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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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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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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반전사상을 담은 손자의 병법 손자는 도망친 자[孫者]였다. 손무는 그 당시 노예에서 막 벗어난 유랑객이었다. Deep State(內朝)인 고소성姑蘇城의 전쟁광들과 임치臨淄의 육식자들을 타이르고 싸움을 말리고 싶었다. 그가 쓰고 싶은 책은 군대의 해체를 논하는 “차병서次兵書”였다. 그래서 싸움에 이길 궁리로 혈안이 된 권력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중적이었다. 모두 싸우지 말라는 충고였고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라는 고언苦言이었다. 저자는 <손자병법>을 經의 요건인 품위(雅) 있고, 사색이 통달(達)하여, 신뢰(信)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읽어 기쁘고 즐겁다면 우리가 모두 나누어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13편과 82편 모두 전傳하여진 과정의 고통과 험로를 이해하면서 더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바치고 있다. 저자가 밝히는 책의 내용 책은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장장본의 발견과 위서 논쟁의 배경을 기술했다. 장장본의 초사본을 구해 사진을 해독하는 것이 어려웠다. iCloud에 저장된 중화권 연구가들의 사본은 약간씩 다르다. 여러 개의 사본 중 전체 맥락이 통하는 자료를 취했으나 진위를 판별할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텍스트는 손무의 맏아들 손치가 썼다는 <입언>에 보이는 단서였다. 글자 하나하나가 스치고 지나갈 수 없는 수수께끼와 힌트를 담고 있었다. 2008년 여름 장장본을 평가하고 발문跋文을 쓴 중경重慶의 오송림吳松霖은 발문 수정문에서, 장장본이 위서가 아님을 강변하고 중국 손자학회를 질타하고 있다. 장장본 초본을 질서 있게 배열한 것은 오선생의 공이다. 그는 <손자병법>이 실체적 경험을 가진 역사적 인물들과 학자들에 의해 점차 발전 형성되었다고 말하며 장량張良, 한신韓信, 양복楊樸, 임굉任宏, 유향劉向, 유흠劉歆 등에 의해 다듬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장장본 82편에서 13편으로 축간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특히 도교 사상이 지역 컬트(Cults)와 융합하는 시점인 3~4세기에 나타난 사회 현상을 기술하고 가전한 82편과 세전한 13편의 운명을 논했다. 축간이 진행되며 작용한 요소를 관찰함에 음양오행의 순환성과 생극生克을 도입했다. 13편으로의 성립은 갑자기 어느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다는 증거를 모았다. 2장에서는 사서에 기술한 손자의 일생과 여러 손 씨 계파의 족보, 장장본의 서술을 재고하여 그의 생애를 재조정한다. 중국 사서의 오류와 혼돈을 정리할 수는 없으나, 유물론적 중국 학계의 논리보다는 실증을 토대로 손자 세손世系의 혼란을 응시했다. 손무의 경험이 반영된 병법 문구를 대조하고 글자가 연변 한 까닭을 밝히면서, 손무가 “애릉 전투”의 포로였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은 손무 생애의 사라진 연결 고리를 만들어 그의 실체를 복원하는 데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손무가 활동한 오나라의 실체적 모습을 의심하고 동중국해에 침몰한 해양 제국론을 제기했다. 장장본과 은작산 죽간과의 관계로 나타난 손빈병법 허구성의 공감은 독자의 몫이다. 손빈은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모순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손자병법>에 보이는 그의 “생각 DNA”를 발견하면 손빈의 역사적 실체는 부인할 수 없다. <좌전>에서 추방된 그의 이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서에서 언급된 손빈과 묘갱에서 나온 죽간의 흔적을 살피면서 20세기에 재탄생한 <손빈병법>이 왜 漢唐을 거치며 전승되지 않았는지 알게 되는 실증 자료를 장장본이 제공한다. 3장에서는 도가와 병가가 교섭하여 변화한 13편과 82편의 일부 문구를 시공을 초월한 “대화 Metaverse” 안에서 교감校勘했다. 특히 삼국시대 한중漢中에서 일어난 조조曹操와 장로張魯의 만남으로 나타난 13편의 연변과 왕필王弼의 병법에 대한 몰이해, 4세기 후반에 일어난 도교의 반란인 손은孫恩의 난을 통한 장장본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도교와 병학의 랑데부는 가전본(82편)과 세전본(13편)의 전승 의미와 방법을 뚜렷하게 말해 주었다. 많은 증거 죽간이 진시황, 태사공, 홍위병에 의해 소각되었는데, 그 빈 곳에 역사물 인벤토리를 창작하여 채운 사마천司馬遷을 위증 혐의로 소환했다. 부록에는 “문서가설도”“장장본 서초본”원문 번역, “축간 과정 요소(3才와 5事)로 분류한 13편” “손자병법의 演流”를 넣었다.
일러두기/ 8
들어가면서 / 14
1장. <손자병법 장장본 82편>의 발견/ 21
발견과 전래 / 22
위서논란/ 24
장장본張藏本 속의 발견들/ 31
가. 한신비주韓信批註/ 31
나. 경림간景林簡의 정체/ 52
다. 제齊 안성간安城簡과 진궁秦宮 미오간??簡 / 59
축간縮簡 과정의 산책刪冊과 재조합/ 66
가. 13편은 82편을 축간한 것인가?/ 66
나. 공개된 장장본 82편의 편제 순서와 구신자九神者/ 70
다. 한신韓信의 병법 서차序次/ 73
라. 82편의 출몰/ 74
2장. 장장본으로 풀리는 <손자병법>의 비밀/ 83
손무병법 82편 속의 암호들/ 84
가. 글에 손무孫武라는 이름을 직접 사용한 점/ 84
나. 주오민周吳民, 吳나라인가? 나의 나라인가?/ 86
다. <손무병법 82편> 집필 시기 분석과 손무의 생애 재조정/ 91
라. 손무는 어디에 있었나?/ 104
마. 전차 기동전이 가능한 지역은 어디였나?/ 141
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이해로 본 <82편의 성립 시기>/ 145
사. 82편과 13편 모두에 보이는 漢代 이후의 글자들/ 148
아. 깨우친 노예 민?과 그들의 글 예서?書/ 155
자. 개두문의 “孫子曰” 유무/ 159
차. 과연 처음부터 13편이었나?/ 161
吳나라, 사라진 해양 제국/ 166
가. 吳나라의 국제적 지위와 손자의 역활/ 166
나. 吳의 중심은 어디었나?/ 178
다. 가나 마타이 (가야와 야마타이)/ 208
라. 오왕광검吳王光劍, 중국 역사의 물화 현장/ 215
장장본과 은작산 죽간과의 관계로 나타난 손빈병법의 허구성/ 224
가. 사서에 언급된 손빈孫?/ 224
나. 손빈병법은 왜 전승되지 않았나?/ 227
다. 마릉 전투의 설계자, 다시 孫氏에서 田氏로/ 237
라. 13편에 보이는 손빈의 흔적들/ 245
<좌전>에 없는 영웅의 의미 / 256
가. <좌전>의 성격/ 256
나. 섭적葉適의 손자 좌전무대론/ 257
다. 13편에 숨어있는 불편한 영웅들/ 262
라. 손성연의 고민, <좌전>에 없는 손무는 유령인가?/ 274
3장. 도가와 병가의 하이브리드, 81편의 둔갑/ 285
立言(머릿말)에 숨겨진 비밀/ 286
가. 九神者/ 287
나. 노자와 손자의 초청 메타버스/ 289
가전家傳과 세전世傳의 분계分界/ 317
가. 잔도棧道의 싸움/ 317
나. 조조曹操와 장로張魯의 대화/ 326
대도大道와 잔도棧道에서의 행공行空/ 338
손은孫恩의 반란/ 349
가. 여산盧山에서 태호太湖까지/ 349
나. 손은孫恩의 반란/ 355
다. 위화존魏華存(서기 252~334)/ 381
전쟁 기록의 모음 <도덕경>/ 399
부록/ 415
1. <손자병법> 문서 가설도/ 416
2. 장장본 초본발문抄本跋文/ 417
3. 장씨가전수초본張氏家傳手抄本 원본 및 해석/ 420
4. 축간 과정 요소(3才와 5事)로 분류한 13편/ 578
5. 손자병법 演流/ 581
참고문헌과 World wide web/ 587
<老孫兵談>을 탈고하며/ 5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