던 솜이 햇살을 맞으면 갑삭하고 폭신하게 살아난다. 다시 장롱에 개켜 넣으면서 솜이불에 얼굴을 비비면 아버지의 체취가 살아나는 것 같다. 한 이불 속에서 아버지와 꿈을 키우던 생각이 아스라하다. 아버지 품성만큼이나 든든해서 좋다. 이제는 이불을 꿰매 드릴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신다. 다만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믿음이 가고 포용력 있는 솜이불같이 품이 넉넉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변이나 이웃의 허물도 웃어넘기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천국을 알려 드릴게요 산간이라 수도가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목욕 한 번 하는 걸 무슨 행사 치르듯 했다. 여름에는 동네 어귀에 있는 물통에서 멱을 감는 것으로 목욕을 대신했다. 소와 말이 목을 축이고, 마을 여자들이 빨래도 하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정지 구석이 목욕탕 구실을 했다. 나무통에 더운물을 채우고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씻곤 했다. 마실 물도 귀해 동이 트면 먼 길을 걸어서 물 한 허벅을 항아리에 채워 놓고야 학교에 갔다. 세상은 좋아졌다. 수돗물 대신 생수와 정수기 물이 넘쳐나고, 버튼만 누르면 더운물이 콸콸 쏟아진다.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해도 눈치 볼 일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마사지도 받으면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세상. 옛날 그 옹색하던 때와 비교하면 임금님도 부럽지 않다. 이럴 때면 할머니와 실랑이하며 목욕하던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은 벗고 씻는 데 익숙해지셨을까? “아이고 시원하다. 이젠 살아지켜. 나랏님도 부럽지 않다” 하고 감탄사를 쏟아내시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할머니는 몸이 부자연스러웠다. 열서너 살 때 침을 잘못 맞아서 그리되셨다고 한다. 왼발을 살짝 절고 왼손도 불편한 할머니는 온전하지 않은 몸을 주홍글씨처럼 여기며 사셨다. 시골을 고집하던 할머니가 쇠약해지자 아버지는 제주 시내에 있는 집으로 모셔 왔다. 그 덕분에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던 공백이 깨지고 자주 뵙게 되었다. 부모님이 사는 집이 내가 사는 집하고 가까웠으니 마음만 먹으면 매일이라도 들르곤 했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새 환경을 낯설어하셨다. 어둠에 익숙하던 할머니는 밤에도 훤하게 켜진 가로등 불을 공포로 받아들였다. 아침저녁으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물을 펑펑 쓰는 것도 무척 아까워하셨다. 오랜 세월 한 손으로 고양이세수를 하고 한 방울의 물도 아끼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였을까? 가끔 씻는 일을 가지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묵은 때를 벗겨 드리고 싶어 했고, 할머니는 옷 벗는 것을 질색하셔서 생기는 마찰이었다. 평생 감추고 살아온 몸을 노출하는 것이 할머니로서는 수치로 느껴지시는 듯했다. 며느리 앞이라 더 내키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내가 나서곤 했다. 할머니와 살아봐서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하루는 할머니를 씻기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마침 푹푹 찌는 여름이라 할머니도 더위에 지쳤는지 힘이 없어 보였다. 할머니의 반응이 어떨지 눈치를 살피며 우선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웠다. 대놓고 ‘목욕합시다’ 하면 기겁을 할 것 같아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욕실로 안내했다. 하지만 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벗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내가 먼저 옷을 벗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는 할머니와 마주 보지 않으려고 등 뒤에서 가만히 다가갔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속삭였다. “할머니, 이렇게 벗고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면 천국 가는 기분이 들어요.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 드릴게요.” “나, 천국 안 가도 좋다.” “그곳에 가면 할아버지도 만나고 큰아버지도 만나는데 그래도 싫으세요?” “경허여도 남부치럽게 벌건 대낮에 어떵 옷을 다 벗느니.” 그러나 천사의 속삭임이 통했는지, 아니면 나의 강요를 못 이기셨는지 등을 돌리고 하나씩 옷을 벗으셨다. 그때 처음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할머니의 몸을 봤다. 작은 욕조에 마주 앉으니 할머니는 몸을 오그린 채 가리기에 바빴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할머니가 스스로 긴장을 풀 때까지. 따뜻한 물이 할머니의 부끄러움을 녹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직된 몸이 조금씩 느슨해지면서 비로소 손녀에게 온전히 몸을 내어 주었다. 때를 미는 손이 은밀한 곳까지 닿아도 움츠리지 않았다 가녀린 어깨와 단물 빠진 젖가슴이 손안에 들어왔다. 가늘어진 다리와 오므라진 손가락이 애처로웠다. 주름진 골마다 서려 있는 할머니의 한은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 불구라는 주홍글씨를 품은 가슴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천조각으로 가린 채 사람들의 이목에 늘 신경을 곤두세웠을 할머니. 구멍 난 가슴에 얼음조각처럼 박인 상처는 아물 기회가 올까. 때를 밀다 말고 온갖 상념에 젖었다. 내게 신의 능력이 있다면 진짜 천국으로 안내하고 싶었다. 그때 침묵을 깨고 미인이 되신 할머니가 입을 떼셨다. “손지야 고맙다. 죽엉 저승가민 느 잘 되렌 빌어주마.” 그로부터 오래되지 않아서 할머니는 가셨다. 문득문득 욕조에 앉으면 할머니의 작은 알몸이 어른거린다. 시간은 아픈 상처도 아물게 하는 것일까.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할머니가 빌어준다는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 사랑하는 손녀와의 약속이니까.
책을 펴내며 4
제1부 천국을 알려 드릴게요
은밀하게 14
솜이불 같은 사람이 18
천국을 알려 드릴게요 23
세월이 약은 아니더라 28
말의 온도 차 35
소년의 세 번째 낙타를 타고 싶다 40
보라색 옷을 입고 45
제2부 꽃을 보듯 세상을 보라
어머니의 대나무 52
코로나19의 역설 59
장을 담그며 63
거꾸로 흐르던 할머니의 시계 68
내가 고맙다 73
외증조할아버지의 무화과 78
나는 황후마마다 83
꽃을 보듯 세상을 보라 88
제3부 삼베 수의 입혀 드릴게요
그네에 앉아 세상을 읽다 96
먼 나라에서 만난 어머니의 가방 101
나의 발 106
부디 무사하기를 111
삼베 수의 입혀 드릴게요 116
욕실 세 발자국과 다섯 발자국 120
작별 125
그해 겨울에 126
제4부 그동안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잠옷 132
그동안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 137
죽은 자가 산 자를 품다 142
작은 것부터 비우기 147
연꽃 인연 152
이름과 화해하다 153
두 번 낳은 내 딸 159
침묵하는 시계 166
멍게 여인 171
제5부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날에
우리 가족의 QR코드 178
눈물의 벌초 182
어머님, 미안합니다! 188
계절은 변함없이 순환하는데 193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날에 199
십 년 후에 나는 205
돌에 빼앗긴 마음 211
작은 집 하나 지어 조카와 함께 216
어느 백인 한의사와의 이야기 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