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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죽음

KRAUS 저 | HARPER TROPHY | 2018년 10월

까마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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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0064433488 / 380쪽 / 593g / 152 x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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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957년 발표되어 4·3역사를 세상에 호출해 낸 사상 최초의 4·3소설집 소설가로서의 김석범의 삶은 오롯이 4·3의 문학적 형상화의 삶이었다. 1957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은 그 시작이었다. 그는 4·3을 통해 역사와 인간의 문제에 천착했다. 4·3사건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거대한 뿌리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대하소설 《화산도 火山島》의 마중물이기도 했다. 번역가 김석희는 《까마귀의 죽음》은 김석범의 필생의 대작 《화산도》를 축약시킨 4.3작... 1957년 발표되어 4·3역사를 세상에 호출해 낸 사상 최초의 4·3소설집 소설가로서의 김석범의 삶은 오롯이 4·3의 문학적 형상화의 삶이었다. 1957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은 그 시작이었다. 그는 4·3을 통해 역사와 인간의 문제에 천착했다. 4·3사건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거대한 뿌리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대하소설 《화산도 火山島》의 마중물이기도 했다. 번역가 김석희는 《까마귀의 죽음》은 김석범의 필생의 대작 《화산도》를 축약시킨 4.3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책의 운명 1957년 일본에서 출판된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이 에서 김석희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서 처음 출판된 시점은 1988년이었다. 이미 출간된 지 30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4·3 40주년이 되던 해였다. 6월 항쟁 이듬해로 4·3 진상 규명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후 4·3 진상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2001년 1월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2003년에는 《4·3진상규명보고서》가 작성·확정되었고, 그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 사이 이 책은 절판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4·3역사청산의 장도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수구세력들은 공세적이고 노골적으로 이전 정부에서 수행한 역사청산작업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이미 결정된 사안들마저 흔들어 과거로 퇴행시키려는 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1999년 특별법 쟁취를 위해 모였던 ‘4·3특별법쟁취연대회의’ 실로 오랜만에 4·3역사진실을 지키기 위해 도내 46개 시민사회단체 및 정치권 등이 참여하는 로 다시 결집,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 시기 우연찮게 다시 30여 년 만에 《까마귀의 죽음》은 4·3의 땅 제주의 출판사인 에서 새로운 판본으로 옷을 갈아입고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 책의 운명일까? 그때처럼 다시 역사적 진실이 승리하는 시간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세상에 최초로 4·3의 부활을 알린 내력 때문인지 이 책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가도 다시 부활했다. 평론을 쓴 김동윤은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도 첫 만남에서의 느낌은 여전하다. 거기에 세기를 뛰어넘는 묵직한 메시지가 또 다른 맛깔로 감지된다.”고 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세기를 뛰어 넘어서도 다시 부활하는 영생의 문학성이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책 소개 이 책은 1957년 일본에서 출판된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이 에서 김석희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절판된 후 근 30년간 구해볼 수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초판 번역자였던 김석희선생이 “기존 번역본을 손 볼테니 다시 한번 각에서 출판하면 어떠겠는가”라는 제안이 있었고, 마침 4.3평화상 수상을 위해 제주에 와 있던 저자 김석범선생에게 제안하자 흔쾌히 이를 허락하면서 재출판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기왕 다른 출판사에서 새롭게 단장해서 내는 책이니 예전 본의 일본인 평론보다는 4.3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평론을 실으는 것이 어떨까 해서 김동윤 제주대교수에게 원고를 의뢰해 새로이 평론이 책 뒤에 얹혀졌다. 소설가 ‘김석범’ 김석범(金石範, 1925~ ). 올해 연세가 90세다. 노익장이시다. 그는 얼핏 보면 단아한 목련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수의 목련(?), 영 아닌 비유인가? 하지만, 풍모와 자태가 그렇다는 말이다. 미수를 지난 백발, 이제는 세속의 인생을 파한 듯한 용모에서 세월이 익으면 또 다른 향기와 자태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분이다. 그는 재일제주인 2세다. 1세들의 연령대이지만 2세대다.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국적은 ‘조선적(朝鮮籍)’이다. 그는 1948년 일본 외국인 등록법이 생겼을 때, 남북한을 통틀어 ‘조선’으로 분류되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대로 한국도 북한도 아닌 분단 이전의 ‘조선인’으로 남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 ‘조선’. 그의 육신은 실존하지만 그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 국가가 남북으로 쪼개어져 두 나라가 되었으나, 그는 분단된 나라를 그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유민(遺民)인 셈이다. 이 때문에 그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는 한국방문 시에 늘 순조롭지 못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김석범 선생의 출생지는 제주도가 아니다. 일본의 오사카다. 오사카 이쿠노쿠(生野區)의 이카이노(猪飼野)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석범 선생의 본명은 신양근이다. 부친은 제주시 삼양동 출신이다. 1925년 이주한 지 2~3개월 지나서 그를 낳았다. 이카이노는, 일본인들은 1973년부터 ‘모모다니(桃谷)’라는 지명으로 바꿔 부르고 있지만, 재일조선인 또는 재일제주인들에게는 여전히 이카이노다. 그의 출생연도인 1925년은 제주도민의 오사카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의 초기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이카이노는 제주도민들의 집단거주지로, 학교에서는 공식어인 일본어를 쓰지만 생활언어는 제줏말이었다. 땅은 일본이었지만 사회는 제주였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뒷날 그가 제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때 큰 자산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번역가 김석희는 그의 소설 《화산도》를 번역하면서 그가 묘사한 제주섬의 풍경과 풍속이 그렇게 사실적인 데 대해 놀라웠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나이 열세 살 때인 1940년에야 비로소 생애 처음 제주땅을 밟는다. 그는 제주에서 1년 가까이 생활하였는데, 이 경험은 그에게 있어 내면적으로 엄청난 충격적 변화를 일으킨다. 뼛속까지 반친일파인 것은 이때 이루어진 정체성에 기인한다. 식민지 출신 ‘황국소년’에서 제주섬사람으로 그의 정체를 다잡은 것이다. 비로소 그에게서 제주섬의 풍토는 정체성의 한가운데 자리 잡는다. 그가 소년시절 잠시 경험한 제주섬의 자연과 고향사람들의 언어와 생활상은 이후 그의 제주섬과 김석범 선생(김기삼 사진) 사람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써가는 데 장기지속의 원동력이자, ‘원풍경’이 된다. 성장 후의 그의 일대기를 잠시 살피면, 1945년 6월 일시 귀국하여 서울에 머물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조국이 해방을 맞았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던 그는 국학대학(1947년 개교, 1967년 수도의과대학에 인수합병, 우석대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71년 고려대학교에 합병된 대학) 국문학과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이듬해 8월 그가 태어난 일본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간사이대학(關西大學)’ 전문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노동일을 하다가 ‘교토대학(京都大學)’ 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을 전공한다. 이때 그는 이미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고 있었다. 1948년 재일 조선인연맹(약칭 朝聯)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1951년에는 일본공산당을 탈당하고, 1959년 재일 조선인총연맹(약칭 朝總聯) 계열의 조선고급학교의 문학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로 부임하여 교직에 몸담기도 하였다. 또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자로, 《문학예술》지의 편집자로, 《삼천리》지의 편집위원으로, 다양하고 열정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그는 1968년 조총련을 탈퇴하게 된다.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필명을 현재 널리 알려진 ‘김석범’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대표작으로 , , , , , 등과 조국방문기 등이 있다. 소설 는 그의 필생의 대작이다. 원고지 총 2만 2천 장.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의 수고로움을 더한

저자 소개

  • 저자 : KRAUS
오사카(大板)에서 태어나 평생에 걸쳐 ‘제주 4·3 사건’에 관련된 작품 집필에 매달렸다. 그는 18세인 1943년에 제주도에서 일 년여 머물며 의기투합한 청년들과 조선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1945년 3월에는 중국으로 탈출해서 임수정부를 찾아간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오사카로 돌아가야 했다. 해방 후인 1946년에도 그는 서울로 돌아와 국학자 정인보 선생이 설립한 국학전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사카로 밀항한 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김석범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도에서 밀항해 온 친척으로부터 제주 민중들의 참혹한 학살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이후로 그는 야만적인 권력에 의해 자행된 ‘제주 4·3 사건’의 문학적 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나이 32세 때인 1957년에 발표한 「간수 박 서방(看守朴書房)」과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에서 시작해, 「관덕정(觀德亭)」(1961), 「만덕유령기담(万德幽靈奇譚)」(1970) 과 「?月」(2001)에 이르기까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김석범은 1988년 다시 고국을 찾을 때까지 정권의 회유와 압박으로 많은 괴로움과 좌절을 겪어야 했으며, 제주 4·3 평화상 1회 수상자가 되었을 때도 이념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조국의 진정한 통일과 미래를 위한 망명 문학이 부정되는 현실에 맞서 자신의 문학은 ‘망명문학’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화산도」는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계에서도 김석범은 일본어로부터 자유와 해방이라는 고뇌를 안고 작가 활동을 해왔다. 일본어를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보편성에 근거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면서, 조선인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는 길을 지향했다. 「화산도」로 1983년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과 1998년 마이니치(每日) 예술상을 수상했다.

목차

목차
재발간에 즈음하여
초판의 '저자의 말'
간수 박 서방
까마귀의 죽음
관덕정
똥과 자유
허몽담(虛夢譚)
작품해설
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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