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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로 성공한 언론인 : 매일경제신문 창업주 정진기 이야기

최인수 저 | 말벗 | 2022년 12월

정도로 성공한 언론인 : 매일경제신문 창업주 정진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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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286331 / 248쪽 / 347g /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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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요즘 가짜 뉴스(fake)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언론의 행태를 보고 생각나는 말이 있다. “속보 경쟁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 경쟁을 하라.” ‘신의 성실한 보도’를 사시(社是)의 첫머리로 설정한 매일경제신문의 창업주 정진기(鄭進基)가 평소에 강조하던 말이다. 그 사시는 매경 제호 밑에 표시했는데 요즘은 표시되지 않는다. 그는 사시를 장식품처럼 걸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했다. 평기자(경제) 출신이었던 그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신문경영에 뛰어들어 경제신문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성공했다. 신문의 신규 발행이 철저히 억제된 금단의 벽을 뚫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신문등록부터 큰 난관이었다. 정부는 대형 신문들이 기득권으로 구축해놓은 철옹성의 언론시장에 새 언론기업의 진입 금지라는 보호벽까지 쌓아주고 있었다(재벌 신문 하나는 허가됐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과감히, 끈질기게 도전해 드디어 그 벽을 넘었으며, 새 언론인상(像)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기적을 이뤘다고 할 만하다. 창업주를 감히 그 영웅의 반열에 올림은 단순히 한 언론기업의 성공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개척정신, 무에서 유를 일구어낸 근검절약, 새 언론상 창조로 경제정보의 새 지평을 연 공로가 뛰어나다. 그는 그 결과로 경제·언론계에서 ‘신문경영의 귀재’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4대 신문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기적이라고 함은 옳지 않다. 매경은 그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담보하는 혼신의 노력이 영근 자기희생의 결과물이다. 그는 “매일경제는 내 생명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매경에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는 신문발행 허가를 얻기 위해 공보처를 37번이나 찾아가는 집념을 보였다. 그러나 집념과 끈기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상식을 넘는 전략으로 현실의 벽을 하나하나 넘어갔다. 그의 출발은 1965년 8월(신문사 설립) 창업 자본금은 500만 원. 무모할 수도 있는 출발이었다. 그렇게 뿌린 씨앗이 30여 년 만에 한국에서 굴지의 신문사로 자라는 위업을 일궈냈다. 매경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자체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 신문계에서 ‘신뢰도 1위, 직장구독 1위, 경제신문 1위, 전 일간지 4위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2001. 4. 4). 그로부터 20년이 더 흘러 창간 50주년을 넘긴 매경은 이제 언론계의 거목으로 자랐다. 그 후의 사람들이 경영을 잘한 원인도 있으나 창업주가 초석을 탄탄하게 놓은 공적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입지전적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의지는 강했고, 이상은 높았으며, 전략은 뛰어났다. 그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경구를 매경(필동 구 사옥) 현관에 크게 써 붙여 걸었다. 그의 신조였으며, 사원들도 공감하고 동참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채찍질이기도 했다. 그의 뜻은 ‘한국경제의 자립과 번영의 길잡이’가 되는 신문을 만드는 것. 그는 그 외길로 달렸고, 달려서 성공했다. 그는 그만의 전략이 있었다. 이 글은 그가 어떤 의지와 전략을 펼쳤는가를 창간 때부터 참여한 기자로서 불같았던 그의 체취를 느끼며 함께한 행적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도, 사사도 아니다. 그의 공식적인 전기는 매경이 『매일경제(每日經濟)여 영원하라』라는 제호로 발간했다. 그와 사내외에서 접촉한 인사들의 회고담도 『특근기자(特勤記者)』라는 제호로 역시 매경이 출간했다. - 무(無)에서 4대 언론으로 키운 정진기(鄭進基)의 철학과 경영 전략 1. ‘빠른 뉴스’ 경쟁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 2.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지 말라. 3. 부정(否定)이 정의는 아니다. 4.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5. 조국 근대화는 옳은 길이다. 6.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7. 독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라. 8. 전천후 사원이 돼라. 9. 최고를 추구하라. 10. 먼 앞날을 내다보라. 추천사 1989년 가을 최인봉 국장은 나에게 그때로서는 파격적인 생활문화정보 주간지를 창간해 보라고 했다. 문제는 정식 직원이 아닌 촉탁과 아르바이트생을 이용해 주간지를 내야 했기에 그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다. 편집 총괄을 담당하던 나는 독자를 늘이기 위해 대학 선배인 영화평론가의 도움을 받아 매주 영화초대권을 배포했다. 한번은 명보극장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매진되는 바람에 초대권을 나눠주지 못하는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그러면 나는 죽음이었다. 그래서 매경 정문부터 중구청까지 길게 늘어선 독자들을 달래기 위해 다른 ‘최진실 출연’ 영화표를 구해 내가 직접 인사하며 나눠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한 사건이었다. 영화를 맡았던 나는 영화 스틸 사진을 잘 간직했는데, 이따금 본지 영화 담당 김병재 기자가 사진을 빌리러 올라오기도 했다. 그 당시 최인봉 국장은 신성일·박노식·신영균 등 배우와 문여송·임권택 감독 등을 소개해 주며 나의 활동 영역을 늘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신한생명보험 설계사 홍보용 주간지로 수만 부 발행을 직접 섭외했고, 독자 퀴즈잔치의 빈약한 선물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예물용과 뻐꾸기시계 등을 마련해 독자를 늘리는 데 앞장섰다. 이번에 최인수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숨겨진 철학과 동병상련의 심정을 이해했다. 부럽고 또 부럽다. 결론적으로 내가 정진기 창업주 같은 선배를 만나지 못한 것은 불행이다. 나의 부친과 태어난 해가 똑같고 떠나가신 날도 거의 비슷한 두 분이, 저승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엉뚱한 기원을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정진기 창업주의 휘하에서 배우고 단련된 최인수 작가는 그래도 행복한 행운아였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저자의 건투를 응원한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박관식(소설가) 책 속에서 매경은 사원들이 유치해오는 결산공고를 소화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지면 배정을 받을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유치를 많이 해도 지면이 없으면 소화할 수가 없다. 매경이 결산공고 유치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 역시 창업주의 전략이 주효한 것이었지만, 공고를 못 하면 허사가 될 뿐만 아니라 해당 법인들은 법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매경은 이때가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북새통이 됐다. 자연 기사 지면이 축소될 수밖에 없어 편집국도 기사 조절하느라 북새통이었다. 매경의 결산공고를 위한 증면 상황을 보면, 1970년엔 16면을 부록으로 발행했다. 이것이 점점 늘어나 1974~75년은 56면, 그 후에는 120면까지 늘어나는 해도 있었다. 매경의 결산공고 유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사정이 이에 이르자 결국 신문협회가 제동을 걸고 나왔다. 지면 할당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매경에 일정한 지면 수로 제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전년 게재 지면 수보다도 더 줄이라는 해도 있었다. 자유경쟁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종합지들도 결산공고가 막대한 수입을 올려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후의 태도 변화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기업의 선택이고, 법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신문협회는 벽창호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유치할 노력은 안 하고 원천적으로 특수지의 지면을 제한해 다 소화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가만히 앉아 그들에게 결산공고가 배정되도록 하려는 심사가 엿보였다. 매경은 필요한 지면을 할당받지 못했다. 그래서 기사면을 광고로 채우고 그 기간이 끝나면 감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76년의 경우, 결산공고가 끝나고 매경 1면에 ‘감면에 양해 바랍니다’라는 사고(社告)를 수시로 게재했다. 당시 신문협회 결의로 주 48면만 발행하게 돼 있었는데 결산공고를 게재하느라 48면을 증면했다. 그래서 증면한 만큼 여러 날을 두고 조금씩 감면한 것이다. 그것은 무언의 시위이기도 했다. 결산공고는 법정 사항인데 그것을 평시의 지면으로 다 소화할 수 없음은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자율경쟁을 스스로 막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대형 신문들의 횡포에 대한 항거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것이 당시 정부 신문, 거대신문의 경영자들이 취한 태도였다. 신문의 불공정, 요즘 개혁의 도마 위에 올라야 하는 단초를 보인 것이다. 기사를 위한 지면 통제는 정부의 뜻이었다고 해도 그만한 융통성은 협회가 발휘할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되는 것이다. 신문협회의 비이성적인 처사에 창업주는 분노했다. 그는 신문협회 탈퇴까지 고려하는 등 끝까지 맞서려고 했지만, 신문협회의 발행면수 제한결정(1970년 1월 20일 제53차 이사회 결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역부족이었다. 그때 창업주가 분통해 하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호젓한 시간, 사원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이럴 수 있느냐’고 상기된 얼굴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격앙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나는 황소와 개구리의 우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저러다 병이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었다. 분을 삭이지 못하면 병이 되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는 병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나. 결국 창업주는 쓸개가 상하는 병을 얻었다. 그 분노가 원인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직접 원인은 아니라도 다소간 영향은 미쳤을 것이다. 그는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저자 소개

  • 저자 : 최인수
저자 : 최인수

목차

1. 인연

2. 작게 시작했으나 ‘창대하게’ 발전
1) ‘뉴스 신문’에서 ‘정보 신문’으로
2) 뉴스보다 담론
3) ‘고정 관념을 깨라’
4) 사시(社是)와 사훈(社訓)의 정신
5) 신문도 기업이다
6) 악조건을 극복한 원동력
7) 사원(기자)의 맨 앞, 또 맨 뒤에 서다
8) 기자 존중, 편집권 존중
9) 이익보다 공평
10) 현실과 한계

3. 성공한 전략
1) 전천후 사원이 되라
2) 독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라
3) 먼 앞날을 봐라
4) 외부 협력관계를 강화하라
5) 최고를 추구하라
6) 글자를 세라… 경영합리화
7) 일의 체급을 올려라
8) 사헌(社憲)의

4. 인간 면모
1) 일이 취미다
2) 집념과 전략
3) 집념의 영어 공부
4) 관용과 불용(不容)
5) 효자의 길(?)… 공과 사
6) 애증, 1기생

5. 헤어짐
1) 회자정리(會者定離)
2) 창업주 사후
3) 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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