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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역사 인식 : 조선인 강제 연행·원폭 피해자의 편에 서다

다카자네 야스노리 저 | 삶창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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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551392 / 288쪽 / 374g /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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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일본인 피폭자와 조선인 피폭자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가사키에서 평생을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연행과 조선인 원폭 피해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2017년 4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건립하고 운영해온 다카자네 야스노리이다. 다카자네 야스노리는 1939년 일본의 식민지였던 서울에서 태어났다.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간 다카자네는 “조선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억압 민족이었던 일본인이라는 자신의 태생을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그런 자의식 때문인지 다카자네는 조선인 강제 연행과 원폭 피해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일본인도 원폭의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조선인 피폭 문제는 일본인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질적인 차이”란 “일본인 피폭자는 침략전쟁을 자행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입장을 비껴갈 수 없지만, 조선인 피폭자는 아무런 전쟁책임도 없는데 원폭 지옥에까지 내던져진 완전한 피해자다”라는 고(故) 오카 마사하루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면서 다카자네 야스노리는 조선인의 강제 연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실증적으로 파고든다. 조선인 강제 연행은 1939년의 각의(閣議) 결정 ‘노무 동원 실시 계획(勞務動員?施計?)’ 안에 포함된 ‘조선인 노무자의 내지 이주에 관한 건(朝鮮人?務者內地移住に?する件)’(같은 해 7월, 내무성·후생성 양 차관 통첩)에 따라 개시되었으나 중일전쟁의 격화로 인해 노동력 부족에 빠진 산업계가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인 청년을 대량으로 전장에 보내는 한편, 그로 인한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국가권력과 기업이 결탁해 조선인 청년을 강제 연행하고 탄광, 광산, 철강, 조선, 토목, 건설, 군사 등의 시설에서 강제 노동을 시킨 것이다. 일본의 양심답게 다카자네 야스노리는 조선인의 원폭 피해도 강제 연행으로 인한 결과였음을 거듭 지적한다. 다카자네는 단지 강제 연행과 원폭 피해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인 ‘위안부’ 문제와 일제가 저지른 난징 대학살, 나아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 이웃나라에 대한 일본의 반인륜적이고 몰역사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또 센카쿠 열도와 독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역사적 기원을 냉철하게 따지는가 하면, 일본제국주의의 사상적 초석을 놓은 요시가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비판도 빼먹지 않는다.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일본 국내에서 벌이는 투쟁의 사상적 토대가 되면서, 동아시아 민중연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이러한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실천과 사상에 대해서 서승 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은 다음과 말한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이영훈을 비롯한 ‘친일파’처럼 오늘날에도 일제와 한 몸이 되어 일제의 부흥과 영광을 꿈꾸는 자들이 행세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다카자네 선생은 참으로 일본과 동아시아의 연대, 평화의 미래를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제시하고 매진한 분으로서 한일 갈등이 거론되는 지금이야말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분이다. ‘역사윤리’를 위하여 이 책은 2017년 고인이 된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유고집이다. 번역자 전은옥은 한국에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삶과 실천을 알리고 싶어서 자진해 번역을 하게 됐다. 번역자가 생전에 기억하는 다카자네 야스노리의 모습은 한 윤리적인 인간의 면모를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다카자네 선생은 일흔이 훌쩍 넘어서도 자료관 대청소에 빠지지 않았다. 중국과 독일, 한국 등 해외 방문 조사에서도 강행군으로 내달렸다. 모든 행사와 모든 활동에 있어서 그는 단순 참가자가 아니라 늘 앞서서 움직이고 준비하고 실천했다. 자료관을 찾아오는 수많은 시민과 학생, 연구자, 언론의 취재와 견학 안내를 비롯하여 복잡한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갖은 역할을 도맡아 하느라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일본제국주의가 자행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빠짐없이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이면서 실천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저자인 다카자네 야스노리 자신의 활동이 “지식인으로서의 단순한 연구 조사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역사윤리와 인권 회복의 운동이었고, 일본의 전쟁과 가해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 전후 보상을 성실히 이행하게 하려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활동이었다.” 번역자의 말대로 이 책이 전하는 핵심은 “역사에 책임을 지는 윤리 의식, 곧 인간의 길에 대한 촉구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역사를 단지 앎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1부에는 다카자네 야스노리가 발표한 논문들과 짧은 글, 그리고 일생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인·중국인 강제 연행 및 원폭 피해 문제, 전후 보상 문제, 역사윤리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긴 글을 수록했다. 2부에는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정기간행인 『니시자카통신』 권두언에 쓴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침략 사상의 전파자였던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 등에 대한 비판적 인물평부터 시작해, 한일조약 및 한일 정부간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판한 글, 평화자료관의 활동 및 설립 과정과 그 의의를 소개하는 글, 중국 및 한국을 방문하여 학살 피해자나 원폭, 강제 동원 피해자를 만난 내용을 소개하는 글 등 한국인 독자에게도 밀접한 주제를 다룬 글을 중심으로 선별했다. 3부는 다카자네 야스노리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인들의 추도사들이다. 이 글들을 통해 인간 다카네 야스노리의 진가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인간의 길’에 어긋나는 행위가 없었는지를 따져보고, 만일 있다면 반성하고 사죄와 배상, 처벌 등의 과정을 통해 청산할 의무가 발생한다. 또 항상 이 ‘역사윤리’를 의식하며 정치와 사법에 임해야 한다는 뜻도 포함한다.(「‘역사윤리’의 심판」 중에서) 책 속으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책임을 묻는 이른바 전후 보상 문제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국가 간의 ‘해결’이 끝났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완전히 무시했다. 하지만 ‘해결이 끝난 문제’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핑계에 불과하다.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국가 간에도 배상을 한 것이 아니라 한일 경제협력협정을 맺고 청구권을 방기(放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배상 청구를 모조리 거부했다. 그런 까닭에 배상 청구는 사법의 장에서 다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법 역시 하급심에서 드물게 원고가 승소하는 일은 있어도 최고재판소에서는 전부 패소 확정을 강요받았다. 사법이 정치권력을 추종하는 소위 어용 기관이 된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역사윤리’의 심판」(39~40) 중에서) 사할린에서 석탄을 수송하는 일이 해상의 위험으로 곤란해지자, 일본 정부는 1944년 8월 탄광노동자를 규슈, 후쿠시마현, 이바라키현(茨城?)으로 전환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미쓰비시광업은 약 1000명의 조선인 노동자를 다카시마, 하시마, 사키토로 전환 배치했다. 이를 ‘이중징용’이라 부른다. 다카시마에 235명, 하시마에 약 200명, 사키토에 520명이 배치되었다. 사할린에서는 가족을 불러들여 함께 살았던 사람도 많았으나,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일본인만을 본국으로 인도하고 조선인은 방치했다. 이중징용된 조선인은 귀국 후에도 사할린에 남아 있는 가족과 생활할 수 없었다. 재회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수포였고 가혹한 이별을 강요당했다. 전전뿐 아니라 전후에도 계속된 일본 정부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피해자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나가사키와 조선인 강제 연행」(108~109) 중에서) 어선 충돌 사건 후 중국에서 잇따른 항일 시위에 불쾌감을 느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척의 어선의 순시선 충돌 사건이 양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중대한 외교 문제로까지 발전하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으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역사 인식에 깊은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포학하기 그지없었던 일본의 중국 침략 역사가 공통의 인식이 되지 않은 채, 이른바 미청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중국 국민에게 반일 감정을 갖게 하는 잠재적인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내셔널리즘에 지지 않는 역사 인식을」(175) 중에서) 저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와도, 국제사회와도 여러 면에서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는 일본의 현상을 깊게 우려합니다. 그중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해결하지 않은 채로 방치하면서, 한국 정부의 정식 협의 요구조차 거절하는 사태만큼 ‘인륜의 길’에서 벗어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민당 총재는 선거 때부터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증명하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장 자체가 ‘위안부’의 연행은 노동자 연행처럼 각의 결정과 법령에 따라 실시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은폐하기 위한 궤변임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역사윤리’를 묻는 해로」(186) 중에서) 총리와 오사카 시장의 발언은 근대 일본의 가해책임을 부정함과 동시에 전후 민주주의를 공동화(空洞化)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헌법 개악도 노골적으로 기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정치·사회적으로 전후 최대 시련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화와 인권의 확립을 바라는 시민의 역량이 시험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상의 위기는 전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침략의 부정이나 ‘위안부’의 긍정에 대한 세계의 반응을 볼 때 우리는 세계의 양식에 발맞춰 걸어감으로써 미래를 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흔들림 없는 역사 인식을」(199) 중에서)

저자 소개

  • 저자 : 다카자네 야스노리
저자 : 다카자네 야스노리
1939년 서울 출생. 1945년 일본 야마구치현으로 귀국. 규슈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나가사키대학 교수를 지냈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이사장,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의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조선인· 중국인 강제 연행과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및 전후보상운동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헌신했다. 『原爆と朝鮮人』 1~7집
(長崎在日朝鮮人の人?を守る?, 1982~2014), 『朝鮮人被爆者と
は― ?された??』(長崎在日朝鮮人の人?を守る?, 1986), 『군
함도에 귀를 기울이면』(2011)을 공동 저술했다.

역자 : 전은옥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나눔문화, 한국원폭2세피해자 김형률추모사업회, 합천평화의집 등의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객원 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경남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의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옮긴 책으로는 『오직 한길로―오카 마사하루 목사 자서전』(세상의 소금, 2015), 공동 번역으로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하시마에 강제연행된 조선인·중국인의 기록』(선인, 2017)이 있다.

목차

추천사 · 서승(우석대 석좌교수·동아시아평화연구소장) ― 4
발간사 · 소노다 나오히로(‘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전(前)이사장) ― 8


1부/ 역사윤리를 묻다

식민지 지배·강제 연행과 조선인 원폭 피해자 ― 18
‘역사윤리’의 심판 ― 34
나가사키의 중국인 강제 연행 ― 46
나가사키의 전쟁·원폭 기념물을 생각하다 ― 69
나가사키와 조선인 강제 연행 ― 99
군함도가 세계유산이어도 되는가 ― 132
2016년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조집회 추도사― 138


2부/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에서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를 찬미하지 말라― 144
나가사키와 난징을 잇는 여행 ― 147
세기를 넘어 ‘전사불망’을 ― 150
‘반일(反日)’이라고 말하기 전에 ― 153
톈진으로의 여행 ― 158
시험대에 오른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 ― 163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을 다녀와서 ― 168
내셔널리즘에 지지 않는 역사 인식을 ― 172
한일조약의 장벽을 넘어 ― 178
‘역사윤리’를 묻는 해로 ― 184
흔들림 없는 역사 인식을 ― 190
가치를 평가받은 자료관의 존재 ― 201
자료관 설립 20주년 ― 207
한국에서의 강연과 학생들의 예리한 질문 ― 213
‘위안부’ 문제, 성의 없는 한일 합의에 반대한다― 220


3부/ 추모의 글 ―다카자네 야스노리를 사랑한 사람들

‘질문을 던지는’ 자세(야마카와 다케시) ― 228
원수폭 금지운동과 전쟁책임·전후 보상 문제(사카모토 히로시) ― 233
선생님과 함께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지원운동(히라노 노부토) ― 239
중국인 강제 연행 문제와 다카자네 선생님(신카이 도모히로) ― 243
섬세하고 온화하며 견고한, 강철 같았던 현대의 ‘기사(騎士)’(다카하시 신지) ― 248
조선인 강제 동원과 원폭 피해 조사에 길잡이가 되어주시다(허광무) ― 251

4부/ 부록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설립 취지― 256
연보 ― 259
저작 목록 ― 263
옮긴이의 글 ― 276
감사의 글(다카자네 아야코) ―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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