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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개정 증보판)

최용범 저 | 페이퍼로드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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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475570 / 440쪽 / 836g / 196 x 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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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단군왕검이 1,500년간 통치하다 중국에서 기자가 왕으로 책봉되어 오자 산신이 되어 숨어 살았다는 것은, 단군조선이 주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자조선이 실재했는가에 대해 학계에서는 중국 측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상하게도 기자조선은 중국 측 사서인 『상서대전尙書大全』이나 『사기史記』등에는 나오지만 우리 측의 사료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단군신화, 어떻게 볼 것인가?중에서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남는 것이 있다. 정복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좌장군 순체는 분열의 죄로 기시棄市당했다. 목 베어져 저자거리에 시신이 버려지는 극형이었다. 우거장군 항복 역시 처형당할 뻔했으나 돈을 바치고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평민으로 떨어졌다. 곧 고조선 정벌전에 관계됐던 고위직 사신, 장군 모두 극형에 처해진 것이다. 고조선에서 항복한 왕자와 국상 등만이 제후로 대접받았다. 사마천 『사기』와 반고의 『한서』가 전하는 전쟁 전후다. 이상한 정복전쟁이었다. - 승리한 장군을 모두 처형해버린 고조선-한 전쟁 중에서 『고려사』의 기록에서는 이렇듯 군중들이 궁으로 난입해 들어오자, 궁예가 “왕공이 벌써 승리를 얻었으니 나의 일은 이미 끝났다”고 한탄한 뒤 변장을 하고 왕궁을 탈출했다고 적고 있다. 918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승자의 기록일 따름이다. 비록 궁예가 후기로 오면서 정치적 실책과 친위세력의 약화로 입지가 좁아졌다 해도, 하루만의 거사로 왕권을 이렇게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왕건의 거사 뒤 궁예 복권을 명분으로 한 반란이 각지에서 수년간 진행된 기록이 있다. - 왕건의 쿠데타는 계획적이었다 중에서 중국 동북부 지방에는 ‘홍라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홍라녀라는 발해 여인이 장군이 되어 거란과 싸움에 나가 이긴 뒤 남편을 구해 돌아왔다는 전설이다. 집 안에서만 강한 게 아니라 실제 전투를 수행할 정도로 씩씩한 발해의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발해에서는 절을 할 때도 남자는 무릎을 꿇고 하는데, 여자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리 역사에서 여권이 가장 강력했던 나라로 발해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매춘녀가 없었던 발해 중에서 이런 모순들 때문에 최근에는 「훈요 10조」가 후세의 위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거란의 침략 때 불타 없어졌던 「훈요 10조」가 다시 등장하게 된 과정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원본이 불타버렸다던 「훈요 10조」는 우연히 경주 출신 최항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종에게 바쳐졌다. 현종은 신라계를 외가로 하고, 지지기반 역시 신라 계열의 신하들이었던 왕이다. - 「훈요 10조」, 전라도 사람은 절대 기용하지 말라고? 중에서 그러나 이때 제1차 전쟁의 영웅 서희徐熙(942~998년, 고려 초기의 정치가)가 나섰다. 그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요의 전략적 목표는 영토 획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려와 송의 국교단절, 고려와 요의 외교관계 회복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서희는 소손녕과 담판을 통해 요와 통교를 하고자 해도 여진족이 방해가 된다며 두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즉, 여진족을 내쫓아줄 것과 압록강 유역의 땅을 고려에 넘겨줘 통교할 길을 트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고려와의 싸움에 적극적인 의사가 없었던 요는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 대 거란 전쟁 제1라운드, 외교전에서 완승을 거둔 서희 중에서 박유가 이런 상소를 올린 데는 일견 타당한 면도 있었다. 원과의 오랜 전쟁으로 남자의 수가 여자에 비해 훨씬 적어 시집 못 간 채로 늙는 여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는 농업사회라 인구가 적으면 생산력도 떨어지고 그만큼 국력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므로 박유의 건의는 여성도 구제하고 국력도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건의는 묵살되고 말았다. 부녀자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박유가 임금을 모시고 연등회 행사를 갔을 때였다. 한 노파가 박유를 가리켜 “첩을 두자고 건의한 거렁뱅이 같은 늙은이!”라고 소리치자, 주변의 부인들이 모두 박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야유를 보냈다. 결국 박유의 건의는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 어디서 감히 첩 제도 운운하나 중에서 그리고 고발 내용에도 여러 가지 제한규정이 있었다. 반역 사건이나 불법 살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하급관리나 노비가 자신의 상관, 주인, 양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는 오히려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신문고는 주로 양반 중심으로 운용됐으며, 결국 정치 안정을 위한 방책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백성들이 억울함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는 오히려 왕의 행차 때 직접 글을 올리는 상언上言, 징을 울려 민원을 호소하는 격쟁擊錚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대對백성 정치를 중시했던 정조가 경기도 일원에 있는 왕가의 능을 70여 회나 행차하면서 접수 해결한 상언이나 격쟁은 2,671건에 달했다. - 정말 신문고만 치면 됐나? 중에서 역설적이게도 연산군은 즉위 과정에서 선대의 어느 임금보다 큰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적장자 계승이란 원칙에 걸맞게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의 장자로 태어나 9세 때인 1484년 세자로 책봉됐다. 그로부터 11년간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서 제왕학을 익혔다. 조선 세자의 일과는 공부로 시작해 공부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 준비 끝에 1494년 젊음이 넘치는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19세이면 지금의 20대 후반이라고 볼만한 나이였다. 그는 말 그대로 ‘준비된 군주’였다. 당시 백성들과 신하들 역시 연산군이 즉위할 때 ‘영명한 왕’이라고 칭송하며 그의 덕치를 한껏 기대했다. - 조선의 네로황제 연산군의 최후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의 처리 문제였다. 양반들은 이혼을 원했다. 효종의 장인이 되기도 했던 의성부원군 장유도 환향했던 며느리를 거부하고 나라에 이혼을 청했다. 이때 주화파로 목숨을 걸고 대청 교섭에 나서기도 했던 최명길은 이에 반대했다. 자신의 뜻과 달리 청에 끌려갔고, 몸을 더럽혀졌다는 증거도 없는 부녀자를 내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성들은 다시 장가들고 부인들을 버렸다. 참으로 치사한 남자들이었다. 양반 여성들은 부친을 통하지 않으면 이혼을 청할 수도 없었다. - 조선시대 이혼 이야기 중에서 당시 독립협회가 독립을 위해 싸운 대상은 일본이 아닌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아관파천 초기에는 내각의 자율성을 보장하다 이듬해인 1897년부터 내정 간섭과 이권 침탈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조선의 군사고문을 자청하면서 160명의 군사교관을 파견해 6,000여 명의 군사를 양성한 뒤, 이 부대를 자신들의 휘하에 두려고 했다. 또한 재정고문으로 알렉세예프를 보내 한러은행을 설치(1898년)하여 전국의 재정을 관할하고, 부산 앞바다에 있는 절영도를 조차해 러시아 해군의 석탄 기지로 쓰려고 했다. 독립협회는 러시아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대중적인 반러운동을 조직했다. 그러나 미국, 일본, 영국의 이권 침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개화파와 마찬가지로 이들 국가들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는지도 모르지만, 냉혹한 국제관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초대위원장이었다 중에서

저자 소개

  • 저자 : 최용범
저자 : 최용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 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월간 『사회평론 길』에서 취재 기자로 일하다, 2000년 『월간중앙』에 「역사인물 가상 인터뷰」를 연재하면서 역사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50만 독자가 선택한 한국사의 결정판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사』(공저)를 비롯, 『역사 인물 인터뷰』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만약에 한국사』 『난세에 간신 춤춘다』 『대학문예운동의 이론과 실천』(공저) 『너희가 대학을 아느냐』(공저) 등 역사와 사회 전반에 관한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목차

추천의 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역사책 4

책머리에 한국사 서문 개정증보판 머리말을 대신해 7

들어가며 역사를 의심하면 역사가 보인다 9


1장 선사문화와 고대 국가 건설 _ 고조선의 성립과 삼국시대의 전개

훈족이 한반도 출신이라고? 19

그 많은 고인돌이 말해주는 것 22

단군신화, 어떻게 볼 것인가? 26

승리한 장군 모두 처형해버린 고조선-한 전쟁 30

삼국의 건국설화에 숨어 있는 세 가지 이야기 34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였던 가야 40

광개토대왕은 어떻게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44

한반도 역사를 바꾼 평양 천도 47

고대사 최대의 수출국 백제 51

고구려 삼국통일의 기회를 망친 운명적 수도이전 54

법흥왕대의 친위쿠데타, 이차돈 순교 58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을까? 63

동북아시아 두 강국의 결전, 고구려-수나라 전쟁 66

의자왕의 향락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 70

연개소문 일가의 빛과 그림자 73

신라가 최후의 승자로 남은 이유 77

신라에 왔던 아랍인들 81


2장 통일신라와 발해 _ 삼국통일을 거쳐 남북국시대로

대조영, 고구려 계승을 선언하다 85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88

발해의 목줄이 달린 해외무역 92

원효가 해골에서 본 것은? 95

호족 세력의 불교, 선종 98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무엇을 꿈꾸었나? 102

골품제 사회 6두품 지식인의 좌절 106

효녀 지은설화에서 통일신라의 붕괴를 본다 110

궁예가 몰락한 진짜 이유 113

통일전쟁 승리 직전에 패배한 견훤 116

왕건의 쿠데타는 계획적이었다 119

고대사 최초의 사회복지제도 진대법과 을파소 123

연을 이용한 상징조작으로 내란을 진압한 김유신 124

매춘녀가 없었던 발해 125


3장 고려시대 _ 후삼국 통일에서 위화도 회군까지

왕건, 혈연네트워크로 후삼국을 다스리다 129

「훈요 10조」, 전라도 사람은 절대 기용하지 말라고? 133

본관제는 고려에서 시작됐다 137

천하의 중심은 고려다 140

‘광종의 개혁’ 절반의 고시, 과거제의 도입 143

전시과 도입, 정권의 성격이 경제제도도 결정한다 147

너무나도 판박이인 왕비들의 꿈 150

대 거란 전쟁 제1라운드, 외교전에서 완승을 거둔 서희 155

대 거란 전쟁 제2라운드, 군사력의 승리 158

최고 권력자 이자겸의 반란 161

‘묘청의 난’ 자주적 민족 운동인가, 불만 세력의 반란인가? 164

고려청자 아름다움의 비밀 167

금속활자, ‘세계 최초’란 딱지가 부끄러운 보물 170

한국이 코리아로 불리게 된 이유 173

사대주의냐, 냉엄한 춘추필법이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177

무신정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181

우리나라 최초의 천민해방운동, 만적의 난 185

대몽 항쟁기의 거대 프로젝트, 팔만대장경 188

반외세 항쟁이냐, 수구세력의 마지막 저항이냐? 192

어디서 감히 첩 제도 운운하나 197

친일파가 있었듯 부원파도 있었다 201

공민왕의 개혁, 신돈은 요승이었나? 205

열 개의 목화씨로 남은 사나이, 문익점 210

끝을 모르는 권문세족의 탐욕 214

거북선의 원형, 고려 군선 218

송나라 대시인 소동파가 고려와의 무역을 반대했던 이유 219


4장 조선시대 _ 근세의 태평시대를 거쳐 민중반란까지

500년 조선왕조를 연 요동 정벌군의 회군 223

역성혁명의 기획자, 정도전 227

고려 말 권문세족의 토지문서를 불태우다 231

정말 신문고만 치면 됐나? 234

세종대왕, 그토록 조화로운 인간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238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시계 242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세 가지 246

세조의 쿠데타 ‘왕권 강화냐, 명분 없는 권력욕이냐?’ 250

속치마 폭까지 규정한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 254

조선의 네로 황제 연산군의 최후, 중종반정 257

조광조, 어느 깐깐한 개혁주의자의 죽음 261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 265

임진왜란은 무역 전쟁이었다! 269

불패의 게릴라 부대, 의병 272

이순신이 넬슨보다 위대한 이유 275

세계로 수출된 지식상품, 『동의보감』 279

광해군, 조선시대 최고의 외교정책가 283

인조반정, 성공한 쿠데타는 역사도 처벌 못한다? 287

병자호란, 그날 인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289

소현세자 독살설의 진상 292

영조, 정쟁의 한복판에서 중흥 시대를 열다 296

정조가 수원에 열두 번 간 까닭은 301

조선에도 장사로 큰돈을 번 여자가 있었다 305

전봉준은 정말 정약용의 개혁론을 만났을까? 308

검찰이 구속한 신윤복의 춘화 312

세도정치, 2만 냥 주고 고을 수령을 산다? 317

용병을 고용한 평안도 농민전쟁 320

〈대동여지도〉, 김정호는 정말 옥사했는가? 325

세도가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간 흥선대원군 330

조선시대 이혼 이야기 334

봉급 한 푼 없었던 조선시대의 향리 335


5장 근대의 전개와 현대사회의 성립_제국주의 침략에서 민주국가 수립까지

자주적 근대화의 발목을 잡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339

강화도조약, 새끼 제국주의 국가 일본에 일격을 당하다 343

임오군란 후 외국군이 주둔하다 347

노터치No-Touch가 노다지의 어원이라니! 351

김옥균의 삼일천하, 갑신정변 355

동학의 창시와 농민혁명의 전개 359

녹두장군 전봉준의 꿈 363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초대위원장이었다 368

평민에게 넘어간 의병투쟁의 지도권 372

을사조약, 불법조약 체결을 강요하다니! 375

3·1운동, ‘동방의 등불’이 된 코리아 ! 378

‘대한민국임시정부’ 신채호, 이승만에게 일갈하다 383

홍범도,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387

일제와의 야합 속에 진행된 예비 친일파의 자치운동 390

일제하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394

김일성은 가짜였다? 398

잔혹한 수탈과 억압을 자행한 일제 401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 친일파 문제 404

8·15해방과 건국준비위원회, 반쪽짜리 독립 411

찬탁은 재식민화의 길이었나? 414

식민잔재 청산, 그 통한의 좌절 418

비전쟁기간에 일어난 최대의 학살극, 4 ·3항쟁 422

남침이냐, 북침이냐? 425

한국 민중, 최초의 승리를 거두다 ·‘419혁명’ 428

박정희 개발독재의 빛과 그림자 428

광주민주화항쟁에서 촛불항쟁까지 431


참고문헌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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