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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4565503 /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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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문단에 나왔지만,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평단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성지혜는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 온 장편소설 『해를 품은 천리안』을 출간했다. 작가가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내력을 쓰고자 한 건 오래전부터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세월을 길쌈한 건, 행여 저의 모자란 글이 그분에게 결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런 사이 자료를 수집하며 그분을 연모하고 그분을 닮고자 한 공경도 싹을 틔웠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16세기 북부지방 안동에서 권문 세도가의 장녀로 태어난 이경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작가 특유의 미려한 필체로 당시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읽는 재미를 더욱 느끼게 하고 있다. 오래전 이문열의 윗대 할머니 안동장씨의 삶을 형상화한 『선택』은 뜻하지 않은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그 당시의 사회상은 한 여자로서의 삶은 지아비에 순종하고 가문을 지키며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데 헌신하는 안동장씨의 삶이 순종으로 왜곡되어 진보주의자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집안은 고려 충정왕과 공민왕 때 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 조선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용헌공 이원 선생, 구한 말 석주 이상룡 독립운동가 등을 배출한, 우리 민족의 산 역사를 일군 명문가이다. 사람들이 안동을 유학의 산 고장이라 부른 것도, 대저택인 임청각을 비롯한 군자정, 귀래정, 반구정, 어은정이 있기에 더 빛났다는 걸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고성이씨 삼대들이 그 정자들을 마련했기에, 그곳을 드나들던 선비들과 유학자들이 학문을 파고들며 토론하고 연구해 영남학파의 산실이 되었다. 고성이씨 할머니 이야기를 어려서 자장가처럼 들었기 때문일까? 소경으로서 눈 뜬 사람보다 훨씬 현명하고 담대하며 솜씨가 좋아서 큰 살림을 다스렸다는 고성이씨 할머니는 우리 겨레의 조상인 웅녀처럼 비상하고 신비로운 인물로 느껴졌었다. 단순히 맑고 초롱초롱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가혹한 운명을 의지력으로 극복한 강인한 여인이 아니라 갈등과 회한에 몸부림하던 끝에 자신의 운명으로 수용하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친족들을 위해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매 순간 조심하고 긴장하며 살았던 여인. 한 여인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이토록 높고 깊음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랴. 그래서 옷깃을 가다듬고 할머니의 자취를 삼가 보듬고 싶다. -서지문(고려대 명예교수, 영문학) 까마귀가 궁궐마당을 점령해 소란을 피워 임금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는 말을 듣고는 흥분제를 섞은 수수 찰밥을 몇 수레 분을 지어 보내 궁궐마당에 풀도록 해서 까마귀들이 궁궐마당에서 죽지 않고 물고 멀리 날아가 죽도록 했다. 감탄한 선조가 그 지혜로운 부인의 아들이자 임진왜란에서 임해군과 순화군을 구한 신하 서성을 불러서 사돈을 맺자고 했다. 이경의 외아들 약봉 서성이 달성서문의 거목으로 그 가계가 조선 후기에 가장 과거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것은 모자의 공덕과 지혜가 함께 이룩한 것이다. 이경이 한성으로 이주할 당시는 16세기 초였는데 데리고 있던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켰다. 한양으로 데리고 간 노비들도 노비 문서를 없애고 임금을 받는 하인으로 고용했다. 당시에는 남성도 하기 힘든 통 큰 선구적인 인도주의의 실천이었다. 조선 시대의 세분 현모는 신사임당, 장씨부인,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였다. 앞의 두 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는 덜 알려져 그분의 행적을 형상화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퇴계 선생이 당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던 서해 선생이 23세에 요절해 대구서씨 가문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장님 고성이씨 부인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으로 외아들 약봉 서성 선생이 6도 관찰사와 형조, 병조, 호조, 공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으며, 손주 서경우가 우의정에 올라, 그분이 정경부인으로 추존 되었습니다. 그분은 노비를 해방시킨 선구자입니다. 안동 소호헌에서 청주로, 다시 장정의 길에 올라 한성에 당도해 중씨 댁에서 살며, 새집을 지어 이사한, 맹모삼천을 실천한 현모였습니다. 장애인들과 이웃에게 베풂을 실천한 자선가이며, 고난을 승리로 이끈 개척자입니다. 아들과 손주들을 참 인재로 키운 교육자이며, 앞날을 꿴 의인이었던 것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추천사 5
작가의 말 10
임청각, 어린 시절 19
신접살림, 소호헌 99
약현, 어거리풍년 187
참고문헌 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