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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72177 / 152쪽 / 290g / 130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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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비유가 익숙한 세계에 그는 있다. 그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들은 어쩐지 아름다워. 그래. 그렇지만 이제부터 물의 비유는 절대 쓰지 말자. 그래. 그래. 아무것도 잊어서는 안 돼. 정말 봄이라며? 응. 우리는 여기에 있지? 그래, 여기에 있지. 산으로부터 어스름이 몰려온다. 봄이군. 그가 울기 시작했다. _「두 사람」 부분 올여름의 할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 그가 준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 꿈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러니까 올여름은 꿈꾸기 퍽이나 좋은 계절 (…)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삶이여, 너는 녹아 부드럽게 사라져라 _「여름의 할일」부분 ‘나’와 ‘무’ 사이의 꿈결 같은 대화-운동 어떤 아름다움과도 무관하게, 무한하게 번지는 이미지의 가능성들 “어제와 오늘이/ 비극과 희극 사이가/ 좁혀지지”(「미래의 가로수」) 않는 일. “질주하는 나의 망상” 속 “조립과 해체를 견디는 삶”(‘시인의 말’). 생과 사, 밤과 낮, 슬픔과 기쁨, 흼과 검음, 미래와 죽음. 때로는 이항대립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대극이 아닌 둘 사이를 시인은 한없이 진동하고 맴돈다. 그리고 순간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이미지에 사로잡히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제 모습을 시시각각 바꾸는, 때로는 내 마음이 바뀌는 순간을 포착해 그 궤적을 시로 써내려간다. ‘나’와 ‘무’ 사이는 때로 시인과 독자 사이가 되고, 때로는 홀로 때로는 짝으로 이어지는 꿈결 같은 대화는 이미지와 이미지가, 너와 내가, 나와 내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결국엔 환상적인 논리로 이어져 있음을 증명한다. 가로수는 언제 무성해지나 어제와 오늘이 비극과 희극 사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 말하길 너와 나랑 같이 걷자, 마지막 나무와 걷지 못한 나무 사이에 거울처럼 빛나는 미래가 걸려 있다고 가로수가 무성해지면 토르소처럼 모양 좋게 자를 수도 있다고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움을 알게 될 거라고 나와 무 사이에 누군가 있다 _「미래의 가로수」 부분 죽음을 잊은 소녀는 낡은 털실을 풀어 환상을 짜고 첨탑 아래에선 내일이면 막노동하러 도시로 떠날 눈먼 왕자가 마지막 세레나데를 쥐어짜는 방 꿈은 도마뱀, 꼬리를 자르고 뿔뿔이 달아나버린 나선형 계단 모양으로 꿈틀거리며 늘어지는 긴 혀의 방 지칠 줄 모르고 자라나는 흰 머리카락의 연주, 어지러운 화음 앵무새 깃털을 꽂은 무구의 마법사가 눈을 감고 날아가다 멈추는 방 _「라푼첼의 방」 부분 “꿈속과 꿈의 바깥을 사소하고 가난한 문장만으로 동시에 묘사할 수 있어 나는 슬프”(「상속」)다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진지하고도 정직한 시를 쓰는 시인의 언어는 한없이 낮고 검박할 수밖에 없고, “네가 사랑하는 문장들은 모두 가짜야”(「어제」)라고 회의할 수밖에 없으며, “먼지로 덮인 꿈을 다 털고 나니/ 모든 비유가 사라졌”(「수집가 K」)음을 항상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시인이 시 쓰게 하는 힘이자, 부끄러움이자, 용기이자, 자부이리라.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부끄러움에는/ 더 큰 부끄러움으로 저항하”(「수집가 K」)며 시를 쓰는 것일 테다. 그 더 큰 부끄러움이야말로 일부러 틀린 진심에 다름 아니다. 꿈꾼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집을 읽고 또 읽으며 알게 되었다.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꿈꿀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피로 젖은 흙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 참혹한 고통과 죽음들을 딛고 서서 비유의 언어를 감히 문학적 수사에 가까운 찬사로만 손쉽게 읽어낼 수 있겠는가. 그저 ‘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되물으며 피로 젖은 흙속을 파고들 때에만 겨우내 꿈이 자라난다고 말하는 것이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이다. 그러니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이란 단지 멈춰 선 애도가 아니라 우리를 한 발자국 겨우 나아가게 하는 것. 어쩌면 시를 읽고 쓴다는 것, 비유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일어난 일들, 겪어야만 했던 시간 속을 파고들면서 생긴 마음으로 꿈꾸는 일을 계속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_장은정(문학평론가), 해설 「피로 젖은 흙」부분 시를 읽는 기쁨은 우리가 ‘여기에 있기’에, ‘살아 있기’에 가능할, 잊었던 감정과 감각을 다시 한번 되찾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그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진 사람들, 꿈을 품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에 있지? 그래, 여기에 있지”(「두 사람」). 이 문장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 마음의 위치를 가리키는 듯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여름 바싹 마른 리넨의 흼, 때로는 축축한 흙에서 피어오르는 유기물의 향기, 물속을 유영할 때 다가와 붙는 서늘한 촉감, 눈을 감아야 보이는 다정한 입술. 우리가 잊었거나 되찾고 싶은 감각을 김경인은 “서랍 속에서 언 무지개를 꺼내/ 몸속에 풀어놓”(「동지」)듯 시로 부려놓는다. 다시 말해 생의 이채로운 기운을 무지갯빛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니까 올여름, 우리의 할일은 김경인의 시집을 읽고, 밖으로 나가 부신 햇빛 아래에 서 눈을 뜨고 꿈꿔-보는 일이 아닐까.
시인의 말
1부 슬픔이 조마조마하게 창문을 두드릴 때
두 사람/ 삼월/ 반반/ 여름의 할일/ 벌레의 춤/ 빛과 함께/ 가을이 오면/ 분명한 사실/ 일주일/ 낙관적인 전망/ 라푼첼의 방/ 코코라는 이름/ 동쪽 가까이
2부 어떤 아름다움과도 무관하게
허밍/ 지붕 위의 평화/ 우리는 겨울/ 거룩한 밤/ 도마뱀의 편지/ 눈을 뜨고 모든 밤/ 밝은 방/ 히브리어 사전/ 흰 밤 구름/ 인간 연습/ 나쁜 일/ 시/ 숲
3부 손님은 나 몰래 나를 사랑하여
초대/ 어제/ 대낮/ 비의 일요일/ 수집가 K/ 외출/ 마감하겠습니다/ 여름 아침/ 티타임 오후/ 석고와 나/ 잠의 해고 목록들/ 상속
4부 여름의 잔디이게 해줘
잘 자/ 앨리스/ 동지/ 뜰채의 시간/ 밤의 임무/ 국수/ 딸기잼이 있는 저녁/ 대화/ 미래의 가로수/ 양 한 마리/ 심야버스에서 하룻밤/ 초록이 저물 때까지/ 환한 술병/ 생일
5부 수신인이 없을 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편지들
오늘의 맛/ 염소 생각/ 삼십대/ 새소리/ 눈을 뜨고 모든 밤/ 바나나 리퍼블릭/ 기대어 앉은 오후/ 나의 아름다운 정원/ 산책하는 사람/ 안식도서관/ 음악/ 밤 이후/ 최선의 삶/ 젖은 무화과
해설|피로 젖은 흙
|장은정(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