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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저 | 아작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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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686214 / 356쪽 137 x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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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비록 우리의 싸움이 매번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정보라 작가의 인사말은 “투쟁”이다.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채팅창에서 작별인사를 할 때도 투쟁으로 시작해 투쟁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싸움은 집회 현장과 지면 그리고 삶 속에서 항상 현재진행형이었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러하다. 그런 그의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다. 제목은 《그녀를 만나다》이다. 이번 책에서도 그 특유의, 투쟁의 에너지는 여전히 넘쳐흐른다. 다만 그 싸움의 방식이 예전보다 더 정제되고 노련해졌을 뿐.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식이 아니라, 투쟁에 앞서 동지를 찾고 결의를 맺으며 전선을 구축한 뒤 집요하게 승리를 추구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비록 그 싸움이 매번 승리로 끝나지는 않을지라도, 싸움에 임하는 전략은 크게 바뀐 셈이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그의 예전 단편집, 《저주토끼》를 좋아한다. 그 책의 저자후기에서, 정보라 작가는 자신의 단편집에 대해 “출판사에서는 불의가 만연한 지금 같은 시대에 부당한 일을 당한 약한 사람(들)을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이 단편집을 내기로 했다”지만, 작가 자신은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저주토끼》에는 세상의 불의에 분노한 나머지 결연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라도 의로운 일을 행하고자 하는 협객의 풍모가 담겼다고 할 수 있겠다.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자신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든 일절 상관하지 않고 일단 처 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고 보는 그런 패기라고나 할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이지만,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누군가에게는 그보다 더 큰 위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 위로가 고마웠다. 반면 이 책, 《그녀를 만나다》에서 정보라 작가는 《저주토끼》를 썼을 때와는 달리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연대는 무기력한 관성으로 유지되거나 볼썽사나운 실패로 마무리되기도 하며 가슴 아픈 이별로 끝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연대는 연대다. 서로 동떨어진 누군가가 상대방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것을 넘어, 직간접적으로 얽히고설키며 함께 전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록작 중 이런 경향성이 크게 나타나는 작품으로는 <영생불사연구소>와 <아주 보통의 결혼> 그리고 <씨앗>을 꼽을 수 있겠다. <영생불사연구소>는 불로장생과 영생불사의 차이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는 연구소에서 펼쳐지는 일상담이다. 허례허식으로 가득 찼지만 (아주 약간이지만) 좋은 의미로든, (대부분의 경우처럼) 나쁜 의미로든 가족과도 같은 단체이지만, 그 안의 관계에서 누군가는 위안을 찾고 누군가는 슬픔을 느낀다. <아주 보통의 결혼>은 아내가 자신 몰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진상을 쫓으며 시작되는 스릴러다. 그 추적의 과정 끝에 주인공이 발견하게 되는 진실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나, 이는 또 담담하게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연결되기도 한다. <씨앗>은 다국적 생명공학기업 모셴닉의 정장 인형들이 나무와 공생하는 인간들과 이권 문제로 충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동화 같기도 하고, 선언문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일시적인 패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나갈 투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다른 많은 작품들은 크고 작으나마 연대의 이야기를, 관계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저주토끼》가 의로운 지사의 불꽃처럼 살다가 끝나버린 짧은 일생과도 같은 이미지였다면 《그녀를 만나다》는 숱한 패배와 후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승리를 향해 이를 갈고 있는, 단련되고 영민한 활동가의 술회와 같은 이미지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연함은 의연함이 되었고 위안은 결의로 바뀌었다. 《저주토끼》가 미로에 갇힌 한 개인의 저돌적인 포효였다면, 《그녀를 만나다》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투쟁가다. 그렇다고 정보라 작가의 변화가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투쟁 현장에서 극적인 장면만 편집해서 승리와 패배의 서사시를 그려내는 방식은 정보라 작가의 작업과는 궤가 다르다. 그보다는 싸움이 일상화된 활동가들의 하루하루를 때로는 담담히, 때로는 격렬하게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앞서 정리한 내용을 반복해 말하자면, 이 과정에는 지루함도, 쓰라린 패배도, 내일을 기약하는 투지도 다 담겨있다. 투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마지막으로 당부하건대, 위의 서술로 인해 정보라 작가 특유의 그 에너지가 위축되었다고 여기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투쟁의 방법론이 바뀌었을 뿐, 정보라 작가는 한결같이 위를 바라본 채 아래를 포용하며 앞을 향해 전진하는 추진력을 간직하고 있다. 아니, 그 힘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력하고 더 능수능란해진 것이 아닌가 놀랄 정도다. 《그녀를 만나다》는 아주 새로운 정보라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 언제나 항상 그래왔던 정보라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신기하면서도 고맙고 또 반가울 따름이다. ― 홍지운, 소설가 <책 속에서> 첫문장 \t“나, 아무래도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 - <영생불사연구소> P. 10\t\t우리 연구소가 뭐 하는 곳이냐 하면 제목에 쓴 그대로 영생불사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한일강제병합 얼마 후인 1912년에 “나라가 망해도 우리만은 영생불사”라는, 일말의 진실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유치찬란해 보이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설립되어 올해 98주년을 맞이한 관계로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게 되었다. - <영생불사연구소> P. 51\t\t세상엔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사람들은 자기들 관점에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을 고려해서 합산하면 세상의 이상한 사람 숫자는 대략 그만큼 더 불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똑같다. 세상에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 <그녀를 만나다> P. 59\t\t내가 기억하는 기계는 사람을 죽였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멀쩡한 청년이 죽었고 크레인이 무너져서 밑에 있던 사람을 깔아 죽였고 혼자 운행하던 지하철이 광고판 고치던 사람을 치어 죽였고 배가 가라앉고 독극물을 뿜어내고 치고 떨어뜨리고 밀어내면서 장비는, 기계는, 기계로 가득한 생산설비는, 공장은, 작업장은, 일터는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 <그녀를 만나다> P. 64\t\t나도 절대 잊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잊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동지들의 모습이, 마음에 불로 새겨진 줄 알았던 그 소중한 이름들이 세월 속에 희미하게 바래다가 사라졌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 <그녀를 만나다> P. 78\t\t인간은 타인이 자신을 볼 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 자신이 되돌아보는 자신의 모습에 맞추어 자신을 계속해서 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시선 안에는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타인이 나를 볼 것이라고 상정하는 시선들이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 <그녀를 만나다> P. 98\t\t그리하여 전 인류가 서로서로 잡아먹는 상황이 실제로 펼쳐졌다. 좀비 영화에서 흔히 보듯이 반쯤 썩은 시체들이 되살아나 알 수 없는 비명 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떼 지어 걸어 다녔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겉보기에 멀쩡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예의 바르게 대화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다가 갑자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혹은 사람들의 두개골을 부수고 시체를 토막 내 도시락처럼 싸 가지고 다니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라도 먹듯이 꺼내 들고 햇볕과 잔디를 감상하면서 평화롭게 뜯어 먹는 광경이 일상이 되었다. - <여행의 끝> P. 143\t감염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인간을 먹잇감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음식은 내가 먹거나 혹은 언젠가 먹기 위해서 소지하는 대상이지 동료가 아니다. 음식과 합심해서 함께 어떤 상황을 헤쳐 나간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다. - <여행의 끝> P. 179\t아내는 외국인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일까. 어디서 어떻게 만난 사람일까.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으나 아내가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은 매우 빠르고 능숙하게 들렸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일까. 결혼하기 전부터 이어져 온 관계일까? - <아주 보통의 결혼> P. 241\t“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종교를 믿지 않는 나로서는 마지막의 ‘아멘’만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없었다. 신이 남성이라면, 여성이 느끼는 일상적 위협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P. 247\t인간들이 이 행성을 버리고 떠난 뒤로 314나 나와 같은 기계만 남았다. 인간들은 발전기를 분해해서 가지고 떠났다. 충전이 필요한 기계들은 하나씩 방전되어 쓰러지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나와 같은 기계들만 살아남았다. - <너의 유토피아> P. 308\t그녀는 손가락에 닿았던 벽의 감촉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흘린 음료수를 닦을 때 손수건을 통해 전해지던 하얀 바닥의 감촉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함께 들었던 그녀의 음악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이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계속 작동하는 한, 언제나. - P. 310\t인간의 유한함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 어째서입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물의 둥지가 대답했다. ― 인간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P. 343\t하나만 있으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 하나를 위해서, 우리는 기다린다. 지평선 너머에서 더럽고 거대한 기계의 날갯소리 대신 꽃가루가 날아오는 날을. 바람을 타고 우리가 뿌린 씨앗이 춤추며 돌아오는 날을. - <씨앗>

저자 소개

  • 저자 : 정보라
정보라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일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과 SF에 대해 강의하며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권 문학작품들을 번역하고 데모를 열심히 하고 있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들,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붉은 칼》, 《죽은 자의 꿈》, 《문이 열렸다》, 소설집 《저주토끼》, 《왕의 창녀》, 《씨앗》 등이 있고, 《안드로메다 성운》,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스타니스와프 렘》, 《거장과 마르가리타》, 《브루노 슐츠 작품집》 등 많은 책을 옮겼다.

목차

영생불사연구소_7
그녀를 만나다_49
여행의 끝_89
아주 보통의 결혼_161
Maria, Gratia Plena?_195
너의 유토피아_243
One More Kiss, Dear??_281
씨앗_313

? 작가의 말_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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