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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해가 너무 따가워
가느다란 전봇대 그림자 밟고 섰다
초록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내 옆에 한 사람이 다가와 서고
그 옆에 또 한 사람
그 옆에 또 한 사람
전봇대 그림자 밟고 나란히 서서
한 뼘씩 한 뼘씩
자기도 모르게 그늘을 만든다
―「횡단보도 앞에서」 전문
화자는 땡볕의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아직은 빨간불이고 언제 초록불로 바뀔지 모른다. 해가 너무 따가워서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화자는 가느다란 전봇대 그림자에라도 의지해 뜨거운 햇살을 피해 보려 한다. 그런 화자 옆으로 “한 사람이 다가와 서고/그 옆에 또 한 사람/그 옆에 또 한 사람”이 나란히 선다. 처음 시작은 땡볕을 피하기엔 너무 가느다란 전봇대의 그림자였지만, 그것을 밟고 선 내가 또 하나의 그림자를 만들고, 이 그림자는 또 다른 누군가를 불러와 다음 사람을 위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의 그림자는 곧 타인에겐 그늘이 된다. 공존하는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누군가에게 그늘로 기꺼이 제공하는 것이 아닐는지,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공존해야 하는 존재는 같은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은 『발가락들이 웃는다』의 많은 지면을 동물에 대한 작품에 할애하고 있다. 「내 별명은 너구리」「다람쥐의 봄」「나는 기러기 엄마」「오늘의 뉴스」「우리 집 강아지」「달렸다」「여우와 토끼와 꿩」「어쩔 수 없는 일이다」「갈매기 생각」「꿈속에서」 등이 그러한 작품이다. 그중 「나는 기러기 엄마」는 부화기에서 막 깨어난 새끼 기러기를 엄마처럼 보살피는 화자가 등장한다.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 신문지 쫙 펴서 깔고 집을 만들어” 주자, 아기 기러기들이 “연예인 대통령 얼굴도 가리지 않고/부지직 뿌직 뿌지직 뿌직” 한다는 장면은 유쾌해서 웃음이 절로 난다. 아기 기러기에게 유명인과 권력자가 무슨 소용일까? 이는 아기 기러기를 키우는 어린 엄마에게도 마찬가지다. 기러기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라는 화자는 그저 “혼자 킥킥”거리며 “하루에 몇 번씩 신문지”를 갈아 줄 뿐이다.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왔다
아빠는
강아지 집을 뚝딱뚝딱 만들고
엄마는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나는 동네 골목골목 돌며
나의 길을 만든다
―「만든다」 전문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온 화자의 가족은 저마다 일에 몰두하느라 바쁘다. 마당이 있으니 강아지도 키울 수 있고, 화단에 꽃도 돌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 화자는 무엇을 할까? 이 시의 묘미는 바로 마지막 연에 있다. 시인은 “동네 골목골목 돌며/나의 길을 만”드느라 집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화자를 그려냄으로써 어린이의 건강하고 힘찬 에너지를 작품에 담았다. 화자 역시 엄마 아빠처럼 마당에 있다면 평범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았을까. 화자가 그려낼 ‘나의 길’이 궁금해지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아이가 이렇게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학원에 가느라 서로 이야기 나눌 틈도 없는 숨 가쁜 일상을 다룬 「학원 가는 길」, 학원과 학습지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숨구멍」과 어리다고 무시하고 결국은 입을 다물게 하는 「툭하면」을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박예분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쟁의 참혹함 속에 지내고 있는 미얀마와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얀마 아이들」「우리는 어린이입니다」「우크라이나의 눈물」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끝이 안 보이는
하얀 얼음판 위에 서 있었다
너무 추워
온몸이 꽁꽁
한 발짝도 뗄 수 없어
눈물이 뚝뚝
멀리서 북극곰이 다가와
살포시 안아 주었다
낮에 그림책에서 만났던
북극곰이다
―「꿈속에서」 전문
화자는 “끝이 안 보이는/하얀 얼음판 위에 서 있”다. 견디기 힘든 추위와 무엇을 맞닥뜨릴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화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신을 도와줄 존재는 없어 보인다. 그저 “한 발짝도 뗄 수 없어/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 순간 무력한 화자 앞에 북극곰이 나타난다. 북극에서 가장 피해야 할 존재가 북극곰이 아닌가. 하지만 북극곰이 다가올 때까지 화자는 피하지 않는다. 너무 겁이 나 피할 용기도 내지 못한 걸까? 아니다. 화자는 북극곰을 본 순간 알았다. “낮에 그림책에서 만났던” 바로 그 북극곰이라는 걸. 책에서 만난 북극곰은 어린 화자에게 이미 알고 있는 친구와 다름없는 것이다. 시인은 우리가 책에서 만난 존재들이 각박하고 힘겨운 세상에서 힘이 되어 주리란 것을 넌지시 일러준다. 화자가 읽은 그림책의 북극곰이 그랬듯, 박예분 시인의 『발가락들이 웃는다』에 등장하는 존재들도 독자 어린이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 줄 거라 믿는다.
제 1 부_내 별명은 너구리
내 별명은 너구리 / 다람쥐의 봄 / 꽃피는 장날 / 나는 기러기 엄마 / 오늘의 뉴스 / 끈 / 횡단보도 앞에서 / 비 그치면 / 가을빛 좋은 날 / 못 참겠다 / 왕을 만든 컵 / 빗방울 소풍 / 아침 바다 / 말 신호등 / 인사 / 새봄이 폈다 / 마음을 심는다
제 2 부_야옹이 병문안
학원 가는 길 / 왔다 / 바다 산부인과 / 꽃심 / 야옹이 병문안 / 덧날까 봐 / 글길 / 우리 집 강아지 / 코끼리 할아버지 / 만든다 / 담았다 / 달렸다 / 사라졌다 / 익어 간다 / 밖에서 친구가 부르면 / 마녀와 인어공주
제 3 부_참 다행이다
차오른다 / 친구야, 놀자 / 사과나무 / 아침햇살 / 다시 피는 노래 / 발가락들이 웃는다 / 나 지우기 / 꽃다발 / 참 다행이다 / 봄날 / 내 이름은 나오행 / 미얀마 아이들 / 우리는 어린이입니다 / 우크라이나의 눈물 / 툭하면 / 포도송이 / 이야기 여행 / 그래도 그래도
제 4 부_염소만 못 갔다
옷 무덤 / 여우와 토끼와 꿩 / 염소만 못 갔다 / 꽃밭에서 / 뽕긋빵긋 / 봄 이야기 / 여름 이야기 / 가을 이야기 / 겨울 이야기 / 비꽃이 피었습니다 / 숨구멍 /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휴지 / 꽃 / 갈매기 생각 / 터트리는 힘 / 꿈속에서
재미있는 동시 이야기
아이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고 힘이 되는 동시_이준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