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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글쓰기 당신의 노동을 쓰는 나의 노동에 관하여

희정 저 | 오월의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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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422895 / 244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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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출판사 리뷰

응답과 알아챔: 기록글이 빚어지는 과정 “그저 말을 원했다. 꼭 완결된 말일 필요도 없다. 말을 쉬는 타이밍, 생각을 가다듬는 헛기침, 침묵, 떨림. 이 모든 것이 섞인 ‘말’을 원했다. ‘몰라’도 좋고 ‘아니’도 좋았다. 꼭 음성언어일 필요도 없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내가 해독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가 그(들)의 대화에 동참할 수만 있다면. 그런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응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난감할 때가 많다. 때론 너무 많은 것을 물어 자책했고, 때론 중요한 무언가를 묻지 않은 것을 한탄한다. 무엇을 들어야, 얼마나 알아야 응답할 수 있을까. 잘 듣는다면 응답할 수 있을까. 기록자와 인터뷰이가 나눈 대화가 글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은 도통 오지 않는다. 인터뷰이가 슬쩍 보여주는 것은 그의 삶의 한 토막일 뿐이다. 기록자는 겨우 그 토막을 엿보고서 그의 삶을 아는 척 적어내려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록자에게는 불안이 있다. 세상 역시 자신이 읽어내린 방식으로 그를 읽어내릴 거라는(바로 이것이 세상의 응답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 역시 인터뷰이에 대해 잘 모른다는 불안감. 기록자가 끊임없이 자신의 해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어쩌면 해석과 해독이라는 것은 어떤 대단한 지적 행위가 아니라 사소한 알아챔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술을 마신다는 나이 든 현장 노동자가 쓱 짓는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내가 가닿을 수 없는 낯선 곳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같이 웃는다. 돌아서 저이의 웃음 속에 숨겨진 시스템과 제도를 파악하려 애쓰며,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위험을 헤아리고,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 이를 생각한다.” 내게 말을 들려준 이들이 보여주는 시선과 관계가 기록자인 나의 세계로 들어올 때 나 또한 다른 언어를 가지게 된다. 나의 세계 또한 그들에 의해 확장된다. 그들의 세계를 올곧게 전할 자신은 없지만, 공간과 사건, 삶과 시대에 대한 해석을 들려주는 인터뷰이에게 나 또한 응답할 수 있길 꿈꾼다. “기록이란 상대의 손에도 흙 묻히는 일이라는 것. 어떨 때는 잔뜩 흙이 묻은 상대의 손에 내 손을 가져가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차피 괴로움도 갈망도 흙 묻은 손으로 내가 감당해야 한다면, 화자의 손을 감싼 그 내 몫의 손만이라도 인간의 체온을 유지한 채 바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말하는 이의 세계와 기록자의 세계가 서로 얽혀 빚어진 기록이 나올 때까지.” 인터뷰를 망치게 하는 것들 정작 현실은 녹록지 않다. 취재 현장에는 기록자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만연하다. 사소한 실수로 인터뷰 내용이 하나도 녹음되지 않는 무서운 일도 있지만, 이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내상을 입게 되는 사고도 있다. 인터뷰이와의 관계를 망치게 되는 사고. 그런 일은 “서로가 동등하지 않음이 과하게 드러날 때” 발생한다. 인터뷰를 망친 어떤 날이 있었다. 그날 만난 고려인 인터뷰이의 말을 통역해주는 (마찬가지로 고려인인) 통역자는 나를 줄곧 불편하게 만들었다. 통역에 앞서 자기 생각을 말하기 바빴다. 사달이 난 건, 인터뷰이가 들려준 학창 시절 이야기에 내가 “제1외국어로 독어를 배우셨다니 신기하네요. 영어는 외국에 과목에 없었나요?”라고 답했을 때였다. 통역자는 내게 거칠게 항의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당시 나는 고려인들이 누구인지는 고사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지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던 날들이었다. 러시아권에서 자란 인터뷰이에게 “독어를 배우셨다니 신기하네요”라고 맞받아치다니. 그건 분명 나의 무지였다. 나의 무지를 지적한 통역자는 옳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거칠었기에 나는 지켜오던 예의를 내려놓고 불편한 감정을 표출했다. 그때 나는 내가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했기에. “내가 여자여서. 심지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공적인 권력이 없어 보이는 여자여서.” 그럼에도 그 분노보다 스스로의 무지함에 대한 자책의 비중이 더 컸다. “당시 나는 사람들에게 ‘그를 어떻게 보자’고 말하는 것이 기록자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한다 또는 보지 말아야 한다고 답을 내리고 싶었다. ‘정당한’ 시선이라는 강반이 나를 조급하게 했고 가장 중요한 일을 잊게 했다. 저들은 나에게 보여지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때로는 나조차 ‘나답지 않은’ 노동을 하기도 했다. 상대(인터뷰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으로 비춰지고자 스스로 ‘무난한 여자/사람’을 연기한 적이 있었다. 처음 찾아간 농성장에서 중년 남성들이 나를 농담 삼아 ‘자신의 애인’으로 소개할 때, 나 역시 그들을 따라 웃었다. 내가 불쾌함을 표했을 때 싸해질 분위기가 인터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또한 진심으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돌아보니 그 노력은 너무 ‘여성적’이었다.” 자기 삶의 저자 내가 쓴 글에는 주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일하다 다치고 병든 사람들. 그들의 삶이 왜 ‘그렇게’ 변해야 했는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며 분노하곤 했다. “나는 선량한 얼굴로 찾아가서는 그들의 ‘변해버린 장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가 왜!’라고 할 때, 나 또한 ‘이 사람들이 왜!’라고 했다. ‘왜’가 해명되어도 그들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원래’란 무엇일까 싶다. 나는 그들의 후일을 염려했으나 정작 내가 그의 새로운 장르를 읽어나갈 ‘독자’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 그를 저자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일터에 건강한 몸으로 들어갔다 건강하지 않은 몸이 되어 나온 이들, 직업병을 인정받더라도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는 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나도 같은 마음으로 그 비극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삶을 계속해서 ‘비극’으로 써내려갔다. 나는 그것을 공감이라 여겼지만, 착각이었다. 나 자신이 아픈 몸의 권리를 직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면서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후를 걱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른 그 누구보다 내가 이들을 예외로 만든 건 아니었을까? “나의 인터뷰이들은 더는 내 앞에서 “내가 왜!”를 묻지 않았다. 살아 있는 순간을 살아가기에 바빴다. 세상이 직업도 없이 휠체어에만 앉아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집은 가족 간 권력 투쟁의 장이었고, 동시에 돌봄의 공간이었다. 병원이나 관공서를 오가는 좁은 행동반경에서도 무언가와 갈등하고 조율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환대를 받건 아니건 자신이 발 뻗을 장소, 그러니까 자기 영역 만들기는 그네들 인생에 걸쳐 부단히 이뤄지는 일이었다. 이것이 노동이 아니면 무엇이 노동일까.”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이의 달라진 몸 앞에서 나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의문을 가졌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와 나눈 한두 차례의 인터뷰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고 움직이고 관계 맺어온 시간 사이에 나와의 만남도 놓여 있을 뿐이다. 그 시간이 쌓여 삶이 되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가 되고 답이 된다.” 이 노동, ‘두 번째 글쓰기’를 놓지 않는 이유 누군가의 말을 글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막막함과 힘겨움을 견디고 계속 쓰는 까닭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건 결국 ‘애정’이다. “자신의 삶의 어떤 부분을 꺼내 내게 보여준 이”에 대한 애정. 애틋한 마음 끝에는 늘 인터뷰이가 들려준 말을 제대로 적고 싶다는 생각이 남는다. 때로 이것은 외사랑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파업에 동참하고 몇 년을 싸워 해고될 위기에 처한 이가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를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웃과 애틋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말한 이가 어느 날 외부에서 온 여성에 대한 비방과 가해를 멈추지 않을 때. 이럴 때 회의감에 빠진다. “식는 마음은 식는 대로 놔둔다. 쓰기 위해 사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하려고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쁜 것은, “서로 낯설어 말과 생각을 정제하는 것이 가능한 그 처음”에서 보지 못한 인터뷰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정갈하지 못한 삶을 좋아한다. 자신을 찾아온 이에게 고운 찻잔만 내어주며 초라한 세간살이를 숨길 수 없는 사람들. 애정하는 이유는 역시나 단 하나다. 나에게 자신의 말을 들려준 사람이라서. “그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을 듣기에, “삶에서 건져 올린 언어”가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여전히 나는 내가 기록하는 이들을 잘 모른다. 내가 기록한 어떤 이의 내면이 단단해지는지 무너져 내리는지 쉬이 알지 못한다. 다만 오늘도 누군가에게 다가갈 뿐이다. 당신과 내가 내일은 지금 이 자리에 머물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이것이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이유다.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노동을 좇아 쓰는 ‘두 번째 글쓰기’가 시작된다. <본문에서> 노동을 말할 때 노동에 관해서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몸에 대해 말하고, 힘에 대해 말하고, 권리와 존엄에 대해 말한다. 평등, 쓸모, 규범, 권력, 진실. 숱한 단어가 일하는 사람과 자신의 노동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우게 된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9쪽 평등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록자는 포기를 모르고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찾아간다. 사람이 서로 만나면 무언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작동이 관계가 되길 기대하며 타인을 만나러 간다. -37쪽 기록 작업을 하는 동안 인터뷰이는 나의 동료이자, 공동저자이며, 첫 번째 독자이다. 그에 따른 동등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76쪽 기록집을 내고 첫 번째 독자들에게 책이 전해지기까지 숨죽인 채 마음을 다잡는다. 일도 손에 안 잡힌다. 겁이 나지만, 그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들이 말해주길 바란다. 기록을 하는 까닭이, 그 목소리를 듣는 데 있으니까. 목소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니. 기록(노동)은 외로울지언정 함께하는 작업이다. -77쪽 기록을 할수록, 아니 세상을 살아갈수록, 다른 서사‘들’이 등장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을 선과 악, 행복과 불행, 피해와 가해,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짓는 간편한 이야기는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에 그늘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록’이라는 노동을 한다. -97쪽 투병과 죽음을 적지 않게 기록한 후에야 그날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사연을 나열한다고 그 삶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었다. ‘감춤’과 ‘말하지 않음’은 기록자가 갖춰야 할 예의였다. 그를 아끼는 자의 배려이고,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선별하는 것은 그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205쪽

저자 소개

  • 저자 : 희정
저자 :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저서로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룬 르포집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2011), 일하다 죽고 병드는 사회를 기록한 《노동자, 쓰러지다》(2014), 청구성심병원 이정미 노동열사 평전 《아름다운 한 생이다》(2016), 성소수자 노동에 대해 다룬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2019), 싸우는 사람들과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 우리, 함께》(2020)가 있다.
그 외 《밀양을 살다》(2014), 《섬과 섬을 잇다》(2014), 《기록되지 않은 노동》(2016), 《416 단원고 약전》(2016), 《재난을 묻다》(2017), 《회사가 사라졌다》(2020)를 함께 썼다.

책 속에서

 

 

목차

프롤로그 사라지는 조각들을 주워 담는 일 4

1부 기록, 서로 얽혀 빚어진 15

1. 취재 현장: 삶의 토막 하나를 건져 올려 17
2. 인터뷰: ‘물으러’ 온 사람이 아니다 32

2부 오늘, 인터뷰를 망치다 51

1. 외국어는 다 영어인 줄 알지 53
2. 내 이름은 글에 넣지 마세요 66
3. 트랜스젠더 처음 봐요? 78
4. 그런 말 불쾌합니다 86
5. 믿어져요? 100

3부 싸우는 여/성들 113

1. 싸우는 여자는 어디든 간다: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217일 파업 115
2. 우리 또 해고야:
네 번째 해고를 맞은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 130
3. ‘나 자신’으로 노동하기:
퀴어 세 사람과의 A/S 인터뷰 141
4. 다른 몸들, 장르가 바뀐 삶: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보고 159

4부 그럼에도 기록하기까지 173

1. 오늘이 제일 좋아, 제일 재밌어:
대학 청소 노동자 노조 설립 175
2. 몹시도 중요한 이야기: 회사가 사라진 사람들 187
3.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통을 적는 일의 역설 199
4. 노동 대신 죽음을 보다:
일하다 죽는 사람들, 그 후 이야기 213

에필로그 혼자 하는 사랑의 면모 233
후기 241
발표 지면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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