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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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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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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 15,300
- 16,200
- 12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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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신화의 옷을 입은 주인공 요셉과 탐무즈-길가메쉬-오시리스- 아도니스의 계보 이 소설은 다양한 신화들로 겹겹이 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마스 만이 깨닫고 싶어하던 기원에 대한 답이 바로 '신화'라는 틀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들은 모두 기원신화를 안고 있다. 즉 천지창조, 신들의 전쟁, 인류의 기원, 홍수 이야기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다르지만 각각이 포함하는 요소는 거의 엇비슷한 기원신화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만은 이들 신화들이 독자적으로 자생한, 독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가 시대가 흐르면서 옷을 갈아입듯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모태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것이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인 요셉을 가리켜 '신화를 가지고 노는 사기꾼'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요셉이 그리스 신화의 티폰의 계보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탐무즈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로 이어지는 유형이라고 했다. 고대인들은 특히 신화 속의 인물과 자신들을 동일하게 여기곤 했는데, 요셉 또한 바빌론과 이집트의 세력권에서 살았던 그곳 신화에 등장하는 탐무즈라든가 오시리스를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고대인답게 그 신화 속의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고대인은 현대인과는 다른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었다. 스페인의 문화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는 고대인은 뭔가 하기 전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과거에서 전형을 찾아보고 마치 잠수복을 입듯이 그 안에 미끄러져 들어가 안정감을 얻은 다음 현실의 문제로 뛰어든다 고 말하기도 했다. 신화는 흔히 삶의 원형(아키타이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하나의 경건한 고정틀, 생명이 피와 살로 그 틀을 채워 넣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것이 신화라는 말이다. 작가는 신화의 반복으로 여긴 고대의 인물로 클레오파트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증거는 그녀의 죽음이라고 했다. 가슴에 독사를 올려놓고 죽은 클레오파트라.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이쉬타르,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를 재현하는 삶이었다. 이쉬타르는 흔히 뱀옷을 입은 모습이거나 아예 목에 독사를 감고 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삶 또한 기존의 종교적 문화유산이 모두 투영된 것이므로, 그의 이야기 또한 구약성서(또는 신화)를 원형으로 한 위대한 삶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이집트 신화 읽기 그렇다면 우리 주인공 요셉은 누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처녀 생산,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하는 요셉, 텅빈 무덤(우물) 등은 그가 바로 예수의 전형임을 알게 한다. 물론 요셉이 입고 있는 신화의 옷은 한 가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미소년 아도니스, 바빌론 신화의 갈기갈기 찢겨져 제물로 바쳐진 자 탐무즈이며, 또한 여신 이쉬타르가 몸 달아 한 길가메쉬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를 '인용'하는 삶, 풀어서 설명하자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어느 영웅의 말을 자신의 입에 올리거나 그의 행동까지 따라하는 삶, 즉 신화 속에 사는 인생은, 신화에 올리는 일종의 예배 의식(儀式)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이 신화들이 소설 읽기에 복병이 될 수도 있다. 토마스 만이 이야기하고 있는 신화들이,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 이집트 신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소함 탓에 소설 읽기를 멈추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의 요셉을 아는 사람들이든 혹은 이 소설 전면에 깔려 있는 고대 신화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든, 요셉의 이야기를 신화와 접목시켜, 더 나아가 그에게 피와 살을 덧붙여 다시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한 토마스 만의 묘사와 상상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 경건해지나 메소포타미아의 탐무즈와 길가메쉬 신화, 이집트의 오시리셉과 그 형제들}도 바로 신화가 다시 휴머니즘을 위해 쓰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 신화의 옷을 입은 주인공 요셉과 탐무즈-길가메쉬-오시리스-아도니스의 계보 이 소설은 다양한 신화들로 겹겹이 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마스 만이 깨닫고 싶어하던 기원에 대한 답이 바로 '신화'라는 틀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들은 모두 기원신화를 안고 있다. 즉 천지창조, 신들의 전쟁, 인류의 기원, 홍수 이야기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다르지만 각각이 포함하는 요소는 거의 엇비슷한 기원신화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만은 이들 신화들이 독자적으로 자생한, 독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가 시대가 흐르면서 옷을 갈아입듯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모태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것이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인 요셉을 가리켜 '신화를 가지고 노는 사기꾼'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요셉이 그리스 신화의 티폰의 계보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탐무즈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로 이어지는 유형이라고 했다. 고대인들은 특히 신화 속의 인물과 자신들을 동일하게 여기곤 했는데, 요셉 또한 바빌론과 이집트의 세력권에서 살았던 그곳 신화에 등장하는 탐무즈라든가 오시리스를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고대인답게 그 신화 속의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고대인은 현대인과는 다른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었다. 스페인의 문화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는 \"고대인은 뭔가 하기 전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과거에서 전형을 찾아보고 마치 잠수복을 입듯이 그 안에 미끄러져 들어가 안정감을 얻은 다음 현실의 문제로 뛰어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화는 흔히 삶의 원형(아키타이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하나의 경건한 고정틀, 생명이 피와 살로 그 틀을 채워 넣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것이 신화라는 말이다. 작가는 신화의 반복으로 여긴 고대의 인물로 클레오파트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증거는 그녀의 죽음이라고 했다. 가슴에 독사를 올려놓고 죽은 클레오파트라.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이쉬타르,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를 재현하는 삶이었다. 이쉬타르는 흔히 뱀옷을 입은 모습이거나 아예 목에 독사를 감고 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삶 또한 기존의 종교적 문화유산이 모두 투영된 것이므로, 그의 이야기 또한 구약성서(또는 신화)를 원형으로 한 위대한 삶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이집트 신화 읽기 그렇다면 우리 주인공 요셉은 누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처녀 생산,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하는 요셉, 텅빈 무덤(우물) 등은 그가 바로 예수의 전형임을 알게 한다. 물론 요셉이 입고 있는 신화의 옷은 한 가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미소년 아도니스, 바빌론 신화의 갈기갈기 찢겨져 제물로 바쳐진 자 탐무즈이며, 또한 여신 이쉬타르가 몸 달아 한 길가메쉬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를 '인용'하는 삶, 풀어서 설명하자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어느 영웅의 말을 자신의 입에 올리거나 그의 행동까지 따라하는 삶, 즉 신화 속에 사는 인생은, 신화에 올리는 일종의 예배 의식(儀式)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이 신화들이 소설 읽기에 복병이 될 수도 있다. 토마스 만이 이야기하고 있는 신화들이,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 이집트 신화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소함 탓에 소설 읽기를 멈추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의 요셉을 아는 사람들이든 혹은 이 소설 전면에 깔려 있는 고대 신화 스 신화, 성서의 요셉 이야기, 그리스·로마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 신화 그리고 예수의 생애는 모두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사상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다. 토마스 만은 인간이 남긴 이들 가장 오래된 문서들에 파묻혀서 1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순수 집필기간만 13년이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태곳적 것이나 원시적인 것 혹은 야만적인 것에 대한 흥미로움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구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사명이었다. 인생은, 그가 겪어온 인생은 질펀한 고통이 도처에 몸을 감추고 있는 시대였다. 나치즘을 경험한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의 죽음'인지를 체험했다. 그리고 반드시 '부활'이 필요했으며, 죽음을 넘어선 부활이 바로 인생의 줄거리인 것을 이해했던 것이다. 새롭게 다시 산다는 것 그리고 신을 찾는 인간만이 경건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만년에 깨닫게 된 것이다. 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든, 요셉의 이야기를 신화와 접목시켜, 더 나아가 그에게 피와 살을 덧붙여 다시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한 토마스 만의 묘사와 상상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은 어떻게 경건해지나 메소포타미아의 탐무즈와 길가메쉬 신화,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성서의 요셉 이야기, 그리스·로마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 신화 그리고 예수의 생애는 모두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사상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다. 토마스 만은 인간이 남긴 이들 가장 오래된 문서들에 파묻혀서 1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순수 집필기간만 13년이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태곳적 것이나 원시적인 것 혹은 야만적인 것에 대한 흥미로움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구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사명이었다. 인생은, 그가 겪어온 인생은 질펀한 고통이 도처에 몸을 감추고 있는 시대였다. 나치즘을 경험한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의 죽음'인지를 체험했다. 그리고 반드시 '부활'이 필요했으며, 죽음을 넘어선 부활이 바로 인생의 줄거리인 것을 이해했던 것이다. 새롭게 다시 산다는 것 그리고 신을 찾는 인간만이 경건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만년에 깨닫게 된 것이다. ♣ 작품구성 ● 이집트에서의 요셉 타락의 도시 이집트로 내려간 요셉은 이집트의 대인 포티파르(보디발)에게 팔려 노예가 된다. 야곱의 유일한 어린양으로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던 요셉이 노예라니, 그들의 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하지만 요셉은 분명 모든 일이 먼저 알고 행하시는 신의 뜻임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 야곱에 대한 그리움을 누르며, 꼭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이집트에서 높이 오른 자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여진 현실은 뱀의 유혹이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