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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94698 / 124쪽 130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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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잠들기 전 머리맡 종이를 당겨 글씨 위에 글씨를 씁니다 헝클어진 생각은 봉두난발이지만 아무리 검게 칠해도 빈틈을 비집고 별이 뜹니다 아맘니, 아맘니 입술 부딪히며 암암리에는 밤새 덜 마른 생각이 반짝거립니다 _「다음 도착지는 암암리입니다」 부분 이렇듯 삶과 가까이 있는 사물에 대해 곱씹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심언주는 불안이나 슬픔 같은 어두운 감정을 발견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감정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조망한다. 이번 시집에 유독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가장자리”(「수평선」), “나는 올리브를 지키는 사람”(「올리브, 유」), “나는 보츠와나 초원의 코끼리”(「헌터」), “나는 염치읍민입니다”(「염치읍민입니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시의 화자는 여러 상황과 관계 속에서 ‘나’의 모습을 다양하게 정의 내리며 ‘나’라는 것이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에서 바라보았을 때, 마지막에 놓인 「묻지도 않고」에서 반복되는 “나는 살아간다”는 말은 치열한 자기 인식을 통해 ‘나’의 여러 모습을 받아들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처럼 느껴진다. 나는 살아간다.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간다. 생각하다가 불을 끄지 않고 살아간다. 가스불을 끄지 않아 출근길을 되돌아간다. 불 끄러 갔다가 불이 꺼져 있어서 살아간다. 조금 늦게 출발하면서 조금 늦게 도착하면서 살아간다. 불을 끄면 생각이 켜진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을 품은 채 잠이 들고 생각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생각은 생각을 키우고 생각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꺼지지 않는 생각에 발목이 잡혀 살아간다. 나뭇가지처럼 뻗은 길 끝에 집이 매달려 있고 내 생각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흔들리면서 살아간다. 생각을 잡지 않고 살아간다. 네 생각을 묻지도 않고 살아간다. 생각을 닫지 않고 살아간다. 생각 없이 앞만 보며 간다. 아무데나 생각을 쏟아내다가 내가 쏟아지면서 살아간다. 생각이 싹트는 걸 보면서 간다. 다시 생각하면서 간다. 살아 있으면 간다. 나는 살아간다. 나는 살아서 어딘가로 간다. _「묻지도 않고」 전문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얼굴을 아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어떤 얼굴의 내가 비칠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내가 나타날 수도 있다. 표제작인 「처음인 양」에서 ‘나’가 그동안 딸에게 “양털 이불도 덮어주고, 양떼구름도 보여줬는데” “양은 처음” 본다고 말하는 딸을 통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양이 처음 보는 동물처럼 느껴졌듯이, ‘나’의 얼굴 역시 그렇게 낯선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얼굴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간 자신이 딸에게 “양은 안 보여주고 양 주변만 맴돌게 했”(「처음인 양」)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으면서 아무 일 없이 잘 지”(「최소한의 여름」)낸다는 자조적인 고백을 해야 한다. 이처럼 심언주는 끈질기게 내가 누구인지 물음으로써 ‘나’라는 모습을 다양하고 정직하게 그려내 보인다. 그리고 이 시집을 읽는 우리 역시 자신의 낯선 얼굴을 ‘처음인 양’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양은 처음 보아요. 처음이라 말하는 순간 처음은 사라집니다. 양이라 말하는 순간 양은 사라집니다. 양이 사라진 풀밭에서 양이 풀을 뜯습니다. 양양에도 대관령에도 딸을 데리고 갔는데, 양떼 목장에 가긴 갔는데 양이 사라진 풀밭에서 눈썰매만 탔습니다. 갈대를 뭉쳐놓은 듯 몰려다니는 양은 안 보여주고, 새하얀 양만 그리게 했습니다. 번제를 올리느라 화면에서 양이 피를 뿜을 때 딸의 눈을 가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양은 안 보여주고 양 주변만 맴돌게 했습니다. _「처음인 양」 부분 시집을 거듭 읽는 동안 자화상을 예술의 방법이자 인식의 틀이며 존재의 근거로 사유하는 것이 특정 화가만의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나 역시 나를 ‘처음인 양’ 마주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 명의 ‘나’를 알면서도 흩어진 ‘나’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지금 ‘나’의 자기 인식이며, 우리는 모두 자신에 대해 그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자화상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자기 인식을 향한 시인의 뜨거운 의지가 어느새 나에게로 전이된 것 같다. 이 확진된 열병을 시라고, 또 예술이라고 부른다는 오래된 진실이 낯설게 반짝인다. _박혜진, 해설에서
1부 꽃에 다다르는 병 점점점/ 나비가 쓰고 남은 나비/ 정형외과/ 백야/ 파종/ 피고인/ 다음 도착지는 암암리입니다/ 그늘/ 식빵을 기다리는 동안/ 수평선/ 다닥다닥 빨강/ 꽃병/ 수국아파트 2부 뭉치면 한 마리, 흩어지면 백 마리 그래그래/ 올리브, 유/ 인터뷰는 사양할게요/ 과거도 현재도 주성분이 우유입니다/ 정말을 줄까 말까/ 방치/ 우기/ 계단이 오면/ 처음인 양/ 선두를 존중합니다/ 먼지 고양이/ 기우뚱하면 안 되니까/ 아무렇게나 엉키고 쉽게 끊어지지만/ 괜찮아요, 좀 늦긴 했지만/ 마스크/ 오후 혼자서 3부 둔부도 없으면서 두부는 서 있다 몽상가/ 돌이켜보면 모두 파랑/ 헌터/ 이기려고 두부가 되는지 져서 두부가 되는지/ 봄날/ 밤마다 감자/ 벚꽃 습관/ 노랑/ 극단적 선택/ 동호대교/ 최소한의 여름/ 발레리나/ 나는 나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자욱해질 때/ 사람이 될 듯 말 듯/ 복어는 로또 공처럼 4부 내 울음은 내다 걸지 못합니다 비눗방울로 메아리를 낳자/ 염치읍민입니다/ 불면/ 남의 일처럼/ 사투와 화투/ 새를 끄고 싶다/ 그도 염치읍민입니다/ 돌로 사는 법/ 숲, 숲 부르면 쉿, 쉿/ 양면성/ 주의 사항/ 쓸데없는 책임감/ 파닥파닥이 지치면 바닥이 된다/ 속옷 빨래라서/ 묻지도 않고 해설_나를 닮은 시, 시를 닮은 나 박혜진(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