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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앤 카슨 저 | 황유원 역 | 난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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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859010 / 328쪽 130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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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따금씩 유리 위로 말言이 자취를 남기며 지나간다” 소리 내면에 담긴 작은 자서전의 기록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의 문을 여는 첫 작품이자 카슨의 ‘시그니처 포엠’으로도 불리는 「유리 에세이」는 상실과 고독,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에 대한 한 편의 시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이 시에서 카슨은 화자의 아픈 실연의 기억과 에밀리 브론테의 삶을 교차시킨다. 가이 대븐포트는 발문에서 “진실함, 그리고 진술이 지닌 감수성”을 「유리 에세이」가 가진 울림의 근원으로 꼽는데, 그 진실함은 시 속에서 “누드”의 형체로 나타나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매일 아침 내게 환영이 하나씩 찾아왔다. / 나는 언뜻 보이는 이것들이 내 영혼의 벌거벗은 모습이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 나는 그것들을 누드라고 불렀다. / 누드 #1. 언덕 위에 홀로 있는 여자. / 그녀는 바람을 향해 서 있다. // (……) 신경과 피와 근육이 모두 드러난 기둥 하나만이 남아 / 입술 없는 입으로 무언의 외침을 내뱉고 있다. // 이것을 기록하고 있자니 고통이 밀려온다,”  “거친 작업장에서 깎아 만든” “영혼의 벌거벗은 모습”이 내뱉는 “무언의 외침”은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의 마지막에 실린 에세이 「소리의 성별」에서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 제각각의 형식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이 결국 끝에서 맞닿으며 하나의 완전한 원을 이루는 셈이다.  「소리의 성별」에서 앤 카슨은 고전학자인 여성 시인이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에세이를 쓰면 어떤 작품이 탄생하는지를 보란 듯이 보여준다. 그는 그리스신화와 문학, 종교의식에 나타나는 여성적 “비명”, 혹은 “올롤뤼가스”에 대한 문화적 불안의 흔적을 추적하며 여성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소개한다. 카슨이 여기서 언급하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고대의 것이지만 그가 던지는 ‘억압과 자제 외에 다른 인간적 덕목의 개념은 없는가’라는 질문은 현재까지도 답하지 않으면 안 될 물음으로 남아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허락된 목소리인 “소프로쉬네”와 ‘감정에 휘둘리고 이성적인 자제력이 부족하다’며 침묵을 강요받아온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 논한 그는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는 작은 자서전이다. 소리의 내면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는 궤적은 공적이다”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이는 카슨이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이후로 발표한 작품 전반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의 허리 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일련의 아이러니이다. 「신에 관한 진실」에서 시인은 ‘종교는 말도 안 되고 도움도 안 되지만 그렇기에 그것을 따른다’라는 아이러니를 우리 앞에 툭 떨궈놓는다.  신이라는 존재는 뒤에 등장하는 시 「이사야서」에서도 주된 역할을 맡는다. 「이사야서」에서 카슨은 구약성서적인 사고방식과 서술 방식을 재현하면서도 이를 인간적이고 재치 있게 풀어내고, 더 나아가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온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직시한다(“이사야여 그대는 여자에 대해 뭘 알고 있는가? 신이 물었다. / 이사야의 콧구멍 아래에서 여자와 관련된 단어들이 뿜어져 나왔다: / 홍조. 악취. 마누라. 무화과. 마녀―”). 신, 남자, 여자로 분리되어 있던 구약성서 속 세계는 이사야의 몸이 “작은 새들과 동물들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몸으로 변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구약의 대예언자 이사야가 ‘정의로움’을 뜻하는 두 고대 히브리어 단어 가운데 남성형 단어뿐만 아니라 여성형 단어까지 익히게 되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오크나무를 둘로 쪼개는 정의의 날벼락”으로서의 남성형 단어 ‘정의로움’뿐 아니라 “목재의 텅 빈 근육 안에 버섯과 구더기와 원숭이 들이 / 터전을 잡는” 여성형 단어 ‘정의로움’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앞의 시「유리 에세이」에서 화자와 결별한 남성의 이름이 ‘정의로움’과 연결되는 ‘Law’, 즉 법이었다는 사실도 이 작품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다. 가장 고대적인 것에서 탄생한 가장 현대적인 문학 감정으로 써내려간 정교한 방정식  「TV 인간」에서 카슨은 고대 서사시 『일리아스』 속 영웅 헥토르와 잔혹극의 대가 아르토,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리스 시인 사포를 현대 TV 프로그램의 촬영장으로 소환한다. 역사적 인물을 그의 시대문화적 배경과 분리하는 것은 그를 정의하던 고정된 틀을 깨부수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앤 카슨의 시는 ‘제일 오래되었으면서도 제일 새로운 모더니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TV 인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룬 업적과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은 그들이 카슨의 시 속에서 갖게 된 새 정체성과 독특한 화음을 이루며 다층적인 의미와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다층적 내러티브는 「로마의 몰락: 여행자 가이드」에서도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이 시는 로마를 여행하는 한 관광객의 일지로 보이지만, 중간중간 화자와 로마 사람 ‘안나 크세니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며 이방인과 시민의 구분은 어디에서 오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앤 카슨은 감정으로 일종의 수학을 하듯 대담한 방정식, 순환하는 이미지의 집합과 부분집합으로 글을 쓴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은 그 대담함과 자유로움에 더해 주제적 예리함과 형식적 정교함까지 갖추고 있다. 앤 카슨은 자칫 현학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지적인 주제에 감각적인 서사를 더하여 결국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아주 깊숙이, 그것도 더없이 ‘시적으로’ 파고든다. 이번 책에서는 이러한 작품의 매력이 한국 독자에게도 최대한 전달될 수 있게끔, 함께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사실을 각주로 달아놓았다. 많은 독자에게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이 앤 카슨 작품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값진 만남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은 “거친 작업장에서 깎아 만든” 하나의 ‘유리 조각’이다. 그것은 거대한 슬픔과 빛의 덩어리로,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모두가 유리의 대기 속으로 끌려내려가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고, 어쩔 수 없이 “이따금씩 유리 위로 말(言)이 자취를 남기며 지나간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 속에서> 가파른 하늘 아래로 뜨겁고 푸른 달빛이 비친다. 나는 목매달린 강아지들의 지하실에서 너무 일찍 깨어나 시선을 어둠 속에 담근다. 더듬거리며 천천히 철창이 있던 자리에 의식이 되돌아온다. 꿈의 앙금들과 성난 액체들이 나의 한복판으로 다시 헤엄쳐온다. 이제 나의 밤을 채우는 것은 대개 성난 꿈들이다. 실연 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다― 푸르고 검고 붉은 무언가가 분화구를 폭발시킨다. 나는 분노에 관심이 있다. 나는 그 근원을 찾아 기어오른다. _「유리 에세이」중 신 스스로의 평온함은 신의 표식이다. 감자나 돈의 놀랍도록 차가운 냄새. 침묵의 견고한 조각들. 이 다양한 표식들로부터 당신은 할일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슬픔은 걷어버려라, 그것은 할일을 가리고 있는 덮개다. _「신에 관한 진실」중 (……) 밤이 잠든 사람 위로 무릎을 꿇는다. 그의 여행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어디까지 태워버릴 것인가? 그리고 이제 그는 무엇을 위해 헤엄치는가. 헤엄쳐라, 잠든 사람이여, 헤엄쳐. (……) 그대는 한때 가장 은밀한 예감 속으로 뛰어들어 그곳에 머물렀다, 검은 외투를 걸친 채 고개를 숙이고. 놀랍게도. 밤의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들처럼, 그대 안에 영원이 흐른다. 이곳에 살기 위해선 누구나 많은 걸 잊어야만 한다. _「TV 인간」중 낮의 지배자master가 안나 크세니아인 것처럼 밤의 지배자는 두려움이다. 나는 자리를 잡는다. 그것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문 아래로, 잠 아래로 스며들어, 침대를, 복도를 가득 채우고, 그것은 몸을 일으켜 입구Entrata와 출구Uscita를 뒤덮으니, 나갈 곳도 없고, 들어올 곳도 없어, 이방인은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잠을 잔다. 로마인들은 이방인을 증오한다. _「로마의 몰락: 여행자 가이드」중 여전히 어떤 밤은 그의 꿈속에 젖의 강을 흘려보냈다. 은빛 강, 연민의 강. 그는 잠을 잤고, 정원의 과꽃들은 어둠 속으로 붉은 천둥을 풀어놓았다. _「이사야서」중 때로 나는 그리스 문헌을 읽을 때 심지어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도 모두 사전에서 찾아보려고 애쓴다. 그러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단어들은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른 뉘앙스를 지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때로 그 단어들의 다른 뉘앙스는 그런 줄 몰랐더라면 던지지 않았을 질문들을 던지게 만든다. 최근에 나는 그리스어 단어 소프로쉬네를 질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나는 이 자제의 개념을 궁금하게 여기고, 이 개념이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대로 정말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대부분의 의문과 문명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인지를 궁금하게 여긴다. 나는 억압 외에 다른 인간적 질서의 관념, 자제 외에 다른 인간적 덕목의 개념, 내부와 외부의 분리에 기초한 인간적 자아 외에 또다른 인간적 자아는 없을지를 궁금하게 여긴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아 외에 또다른 인간적 본질은 없을지를. _「소리의 성별」중

저자 소개

  • 저자 : 앤 카슨
저자 : 앤 카슨 Anne Carson
1950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시인, 에세이스트, 번역가이자 고전학자이다. ‘생업으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친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가 오늘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시를 쓰는 진정한 시인”라는 찬사를 받으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게 된 데에는 번역, 시,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창작 경험과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한몫한다. 여기에 짙게 묻어나는 고대문학의 영향은 특히 카슨의 작품에 신비감과 깊은 철학을 더한다.
고대문학이라 해서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형식의 글만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언어와 신화의 끝없는 변형을 실험하는 앤 카슨은 고대에 담긴 날것 그대로의 사랑, 욕망, 그리고 절망의 감정을 가져와 현대의 언어로 버무린다. 고대의 목소리를 소환해 현대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그의 시는 내밀한 감정의 고백이면서 신화적 서사이기도 하다.
고대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1950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카슨은 아버지가 지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이었던 까닭에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잦은 전학으로 누구와도 긴 교우관계를 가질 수 없던 탓에 책으로 외로움을 달래던 어린 카슨은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윌리스 반스톤 번역의 『사포 시선집』에 마음을 빼앗겼다. 책에 실린 그리스어 원문은 “오스카 와일드처럼 지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던 그에게 최고의 언어처럼 여겨졌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선생님이 점심시간마다 틈틈이 가르쳐준 고대 그리스어로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 사포,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등 수천 년 전 시인들을 벗으로 삼게 된 카슨은 토론토 대학에 진학해 고대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프린스턴, 맥길, 코넬 등 여러 대학에서 고대문학을 가르치는 학자가 되었다.
그가 낸 첫 저서는 박사 논문으로 제출했던 원고를 다듬어 만든 에세이, 『달콤씁쓸한 에로스(Eros the Bittersweet: An Essay)』(1986)였다. 6년 뒤 출간한 『짧은 이야기들』(1992)과 뒤이은 시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은 그가 시인으로서 내디딘 첫걸음이자 현대시의 영역에서 그의 입지를 다져준 계기가 되었다. 그뒤로도 카슨은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가며 고대 여류 서정시인 사포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이라 불리는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을 자신의 목소리로 재해석한 번역을 선보이는가 하면, 한국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빨강의 자서전』(1998) 『남편의 아름다움: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2001) 『레드 닥>』(2013)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시, 산문, 소설 등 장르의 구분마저 무색하게 하는 종횡무진의 행보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개척해온 앤 카슨은 단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카슨은 1996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으로 A.M. 클라인 상을 받았다. 그 외 작품으로도 맥아더 펠로우십, 구겐하임 펠로우십, 그리핀시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 T. S. 엘리엇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안기도 했다. 2020년에는 “고전 연구로 혁신적인 시학을 구축하고 현시대를 인식하도록 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공상을 수상했다.


역자 : 황유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세상의 모든 최대화』『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옮긴 책으로 『모비 딕』『시인 X』『올 댓 맨 이즈』『슬픔은 날개 달린 것』『래니』『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공역) 『밤의 해변에서 혼자』『예언자』『소설의 기술』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유리 에세이 / 9
신에 관한 진실 / 97
TV 인간 / 131
로마의 몰락: 여행자 가이드 / 169
이사야서 / 233
소리의 성별 / 259
발문_한결같이 기억할 만한 시를 쓰는―가이 대븐포트 / 307
옮긴이의 말_슬픔과 빛으로 만든 유리 조각 /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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