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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7085444 / 176쪽 115 x 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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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997년 8월 9일,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진주의 한 주택,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둘 사이에선 흡음구가 400개 달린 휴대용 녹음기 속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다. 인터뷰 상황이다. 소설은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날 참인데, 인터뷰이가 도통 말이 없다. 인터뷰이는 ‘황수남’(아마 실명은 아닐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다. 1982년에 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고, 1992년 11월에 위안부 신고를 했으나, 본명을 밝히기를 거부한 ‘숨어 있는 피해자’다. “수천 년 전에 무너져 원래 상태로의 복원이 영구히 불가능한 고대 사원이나 신전”처럼 폐허가 된 입을 가졌고, “기억하지 않아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고 “기억하지 않아서 살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녹음테이프는 돌아가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머리에서 마음에서 몸에서, “눈동자에서, 살갗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사람 같다. 그러나 알다시피 어떤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아직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 그녀에게는 들을 말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이 인터뷰는 가능할까?“ _김형중 문학평론가 역사와 증언과 문학이 마치 잘 꿰매진 퀼트처럼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역사와 증언을 소설화한다. 소설은 기록물 보관소에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저장 기억을 바로 지금도 우리 앞에서 기능하는 기능 기억으로 활성화하는 데 종종 성공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활성화가 쉽사리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말끔한 거대 서사는 기록물 보관량을 늘릴 뿐이고, 웅장한 남성 서사는 쉽사리 민족 서사의 재구성에 앞장을 선다. […] 말은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밖으로 나온 말은 어느 곳으로든 누구에게로든 가 닿으려고 한다.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서 말은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이 단순한 말의 행로는 정체되는 순간 생명을 잃는다. 그러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될 때 죽은 말도 살아날 수 있다. 사라진 기억도 되살아날 수 있다. 말의 생명력이란 언제나 발화하는 행위와 함께 그것을 듣는 행위가 있을 때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은 위기의 순간에 처한 인간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_박혜진 문학평론가 (김현문학패 수상작가론 중에서)
녹취록을 풀 때 그녀의 침묵도 문자文字에 담아 기록해야 한다. 그녀의 표정, 몸짓, 한숨, 눈빛, 얼굴빛, 시선, 눈동자의 떨림, 망설임, 눈물도…… 그것들 역시 그녀의 발화되지 못한 말이므로.
그녀의 두 눈동자가 400개의 구멍을 응시한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한 개의 구멍을 응시한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한 개의 구멍에 삼켜져 그 한 개의 구멍을 틀어막는다.
“혹시 녹음기가 신경 쓰이세요?”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그녀의 침묵을 ‘침묵’이라는 글자에 욱여넣는다.
(9-10쪽)
첫 방문 때 나는 그녀의 침묵이 혹시나 녹음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했다. 그래서 그녀의 침묵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말했다.
녹음기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녹음기에, 테이프 감기는 소리에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쪽은 그녀가 아니라 나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셔도 돼요.”
증언 녹취 작업은 열두 명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중 실명을 밝히는 것에 동의한 피해자는 단 한 명이다. 그 피해자에겐 자식이 없고,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걸 그녀의 가족과 이웃들이 알고 있다.
“책으로 묶을 때 가명을 쓰시면 돼요.”
“다른 이름이요.”
“황수남이라는 이름 말고…… 다른…….”
“……요코.”
순간 환청인가 한다. 바람 소리이거나. 그녀의 입은 그새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듯 다물려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작고 낮아 녹음기에 녹음되지 않았으면 어쩌나 싶다.
(84-85쪽)
한없이 낯선, 그래서 기이하게 들리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내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나는 어깨를 떤다.
“녹음기, 이리 주세요.”
그녀가 도로로 내려선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승합차가 내쏘는 전조등 불빛에 그녀가 현상되듯 드러나는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녹음기가 흉기처럼 날카롭게 빛난다.
데리고 갔어……
유령이 내는 소리처럼 도로 위에서 출몰한 소리가 어디서 기인한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인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인지, 아니면 환청인지.
몸을 다 가져갔어……
그래서…… 몸이 없지……
다 가져가서……
죽지도 못해…… 몸이 없어서……
피는 나……
피는 눈에서 나는 거니까……
거기…… 굴 속에……
눈을 감아도 피가 흘러……
(162-163쪽)
차례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感·불가능한 인터뷰 _김형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