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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문장을 읽고 나니 아흔 살이 됐어요 - 걷는사람 시인선 91

강나무 저 | 걷는사람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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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2333960 / 136쪽 / 136g /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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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퇴근길 지하철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한쪽 어깨를 내어 줬다 곤한 숨소리에 망설이다가 나도 눈을 감았다 시가 그렇다 2023년 가을 강나무 책 속에서 나는 처음과 달리 꼬불꼬불 엉켜 있어요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괜찮아요 사슬뜨기의 콧수를 세다 보면 다른 생각이 안 나요 비구름 속에 숨은 하늘색 실을 뽑아 네트 가방을 떠요 숭숭 뚫린 구멍들 속으로 팔딱거리는 물고기들을 잡았다가 놓아준다고 상상해요 빠져나가는 물고기 지느러미에 당신의 기억을 달아 놓아요 가방 손잡이는 웃고 있는 내 입을 닮았죠 ―「뜨개질을 해요」 부분 오래 골몰하느라 뒤늦게 나온 별들이 가득하고 잘 가, 인사가 잘 자, 인사로 바뀌는 만큼의 거리를 지나왔어요 이별의 말은 목이 길어요 이제 긴 목을 접고 누운 꿈속이에요 따닥따닥 발굽 소리를 내며 날개 아픈 새를 태우고 하늘을 달릴 거예요 ―「안녕, 기린」 부분 그는 영화를 보다가 소파 밑에서 혼자 잠들었다 갑자기 늙어 버린 얼굴에 오래전 퇴화한 입의 흔적이 옅게 보였다 저녁 바다에 수만 개의 검은 보자기들이 출렁였다 나는 날이 환해질 때까지 보자기 하나하나를 집어서 우리가 가 보기로 한 산책길과 헌책방, 카페와 밥집 들을 덮었다 할 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꼭 할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루를 살고 우리는 광안리에서 죽었다 ―「광안리·1」 부분 거꾸로 되감기 어때요? 장면이 느리게 바뀌는 건 이제 평화롭다는 얘기예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삼 초 동안 머물다 간 성급한 결말이 싫어요 뜨겁고 치열했던 우리 이야기를 단숨에 그럭저럭하고 미지근한 안심에 맡기지 말아요 겨울 가을 여름 봄 순서로 다시 가 봐요 그로부터 일 년 전 (중략)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로부터 나까지 시간과 공간은 한 번에 넘기는 수십 페이지의 책장처럼 ―「그로부터 일 년 후」 부분 진짜 같기도 가짜 같기도 했다 모난 데 없는 너 뚝딱뚝딱 사랑을 짓느라 손에 못 자국이 나기도 했지만 연한 씨앗에서 몽글몽글 거품으로 피는 살구꽃이 더 아려 너는 내 등 뒤에서 자주 눈물을 훔쳤다 옷 솔기에 매달린 실 같은 기억을 자르려 다가서면 손사래 치며 큰 소리로 웃었고 슬픔 많은 네가 주는 사랑이 참말 같기도 거짓말 같기도 해서 나는 오랜 세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살구비누」 부분 종이에 그은 검은 줄처럼 슬픔이 선명하다 등 뒤에 그어진 쇠창살들이 울창하다 넌 혼자가 아니야 이 말이 간절해서 모두가 혼자 돌아앉는다 ―「판다가 벽을 보고 앉아 있다」 부분 호주머니를 뒤집으면 에누리 없이 보낸 시간이 수북했다 때 묻은 하루가 은빛으로 잠깐 빛나기도 했지만 구릿빛이 더 많았다 보름달이 창틀에 땡그랑 떨어지면 눈을 감아도 밤이 환했다 호주머니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것들이 세탁기 속에서 덜그럭덜그럭 돌아갔다 ―「오늘과 동전」 부분 책 한 권을 아무 데나 펼쳐서 누가 글밥이 많은 쪽을 가졌는지 겨루는 게임을 해요.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수명을 조금씩 뺏기로 해요. 그러다 한 사람의 수명이 다하면 책을 덮고 완독한 책의 명단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요. 만수무강이 축복인가요. 긴 문장을 읽고 나니 아흔 살이 됐어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괄호 안에 들어갈 시간이 아직 무성해요. ―「긴 문장을 읽고 나니 아흔 살이 됐어요」 부분

저자 소개

  • 저자 : 강나무
저자 : 강나무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2020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새얼’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1부 가방 손잡이는 웃고 있는 내 입을 닮았죠
선물
생긴 대로
중고나라
뜨개질을 해요
장마
렛츠
깊은잠꽃
꽃무릎
별일 없니?
아마존에 사는 조에라는 원시 부족은
로하는 항상 옳다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할까
귓속말은 생각보다 평범해
안녕, 기린

2부 하루를 살고 우리는 광안리에서 죽었다
과일가게 앞 버스정류장
한동안
매일메일
아픈 연애
다시, 겨울밤
광안리·1
광안리·2
키스 얼마예요?
그로부터 일 년 후
세로가 가로에게
샌프란시스코는 지금 몇 시입니까?
매화나무를 감고 기다릴게요
누군가 뒤로 다가와 당신 눈을 가릴 때 떠오를 이야기

3부 씹을 수도 없이 한 번에 꿀꺽,
떨어지는 꿈을 꾸면 문득 한 뼘이 자랐다
살구비누
당신을 보고 오는 길
흑백 무지개
선짓국
판다가 벽을 보고 앉아 있다
CPR
관계없이 삼백 일이 흐르고
밤의 여행자
고백
행남자기
번지는 실금도 포장되나요?
잘 비비는 게 비법이야
바다에게 묻는 날도 있습니다

4부 눈을 감아도 밤이 환했다
집에 없는 시
튜링 테스트
더티 마리아
장벽
고난주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
시방
아프리카 톰슨가젤
혀 짧은 여자 순정 씨
오늘과 동전
국만 있으면 돼
긴 문장을 읽고 나니 아흔 살이 됐어요
엔딩 크레딧

해설
마음이 마음대로 기울어질 때
―하혁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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