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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7890611 / 216쪽 115 x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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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봄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긴 저자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작가의 꿈을 꿉니다. 뚜렷한 직업도 없고 인간관계도 좁지만, 오늘도 밭골의 비닐을 갈고 한 땀 한 땀 글을 짓습니다. 한때는 쉬운 마음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각오도 없었습니다. 빛을 향한 열등감은 사실 동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그림자가 짙은 그늘이 되는 것처럼, 어둠이 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시원한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글을 씁니다. 지금 필요한 건 완벽이 아니라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첫 문장을 씁니다. 달에 대고 상앗빛 소원을 빕니다. 무탈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바람에도 뙤약볕에도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하는 게 뭐 그리 좋다고 마냥 웃던 막내처럼 고추모도 바람 따라 기분 좋게 재잘재잘 웃습니다. 뜨끈뜨끈한 아지랑이가 등에서 피어오릅니다. 여름 크리스털 팔찌처럼 반짝거리는 여름, 온종일 고추를 따고 상자에 담아 유통센터에 보내고 다시 고추를 땁니다. 뜨거운 태양이 한소끔 꺼진 저녁, 고양이들과 노는 것이 유일한 낙입니다. 봄에 미처 따지 못한 버섯이 참나무 밑동에서 인사합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데 오늘따라 반갑습니다. 버섯이 되자, 지금 이 기분을 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에서 힘이 납니다. 고추밭에서 줄을 매다 라디오에서 들은 “끙끙 앓다가 죽느니 한번 해보세요.”라는 말에 부싯돌처럼 가슴이 반짝 빛납니다. 서늘했던 마음에 훈기가 돕니다. 기분 좋게 고추줄을 잡아당깁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나를 주저앉혔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돌보지 않는 사이 욕심이 진짜 내 마음인 양 자랐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이었습니다. 가짜 마음을 뽑고 나니 진짜 마음이 보입니다. 풀을 뽑고 나니 훤한 두둑이 보입니다. 아직 한낮입니다. 가을 10년째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내는 게 아까워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장은 잿빛이었지만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일기장 끝에 ‘가능’이라고 적었습니다. ‘나는 가능해. 나는 글을 쓰는 게 가능하고 내일 아침 일어나서 운동하는 것도 가능해.’ 결심은 늘 실망을 주지만 예전만큼 우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울한 것이 많지만 감사한 것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날 예쁜 구름을 봐서 감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엄마에게도 감사합니다. 또 매일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지만 겨우 몇 줄이 나를 키웁니다. 언제나 비슷했던 날들과 조금 다른 오늘. 오후엔 어떤 일상이 나를 키우게 할지 상상해봅니다. 고통을 끌어안고 익숙해지기를 기다립니다. 쓰고 싶은 글이 많습니다. 겨울 들녘의 푸른 열기는 한소끔 식었습니다. 찬기를 머금은 바람은 빗자루질하듯 차례차례 겨울 들녘을 쓸고 있습니다. 이제는 겨울 들녘처럼 한소끔 꺼진 나의 청춘. 아직도 갈대처럼 많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이제 쓰러져도 다시 서는 법을 조금 압니다. 기다리는 법을 알고, 시간의 힘을 압니다. 휑해진 콩밭을 보았습니다. 이제 내 마음을 추수할 차례입니다. 들에서 삶을 배웁니다. 깊고 맑은 환희심이 내 마음을 채웁니다. 꿈을 포기 못 해 또래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아까운 청춘을 집 안에서만 보냈고 아직도 부모님께 의탁하며 삽니다. 재작년 겨울, 겨우 등단 딱지 하나 건졌지만 삶은 등단 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도 모든 하루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닙니다. 정상만 바라보면 그곳은 굉장히 높아 보여 갈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그곳에 갑니다. 그 마음을 응원하는 듯, 고양이도 볕이 보이는 곳에 앉아 볕을 쬐며 야옹거립니다. 다시 봄 어느새 살며시 봄이 왔습니다. 작년과 같은 계절이지만 조금은 성숙해진 봄의 이야기입니다. 시장에서 ‘철학’ 하나를 사고 시장 끝 생선 가게를 지나 떡 가게에 갑니다. 찹쌀떡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떠오르니까 먹고 싶어집니다. 그것에 이유나 동기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굳이 모든 것에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한 계절이 지나면 또 한 계절이 오듯이, 우리의 삶도 계속됩니다. 이 책은 충북 음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도 짓고 있는, 30대 작가 지망생의 일기장 같은 책입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계절이 바뀌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 같은 알싸함이 느껴집니다. 조금은 쓸쓸하고, 또 조금은 서글픕니다. 하지만 쓰러진 고추를 세우고 말뚝에 줄을 감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걸 보면, 우리의 마음도 함께 추슬러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곳에 간다고. 그 옆에서 골골거리는 고양이와 산책을 재촉하는 강아지가 책에 훈기를 불어넣습니다. 봄에는 고추를 심고 여름엔 고추를 따고 가을엔 들깨를 베고 겨울엔 땅이 얼기 전에 비닐을 벗깁니다. 일기장 끝에 ‘가능’이라고 적는 것처럼, 독자들의 마음에도 이루지 못한 저마다의 ‘가능‘을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봄
그림자와 그늘
소원에도 색깔이 있다면
부침개 부치는 날
고추모 시집가는 날
내 인생에도 부스터가 있다면
그 밭에는 도라지꽃이 필까?
현수막
1번지
나의 MBTI
조카와 보내는 시간
복토
여름
버섯과 곰팡이
반짝이는 팔찌 하나
라디오를 듣다
책장 파먹기
엄마의 맛
나누는 마음
설순이 반찬통
이국 아닌 이국
가짜 마음
고추줄 매기
가을
일기장
아빠의 지게
구두와 운동화
산이 관찰기
일 안 되는 날
가짜 뉴스
밤에 자란다
익어가다
근육통
겨울
들에서 삶을 배우다
기도
걷다 보면
오래 보다
칠전팔기 운전면허 합격기
직접 보아야 알 수 있는
파생소비
보통날
와립 인간
다시 봄
어느새 살며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