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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7983102 / 168쪽 / 168g /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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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순도 높은 어둠으로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작가, 현진건!
언제부터인가 TV 화면 속에서 ‘가난’이 자취를 감췄다. 재벌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고, 하다못해 전문직 종사자라도 나와야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부유함을 엿보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가난은 몇몇 소수의 드러내지 말아야 할 치부로 취급 받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주변에서 가난이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TV 화면에서 눈을 돌려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무수한 가난이 존재한다. 가난이 곧 삶이 된 이들의 참혹한 이야기는 사건 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통해서야 짤막하게 우리의 망막에 닿곤 한다.
현진건은 1920년대에 주로 활동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사실주의 작가로,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문학이야말로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장 어두웠던 시대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보고 겪은 비참한 현실을 사실 그대로 순도 높은 어둠으로 작품에 담아냈다. 그의 대표작인 「운수 좋은 날」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결말이 주는 충격에 머리가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열흘 동안이나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에게 모처럼의 행운이 잇따라 찾아들지만 이처럼 운수 좋은 날, 그를 맞이하는 것은 결국 병든 아내의 죽음이다. 작은 희망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짓밟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애써 외면해 왔던 가슴 속 울분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통증에 준하는 극단의 기억으로 마음 깊은 곳에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네버엔딩스토리에서 문고본으로 선보이는 『운수 좋은 날 빈처』에는 사실주의 작가 현진건의 작품 8편이 실려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린 친숙한 작품을 포함한 그의 대표작들을 모았다. 현진건의 작품을 읽다 보면 암울한 현실에 가슴이 묵직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요즘의 세태 속에서 어느 정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슴 아픈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장면으로 전체를 보여 주는 묘사의 아름다움!
사실주의의 기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모두 담아 낼 수는 없다. 좋은 카메라라고 해서 세상을 모두 담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훌륭한 사진작가는 카메라 렌즈 안에 포착된 단면을 통해서 전체의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현진건도 마찬가지였다. 현진건은 하나의 장면에 포착된 사물이나 풍경을 통해 전체를 엿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은 바로 묘사에서 나왔다.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렀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며 하얀 손톱 밑으로 앵두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 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낟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술 권하는 사회」 중에서)
바늘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야기의 흐름 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작가는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내가 느끼는 손톱 밑에 바늘이 찔린 고통이 일제강점기를 살던 지식인이 겪었던 아픔과 같은 고통임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현진건은 짧은 단편소설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주인공의 아픔은 물론, 시대적 고통까지 나타내기 위해 묘사를 주로 활용했다. 현진건의 작품 어디에도 일제강점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현실이나 인간이 가진 이중성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보여준 세상 너머의 무엇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묘사의 힘과 아름다움으로 그가 겪었던 시대의 아픔은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우리들의 가슴에 남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