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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3 : 열도의 내전과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

장한식 저 | 산수야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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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0975419 / 298쪽 / 566g /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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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 고대일본의 정치지도는 AD 4세기 후반 즈음부터 달라진다. (…) 대형변화를 일으킨 근본동력으로 필자는 기마민족의 진출을 꼽는다. 그런데 기마민족의 진출 이후에도 규슈가 기나이와 함께 일본의 정치중심지로 역할하는 모습이 간간이 확인된다. (…) 필자는 ‘규슈를 중심으로 활동한 숨겨진 왕조’를 주목한다. (…)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문제의 왕조는 가야에서 건너간 숭신왜국이다. (35쪽) 오지랖이 넓었던 숭신왕조는 대한해협 건너편 한반도 정세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다. 가야와 사실상 연합왕국을 이룩하였던 숭신의 왜국은 AD 400년을 전후하여 백제와 힘을 합쳐 신라를 타도하는 데 국력을 기울였다. 다급해진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숭신왕조가 4세기 말부터 소멸하는 6세기 초까지 약 150년간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맺은 깊은 관련성을 감안하면 숭신왕조는 일본사보다는 한국사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더 온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109쪽) AD 527~528년 ‘반정의 전쟁’으로 규슈 일대의 승신왜국을 제압하고 대륙과의 안정적인 외교루트를 확보한 기나이 응신왜는 곧이어 가야(임나)와 신라, 백제 등과의 관계에서 과거 숭신왜가 지녔던 위상을 대신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한다. 백제에 대한 ‘갑질’이 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흠명 4년(AD 543) 11월, ‘임나하한에 있는 백제 군령·성주를 일본부에 귀속하게 하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272쪽) (…) 5세기 후반부터 숭신왜가 서부로 후퇴하면서 규슈 일대의 인구가 늘었고 기나이평야까지 잃었기에 양곡 부족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기나이군과 싸울 병사들을 먹일 군량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대사이다. 쌀이 절실했던 규슈의 정치체가 한반도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색한 추리가 아니다. 물이 넉넉하고 들판이 넓은 영산강유역은 벼농사 역사가 길고 생산량도 많았다. 영산강의 쌀과 규슈의 병사를 교환한 증거가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이 아닐까? (394쪽) 일본서기가 대(對)한반도 관계사를 조작한 것은 콤플렉스 극복 차원만이 아니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일본서기는 8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의식하고 반영한 정치문서이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대등한 외교관계가 아니라 조공책봉의 외교가 기본이었다. 따라서 위계가 낮으면 곤란하였다. 야마토왜는 적대국 통일신라를 능가하는 나라가 되고자 했으므로 신라에 멸망당한 백제를 본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어미를 죽이는 심정으로 본국을 조공국으로 묘사한 슬픈 책이 고사기요, 일본서기이다. 그런 만큼 일본의 정치체 입장에서는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근본을 베어버린 ‘나름 결단의 역사서’라고 하겠다. (414쪽)

저자 소개

  • 저자 : 장한식
저자 : 장한식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와 동(同)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고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귀국 후 뉴스제작부장과 경제부장, 사회부장, 해설위원, 편집주간, 전략기획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저자는 과거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견지에서 역사문제에 제법 천착해 왔던 바 1999년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2009년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를 출간하였다. 2015년에는 중국이 굴기하면서 역사문제나 영해, 영토문제 등으로 우리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가하는 상황에서 만주족의 ‘오랑캐 정신’은 소국이 대국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를 썼다. 아울러 대한민국 해양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2018년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을 펴냈다. 이같은 저술의 연장선상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일(韓日) 양국이 ‘과거사를 놓고 깊이 갈등하는 현대사’에 대한 저자 나름의 시각과 해법을 담아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를 내놓았다. 1999년 출간한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를 확장한 속편인 셈이다.

목차

프롤로그 _ 열도의 패권전쟁과 한반도 남부의 정치방정식 ·4

1부. 규슈시대에서 기나이시대로

1장 _ 야마타이국과 규슈시대
열도의 초기 정치중심은 규슈 ·20
야마타이국 규슈 소재의 증거 ·25
‘야마터’의 의미는? ·27
규슈왜국설과 문제점 ·31

2장 _ 숨겨진 정치체 규슈왕조의 진실
규슈 정치체 전후 3차례 존재, 6세기 초 최종 몰락 ·36
규슈왕조 증거①, 신라왕자 미사흔의 탈출 설화 ·43
규슈왕조 증거②, 오노 야스마로(太安萬侶)의 슬픔 ·51
규슈왕조 증거③, 구당서(舊唐書)가 전하는 ‘진실’ ·52
규슈왕조 증거④, 일본 건국신화의 복합구조 ·54

3장 _ 숭신왕조의 일본열도 평정
삼왕조 교체설과 기마민족 숭신왕조 ·61
신무동정(神武東征)과 숭신동정(崇神東征)…규슈시대의 종언 ·66
숭신왕조와 활발한 열도정복 ·71
고분시대 도래와 기나이의 정치중심 부상 ·83
숭신왕조와 기나이 정치질서의 변화 ·89

4장 _ 사방이 적(敵)…숭신왕조의 한계
동서 양쪽의 적, 숭신왕조의 약점 ·93
전국적 통일이념의 부재가 초래한 지역의 도전 ·102
숭신왕조 잇단 수도 이전의 의미 ·107
숭신왕조와 한반도 제국(諸國) ·109
중애천황의 죽음이 증언하는 역사 ·119

2부. 백제계 응신왕조 열도패권 장악

5장 _ 백제의 승부수…열도에 담로국 개척
백제와 왜국 관계의 수수께끼 ·130
5세기 삼한삼국과 일본열도의 정치질서 ·138
궁월군(弓月君)의 도일(渡日)과 백제 담로소국의 출현 ·147
목만치(木滿致)와 곤지(昆支) 열도로 가다 ·155
곤지의 가와치(河內)·나라(奈良) 진출 의미는? ·162
아와지시마, 담로도(淡路島)가 1번국토가 된 까닭은? ·166
열도 내 백제파워의 원천은 철(鐵)이었나? ·172

6장 _ 흔들리는 숭신왕조 위험한 도박
한왜연합왕국, 가야·숭신왜국의 약점 ·178
5세기 왜5왕의 특징 ·180
왜5왕과 숭신왕조·응신왕조의 패권경쟁 ·186
웅번(雄藩) 백제담로국, 숭신왕조와 경쟁하다 ·191
숭신왕조의 신라 접근과 실패 ·196

7장 _ ‘곤지의 쿠데타’…백제왕실의 열도왕권 장악
왜왕 무(武)의 미스터리 ·201
곤지의 도일(渡日) 에피소드와 ‘거대한 비밀’ ·207
규슈에서 군왕(君王)을 출산한 두 여인…개로왕 후비와 신공황후 ·213
곤지와 무내숙녜 ‘시대를 달리한 동일인 행적’ ·219
곤지의 쿠데타…기나이 왕권을 빼앗다 ·225
곤지 후예, 백제와 열도의 왕통을 독점하다 ·235
‘응신 모델’ 창조와 응신왕조의 개창 ·245

8장 _ 응신왕조의 승리, 일본열도 패권 확립
‘반파(伴跛)의 전쟁’과 한반도·일본열도의 정치질서 변화 ·249
‘반정(磐井)의 전쟁’과 숭신왕조의 소멸 ·252
말기 숭신왕조의 영역은 어디까지였나? ·257
통일군주 와카다케루 대왕(獲加多支鹵 大王)과 응신조의 규슈평정 ·265
숭신-응신왕조 병존기의 왕력 복원 시도 ·272
일본서기의 숭신왜국 말살…응신왕조 패권의 완성 ·284

3부.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

9장 _ ‘비운의 왕조’ 영산강 정치체
농경·어로 복합지역 영산강유역 ·298
왕건이 점령했던 영산강유역 ·300
신미제국(新彌諸國)과 침미다례(?彌多禮) ·302
영산강유역, 해인족 최후의 집결지인가? ·307
5~6세기 영산강유역, 백제의 변방 아닌 반(半)독립지대 ·310

10장 _ 영산강 정치체와 가야(임나)
영산강 고분에서 확인되는 가야와의 친연성 ·318
수수께끼의 땅 임나하한(任那下韓) ·323
임나하한은 영산강유역을 말하는가? ·327
하한과 남한(南韓), 마한(馬韓)과 모한(慕韓)의 관계 ·333
모용선비의 호남 진출과 영산강 정치체 ·340

11장 _ 백제의 남하와 영산강 정치체의 멸망
백제의 남하와 가야(임나) 공략 심화 ·350
백제의 호남동부, 임나사현(任那四懸) 탈취 ·359
백제의 기문·대사 장악 ·362
‘반파(伴跛)의 전쟁’과 가야의 몰락 ·366
‘백제의 남쪽 땅’ 영산강 정치체의 소멸 ·369

12장 _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진실
5~6세기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등장 ·380
영산강 전방후원분에 대한 기존의 시각 ·382
기존 학설에 대한 평가 ·386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새로운 해석 “쌀과 군대의 교환 증거” ·390
5세기 후반, 영산강유역의 위기와 외교적 대응 ·398
‘가야·숭신왜’ - ‘백제·응신왜’ 경쟁과 영산강 전방후원분 ·401

에필로그 _ 일본서기 극복의 출발점에 서다
국호 변경과 일본서기(日本書紀) 편찬 ·407
사실(史實) 아닌 당위(當爲)를 기술하다 ·412
신라에 대한 적대감·콤플렉스로 일관한 이유 ·416
‘역사(歷史)가 된 역사서’…책의 힘은 강하다 ·420
해인족의 역사에서 얻는 ‘일본서기 극복’의 통찰 ·424

참고문헌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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