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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스타일: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우는 사유와 삶의 혁명

김용규 저 | 김영사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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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85037 / 560쪽 145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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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생각의 시대》 7년 만의 후속작! 이성의 시대의 문을 연 소크라테스를 만난다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로도 불리는 인문학자 김용규는 사유방식이 사유를 바꾸고, 사유가 삶을 바꾸고, 삶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며, 인류문명을 깎고 다듬어온 사유방식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생각의 시대’-‘이성의 시대’-‘융합의 시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서양사유사 3부작’의 첫 책으로 2014년에 《생각의 시대》를 냈다. 급변하는 정보혁명의 시대, 어떻게 하면 단순한 정보의 수집자나 수용자로 전락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시각과 판단력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각법을 정리해, 학교와 기업 등 문제해결력과 창의적 사고법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장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후 7년 만에 내놓는 후속작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이성의 시대’ 연작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혁명적인 사유와 삶의 방식을 조명하고, 그것이 지난 2,400년 동안 인류문명 각 방면에서 일으킨 영향을 낱낱이 소개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이에 관한 논문 말고 소크라테스를 다룬 묵직한 인문교양서로서는 보기 드문 저작이자, 국내 저자가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정리한 서양사유사라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깜깜한 어둠, 정신의 괴물 상태에 빠진 세계 소크라테스는 ‘빼기’라는 독특한 사유방식과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본질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해 부수적인 것을 ‘제거’하고, ‘부정’하고, ‘배제’하는 빼기가 바로 ‘소크라테스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왜 빼기가 필요했을까? 당시 그리스에서는 ‘소피스트 운동’으로 불리는 서양 최초의 계몽운동이 일어났고, 이른바 ‘페리클레스 시대’를 거치며 민주주의가 폭죽처럼 솟아올랐으며,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합의를 위한 대화, 수사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이성’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당시 아네네에서는 거짓말쟁이와 개소리꾼들이 득세하고, 시민들은 사실보다 사실임직함에 귀를 귀울였다.(12쪽) ‘개소리(bullshit)’,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진실스러움(truthiness)’ 같은 말이 낯설지 않은 상황, 진실을 탐색하기보다는 그저 우기면 된다, 다수가 믿으면 그게 참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지금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빼기라는 사유방식을 통해 이성이라는 인간 정신의 원형 하나를 깎아 만들었으며, 또한 빼기라는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 신화 속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처럼 오염된 삶을 청소했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의 정신이 얼마나 깜깜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는가를 먼저 파악하고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시 아테네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아고라에서, 김나지온에서, 뤼케이온에서, 게다가 법정에서까지, 문법도 없는 말로 서로 다투고, 논리도 없는 논변으로 논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장황하고 번지르르하게 떠벌리고 다녀도 억견과 궤변만 늘어날 뿐, 자신들이 원하는 진리와 정의는 찾을 길이 없었고, 아테네의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는 진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직 부릅뜬 눈으로 밤을 새우던 파수꾼 소크라테스만이 그들의 깊은 잠을 두드려 깨우려고 동분서주 애썼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250-251쪽)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오해했다 이 책에서 독자는 흔히 알려진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의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관심사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긴 도덕철학자 정도가 아니라, 혁명적인 사유 방식과 삶의 방식을 제시한 인물이었다. 소피스트들이 당시 유행하던 ‘이중논변’이라는 수사법을 악용하며 사회를 상대주의의 혼란으로 몰아넣으며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다가 마침내 죽임 당한 인물, 목숨을 걸고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는 ‘파레시아스트’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산파술’로 보는 시각도 플라톤 대화편의 해당 부분을 짚어가며 조목조목 비판한다. ‘논박술’을 ‘산파술’로 보는 것은 플라톤이 만들어낸 왜곡이자 신화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은 어떤 경우에도 새로운 지식의 산출을 돕는 역할은 하지 못하며 제거의 역할만을 할 뿐인데, 저자에 따르면 이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태까지 이야기해온 소크라테스와는 전혀 다른 소크라테스를 만난다. 그는 단순한 소피스트가 아니라 푸코가 규정한 파레시아스트였다. 그렇다. 그동안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한 면만을 보고 다른 한 면을 보지 못했다. 겉으로 나타난 소피스트만 보고 속에 들어 있는 파레시아스트는 보지 못했다. 그의 사유와 삶이 지닌 개인적인 계기만 보고 사회적 동기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듣고 자기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것을 확인하러 다니는 소크라테스만 보았다. 그래서 진리와 정의를 탐색하여 시민의 아름다운 삶과 도시국가의 안녕과 번영에 기여하려는 소크라테스는 보지 못했다. 아테네 사람들의 정신 속에 있는 억견과 궤변이라는 양쪽 벽을 깨부수고, 알페이오스 강물을 끌어다 페네이오스강으로 흐르게 하여 악취와 오물이 넘치는 그들의 삶과 도시국가를 구석구석 청소하려는 소크라테스는 보지 못했다. 그는 청소부였다. 인간의 사유와 삶과 사회에서 악취와 오물을 제거하려는 위대한 청소부였다. 헤라클레스 같은 청소부였다.(261-262쪽) 소크라테스의 ‘빼기’란 무엇인가 책은 먼저 소크라테스가 개발한 사유와 삶의 방식인 ‘빼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것이 서양문명의 두 기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속으로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추적해간다. 석공의 아들이었던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아버지가 돌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함으로써 그 안에서 원하는 형상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같은 방법을 그는 사유와 삶에 적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상대의 주장에서 모순을 이끌어내 반박하는 논박술(엘렝코스)이 바로 그것인데, 책에서는 당시의 지적 상황에서 이것이 얼마나 혁신적인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성의 탄생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많은 곳은 어디든 찾아가 붙들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무지를 깨우쳤다. 바로 이때 그의 대화 상대자는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에 걸려들어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은 모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는 논박술이 무적의 도구 이유(다시 말해 소크라테스가 마치 파리지옥처럼 대화 상대자를 그의 대화에 걸려들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결국 항상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까닭), 그것이 지닌 긍정적인 효과(논의 대상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점), 아울러 논박술의 아킬레우스건(어떤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언제나 실패한다는 점, 즉 새로운 것을 산출해내지 못한다는 점) 등, 논박술의 성격과 장단점을 상세히 소개한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의 두 가지 흐름 부수적인 것을 쪼아내 제거하는 소크라테스의 ‘빼기’, 즉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소크라테스 사후 두 가지 방식으로 제자들에게 계승된다. 먼저 ‘삶의 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을 이어가면서 도덕론 혹은 윤리학에 천착한 무리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를 창설한 안티스테네스와 그의 제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다.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인 절제, 인내, 자족, 무욕과 같은 미덕을 실천하고자 노력했고, 이후 이것은 키프로스의 제논이 만든 스토아학파로 이어졌다. 사유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라 할 논박술은 (산파술로 탈바꿈되긴 했으나) 플라톤에게 계승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로 이어졌으며, 초기 기독교(동방정교)의 ‘부정신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늘의 형이상학과 논리학은 이렇게 사유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에 빚지고 있다.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를 찾아서 “돌아보면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는 지난 2,400년 동안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이 있는 곳마다, 오물이 쌓여 악취와 역병이 돌 때마다 나타났다.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쌓인 오물과 도는 역병에 따라 나타난 양상은 달랐지만, 그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그 결과 이 책에서 ‘빼기’, ‘제거하기’, ‘부정하기’, ‘배제하기’ 등으로 규정한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서양문명을 깎아 다듬어온 생각의 기술일 뿐 아니라, 시대적 징후를 읽어내는 하나의 코드code가 되었다. 그 기술이 만들어낸 현상, 그 코드들이 드러내 보이는 증상, 모두를 싸잡아 나는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라 부른다. 그 가운데는 소크라테스에게 직접 영향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266쪽) 책의 후반부에서는 그의 사유와 삶의 방식이 서양문명에 깊숙이 남긴 자국, 즉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를 추적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견유학파의 대표적 인물 디오게네스, 절제의 모범을 보인 스토아철학자 세네카, ‘황야의 별’로 불리던 은둔수도사 성 안토니우스와 주상고행자 성 시므온, 그리고 대표적인 부정신학자 위-디오니시우스 등이 있다. 미켈란젤로와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처럼 끊임없이 ‘제거의 길’을 걸었던 화가들과 쇤베르크 같은 음악가도 호명된다. 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에서, 바디우와 지젝의 혁명을 위한 ‘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불복종’, 스티브 잡스의 ‘심플’에 이르기까지 실로 여러 방면에서 나타난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를 소개한다. 이 중에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고 ‘거리의 소크라테스’로 불리기도 했던 키르케고르처럼 소크라테스의 방식을 의식적으로 계승한 이들도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에서 보듯, 직접적 영향은 없었을지라도 빼기의 정신으로 그 시대의 문제를 돌파하며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연 인물들도 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는 역사 속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부단히 영향을 미쳐왔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이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과거’와 ‘이미 와 있는 미래’가 구동하는 시간기획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지금 여기에’ 화급히 불러내야 한다. 그것은 재앙을 ‘다가올 미래’로 판단하고 ‘지나간 과거’를 불러들여 뭔가를 배움으로써 낙관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예방책이 아니다. 오히려 재앙을 ‘이미 와 있는 미래’로 판단하고 ‘아직 오지 않은 과거’를 불러들여 뭔가를 행동함으로써, 비관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비상수단이다.“(529쪽) 2,400년이나 된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로 저자는 크게 세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20세기 후반부터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와 더불어 날조된 지식과 가짜뉴스, 헛소리와 개소리들 때문에 우리 정신이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이 된 것, 20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 후기자본주의의 실천이데올로기인 소비물질주의로 우리의 삶과 사회에 악취와 역병이 돌게 된 것, 우리의 삶의 방식 때문에 파괴된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이 그것이다.(267-268쪽) 지금 우리가 그 위험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있는 팬데믹,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크라테스 스타일을 받아들여, 우리의 사유와 삶에서 당장 빼기를 실천해야만 함을 역설한다.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인 시기인 것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우리의 사유에서 모든 억견과 편견 그리고 개소리들을 제거하고, 우리의 삶에서 모든 부당하고 부차적인 것들을 빼냄으로써 사유와 삶의 본질에 도달하는 여정에 함께 나서며, 마침내 우리 자신과 세상을 바꾸기를“, 그러한 ”사유와 삶의 혁명“을 감행하기를 기대한다. <책 속에서> 이 말은 이성에는 칼과 정이 들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칼이 A와 ~A, 곧, 형상과 형상이 아닌 것,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 정의와 정의가 아닌 것을 날카롭게 가른다. 그리고 그 정이 형상이 아닌 것, 본질이 아닌 것, 진리가 아닌 것, 정의가 아닌 것을 사정없이 쪼아내 제거한다. 요컨대 파르메니데스와 제논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이성은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이라는 가르는 칼과, ‘반론’ 또는 ‘논박’이라는 정을 갖추게 되었고, 그것들의 조합인 이치논리학을 통해 지난 2,400년 동안―마치 석공이 돌을 다루듯이―진리와 정의, 세상과 문명을 깎고 다듬어 만들어왔다. _44쪽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플라톤에게 포도주와 말린 무화과를 나눠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플라톤이 술통을 통째로 보내주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그대는 2 더하기 2는 20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와 마찬가지로 그대는 소망한 것만큼 줄 줄도 모르는가 하면, 묻는 것에 대해 제대로 답할 줄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그 말을 들은 플라톤은 “거침없이 지껄이는 자”라고 응수했다.(《그리스 철학자 열전》, 6.2.26) 또 한번은 디오게네스가 거리에서 마른 무화과를 먹고 있을 때, 플라톤을 만나자 “당신에게도 나눠주겠소”라고 말했다. 플라톤이 흔쾌히 집어 먹자, “나눠주겠다고 했지 다 먹으라고는 하지 않았소”라고 조롱했다.(《그리스 철학자 열전》, 6.2.25) 이처럼 그들은 서로 아옹다옹하며 대립했지만, 양측 모두 소크라테스 스타일을 계승했고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미화, 과장, 왜곡했다. _55쪽 그렇다면 왜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박술을 산파술로 알아왔고, 전문가들도 그 둘을 딱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해왔을까? 알고 보면 그 같은 오해와 혼란은 전적으로 플라톤의 탓이다. 그가 대화편 곳곳에서 논박술이 산파술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기 때문인데, 그 대표적인 곳이 《테아이테토스》다. _61쪽 흑백논리로도 불리는 이치논리에는 칼과 정이 들어 있다. 그 칼이 A와 ~A, 곧 형상과 형상이 아닌 것,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 정의와 정의가 아닌 것을 날카롭게 가른다. 그리고 그 정이 형상이 아닌 것, 본질이 아닌 것, 진리가 아닌 것, 정의가 아닌 것을 사정없이 쪼아내 제거한다. 이것이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이 제시했고, 소크라테스를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로 전승된 이치논리가 지닌 강점이자 이성의 특성이다. 그것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문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야만도 만들어졌다. 그 안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_153쪽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보편적 진리와 정의에는 무관심한 채 단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전개하는 반론술과 논쟁술을 구사하는 당시 소피스트들이 범하는 잘못을 잘 알고 있었고 부단히 그것을 비난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사유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자기 자신의 주장도 없이 오직 논박만으로 ‘보편적 정의’에 도달하고자 하는 논박술이다. _187쪽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생의 어떤 시점에서 분명 달라졌다. 그가 결혼을 하고 석공 일을 그만둔 50세쯤이리라 생각되는데, 물론 그렇다 해서 전부 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보통의 경우, 사람이 어느 시점에 갑자기 전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사유하는 방법과 하는 일에서는 언젠가부터 전적으로 달라졌다. 그리고 그 달라진 소크라테스가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우리에게 전한 소크라테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_200쪽 지난 2,400년 동안 이어온 철학의 속성이자 사명 가운데 위대한 하나가 비판하기, 편견·억견·궤변 제거하기, 깨부수기, 빼기인 것이 그로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예컨대 칸트는 그의 철학적 방법인 비판Kritik이 “진리를 발견하는 대신 오류를 막는”(《순수이성비판》, A795) 일을 한다고 천명함으로써 그 전통을 이었다. 이른바 사유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다. 우리는 이 유구한 사유방식의 계보에 대해 그동안 눈감아왔다. 또 지난 2,000년 동안 이어온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전통 가운데 하나가 세속적인 것들과 이별하기, 그것들을 자신의 영혼과 삶에서 빼기, 제거하기, 부정하기인 것이 보통 스토아 철학이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본디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 윤리학이 절제, 인내, 경건, 무욕 등을 미덕으로 교훈함으로써 이 전통을 이었다. 이른바 삶의 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다. 우리는 이 거대한 윤리적 전통의 계보에 대해 그동안 입을 봉해왔다. 한마디로, 우리의 사유와 삶과 사회에서 오물들을 제거하려는 그 소크라테스 때문에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이성이라는 인간 정신기능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서구문명을, 나아가 인류문명을 구축하는 데 이바지해왔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다. _263-263쪽 그러나 세네카와 리카르에게는 그보다 나은 처방이 있다. ‘쾌락이 아니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네카가 교훈한 ‘절제에서 오는 자족’, 리카르가 권하는 ‘집착을 버린 내적 자유’에서 나온다.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내린 처방은 개인적 차원에서 ‘제 그림자 따라잡기’와 같은 헛된 욕망을 포기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늑대의 칼날 핥기와 같은 자본주의의 전략에서 탈출하게 하는 최상의 백신이자 치료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욕망을 억제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행복해야 욕망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_300-310쪽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반성이,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뉘우침이 우리의 삶을 비로소 ‘의미 있게’ 한다. 우리를 마침내 ‘실존하게’ 한다. 키르케고르에게서나, 하이데거, 사르트르, 카뮈, 마르셀, 베르댜예프와 같은 20세기 실존주의자들에게서나 실존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의미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우리에게 “절망하라. 그러면 그대 속에 깃들인 경솔한 마음이 그대로 하여금 요동치는 정신처럼 그리고 망령처럼, 그대에게는 이미 상실된 세계의 폐허 속에서 헤매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할 것이다”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대의 해방된 정신은 자유의 세계로 날개 치며 솟아오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_363쪽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언어가 만들어낸 숱한 허위의식에서 빠져나와 삶의 본질을 되찾게 하기 위해 부단히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윤리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오직 침묵하면서 단지 보여주었다. 사실은 이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그가 수행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다. _429쪽

저자 소개

  • 저자 : 김용규
저자 : 김용규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철학의 본분이라 여기며,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그 결과 《생각의 시대》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데칼로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2》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영화관 옆 철학카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설득의 논리학》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알도와 떠도는 사원》(공저), 《다니》(공저), 〈철학통조림〉 시리즈 등 다양한 대중적 철학서와 인문 교양서, 지식소설을 집필했다.
사유방식이 사유를 바꾸고, 사유가 삶을 바꾸고, 삶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인류문명을 깎고 다듬어온 사유방식들을 추적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생각의 시대〉, 〈이성의 시대〉, 〈융합의 시대〉로 이어지는 이 작업에서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이성의 시대〉 연작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혁명적인 사유와 삶의 방식을 조명하여, 그것의 본질을 ‘빼기’로 규정하고, 그것이 지난 2,400년 동안 인류문명 각 방면에서 일으킨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를 낱낱이 소개한다. 따라서 이 책은 가짜뉴스와 개소리, 팬데믹과 기후변화와 같은 재앙에 직면한 현대인에게 소크라테스가 보내는 경종이자, 새로운 사유와 삶을 향한 초대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후속작을 준비 중이다.

목차

머리말 소크라테스를 소환하는 이유

프롤로그 _아, 소크라테스


1장 소크라테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석공의 운명, 이성의 운명

2장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란 무엇인가
한 샘에서 흘러나온 두 강물 | 논박술은 산파술인가 | 논박술의 아킬레우스건 | 논리인가 윤리인가

3장 소크라테스 스타일은 어떻게 계승되었나
삶의 기술에서 구원의 지혜로 | 우주적 체념에서 우주적 구원으로 | 소크라테스의 ‘빼기’에서 플라톤의 ‘더하기’로 | 분여이론에서 에로스의 사다리로 | 에로스의 사다리에서 자연의 사다리로 | 자연의 사다리에서 야곱의 사다리로


1부 소크라테스 스타일

4장 페리클레스 시대
문화적 창발과 페리클레스 시대 | 페리클레스와 소피스트 운동 | 아테네의 잠 못 이루는 밤 | 논증적 수사의 시대

5장 프로타고라스의 이중 논변
프로타고라스 스타일 | 페리클레스 시대의 록스타들 | 잊혀진 ‘오래된 미래’

6장 제논의 귀류법
적이 보아서는 안 되는 내 책 | 변증술, 논쟁술, 반론술 그리고 논박술 | 가장 존경할 만한 그러나 동시에 두려운 사람 | 제논이 달을 그리는 법 | 목표가 아닌 목표

7장 소크라테스의 논박술
샐러드 볼 속의 소크라테스 | 말이 씨가 되고 설마가 사람 잡았다 |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든 것 | 괴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 논박술 들여다보기 | 논박술과 파리지옥 | 언어학에서 논리학으로 | 뚫지 못하는 방패, 막을 수 없는 창 | 아침을 고대하는 어둑새벽 | 파수꾼이여, 밤이 어찌 되었느냐 | 소크라테스의 파레시아 | 헤라클레스의 외양간 치우기


2부 소크라테스 스타일 이팩트

8장 디오게네스?냉소
디오게네스 스타일 | 쾌락에서 자유로울 때만 쾌락을 즐기는 자유 | 디오게네스의 파레시아

9장 세네카?절제
살 줄도 알고 죽을 줄도 아는 용기 | 체리의 향기를 포기하고 싶소? | 당신을 진열해드립니다 | 우리가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10장 위-디오니시우스?부정
낯설고 세속적인 것들과의 이별 | 긍정의 길, 부정의 길 | 자기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

11장 미켈란젤로, 칸딘스키?제거
미켈란젤로 스타일 |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 | 무엇을 더 제거할 수 있을까 | 소크라테스가 그림을 그렸다면

12장 키르케고르?실존
에로스의 사다리와 실존의 3단계 |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

13장 쇤베르크?무조(無調)
시너지 신드롬과 문화적 창발 | 빈, 그 세기말의 풍경 | 쇤베르크와 야곱의 사다리 | 진보가 퇴행으로 나타날 때 | 부정을 부정하고, 혁명을 혁명하고

14장 비트겐슈타인?침묵
풋내기 마술사의 신들린 마술 | 전형적인 빈 풍의 문건의 비밀 | 무의미가 의미하는 것 | 부지깽이 스캔들 | 침묵이란 무엇인가 | 가파르고 높은 산에 올라가려면

15장 포퍼?반증
누가 논리실증주의를 죽였나 |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 | 오직 소크라테스적 이성에 의해서

16장 소로?불복종
아침식사로 지구 구하기 | 자본주의가 왜 거기서 나와? |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아라 | 먼저 인간이고, 그다음에 국민이 되어야

17장 바디우, 지젝?빼기
빼기로서의 ‘거리두기’ |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마라 |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18장 스티브 잡스?심플
포스트 구글 시대, 포스트 트루스 시대 | 죽음을 향해 앞질러 달려감 | 네모난 구멍에 낀 둥근 못들

맺는말 소크라테스 스타일이 뉴노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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