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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나무 심은 사람

임준수 저 | 김영사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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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89905 / 576쪽 142 x 205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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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원장의 삶을 다각적이고 충실하게 조명한 전기
12년 동안 민병갈 원장과 함께하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작가가
수년간의 취재와 집필로 완성한 자연주의자 민병갈의 삶과 세계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 원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치열했던 일생을 총정리한 책이다. 원예전문가, 교육자,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시대인, 그리고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귀화인이었던 민병갈 원장의 인간적인 삶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방대한 기획이다.
30여 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던 저자 임준수는 천리포수목원에 잠들어 있던 귀중한 사료들을 직접 모으고 갈무리해 저작을 완성했다. 민병갈 원장의 친필 서간 1,000여 통,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담은 희귀 사진들, 민병갈 원장이 남긴 인터뷰가 베테랑 저널리스트의 집요한 열정을 통해 고스란히 책에 녹아들었다.
1945년 해방 한국에 첫발을 들인 미군 장교가 한국과 사랑에 빠져 귀화하기까지, 한국의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나무광’이 되기까지, 천리포 해변의 거친 땅에 나무들의 영원한 안식처 천리포수목원을 일구기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난 민병갈의 삶이 마음을 울린다.

출판사 리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경험하며 한국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한국인 나무에 대한 열정과 집념, 한국에 대한 사랑을 양분 삼아 생명의 땅을 일궈낸 민병갈 원장. 미국 펜실베이니아 광산촌 빈한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난 칼 페리스 밀러는 어떻게 운명처럼 한국에 뿌리내렸을까? 지금껏 민병갈 원장은 평생을 나무에만 쏟은 열정적인 원예전문가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10여 년 동안 곁에 머무르며 그의 삶과 정신을 지켜본 저자 임준수는 더욱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민병갈 원장의 삶의 면모를 조명한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나무를 세계에 전파한 학술·외교적 역할을 했고, 대내적으로는 천리포수목원을 국내 식물학과 원예학의 인큐베이터로 운영하며 자연보호 운동과 한국 식물학 발전에 힘쓴 교육자의 역할을 했다. 또,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한국인이자, 격동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대한민국 광복 직후 한국에 발을 디딘 이후 57년간 이어진 민병갈의 운명적인 한국 생활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맥을 같이 한다. 그의 시선은 해방기의 혼란상, 한국전쟁 발발 당시의 급박한 상황, 60~70년대 재건과 성장의 활기, 그 이후 문화적 다양성이 꽃피던 한국의 모습을 두루 거쳤다. 미군정 복무 기간 동안 한국인의 의식주와 한국의 자연에 매료된 그는 전역 이후에도 민간 신분으로 군정청 근무를 이어갔다. 1954년부터는 한국은행에 입사해 28년 동안 투자 분야 고문으로 일했다. 1960년대 초부터 한국 이름을 사용한 민병갈은, 1979년에 비로소 법적으로 한국에 귀화해 완전한 한국인이 된다. 한국 문화와 한국인, 그리고 한국의 자연에 대한 민병갈의 각별한 사랑은 그의 삶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정 근무 시절 민병갈은 틈만 나면 한국 시골 곳곳을 누비며 한국인들의 일상 풍경을 눈에 담았다. 민병갈의 한국 문화 탐구는 호기심을 넘어선 애정과 선망이었다. 그는 한자와 한글을 공부하고 싶어서 시간만 나면 인사동 고서점에 발을 들였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부터는 한옥에 입주해 살면서 집에서는 항상 한복을 입었다. 입맛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한옥에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해 정기적으로 김치 파티를 열었다. 의식주 모두를 한국식으로 하고자 했던 민병갈은 “나는 전생이 한국인이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평생에 걸친 헌신과 투자로 천리포수목원을 일구어낸 데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민병갈 원장의 무한한 사랑과 동경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인천항에 상륙했을 때 이곳에 한 번 살아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 민병갈 나무들의 피난처가 된 ‘서해안의 푸른 보석’ 천리포수목원의 아버지 민병갈의 열정과 나무 사랑 서해를 바라보는 바닷가에 보석처럼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자연 보호에 대한 개념이 미미했던 1970년대, 귀화 서양인 1호 민병갈 원장이 사비를 털어 건설하고 평생에 걸쳐 가꾼 생명의 낙원이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에서 세계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인증을 받은 천리포수목원은 ‘나무가 주인이 되는 땅’이라는 민병갈 원장의 자연 사랑 철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이미 민병갈 원장은 한국의 자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숙원으로 삼았던 설악산 등반은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1963년 설악산 등반 중 민병갈은 식물학도 홍성각을 만나 나무에 대한 깊은 열정을 공유했고, 홍성각의 소개로 국내 식물학의 거목 이창복 교수와 교유하며 나무 공부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열정적인 만년 식물학도가 된 민병갈은 또 한 번 운명 같은 계기를 만나게 된다. 즐겨 찾던 서해의 휴양지 만리포에서 딸의 결혼자금을 마련하려는 한 농부의 부탁으로 천리포의 거친 땅 3,000평을 산 것이다. 이곳은 이후 18만 평 규모로 성장한 천리포수목원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 식물학과 원예학 발전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인덱스 세미넘(Index Seminum)’, 즉 전 세계의 수목원, 식물원, 연구기관과 협약을 맺고 종자를 무상교환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유 수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로써 천리포수목원에는 민병갈 원장이 완도에서 직접 발견한 토종 ‘완도호랑가시나무’를 포함해 700여 종류가 넘는 목련속 식물을 비롯, 1만 6,0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민병갈 원장은 2002년에 산림청이 상신할 수 있는 최고 훈장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05년에 국립수목원에 있는 숲의 명예전당에 동판 흉상이 헌정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89년에는 국제 원예계에서 가장 큰 명예로 여기는 베치 메달(Veitch Medal)을 영국 왕립원예학회로부터 받았는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실을 책에서 밝혔다. 민병갈 원장은 2002년 운명하는 날까지도 자신이 사랑하는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이 잘 자라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금은 제한적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원장의 원래 뜻대로 종자 보존과 연구에 큰 힘을 쏟으며 나무들의 피난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이 후대에도 영원히 나무의 쉼터로 남아 있기를 바란 민병갈 원장의 뜻을 그대로 담은 이 책은 다시금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 “나는 300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했다. 나의 미완성 사업이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제2의 조국으로 삼은 우리나라에 값진 선물로 남기를 바란다.” - 민병갈

저자 소개

임준수(林俊秀)는 1941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에서 태어났다. 광천상고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언론인 장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SUN)에서 수학했다. 1965년 신아일보 수습기자로 들어가 동양통신(2년), 조선일보(17년), 중앙일보(12년), 한국경제(2년) 등 언론계에서 35년간 일했다. 한국편집기자협회 회장, 조선일보 편집부장, 중앙일보 편집국장대리 등을 역임했다. 또한 1995년부터 성균관대학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2005년까지 10년간 서강대 신문방송대학원,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고려대학, 대진대학에서 신문편집론과 신문문장론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다년간 신문 편집에 종사한 경험을 살려 ≪신문은 편집이다≫ ≪신문을 아름답게≫ ≪좋은신문 멋진편집(공저)≫ ≪한국신문 100년사(공저)≫ 등 네 권의 전문서적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한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공저)≫ 등이 있다. 영화와 여행에 관심이 많아 중앙일보, 경향신문, 중앙경제신문, 한국경제, 이코노미스트 등에 영화에세이와 해외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책 속에서


밀러는 인천에서 머문 5시간 동안 한국을 새롭게 인식했다. 시가지의 건물들은 초라했지만 대지의 신선한 기운이 그를 감쌌다. 행인들의 차림은 남루했어도 친근미로 그를 사로잡았다. 이날 밀러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하나는 푸른 하늘이었다. 아침나절만 해도 해를 가렸던 구름이 씻은 듯 사라진 하오의 하늘은 인천 시가지를 탐험하던 이방인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이때부터 미국인 칼 밀러가 한국인 민병갈로 바뀌는 운명적인 여로가 시작되었다. (24쪽)

한국의 농촌 풍경을 바라보는 밀러의 시각은 문명국에서 온 이방인이 미개한 나라의 풍물을 보며 느끼는 호기심과는 기본적으로 달랐다. 한국을 처음 찾은 19세기 서양인 선교사나 여행자들이 그랬듯 밀러도 한국의 진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으나 호기심으로 찍은 것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앵글을 잡았다.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 느티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는 촌로들, 익어가는 곡식을 지키기 위해 새를 쫓는 아이들 등 모두가 그의 눈에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157쪽)

밀러의 한국 사랑은 한국인을 좋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안 한국은 지도상에 있는 한 작은 나라의 이름이었을 뿐이고, 그다음으로 안 것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군사학교에 들어가서 배런 교장을 통해 한국인이 어떤 민족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가 오키나와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포로들은 배런 교장이 말한 “지구상에서 가장 착한 민족”이라는 인상을 그대로 주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한국인들은 싸우기를 좋아하나 봐요”라고 편지에 쓸 만큼 많이 희석되었으나 여전히 한국인에 대한 호감은 변하지 않았다. (174쪽)

한동안 숙제로 남았던 밀러의 한국 이름 짓기는 1952년 임시 수도 부산에서 쉽게 풀렸다. 그 해결사는 1949년 미국 국무부 산하 기관 ECA 직원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던 한국은행 간부 민병도였다. 전시 피란지에서 한 직장의 동료가 된 두 사람 사이는 의형제로 발전했다. 나이가 세 살 아래로 동생인 밀러는 형의 성과 돌림자를 따서 민병갈(閔丙㵧)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끝 자 ‘갈’은 본명에 있는 칼(Carl)의 발음을 따른 것이다. (187쪽)

민병갈이 나무 공부를 하면서 늘 염두에 둔 것은 천리포 땅이었다. 1962년 처음으로 매입한 3,000평은 그 후 꾸준히 늘어 1960년대 말에는 4만 평 규모로 커져 있었다. 천리포 땅을 늘린 것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나무를 이곳에 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나무와 떨어져 살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다. (301쪽)

민병갈에게는 그의 나무 일생을 빛내주는 기념비적인 작품 하나가 있다. 1978년 3월 말 완도 지방의 자생식물 탐사 중 발견한 ‘완도호랑가시나무’가 그것이다. 완도 일부 지역에서 자라는 감탕나무와 호랑가시나무 사이에 자연 교접으로 생겨난 이 품종은 학명에 ‘Miller’라는 민병갈의 본래 성(姓)이 붙어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산 그의 생애를 대변하는 상징물로 남았다. (393쪽)

민병갈의 머릿속에 있는 수목원 개념은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 크게 달랐다. 일반적으로 수목원이라 하면 나무를 잘 연구해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는 녹색 공간이라는 것이 상식이나 민 원장에게는 그런 개념이 통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수목원이란 사람들이 구경하는 자연 공간이 아니라 나무가 주인이 되어 살도록 인간이 보살펴주는 일종의 자연보호구역이다. 즉 나무들이 인간의 위해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피난처(haven)로 본 것이다. (407쪽)

가까이에서 본 민병갈은 한마디로 사람보다 나무를 더 사랑한 자연인이었다. 큰돈을 벌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은 푼돈도 아꼈다. 그러나 남에게 좋은 일이라면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었다. 특히 사람을 키우는 교육 사업이라면 주저 없이 도왔다. 대단한 학구파이던 그는 천리포수목원을 나무의 견본장 역할을 하는 연구 교육기관으로 키우려 했으나,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타계했다. (563쪽)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1부 피츠턴에서 인천까지
꿈 많던 학창 시절
군사학교 시절
병영에서 만난 한국인
주한 미군 장교가 되다

2부 한국에 반하다
다시 찾은 한국
한국의 강렬한 유혹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침내 한국인

3부 천리포수목원을 일구다
한국의 자연에 빠지다
맨땅에 세운 나무 천국
자나 깨나 나무 공부
세계의 나무를 천리포로
제2의 조국에 바치는 선물

4부 내 전생은 한국인
인간미 넘치는 승부사
한국인이 되고 싶은 마음
폭넓은 인간관계
미국 가족, 한국 가족

에필로그
민병갈 연보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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