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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리나 서한집

예카테리나 2세 저 | 김민철,이승은 역 | 읻다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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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433512 / 264쪽 13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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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속에서> 군주는 포상받을 권리가 있는 발군의 사상가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은 허락되지 않아요. 군주는 사람들의 재능을 장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군주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의심을 받을 겁니다. 44쪽, 1765년 11월 21일,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새 법제는 풍토, 민족, 습관, 심지어 관념조차 너무나 다른 아시아와 유럽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아시아에 있는 것은 내 눈으로 직접 이 땅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이 도시에는 서로 전혀 닮은 점이 없는 20개의 다양한 민족이 있고 나는 이들 모두에게 맞는 옷을 제작해야 해요. (…)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통합하고 보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하염없이 계속할 수 있겠으나 여하간 해야 할 일이 이미 너무도 많습니다. 62쪽, 1767년 5월 29일, 볼테르에게 나는 국민을 정당하게 대우해야 합니다. 러시아 국민은 좋은 씨앗이 빠르게 싹트는 탁월한 토양이나, 우리는 자명한 진실로 인정되는 격률이 필요해요. 70쪽, [1767년 12월 22일], 볼테르에게 러시아가 전쟁 중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꽤 오랫동안 해왔고, 매번 전쟁을 개시할 때보다 [끝낼 때] 더욱 번영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법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요. 점차 손을 보고 있습니다. 법이 부차적인 사안이 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법은 관용적일 거예요. 법은 누구도 박해하지 않고, 사형하지 않으며, 화형당하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84~85쪽, 1769년 7월 14일, 볼테르에게 혼자 되뇌었어요. 러시아는 이 전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러시아가 용감한 불굴의 민족이고, 러시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웅을 이루는 자질을 모두 갖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러시아에 자원이 부족하지 않으며, 러시아가 자원을 소모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부당하게 공격을 당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고 높은 기세로 수월하게 전쟁에 임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일이 잘 되고 있지 않다면, 나는 내 능력을 모두 동원해 가능한 한 최선의 경로에 오르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야망이고, 그 외의 것은 없어요. 140쪽, 1771년 7월 22일 / 8월 3일, 볼테르에게 나는 정말 러시아가 비잔티움을 차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평화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전쟁보다 낫다고 말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스타파 경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는 전자와 후자 양쪽에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러시아가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해도 단 한 마디도 믿지 말아요. 우리는 다른 열강이 평화 상태일 때 소진했을 1,000개의 자원을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어떠한 세금도 신설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필요한 것이 전부 충분히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160쪽, 1772년 3월 30일, 볼테르에게 황제는 “신이시여!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셔서 당신의 인민을 성스러운 법과 정의로 심판할 수 있도록 제게 지성을 주십시오”라는 외침으로 《교서》를 시작한다. 예카테리나는 《교서》 1장에서 그리스도의 율법이 모든 민중의 가슴속에 뿌리내려 민중이 조국의 번영, 명예, 행복, 평화를 소망하고 계율에 반하는 모든 시도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적었다. 황제는 이를 위해 러시아의 자연환경과 인민의 습속 및 기질에 어울리는 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카테리나는 신앙, 자연조건, 지리적 조건을 법의 토대로 간주하고, 그 셋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통치의 원리로 삼고자 했다. 230쪽, 옮긴이 해제 · 18세기 러시아와 예카테리나 대제 예카테리나는 러시아를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유럽 문명의 중심부에 편입시키고 표트르 대제 이후 최고의 황제로 군림하기 위해 절대 군주의 권위와 계몽 군주의 매력을 겸비한 독특한 서한 정치를 시도했다. 그녀의 이런 시도가 러시아의 광개토대왕이라 불릴 만한 황제의 업적에 어느 정도로 기여했는지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황위에 대한 존경, 애정, 두려움을 동시에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240쪽, 옮긴이 해제 · 계몽의 시대, 황제의 편지

저자 소개

  • 저자 : 예카테리나 2세
저자 :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Алексеевна)
18세기 러시아의 대제이자 계몽 군주. 본명은 조피 아우구스테 프리데리케 폰 안할트체르프스트(Sophie Auguste Friederike von Anhalt-Zerbst)로 1729년 4월 21일 프로이센의 소공국 슈테틴에서 태어났다. 1744년 겨울, 조피는 러시아에 도착하는데, 러시아 황제 옐리자베타가 자신의 후계자로 정한 미래의 표트르 3세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정교회로 개종한 조피는 예카테리나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얻는다. 옐리자베타 황제가 사망하고 표트르 3세가 즉위한 지 6개월이 흐른 1762년 6월,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황제 자리에 오른다. 예카테리나가 통치하는 동안 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러시아의 문화도 활짝 피었다. 예카테리나는 유럽의 문인과 서한을 교환하며 자신의 개혁을 알리고 조언을 구하며 문인공화국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18세기 러시아의 한 시인은 “표트르는 우리에게 존재를 주었고 예카테리나는 영혼을 주었다”라고 노래했다. 1796년 11월 6일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다.

역자 : 김민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프랑스혁명사와 지성사를 연구한다.

역자 : 이승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제정러시아사와 지성사를 연구한다.

목차

1762년 11월 13일, 모스크바,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1763년 9월], 볼테르에게
1763년 9월 27일 (구력),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리드리히 2세에게
1765년 3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리테레즈 로데 조프랭에게
1765년 6월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리테레즈 로데 조프랭에게
1765년 8월 22일, 볼테르에게
1765년 11월 2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1765년 11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66년 7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66년 8월 31일,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1767년 1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67년 3월 26일, 모스크바, 볼테르에게
1767년 5월 29일, 카잔, 볼테르에게
1767년 10월 12일, 모스크바,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에게
[1767년 12월 22일], 볼테르에게
1768년 12월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69년 4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69년 7월 14일, 페테르고프, 볼테르에게
1769년 9월 2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69년 11월 9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0년 1월 19일, 볼테르에게
1770년 3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0년 6월 6일, 차르스코예 셀로의 별장, 볼테르에게
1770년 8월 9일 / 8월 20일, 볼테르에게
1770년 9월 16일 / 9월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0년 11월], 볼테르에게
1770년 12월 4일 / 12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1년 3월 14일 / 3월 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1년 3월 7일 / 3월 26일, 볼테르에게
1771년 5월 20일 / 5월 31일, 볼테르에게
1771년 7월 22일 / 8월 3일, 볼테르에게
1771년 9월 4일 / 9월 15일, 볼테르에게
1771년 10월 6일 / 10월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1년 11월 28일 / 12월 9일, 볼테르에게
1772년 1월 30일 / 2월 1일, 볼테르에게
1772년 3월 30일, 볼테르에게
1772년 4월 3일 (구력), 볼테르에게
1772년 7월 6일, 페테르고프, 볼테르에게
1772년 10월 3일, 볼테르에게
1772년 11월 22일, 볼테르에게
1772년 말 / 1773년 초,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1773년 3월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볼테르에게
1774년 1월 7일, 볼테르에게
1774년 3월 15일, 볼테르에게
1774년 11월 2일, 볼테르에게
[1775년 11월], 볼테르에게
1763년 2월 4일, 페르네 성, 볼테르가 장 르 롱 달랑베르에게

옮긴이 해제 · 18세기 러시아와 예카테리나 대제
옮긴이 해제 · 계몽의 시대, 황제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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