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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291128 / 336쪽 / 530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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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테마소설 > 대하/역사/전쟁소설
출판사 리뷰
3부(5, 6권)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는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세계사적 지평'에서의 조선 사회와, 그 사이를 헤쳐 나가는 동학의 모습을 주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을 통해 그려나간다. 이 속에서 전봉준-손화중-김개남 같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역사 인물만이 아니라, 동학을 적대시하며 대립하거나, 동학 속으로 침투하거나 간에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다양한 어조로 조명해 나간다. 그간의 동학 소설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에서 동학의 정당성을 과장하고 지배세력과 외세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데 치우쳐서, 무선무악한 역사의 잣대(균형)를 상실하였다면, 이 소설은 끝내 그 관조와 냉철을 빼앗기지 않는 강인함을 유지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환상적인 대목 중의 하나는 '여동학' 장흥 '이소사'에 관한 부분이다. 이소사는 관변기록에도 등장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여성 지도자'이면서 신이한 행적을 통해 장흥 일대의 동학농민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그 기록이 너무도 소략하여,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작가는 동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소사에게 풍부한 서사를 부여하였다. 이를 위해 저자는 1970년 영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이필제의 최초의 교조신원운동에서부터 그 역사를 써 나왔다. 그것을 통해 역사 기록으로 남겨진 이소사의 신이한 행적에 그럴 듯한 개연성과 판타지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런 방식으로 “소설 동학”은 동학의 드러난 역사 이면에 비장된 비결과 비기, 그리고 현기들에 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6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임에도, 동학에 대하여, 그리고 역사에 대하여 ‘다 말해 버리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동학 속으로, 동학이 펼쳐지는 역사 속으로,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그리고 그 역사가 흐르는 우리의 국토 속으로 계속해서 파고들기를 요청하고 유인한다. “소설 동학”의 또 하나의 미덕은 잊히고 묻힌 우리말을 풍부히 살려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임꺽정〉 〈장길산〉 등을 지나 〈토지〉나 〈혼불〉 등에서도 추구되었던 바이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독해력을 저감시킨다는 위험을 더 크게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어들을 되살려 씀으로써, 우리는 말과 더불어 사라져 버린 민중의 세계관과 삶을 더 폭넓게 교접하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단어는 하나의 우주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이 소설의 무기는 '동학적 상상력'을 극한도로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운의 동학 창도 과정에서의 천사문답과 같은 '종교적 신비체험'을 그 신비성과 합리성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고 '역사소설'적 감각 속에서 그려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동학의 교리나 교사(敎史)적 관점의 우수성(?)을 종교적 도그마에 굴복하지 않는 형태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냄으로써, 살아 있는 동학, 열린 동학, 우리 안의 동학을 살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을 채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동학은 해월의 수제자인 손병희로 승계되면서 1905년 이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운동과 같은 역사의 전면에 다시금 나서게 된다. 이 소설은 거기까지를 다루고 있지 않으나, 그곳으로의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바라볼 뿐' 어설픈 허구적 낙관이나, 드러난 역사에 매몰된 허접한 비관 어느 쪽에도 이 소설은 가담하지 않는다. 소설 내내 그래 왔듯이, 드러난 역사와 드러나지 않은 흐름 모두를 껴안고, 역사의 지평 너머로 달려갈 뿐이다. 그 지평 너머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시 돌이켜 동학의 실재를 다시 개벽함으로써, 오늘 우리 존재의 실상을 다시 개벽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역사의 질곡에 대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다시 새 날을 열어갈 힘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