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56587288 / 263쪽 / 263g / 145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폴 칼라니티
-
김현경
-
윤선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17,820
- 16,650
- 16,830
- 16,200
출판사 리뷰
김창송 회장께서 처음 고려인 대학생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자고 발의를 할 때에는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최재형 선생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우리사회에 장학회가 되겠느냐는 생각에서이다. 선생의 명성은 연해주 지역 일대에서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 왔었고, 지금도 그곳 고려인들의 선생에 대한 존경심은 한결같다. 그렇지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몇 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있을 뿐 국민적인 공감대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장학회를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는 회원을 확보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 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걱정 속에서도 지난 3년 동안 장학회는 50명에 육박하는 고려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자랑스러운 장학회가 만들어지고 성장해 온 경위를 정리해 본다. 2011년 가을에 인간개발연구원 회원 이십여 명이 부부동반으로 연해주 고려인들이 하는 추석잔치에 초청을 받아서 다녀온 일이 있었다. 잔치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무렵 60~70대로 보이는 주부들 15명이 나와서 하는 합창순서가 있었다. 이분들이 나와서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구슬프게 부르던지 우리 일행을 비롯한 관중들 모두를 고향 생각을 하면서 울게 만들었다. 그 다음날 그곳 사람들의 삶터를 살펴보게 하느라고 고려인들의 가정을 안내받았다. 우리가 안내받은 그 집의 주부도 어제 축제에 나와서 노래를 함께 불렀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여쭈어 보았다. 아마 함경도나 평안도 어디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물었는데 놀랍게도 자기의 고향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라고 했다. 너무 의외의 답이어서 왜 거기가 고향이냐고 했더니 자기 연배사람들의 고향은 중앙아시아 이고 자기 부모의 고향은 연해주라고 하면서 함경도나 평안도는 자기 조부모의 고향이라고 했다. 어제 불렀던 노래 속에 있는 고향도 한반도가 아닌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고향의 사전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고향! 그것은 깨 벗고 놀던 어릴 적 친구들이 있는 곳이고, 실개천에서 가재 잡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푸근한 이웃이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곳 고려인들의 고향은 한반도가 아니라 러시아나 중앙 아시아 어디라는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 모두는 선열들의 연해주 정착에 얽힌 고향이 그리워지는 슬픈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지금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선 땅에 흉년이 들고 청일전쟁 노일전쟁 그리고 한일 합방 등 일본인에 의한 압제가 견디기 어려워서 고향을 등지고 연해주로 가신 분들의 후예들이다. 연해주 지역에서 그런대로 안정적인 삶을 꾸리던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폭거에 의해서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옮겨 갔다. 그곳에서 첫해의 겨울은 땅굴을 파고 견디면서 그곳에 적응을 하고 안정을 찾아 정착을 했다. 고려인들의 굳센 근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1992년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의 나라들이 그들이 갈망해오던 독립이 된다. 고려인들이 정착해 살던 독립이 된 소수민족의 나라가 이번에는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민족인 고려인들을 핍박을 했단다. 고려인들은 그 핍박을 피해서 또 유랑의 신세가 되어 연해주로 옮겨 가게 된다. 그런데 고려인들이 고향으로 생각했던 연해주에는 찾아온 고려인들을 편하게 받아줄 이웃이 없었다. 그래서 그 고려인들은 자기들이 정들이고 살았던 그들의 고향인 중앙아시아가 그리워진다. 어쩌다 우리 민족은 이런 슬픈 유랑민의 신세로 살아야 하나 서글퍼진다. 독립투사 최재형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1860년) 최재형 선생은 어린 시절 홍수와 기아 때문에 부모를 따라 먹고 살기 위해서 연해주로 이주했다고 한다. 11세 되던 해에 너무 배가 고파서 가출을 했다가 러시아 상선의 선주 부부를 만나게 되고 그런 인연으로 러시아 상선 선원이 된다. 상선 선원으로 7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면서 외국어도 익히고 상술도 배우고, 국제적 감각에도 눈을 뜨게 된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기회를 만났다는 것이다. 최재형 선생은 그런 자질을 인정받아서 러시아 행정기관의 책임자가 되고, 블라디보스토크 군부대의 식료품 납품을 하게 되고, 무역업까지 하게 되면서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전 재산을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사업과 장학사업을 하면서 못배운 한을 푼다. 그리고 안중근, 홍범도, 이범윤 등 독립투사의 무장투쟁에도 앞장서서 헌신했다고 한다.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을 후진양성과 나라를 되찾는 독립투쟁에 바쳤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연으로 그곳 연해주 지역에서는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알려져 있는데 이런 분이 국내에선 철저히 잊힌 인물이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나는 그냥 여행에서 들은 감동쯤으로 생각하고 3박4일의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한 보름쯤 지나서 이번 여행에 가장 연장자이고 인간개발연구원 부회장인 김창송 회장께서 점심식사나 함께 하자고해서 별 생각 없이 시간에 맞춰서 나갔다. 그 자리에서 김창송 회장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이제 잊혀진 독립투사 최재형 선생을 감동으로만 기억할 일이 아니라 새롭게 재조명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 첫걸음으로 최재형 장학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장학회는 우수한 고려인 대학생들 중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선발해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장학금을 지원받은 학생은 졸업 이후 고려인 동포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로 약속하기만 하면 되도록 합시다. 이제 우리가 최재형 선생과 유족의 절규에 화답할 때입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최재형 선생의 유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일에 모든 분이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함께 했던 우리들은 그냥 수긍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장학회가 출범한 지 일천한데도 호응하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생겨서 제법 탄탄한 조직으로 착근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김창송 이라는 개인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상이 그리고 그 실천의 과정이 역사를 바꿔 가는 것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젖는다. 나 같은 범인은 여행을 그냥 여가를 즐기는 놀이쯤으로 생각하고 다녀왔는데, 그분께서는 이런 훌륭한 발상을 하고 집념을 갖고 사업을 진행해서 오늘 같은 실적을 보면서 감동과 존경의 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연말에 보신각 타종행사에 최재형 장학회 회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서 다녀오신 적이 있었다. 이분은 이제 서울시를 비롯한 정부 요로에서 장학회에 대한 인지도가 차츰 늘어나고 있다면서 얼마나 좋아 하시던지 마치 어린 학생이 상급학교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좋아했다. 지난 5월13일에 국립 서울 현충원에 최재형 선생 양주분이 위패 봉안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시베리아 벌판에 고혼처럼 버려졌던 선생을 고국의 품속에 편안히 잠들게 했다면서 좋아하시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감동하게 했는지 모른다. 이제 시베리아 벌판에 계시던 선생 양주분의 유해를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을 해서 선생의 고혼을 고국의 품으로 편히 모시는 일도 해냈다. 장학회의 면모도 젊은 이사진으로 보완을 해서 정부에 사단법인 등록도 마치고 제법 착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 장학회의 하루하루를 노심초사 해오신 김창송 회장께 커다란 위로와 찬사를 보낸다. 장학회는 착실히 착근을 했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고려인 자녀들에게 면학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참으로 보람된 일을 했다고 자위한다. -박춘봉
작가의 말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쁜 소식이 드디어 들려왔다 …… 4
제1부 독립투사 최재형
삶의 모델, 최재형 선생 …… 12
편히 잠드소서 …… 16
불멸의 영혼, 독립투사 최재형 선생의 회중시계를 받고서 …… 18
우수리스크 테이프 커팅하던 날 …… 22
최재형 선생 영전에 올리는 글 …… 26
현충관의 봄 …… 31
주인 없는 분향소 …… 34
현충일 아침 …… 38
축하의 글
장만기 | 추천사 …… 41
박춘봉 | 최재형 장학회와 김창송 회장 …… 44
받은 편지글
최발렌틴| 존경하는 김창송 회장님! …… 50
УВАЖАЕМЫЙ е-н КИМ ЧАНГ СОНГ!
김형오 | 김창송 회장님 …… 57
잡지 인터뷰
고려인 동포사회에 봉사하는 ‘애국 인재’ 양성 …… 59
[영문] Fostering 'patriotic talents' who serve the Korean community
[일어] 大陸の 靈魂 崔在亨 先生
기사 <조선일보>
연해주에 한인 1만명 정착해 만든 독립운동 중심기지죠 …… 69
후원약정서
제2부 정직으로 일군 옥토밭
스트라이크를 하던 날 …… 76
당신의 생신 …… 80
정화수 떠 놓고 …… 84
때 늦은 결혼반지 …… 87
영시의 기원 …… 90
아내의 손 …… 94
시니어 타운 …… 98
그녀의 알바 …… 102
당신의 운전 …… 106
빛바랜 사진 …… 109
수술(手術)보다 시술(施術) …… 112
황금병아리 …… 116
정직으로 일군 옥토밭 …… 120
중문판 에세이집을 받던 날 …… 125
영혼이 담긴 가방 …… 131
단 1분 …… 135
손녀의 꽃 향 …… 141
손자의 퇴역증(退役證) …… 144
녹슨 철모 …… 148
코레아의 딸 …… 152
지금은 때가 아니야 …… 155
어느 실향민의 기도 …… 158
한국수입협회에 관한 감회 …… 161
새벽달이 밝았네 …… 163
한 알의 밀알 …… 166
제3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동거와 이혼식 …… 170
가사조정 …… 173
마지막 유언 …… 177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 181
누구세요? …… 185
지구촌의 봄날은 …… 189
글감 찾아 1만3천 리 …… 193
노래하는 단풍 …… 197
영덕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 201
새벽을 여는 여인네들 …… 204
박연폭포 …… 207
제4부 따뜻한 숨결
-시집 《새벽달이 밝았네》 출판기념회
작가의 말 《새벽달》이 밝았네 …… 212
악보 새벽달 …… 213
축사 및 해설
오세영 | 포도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 217
신달자 | 따뜻한 숨결로 쓴 핏줄의 내밀한 기록 …… 220
손광성 | 내가 본 김창송 회장 …… 226
저서 축하글
최승웅 | 때 …… 231
李正林 | 때를 기다릴 줄 안 忍苦의 아름다움 …… 233
금진호 | 그 집념, 그 정열에 감탄 …… 235
김후란 | 광야(曠野)에 길을 낸 그 인생길에 …… 236
신태용 | 무역지망생들의 좋은 안내서 …… 238
이선우 | 진정한 애국자, 김창송 회장님 …… 240
내빈들의 축하글 …… 242
가족, 친지들의 축하글 …… 252
손주들의 축하 메시지 …… 255
기도문 | 한영상 회장 …… 2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