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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강의 노래 : 충절의 보성선비 박광전, 임계영 의병장 이야기

정찬주 저 | 여백 | 2022년 12월

보성강의 노래 : 충절의 보성선비 박광전, 임계영 의병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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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946247 / 348쪽 / 452g /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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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_충절을 다했던 보성선비들 꼭두새벽이다. 늦가을 비에 잠을 깼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삭풍이 불어올 것이다. 낙엽이 마저 지고 나무들은 홀가분하게 나목으로 변신할 터. 연통 청소를 미리 해둔 것이 다행이다. 장작을 몇 개 넣고 불을 붙였는데, 금세 온기가 전해온다. 비로소 의자에 앉는다. 문득 22년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 때가 떠오른다. 그때가 내 나이 마흔아홉 살 때였다.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낙향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을 벗 삼아 스승 삼아 남은 여생을 작가로서 좀 더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낙향했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지역에 역사적인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사는 산중마을에 조광조가 사사당한 뒤 묻혔던 초분지가 있고,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는 장계를 쓴 열선루가 있었다. ‘눈앞에 길이 있다’라는 금언이 있듯 내가 써야 할 소재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조광조와 화순사림 이야기인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3권)를 2년 만에 발간했다. 그리고 남서해안을 10여 년 답사한 뒤 《이순신의 7년》(전7권)을 집필했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인물과 역사는 계속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산의 사랑》은 강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과 강진 제자들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결실을 맺은 작품이었다. 이번에 출간하는 《보성강의 노래》는 보성선비 죽천(竹川) 박광전과 삼도(三島) 임계영 의병장의 충절 이야기다. 나는 왜 충절의 역사인물들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명명백백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누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간에 하늘이 보고 땅이 알고 있다는 심정이다. 《이순신의 7년》에서 발현된 인연인데 누군가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_2022년 11월, 이불재에서 벽록 정찬주 책 속에서 박 진사는 아들 박광전의 목소리만 듣고도 공부의 정도를 가늠했다. 더듬거리지 않고 돌돌돌 개울물 흘러가듯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자 흡족해 했다. 어느새 박광전은 주문공(朱文公)과 휘종황제(徽宗皇帝)가 남긴 말에 이어 《명심보감》 〈근학편〉 마지막 구절을 읽고 있었다._28p 홍섬에게 《논어》를 공부하던 박광전은 송 생원에 의해 신동이라고 소문이 났다. 송 생원은 자기 아들보다 박광전에게 반해서 흥양의 여산 송씨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물론 머리로만 치자면 홍섬이 인정했듯 자기 둘째 아들이 더 뛰어났지만 성실함에는 박광전을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송 생원이 퍼뜨린 소문은 보성향교는 물론이고 능성향교, 화순향교, 동복향교까지 돌았다._59p 박 진사는 아들 박광전이 스승으로 홍섬을 만난 것에 몹시 만족했다. 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어보면 뜻을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귀 속의 귀’로 알 수 있었다. 박 진사는 아들 박광전이 《논어》를 통해 공자의 도(道)에 진일보했음을 느꼈다. 박광전이 여덟 살에 ‘한 번 크게 공자의 도를 이루리라(爲一大成孔子道).’라고 했던 다짐이 열두 살이 되어 비로소 실천되고 있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_71p 박광전은 양응정을 따라 나섰다. 학포당 뒤편 자드락길을 따라 걸었다. 정 첨지 집은 쌍봉마을 위쪽 산자락에 접해 있었다. 집은 초가 5칸으로 토방이 높아 마치 누각처럼 덩실 올라앉은 것 같았다. 두꺼운 마루 판재나 우람한 기둥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도 기와집을 지으려다 사정이 있어서 초가로 마무리 지은 듯했다._113p 양응정은 아버지 양팽손이 조광조가 능성로 유배 왔을 때 취한 행동을 퇴(退)로 보았다. 기묘사화를 주동한 남곤이 밤에 변복하고 양팽손을 찾아가 출세하려면 실세가 된 자신들에게 오라고 회유했지만 뿌리쳤던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실제로 양팽손은 조광조를 옹호하다가 관직을 삭직당하자마자 한양에 남지 않고 능성로 서둘러 낙향해버렸던 것이다._123p 이순신도 일말의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곧 털어버렸다. 대의를 위해 죽는다면 후회할 일이 없을 터였다. 젊은 시절, 장인 방진이 보성군수를 지낼 때 보성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무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이순신은 한양의 벼슬아치로 임금을 모시는 신하가 되기보다는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의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 이순신은 거북선이야말로 남해안 백성들을 지켜줄 비밀전선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머잖아 침범해 올 왜적들을 격퇴하고자 건조한 배가 바로 거북선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단순히 거북선에서 화포사격만 하는 날이 아니라 젊은 시절 자신에게 맹세한 그 약속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_248p 박광전은 아들 박근효의 생각이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임금과 한양 백성이 하나가 되어 왜군을 격퇴하고 도성을 지켰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선조가 평양도 버리고 의주로 파천 길에 올랐다는 소식은 전라도 각 고을에도 전해졌다. 전라감사 이광이 선조를 호위할 근왕군을 모병하기 위해 각 고을에서 장정들을 징발했다. 농사일로 일손이 부족한데 힘깨나 쓰는 장정들은 모두 근왕군으로 차출되어 전주감영으로 올라갔다. 이광은 5월 19일에 전라도 4만 명의 군사와 경상감사 김수가 거느린 1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충청도로 올라갔다. 이윽고 충청감사 윤선각의 군사 8,9천 명이 합세했다. 삼도의 군사가 합류했으므로 삼도근왕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광 전라감사를 총대장으로 추대했다._267p ‘아이고, 아이고!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천우신조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한양까지 진격하려던 왜군이 주춤했다. 9월7일 왜군을 맞이한 명나라 군대가 직산에서 왜군을 물리쳤던 것이다. 격퇴당한 왜군은 남하했다. 9월 16일 정읍까지 내려와서 왜장들끼리 회의를 했다.그 결과 시마즈 요시히로 등 왜장 13명은 전라도에 주둔하기로 결정했다. 왜군의 노략질과 살상자행이 분명하므로 전라도 입장에서는 비극이었다._319p “돌땡이를 굴려라. 석탄을 던지그라.” 의병들이 굴리는 바위에 산길에 들어선 왜군들이 비명을 질렀다. 깃발을 등에 꽂은 왜군 선봉장이 즉사했는지 왜군들이 그를 들쳐 메고 물러났다. 의병군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함성을 질렀다. 강변으로 후퇴한 왜군이 옹성산을 향해서 조총을 쏘아댔지만 의병군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의병군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_332p 안방준도 임계영 의병장 막하에서 연락참모를 지냈으므로 조문을 가려고 했다. 발인 날짜가 잡혀 있을 것이니 빨리 조문해야 했다. 전쟁 중이므로 고향 선산으로 가지 못하고 모후산 산자락에 임시로 가매장할 터였다. 박광전이 중얼거렸다. ‘삼도공의 전공을 나라가 어처께 잊겄는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별은 다시 빛나는 벱이여.’ 박광전의 확신대로 임계영은 고종 4년(1867)에 병조판서로 증직되었던바 의인의 충절은 결코 잊히지 않는 법이었다._342p 임란이 종식된 후였다. 선조 32년(1599) 10월 26일에야 보성 사곡 벌안으로 귀장(歸葬)이 이루어졌다. 난리 중이어서 예법에 따라 장사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해군이 지관을 보내 묘지를 잡고, 시강원으로 하여금 전라감사에게 유시를 내려 부의(賻儀)를 표하도록 했던 것이다._345p

저자 소개

  • 저자 : 정찬주
저자 : 정찬주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 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국어교사로 잠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았다.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2002년부터 텃밭을 일구며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대표작으로 대하소설 인간 이순신을 그린 《이순신의 7년》(전7 권), 법정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 성철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전2권), 4백여 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며 쓴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전3권)을 발간했다. 장편소설로 《광주아리랑》(전2권), 《다산의 사랑》, 《천강에 비친 달》, 《칼과 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영산강의 꿈》, 《천년 후 돌아가리-茶佛》, 《가야산 정진불》(전2권)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3권)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행복한 무소유》,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불국기행》,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정찬주의 茶人기행》 등이 있다.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조선의 혼은 죽지 않으리》를 발간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 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작가의 말
충절을 다했던 보성선비들

보성만 노을
충절의 꽃을 피우거라
취령산 가는 길
첫 스승을 만나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임 진사의 아들
스승 홍섬이 떠나다
유마사 3년 공부
과거 보러 가는 길
두 번째 스승 양응정
증조산
말타기와 습사(習射)
초시 1등 합격
죽천정과 우계정
선비의 두 길
세 번째 스승 이황
스승 홍섬과 재회
한양생활
첫 벼슬살이
천석정
광해군 사부(師傅)
시민여상(視民如傷)
전라좌수영
거북선 화포사격
왜군 침략
격문
전라좌의병군
재회와 작별
임계영의 진중일기
충절은 꺾이지 않는다
박광전 의병군
동복적벽전투
별은 다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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