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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921112 / 240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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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비비안은 그렇게 바람 속에서 튀어나왔고,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바위 뒤편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비비안을 다시 보게 되어 기뻤지만 할 말이 너무나 많은 탓인지 얼른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비비안은 왼쪽 눈 주위에 시꺼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왼쪽, 그러니까 내 신발 밑창이 조금 너덜거리는 쪽이었다. 다행히 나는 짝이 잘 맞는 멀쩡한 신발을 신고 집을 떠났다. 「너희 아빠가 그랬어?」 내가 물었다. 계집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비비안은 도대체 왜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가장 최근에 한쪽 눈가에 멍이 든 건 아빠한테서 맞았을 때였거든. 부모는 자식한테 자주 그러지 않느냐고 내가 되물었다. 「아니, 우리 아빠는 아니야. 나 혼자 이렇게 만든 거야.」 그걸로 벌써 충분한 설명이었지만, 비비안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번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거든. 그래서 내가 주먹 한 방 먹여 봤어.」 논리적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안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풀밭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만일 주먹으로 나를 한 대 치라고 하면, 그렇게 할래?」 「네가 원한다면야.」 「좋아. 그럼, 해봐. 한 방 먹여 보라니까.」 나는 비비안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비비안은 두 눈을 감았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지만, 꼭 비비안이 감은 눈꺼풀 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비비안은 눈은 뜨지 않은 채 배시시 미소 지었다. 「난 벌써 알고 있었어. 넌 감히 네 여왕님을 향해 손을 치켜들지 못해.」 (본문 59면) 「넌 이제 뭐 할 거야?」 비비안이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계속해서 우적우적 빵만 씹었는데, 왜냐하면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뭔가가 빠진 질문인데, 그럴 때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상책이었다. 물론 비비안이야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는지라, 나를 조금 세게 밀치더니 화가 난 사람처럼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넌 이제 뭐 할 거야?」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질문의 나머지 부분, 분명 빠져 있는 부분,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만 나만 모르는 그 부분을 생각해 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비비안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금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넌 내가 없으면 뭘 할 거냐고?」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만하면 훨씬 분명하니까. 그래서 나는 비비안에게 넌 내내 여기 있을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대답했다. 그 아이의 눈이 나를 나무라는 듯했다. 「아니, 셸. 난 언제까지고 여기 있지 않아. 넌 혼자 여기에 있을 수 없고.」 「아니, 난 혼자 있을 수 있어.」 「〈지금〉이야 그렇지. 왜냐하면 내가 너한테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또 여름이니까. 넌 여기 겨울이 어떤지 알아?」 나는 겨울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겨울은 흰색이고 회색이고 검은색이며 기분 좋은 연기 냄새가 난다고, 겨울은 거짓말의 계절이고, 주유 손잡이는 뜨거우니까 조심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손가락을 꽁꽁 얼게 만드는 계절, 사람들이 뭘 하겠다고 약속은 하지만 사실은 실내에 있는 게 더 좋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계절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아직 겨울이 되려면 기다려야 하니까 지금은 겨울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본문 92면) 비비안은 떠났다. 비비안은 우리의 놀이며 웃음, 멋들어진 거짓말, 심지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런 거짓말까지, 송두리째 다 가져가 버렸다. (본문 169면) 우리는 〈참회자〉 위로 올라갔다. 나는 풀잎에 미끄러졌고, 무릎이 까진 게 확실했지만, 비비안이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으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올라가서 비비안을 따라잡았다. 끝까지 올라간 우리는 말없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비는 그쳤고, 우리 두 사람의 발밑으로는 20미터짜리 허공이 이어졌다. 비비안은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잔뜩 움추린 그 아이의 고개는 거의 양 어깨에 파묻힌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나는 희생 제물이 있어야만 비로소 다시 여왕이 될 수 있어.」 (본문 222면)
비비안은 그렇게 바람 속에서 튀어나왔고,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바위 뒤편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비비안을 다시 보게 되어 기뻤지만 할 말이 너무나 많은 탓인지 얼른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비비안은 왼쪽 눈 주위에 시꺼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왼쪽, 그러니까 내 신발 밑창이 조금 너덜거리는 쪽이었다. 다행히 나는 짝이 잘 맞는 멀쩡한 신발을 신고 집을 떠났다.
「너희 아빠가 그랬어?」 내가 물었다.
계집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비비안은 도대체 왜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가장 최근에 한쪽 눈가에 멍이 든 건 아빠한테서 맞았을 때였거든. 부모는 자식한테 자주 그러지 않느냐고 내가 되물었다.
「아니, 우리 아빠는 아니야. 나 혼자 이렇게 만든 거야.」
그걸로 벌써 충분한 설명이었지만, 비비안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번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거든. 그래서 내가 주먹 한 방 먹여 봤어.」
논리적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안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풀밭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만일 주먹으로 나를 한 대 치라고 하면, 그렇게 할래?」
「네가 원한다면야.」
「좋아. 그럼, 해봐. 한 방 먹여 보라니까.」
나는 비비안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비비안은 두 눈을 감았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지만, 꼭 비비안이 감은 눈꺼풀 너머로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비비안은 눈은 뜨지 않은 채 배시시 미소 지었다.
「난 벌써 알고 있었어. 넌 감히 네 여왕님을 향해 손을 치켜들지 못해.」
(본문 59면)
「넌 이제 뭐 할 거야?」 비비안이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계속해서 우적우적 빵만 씹었는데, 왜냐하면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뭔가가 빠진 질문인데, 그럴 때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상책이었다. 물론 비비안이야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는지라, 나를 조금 세게 밀치더니 화가 난 사람처럼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넌 이제 뭐 할 거야?」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질문의 나머지 부분, 분명 빠져 있는 부분,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만 나만 모르는 그 부분을 생각해 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비비안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금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넌 내가 없으면 뭘 할 거냐고?」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만하면 훨씬 분명하니까. 그래서 나는 비비안에게 넌 내내 여기 있을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대답했다. 그 아이의 눈이 나를 나무라는 듯했다.
「아니, 셸. 난 언제까지고 여기 있지 않아. 넌 혼자 여기에 있을 수 없고.」
「아니, 난 혼자 있을 수 있어.」
「〈지금〉이야 그렇지. 왜냐하면 내가 너한테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또 여름이니까. 넌 여기 겨울이 어떤지 알아?」
나는 겨울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겨울은 흰색이고 회색이고 검은색이며 기분 좋은 연기 냄새가 난다고, 겨울은 거짓말의 계절이고, 주유 손잡이는 뜨거우니까 조심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손가락을 꽁꽁 얼게 만드는 계절, 사람들이 뭘 하겠다고 약속은 하지만 사실은 실내에 있는 게 더 좋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계절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아직 겨울이 되려면 기다려야 하니까 지금은 겨울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본문 92면)
비비안은 떠났다. 비비안은 우리의 놀이며 웃음, 멋들어진 거짓말, 심지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런 거짓말까지, 송두리째 다 가져가 버렸다.
(본문 169면)
우리는 〈참회자〉 위로 올라갔다. 나는 풀잎에 미끄러졌고, 무릎이 까진 게 확실했지만, 비비안이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으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올라가서 비비안을 따라잡았다.
끝까지 올라간 우리는 말없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비는 그쳤고, 우리 두 사람의 발밑으로는 20미터짜리 허공이 이어졌다. 비비안은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잔뜩 움추린 그 아이의 고개는 거의 양 어깨에 파묻힌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나는 희생 제물이 있어야만 비로소 다시 여왕이 될 수 있어.」
(본문 222면)
나의 여왕
옮긴이의 말 _ 닫힌 세계를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