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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역사가들은 그 시대의 논쟁을 반영한다. 우리의 경험은 이전 시대의 사람들을 보는 방법을 색칠한다. 예를 들면 냉전 동안, 현실주의 제안자들은 테디 루스벨트(Teddy Roosevelt)나 알렉산더 해밀턴의 시각조차도 20세기 중반 과제들의 프리즘을 통한 힘의 정치(power politics)의 인정으로 보았다. 우리 시대는 미국 외교의 방향에서도 또 세계 질서도 변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과거와 분명한 단절을 약속했다. 그는 이전의 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독자들은 왜 그들은 과거에 관한 책을 보지 않는지 합리적으로 질의할 것이다. 이에 대한 키신저의 훌륭한 답변은 “역사는 국가들의 기억이다.”-p.34
알렉산더 해밀턴은 권력체제(systems of power)를 이해하는 드문 능력을 보유했다. 전략가로서 그는 비전과 실제적 조치들을 합하여 미국을 그의 장기적 목표들로 향해 움직였다. 해밀턴 체제의 기초는 튼튼한 경제 및 재정이었다. 그는 국가신용이 미국인에게도 그리고 소모전 비용을 대야 하는 런던 소재의 적국 정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인식했다. 재무장관으로, 해밀턴은 유동 자본체제를 구축하고 미국 달러와 금융시장이 세계에서 탁월하도록 시장 심리도 설계했기 때문에 미국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해밀턴은 미국의 무역할 자유가 대내 및 대외적인 국가 경제 전략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큰 요소임을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해밀턴의 선견지명의 경이로운 성공 덕분에 후세 미국인들은 그의 성과를 당연한 것으로 흔히 취급하곤 해왔다. 그렇게 당연시할 때에는, 미국은 자신의 힘의 궁극적인 원천을 위험에 빠트렸다.-p.56
수어드는 무역 확대가 미국 영향력을 신장시켜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제국들처럼 영토를 황급히 점령하기보다는, 진정한 상금은 “세계의 교역이고, 그게 세계의 제국”이라고 생각했다. 최대 생산 및 무역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세력”일 것이다. 상업은 새로운 “경계들의 신(神)”이다. 수어드의 기대는 지구적이었다. 1852년 초에 이미 그는 동아시아와의 미국의 교역은 언젠가는 유럽과의 교역만큼이나 중요하게 된다고 예상했다.-p.156
1908년, 대통령의 임기 종료 직전에, 그는 자신의 외교정책 경험을 반영하여 해군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외교는 상당한 잠재적 힘의 기반 위에서나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데디 루스벨트의 스타일 대로, 그는 자신의 6개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나열함으로써 그의 대통령직의 성과에 대한 역사가들의 분석을 “도와”주었다. 그는 다음의 순서로 자신의 업적을 나열했다. 미해군의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대 백색 함대(Great White Fleet)”로 전세계 해양을 누빈 점, 파나마 운하에 대한 접촉권을 획득하고 건설을 시작한 점, 러-일 전쟁 종료와 모로코 위기 진정을 지원하고 중재한 점, 자연 자원보전을 시작한 점, 하나의 강하고 활동적인 외교정책을 집행한 점, 그리고 대기업을 규제하는 입법활동을 추진한 점. 루스벨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1898년 11척의 전함을 1913년에는 36척으로 늘려 영국과 독일의 뒤를 추격했다.-p.220
코델 헐은 평생을 무역이 갈등,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줄일 수 있고 무역은 미국에 번영과 외국 친구들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한 큰 아이디어에 바쳤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의 최장수 국무장관(11년 9개월)은 자신의 가장 장기적이고 필연적인 싸움을 복기했다. “당시 36세의 나는 의회에서의 첫 연설에서 관세를 낮추고 무역 규제를 줄이자고 호소했다. 1934년 내가 62세일 때 마침내 그것들을 줄이는 싸움에서 이겼다.” 헐의 가장 큰 업적은 1934년 호혜통상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이었다.-p.351
과학자이고 발명가인 벤 프랭클린(Ben Franklin)은 신생국가의 새로운유형의 외교관으로 그의 입지를 밝히기 위해 그의 계몽적 명성의 탁월함을 사용했다. 150년이 더 지나서, 과학자이고 발명가인 배너바 부시는 기술혁신이 새로운 유형의 군사 및 정치 세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인식했다. MIT 총장이고 대통령 케네디(Kennedy)의 과학보좌관인 제롬 와이즈너(Jerome Wiesner)는 21세기에 “배너바 부시보다 과학과 기술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관찰했다. 타임(Time)지는, 1944년에 표지기사로 “물리학의 장군(General of Physics)”이라고 꼬리표를 붙였다.-p.463
열렬한 반공주의자 닉슨은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여러 달 동안, 그는 역사적인 그의 여행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그는 현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이전 30년에 걸친 중국은 미국인에게 매력과 모순-함께 또 그리고 대항해 전쟁을 한-을 항상 불러일으켰다. 미국인들은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상업적 풍부함으로 또 희망 없는 경제적 가능성을 함께 보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인을 기독교와 현대화로 전환시키려 노력했으나 중국인들의 거절로 찔려버렸다. 마오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나의 혁명적인 체제를 채택한 후 이십 년 이상, 미국은 중국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을 인정조차 거부해왔다. 닉슨은 자신의 모험을 “달에 가는 것과 유사”할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다.-p.567
향후 미국 대통령들은 이 모든 경험들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테디 루스벨트의 중재와 세력 균형잡기의 수완을 회상할 수 있다. 그들은 윌슨의 포부의 호소를 존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동맹 체제와 1947~49년에 처음 수립한 경제 관계의 편익과 상호 책무를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외교정책을 고안하는 데 추가해, 대통령들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하여 국민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미국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이들 과제들을 실용적으로-작동하는 것을 시도하는-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기대한다. 토크빌(Tocqueville)이 거의 2백 년 전에 관찰했듯이, “미국의 위대성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계몽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고, 자신들의 잘못을 수정할 역량에 있다.”-p.736
역사가들은 그 시대의 논쟁을 반영한다. 우리의 경험은 이전 시대의 사람들을 보는 방법을 색칠한다. 예를 들면 냉전 동안, 현실주의 제안자들은 테디 루스벨트(Teddy Roosevelt)나 알렉산더 해밀턴의 시각조차도 20세기 중반 과제들의 프리즘을 통한 힘의 정치(power politics)의 인정으로 보았다. 우리 시대는 미국 외교의 방향에서도 또 세계 질서도 변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과거와 분명한 단절을 약속했다. 그는 이전의 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독자들은 왜 그들은 과거에 관한 책을 보지 않는지 합리적으로 질의할 것이다. 이에 대한 키신저의 훌륭한 답변은 “역사는 국가들의 기억이다.”-p.34
알렉산더 해밀턴은 권력체제(systems of power)를 이해하는 드문 능력을 보유했다. 전략가로서 그는 비전과 실제적 조치들을 합하여 미국을 그의 장기적 목표들로 향해 움직였다. 해밀턴 체제의 기초는 튼튼한 경제 및 재정이었다. 그는 국가신용이 미국인에게도 그리고 소모전 비용을 대야 하는 런던 소재의 적국 정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인식했다. 재무장관으로, 해밀턴은 유동 자본체제를 구축하고 미국 달러와 금융시장이 세계에서 탁월하도록 시장 심리도 설계했기 때문에 미국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해밀턴은 미국의 무역할 자유가 대내 및 대외적인 국가 경제 전략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큰 요소임을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해밀턴의 선견지명의 경이로운 성공 덕분에 후세 미국인들은 그의 성과를 당연한 것으로 흔히 취급하곤 해왔다. 그렇게 당연시할 때에는, 미국은 자신의 힘의 궁극적인 원천을 위험에 빠트렸다.-p.56
수어드는 무역 확대가 미국 영향력을 신장시켜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제국들처럼 영토를 황급히 점령하기보다는, 진정한 상금은 “세계의 교역이고, 그게 세계의 제국”이라고 생각했다. 최대 생산 및 무역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세력”일 것이다. 상업은 새로운 “경계들의 신(神)”이다. 수어드의 기대는 지구적이었다. 1852년 초에 이미 그는 동아시아와의 미국의 교역은 언젠가는 유럽과의 교역만큼이나 중요하게 된다고 예상했다.-p.156
1908년, 대통령의 임기 종료 직전에, 그는 자신의 외교정책 경험을 반영하여 해군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외교는 상당한 잠재적 힘의 기반 위에서나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데디 루스벨트의 스타일 대로, 그는 자신의 6개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나열함으로써 그의 대통령직의 성과에 대한 역사가들의 분석을 “도와”주었다. 그는 다음의 순서로 자신의 업적을 나열했다. 미해군의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대 백색 함대(Great White Fleet)”로 전세계 해양을 누빈 점, 파나마 운하에 대한 접촉권을 획득하고 건설을 시작한 점, 러-일 전쟁 종료와 모로코 위기 진정을 지원하고 중재한 점, 자연 자원보전을 시작한 점, 하나의 강하고 활동적인 외교정책을 집행한 점, 그리고 대기업을 규제하는 입법활동을 추진한 점. 루스벨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1898년 11척의 전함을 1913년에는 36척으로 늘려 영국과 독일의 뒤를 추격했다.-p.220
코델 헐은 평생을 무역이 갈등,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줄일 수 있고 무역은 미국에 번영과 외국 친구들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한 큰 아이디어에 바쳤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의 최장수 국무장관(11년 9개월)은 자신의 가장 장기적이고 필연적인 싸움을 복기했다. “당시 36세의 나는 의회에서의 첫 연설에서 관세를 낮추고 무역 규제를 줄이자고 호소했다. 1934년 내가 62세일 때 마침내 그것들을 줄이는 싸움에서 이겼다.” 헐의 가장 큰 업적은 1934년 호혜통상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이었다.-p.351
과학자이고 발명가인 벤 프랭클린(Ben Franklin)은 신생국가의 새로운유형의 외교관으로 그의 입지를 밝히기 위해 그의 계몽적 명성의 탁월함을 사용했다. 150년이 더 지나서, 과학자이고 발명가인 배너바 부시는 기술혁신이 새로운 유형의 군사 및 정치 세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인식했다. MIT 총장이고 대통령 케네디(Kennedy)의 과학보좌관인 제롬 와이즈너(Jerome Wiesner)는 21세기에 “배너바 부시보다 과학과 기술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관찰했다. 타임(Time)지는, 1944년에 표지기사로 “물리학의 장군(General of Physics)”이라고 꼬리표를 붙였다.-p.463
열렬한 반공주의자 닉슨은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여러 달 동안, 그는 역사적인 그의 여행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그는 현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이전 30년에 걸친 중국은 미국인에게 매력과 모순–함께 또 그리고 대항해 전쟁을 한–을 항상 불러일으켰다. 미국인들은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상업적 풍부함으로 또 희망 없는 경제적 가능성을 함께 보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인을 기독교와 현대화로 전환시키려 노력했으나 중국인들의 거절로 찔려버렸다. 마오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나의 혁명적인 체제를 채택한 후 이십 년 이상, 미국은 중국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을 인정조차 거부해왔다. 닉슨은 자신의 모험을 “달에 가는 것과 유사”할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다.-p.567
향후 미국 대통령들은 이 모든 경험들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테디 루스벨트의 중재와 세력 균형잡기의 수완을 회상할 수 있다. 그들은 윌슨의 포부의 호소를 존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동맹 체제와 1947~49년에 처음 수립한 경제 관계의 편익과 상호 책무를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외교정책을 고안하는 데 추가해, 대통령들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하여 국민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미국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이들 과제들을 실용적으로–작동하는 것을 시도하는–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기대한다. 토크빌(Tocqueville)이 거의 2백 년 전에 관찰했듯이, “미국의 위대성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계몽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고, 자신들의 잘못을 수정할 역량에 있다.”-p.736

한국어판 저자 서문
서문 미국 최초 외교관(America’s First Diplomat)
1부 새로운 미국 시대: 대륙 영토, 금융력, 중립적 독립, 공화주의 연합(A New American Era: Continental Territory, Financial Power, Neutral Independence, and a Republican Union)
1장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미 국력의 설계자
2장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미래파
3장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와 헨리 클레이(Henry Clay): 미국적 현실주의와 미국체제
4장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과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 실용적 연방주의자들
2부 미국과 세계 질서(The United States and the Global Order)
5장 존 헤이(John Hay): 개방정책
6장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세력균형
7장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해외로 나간 정치학자
3부 양 대전 사이의 국제주의자들(Interwar Internationalists)
8장 찰스 에반스 휴즈(Charles Evans Hughes): 군비통제와 워싱턴 회의
9장 엘리후 루트(Elihu Root): 국제법
10장 코델 헐(Cordell Hull): 호혜무역
4부 미국 동맹의 새로운 질서(A New Order of American Alliances)
11장 미국 동맹체제의 구축자들(Architects of the American Alliance System)
12장 배너바 부시(Vannevar Bush): 미래의 발명자
13장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위기 관리자
14장 린든 존슨(Lyndon Johnson): 패배로부터 얻은 교훈
15장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과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미국식 현실정치
16장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복고주의자
5부 마지막 그리고 시작(An End and a Beginning)
17장 조지 H. W. 부시(George H.W. Bush): 동맹의 지도자
18장 미국 외교의 5대 전통
후기 전통에서 현재로(From Traditions to Today)
감사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