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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40301 / 251쪽 / 270g / 124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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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강렬한 순간의 현현들 앞에 선 이들 서사가 불가능한 충만한 시간 우리는 소년일 때 만났다. 유우가 소년이었고 내가 소년이었을 때. 아이도 못 되고 어른도 못 되었던 때.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던 때. 여성도 남성도 못 되었던 때. 기이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떤 만남은 너무도 강렬해서 서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섬광이 펼쳐지는 한순간. 주변부는 빛으로 얼룩지고. 빛만 남아 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나는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_「우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살면서 마주하는 강렬함은 종종 서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 그 자체로 충만한 순간에는 말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는 정체된 도로에서 사고를 목격한 ‘나’가 과거에 우리가 소년이었을 시절, ‘유우’와 서로를 욕망했던 시간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섬광과도 같은 ‘유우’와의 시간이 회고의 형태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와중에는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찰나, 순간의 현현은 진연주의 다른 소설 「구름」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구름」에서는 서울 하늘에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낯선 형태의 ‘구름’이 등장한다. 이 구름은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기에 구름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에 감상할 순 있지만 기록으로 남길 수는 없다. “기록되지 않는 피사체가 존재한다는 사실”(p. 206)로 인해 소설 속 인물들은 동요한다. 순간의 기이함과 그에 몰두하는 인간의 모습은 익숙한 일상을 일순 낯설게 하면서 동시에 기록이란 바로 그 순간에 발생할 수는 없다는 것, 즉 현재에 사로잡힌 상황을 벗어나 필연적으로 한 발짝 늦게 일어난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시 「우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가 회고의 형식을 가졌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어쩌면 누군가는 결국 기록을 포기하고 섬광 속으로 아예 뛰어들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연주는 “무저갱의 지금-여기에 계속 남아 있기를 택한 자이다. 그리고 잠깐 맛본 완벽하고 충만한 그 시간의 기록자”(김미정 문학평론가)이다. 말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들 피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가능한 한 많이 말하고 쓰기 짧은 문장 몇 개가 일으킨 파장은 자못 괴이해서 나는 도저히 아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장을 읽다가 아무를 생각한다. 아무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문장을 읽다가 아무를 생각한다. 아무를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무를 생각한다. 아무. 아무. 아무.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아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무. 아무는 기어이 꿈을 완성하고야 만 것인가. _「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아무」 온몸으로 상실을 맞아야지. 예정은 취소될 수 없다. 이전의 경험에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어떤 상실은 슬픔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단지 화가 났다. 화가 나서, 잘 가요 엄마 가서 다시는 오지 말아요, 말했다. 사랑한다거나 용서해달라는 말 대신. 그런 말들은 너무 늦게 왔다. 그렇게 불현듯 갈 일이냐고. 나는 굳은 엄마를 끌어안고 말했다. 잘 가요 엄마. 가서 다시는 오지 말아요. _「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아무」에서 ‘나’와 ‘아무’는 사귀는 사이다. ‘아무’에게 빠져들수록 ‘나’는 ‘아무’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고,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도 ‘아무’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무’에 대한 마음은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화자는 그것이 정말 아무 말일지라도 허둥지둥해가며 ‘아무’에 대한 말들로 수다스러워진다. 말은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에 미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우리를 끊임없이 수다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말이란 표현하지 않아도 곁에 존재하던 것들이 떠난 이후에야 오는 것일까. 섬광이 사라진 후에, 젊음이 떠난 뒤에, 생이 끝나 죽음이 왔을 때 말이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에서 “그런 말들”은 엄마를 잃은 후에야 도착한다. 그리고 화자의 늙고 쇠약한 개들도 언젠가 세상을 떠날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엔 ‘상실’이란 단어가 가득하다. “무언가를 상실할 것”이라는 감각과 “나를 겁먹게”(p. 38) 하는 무수하게 예정된 상실들 앞에서 ‘나’는 수다스러워진다. 마치 ‘아무’를 향한 말로 가득했던 ‘나’처럼 눈앞에 아직 살아 있는 섬광의 순간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가능한 한 많은 말을 뱉어낸다. “이때, 비판도 비난도 분노도 증오도 사실은 모두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이의 흔적이다. 그것에 대한 적확한 말을 찾지 못한 이들은 수다스럽다”(김미정 문학평론가). 때문에 진연주는 계속 말한다, 그리고 쓴다.
떠도는 음악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없어야 할 것이 있게 되는 불상사
우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바깥의 높이
음표들의 도시
울퉁불퉁한 고통
구름
해설 | 사랑하는 이가 쓴다_김미정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