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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602850 / 300쪽 12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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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고통스러운 시간에도 회복이 어떤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왔는지 기억할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하게 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을 버텨내는 일까지는 무난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2017년 여름, 내 시간은 계속 그 위를 맴돌아 흐른다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는 한 개인이 사회적 폭력으로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애써온 4년의 기록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 최현희는 ‘마중물샘’으로 불리며 학교 안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사건으로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고 오랫동안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온 여성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며 언어가 생겨나던 와중이었다. 그러나 2017년 여름, 저자가 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한 온라인 매체와 가진 인터뷰가 ‘일베’ 등의 사이트로 퍼져나가며 저자는 순식간에 엄청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대부분 남학생들이 전유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하는 5분 남짓한 짧은 영상은 급기야 저자가 ‘남학생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사라는 왜곡된 헛소문으로까지 이어졌다. 저자가 속한 학교와 교육청에 악성 민원이 밀려들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언론사가 사실 확인도 없이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서 저자는 수구 단체로부터 ‘아동학대’로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마중물샘은 이 모든 파도를 지나고 나면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인터뷰에 응하고 강연을 하며 교사로서의 명예와 페미니즘 교육의 대의를 지키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단락되고 연대해온 이들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후에도 마중물샘은 예전의 일상을 되찾지 못했다. 건강 악화와 수면 장애, 불안과 무기력, 공황이 지속되었고 자기연민과 타인에 대한 원망 등 고통스러운 감정에 날마다 시달렸다. 병휴직과 복직을 거듭하던 중, 마중물샘은 큰 병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기에 이른다. 부서지는 것은 쉽고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 일상을 끌어나가는 것이 어려워진 사람에게 일상은 도리어 환상이 된다. 하루하루를 그저 ‘일상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향한 과정으로만 생각하던 마중물샘은 ‘부서지는 것은 쉽고 되돌리는 것은 어렵다’는 깨달음 끝에 일상을 회복한다는 것을 재정의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목표는 지우고 ‘하루에 한 번 밖에 나가기’ 같은 작은 목표를 세워 지켜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목표를 달성한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1년이 지나면서, 마중물샘은 서서히 자신에게 새로운 일상이 찾아온 것을 깨달았다.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날들의 기록을 전하면서 마중물샘은 말한다. 삶을 재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록 회복기를 내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삶이 무너진 채로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힘들어도 노력하면 결국 좋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로 전해질까 봐 염려스럽다고. 그럼에도 아주 어려웠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잊지 않고 그것을 나눌 수 있다면 의연하게 하루를 버틴 자신을, 함께 버티는 중인 이들을 칭찬하고 응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중물샘은 그렇기에 이 글이 회복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끈질긴 응원으로 읽히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지금을 건너야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버티고 기록하고 연결되겠노라는 다짐 한 아이의 엄마로, 초등학교 교사로 성실히 살면서 아이들이 생활하고 자라는 교실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히는 평범한 직업인이었던 마중물샘은 그 소신을 무참하게 왜곡하고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사회의 한 조각에 의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마중물샘은 그 일 앞에 의연하게 섰고 인생에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고난으로 생각했으며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병휴직과 복직을 반복하고 큰 수술을 받으면서 4년이 흘렀지만 마중물샘은 여전히 말끔하게 ‘예전의 나’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중물샘이 교단 일기를 올리던 블로그는 사건이 터진 후 온갖 조롱과 욕설로 도배가 되어 폐쇄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중물샘은 다시 블로그를 열어 회복의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원망의 마음을 토로했고 때로는 가혹하고 무지한 사회를 냉소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는 와중에 발병했음에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마구 소진하기만 하면서 살아온 탓이라고 자책도 했다.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글이 ‘회복의 기록’이었지만 당시로서는 그저 버티는 이야기, 살아내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견디는 글 속에 마중물샘의 여러 모습이 담겼다. 좀 더 좋은 교사이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 익숙했던 교육 환경을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는 페미니스트 교사로서의 모습, 성장 과정에서 조금은 남달랐던 환경을 재인식하게 된 어른의 모습,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앓는 사람,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다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명랑성을 잃지 않는 사람, 수많은 결심과 다독임이 무너지는 시간을 겪으며 자책하다가도 스스로에 대한 긍정과 너그러움으로 거듭해 다시 일어서는 사람. 무엇보다 연약하지만 약하지는 않은 세상의 많은 이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붙들고 언제나 분투하는 사람들의 곁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이 가장 또렷이 담겼다. 그렇기에 마중물샘의 회복 일지는 ‘고통스러운 지금’을 건너는, 그러나 ‘나중의 나’를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함께 버티고 기록하고 연결되겠노라는 다짐이다. 이 부단히 나아가는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작은 승리를 이뤄내며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가 ‘예전의 나’를 넘어 새롭게 ‘다시 내가 되는 길’을 걷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책 속에서 작년 어느 날 동학년의 동료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작은 갈등만으로도 마음이 부대끼고 힘든데 도대체 그 많은 갈등과 소란을 어떻게 견뎠어요?”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아요.’ 온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그거야 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나는 끝까지 연대해줄 거라 믿었던 몇몇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 때 가장 아팠다. 어느 선까지는 분명히 진심으로 애를 썼을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너무 아파서 그들의 모든 선택을 내 맘대로 왜곡하고 미워했다. 저마다의 사정과 서로 다른 우선순위, 지켜야 할 각자의 교실과 삶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저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합리화하느라 너무 많은 벽을 만들어 쌓아 올린 것 같다. (83-84면) 이제는 이런저런 일을 겪기 전에 내가 살았던 삶이 어땠는지, 정말 그때는 괜찮았던 건지 확신이 안 선다. 그러다가도 번쩍 어느 순간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내가 별거 아닌 것에 즐거워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유쾌해했던 어느 날의 짧은 기억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얼마큼 멀어진 걸까. 나는 나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되돌아갈 만한 내가 남아 있기는 할까. 되돌아갈 길도 없고 새로 걸어나갈 길도 안 보이는 어떤 상태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용량이 완전히 다 차버린 컴퓨터처럼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윙윙 시끄러운 소리만 내고 서 있다. (116-117면) 생각해보면 15년간의 교사 생활에서 정말 어려운 것은 권력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권력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노력은 내가 교실 공동체의 성인이자 교사로서 짊어져야 할 권위의 무게와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변질될 때가 많았다. 규율이 없는 교실의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공간을 독식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또래 학생들이었다. 상황을 바로잡고자 단호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권위를 앞세우는 관성 같은 게 여지없이 내 안에서 똬리를 트는 게 느껴졌다. 늘 그 틈바구니에서 시달렸다. (123-124면) 밖으로 나오니 오후 3시쯤이었다. 눈발이 거세진 데다 하늘이 시퍼렇고 어둑해서 이른 새벽처럼 느껴졌다. 암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치고는 내가 너무 무덤덤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손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방금 전까지 나는 암과 무관한 사람,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무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암 환자는 내게 어느 정도 정형성을 가지고 떠올릴 수밖에 없는 타자였다. 그런데 별안간 나에게 암 환자라는 정체성이 생겨났다. 인지부조화가 왔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다른 사람들은 이 순간을 어떻게 지나갔을까. 이걸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되는 건가. (139-140면) 왜 이런 고통을 참아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묻고 있었다. 아프지 않을 때는 필요가 없던 질문이다. 인생에는 얼마나 자잘한 기쁨들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러나 이렇게 아플 땐? 이런 고통을 이고 있을 땐? 그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게 있을까? 이것저것 떠올리고 제하고 하다 보니 나에게 남는 건 별이였다. 별이가 있는 한 나는 죽을 수 없는 것이다. (195-196면) 하지만 어디 연대가 쉽게 되는가. 기득권은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능하다. 언론은 교사와 학부모를 유구히 이간질해왔다. 학교에는 실제로 문제 교사들이 (당연히) 있고 현재 어른이 된 독자들의 억압적인 학창시절 경험에 호소하면 교사를 불신하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학교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평범한 교사들의 노력을 조명하거나, 그런 노력을 가로막는 학교 조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언론을 나는 여태 본 적이 없다. 체벌과 경쟁 등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학교를 경험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사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회인 것도 당연하다. 나도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교직을 향해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평생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어디서든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곁에 서야 한다. (208-209면) 나도 무심히 자랐으면 좋겠다. 많은 불면의 밤들이 무심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볼 때 그게 어떤 하루였든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하루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뭔가 대단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들, 보람찬 일들을 하고 나서야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마음과 몸으로 배워야 한다. 언제나처럼 하루가 찾아왔고 나는 그걸 잘 버텨냈으니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 속에서 그런 나를 그냥 토닥여주면 되는 것이다. (2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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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부 두물머리, 시작
2부 불안한 사람의 혼잣말
3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불행
4부 내 정신의 마당을 찾아서
5부 나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나오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