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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그형제들-청년요셉

시리즈 : 요셉과 그 형제들 [1]

토마스만 저 | 장지연 역 | 살림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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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00662 / 454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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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1926년 12월에서 1936년 8월까지와 1940년 8월부터 1943년 1월까지 약 13년의 집필기간, 준비 기간까지는 총16년이 걸린 토마스 만의 역작이다.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 그리고 이집트의 신화 속에서 초기 인류는 어떻게 신을 발견하고 삶을 살아가는지,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대 드라마를 펼쳐 보이는 이 소설은 인류 서사 문학의 한 극점이라는 평가를 받은지 이미 오래된 작품이다. <청년 요셉>편에서는 야곱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라헬. 하지만 그녀가 일찍 죽자 그녀의 혈육인 요셉만이 야곱의 전부가 된다. 어머니 라헬을 있는 그대로 닮은 요셉은 아름다운 용모에 현명함까지 갖춘 청년이었다. 그러나, 겸손이라고는 모르는 선택받았다는 우월감으로 모든 형제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우물에 빠뜨려진 요셉, 그 고난의 사흘과 구출을 담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 순수 집필기간 13년, 준비기간 16년 토마스 만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걸작으로 뽑은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이 마침내 우리 나라에 완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장편소설은 1926년 12월에서 1936년 8월까지와 1940년 8월부터 1943년 1월까지, 약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집필에 투자되었다. 자료를 찾기 위한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이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의 정열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작가는 독일 나치정권의 집권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스위스 및 미국 망명 생활 등을 경험했다. ... ♣ 순수 집필기간 13년, 준비기간 16년 토마스 만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걸작으로 뽑은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이 마침내 우리 나라에 완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장편소설은 1926년 12월에서 1936년 8월까지와 1940년 8월부터 1943년 1월까지, 약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집필에 투자되었다. 자료를 찾기 위한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이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의 정열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작가는 독일 나치정권의 집권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스위스 및 미국 망명 생활 등을 경험했다. 총 4부작으로 완성된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시인하기도 한 작품이다. 잘 알려진, 그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겨 준 청년기의 작품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한 가문의 몰락}과 작가가 50대에 쓴 {마의 산}, 그리고 70대에 접어들면서 완성한 이 {요셉과 그 형제들}, 이렇게 세 소설을 스스로 평가하면서 작가는, 처음 것은 독일 소설이었고, 두번째는 유럽 소설, 그리고 세번째는 신화를 토대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인간에 관한 노래라 말하며, 이는 보다 풍요롭게 전개되어 간 정신의 성장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인류의 기원에 천착―성서와 신화 읽기 이 소설은 구약성경 창세기 27장에서 50장까지의 짧은 이야기가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가 재상이 된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토마스 만이 그려낸 이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에 얼마든지 쉽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 소개된 요셉의 이야기는, 괴테의 표현 그대로 하자면 '너무 짧다'. 세계적인 문호 괴테는 작가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괴테가 이루지 못한 꿈을 토마스 만이 대신 실현한 것이다. 그는 을 기독교 안은 물론이고 기독교 밖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읽힐 수 있도록 충만한 생명력으로 기록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자신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나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는 종교사와 신학이 자신의 관심사가 되리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이켜보니 인간, 혹은 인류의 기원에 천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된 것이 성서와 신화라고 했다. ♣ 작품에 흐르는 정신사적 배경 이 책의 정신사적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작품이 쓰여질 당시 독일에서 신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 제1권 [야곱 이야기]가 출판된 1933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해이다. 유대인과 슬라브 족을 증오하고 게르만 족의 부흥과 독일의 유럽 제패를 꿈꾼 히틀러의 나치즘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를 일종의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했다. 당시 히틀러가 건설한 제3제국은 게르만 신화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신화의 구원시대로 인식되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시작된 신화라는 테마는 니체를 거치면서 큰 활력을 얻었다. 특히 니체에 의해 언급된 '새로운 신화'(1871년)는 나치에 의해 왜곡된다. 이처럼 신화라는 테마가 '일상적인 구호'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 또한 신화를 고민하면서 이런 흐름에 전혀 무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니체로 소급되는 낭만주의적인 신화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했지만, 니체를 출발점으로 삼고 '새로운 신화'의 탄생을 왜곡하는 자들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마스 만은 이들을 나치즘의 선구자로 해석한 것이다. 토마스 만은 파시스트들의 신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비합리적인 도취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성인이 앞장서고 있는 파시즘으로부터 신화를 빼앗아, 신화가 휴머니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기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써오고 있는 {요셉과 그 형제들}도 바로 신화가 다시 휴머니즘을 위해 쓰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 신화의 옷을 입은 주인공 요셉과 탐무즈-길가메쉬-오시리스-아도니스의 계보 이 소설은 다양한 신화들로 겹겹이 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마스 만이 깨닫고 싶어하던 기원에 대한 답이 바로 '신화'라는 틀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들은 모두 기원신화를 안고 있다. 즉 천지창조, 신들의 전쟁, 인류의 기원, 홍수 이야기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다르지만 각각이 포함하는 요소는 거의 엇비슷한 기원신화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 만은 이들 신화들이 독자적으로 자생한, 독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가 시대가 흐르면서 옷을 갈아입듯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모태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것이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인 요셉을 가리켜 '신화를 가지고 노는 사기꾼'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요셉이 그리스 신화의 티폰의 계보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탐무즈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로 이어지는 유형이라고 했다. 고대인들은 특히 신화 속의 인물과 자신들을 동일하게 여기곤 했는데, 요셉 또한 바빌론과 이집트의 세력권에서 살았던 그곳 신화에 등장하는 탐무즈라든가 오시리스를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고대인답게 그 신화 속의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고대인은 현대인과는 다른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었다. 스페인의 문화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는 \"고대인은 뭔가 하기 전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과거에서 전형을 찾아보고 마치 잠수복을 입듯이 그 안에 미끄러져 들어가 안정감을 얻은 다음 현실의 문제로 뛰어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화는 흔히 삶의 원형(아키타이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하나의 경건한 고정틀, 생명이 피와 살로 그 틀을 채워 넣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것이 신화라는 말이다. 작가는 신화의 반복으로 여긴 고대의 인물로 클레오파트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증거는 그녀의 죽음이라고 했다. 가슴에 독사를 올려놓고 죽은 클레오파트라.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이쉬타르,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를 재현하는 삶이었다. 이쉬타르는 흔히 뱀옷을 입은 모습이거나 아예 목에 독사를 감고 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삶 또한 기존의 종교적 문화유산이 모두 투영된 것이므로, 그의 이야기 또한 구약성서(또는 신화)를 원형으로 한 위대한 삶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이집트 신화 읽기 그렇다면 우리 주인공 요셉은 누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처녀 생산,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하는 요셉, 텅빈 무덤(우물) 등은 그가 바로 예수의 전형임을 알게 한다. 물론 요셉이 입고 있는 신화의 옷은 한 가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그리스의 미소년 아도니스, 바빌론 신화의 갈기갈기 찢겨져 제물로 바쳐진 자 탐무즈이며, 또한 여신 이쉬타르가 몸 달아 한 길가메쉬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를 '인용'하는 삶, 풀어서 설명하자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어느 영웅의 말을 자신의 입에 올리거나 그의 행동까지 따라하는 삶, 즉 신화 속에 사는 인생은, 신화에 올리는 일종의 예배 의식(儀式)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이 신화들이 소설 읽기에 복병이

저자 소개

19세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한 토마스 만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민적 작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 동시대 사회의 위대한 교사였다. 또한 그 발전에 있어서 독일 낭만주의의 극복과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추구해 20세기 문학에 큰 획을 그었다.
독일 고전주의의 괴테에 비견되는 20세기 독일문학의 대표주자인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독일 북부의 한자동맹 소속 도시 뤼베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세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 바로 그의 형이다), 1955년 8월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타계했다. 뤼베크의 참정의원을 지낸 아버지로부터는 냉철한 사고와 도덕적인 기질을 이어받았고, 독일인과 브라질인의 혼혈인 어머니로부터는 감각적이고 분방한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았다. 이것이 바로 ‘시민성’과 ‘예술성’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이원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족은 뮌헨으로 이주했다. 토마스 만은 여기서 잠시 보험회사 견습사원으로 지내다가 뮌헨 대학에서 청강하면서 문학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청년 시절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였다. 
그리고 토마스 만이 문학 활동을 시작한 1890년대 중엽에 자연주의는 이미 위기에 빠졌고, 반합리주의적 문예사조인 신낭만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데카당스’라는 말로 집약되는 토마스 만 초기의 예술적 경향에는 예외 없이 삶과 죽음의 문제가 드러난다.  


 



1894년 3월 토마스 만의 학창 시절은 끝났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가족이 있는 예술의 도시 뮌헨으로 이주하게 되며 ‘죽음’의 세계라고 표현한 바 있는 ‘문학’의 세계에 마침내 발을 들여놓게 된다(토마스 만은 그 후 40년 가까이 뮌헨에서 살았다). 토마스 만은 몇 년 뒤인 1901년 2월 13일 형 하인리히 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문학은 죽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한 작품 <토니오 크뢰거>에도 “문학은 결코 천직(天職)이 아니라 저주다”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그해 1894년 최초의 단편 <타락>을 <사회>지(誌)에 발표한다. 
1895년 7월 토마스 만은 당시 형 하인리히 만이 체류하던 이탈리아로 최초의 외국여행을 시도했다. 10월에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뮌헨 공과대학에서 역사, 미술사, 문학사 등을 청강하며 1년 뒤인 1896년 말 <짐플리치시무스>지(誌)에 실린 단편 <행복에의 의지>를 탈고했다. 
1896년 10월 토마스 만은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우선 베니스에 들른 후 로마를 거쳐 나폴리를 여행했고 마지막에 로마에서 형 하인리히와 재회했다. 이때 토마스 만은 베를린의 피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한 잡지에 단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보냈다. 잡지사에서는 그 소설을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관하고 있는 다른 소설들 모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토마스 만은 <환멸>, <어릿광대>, <토비아스 민더니켈> 등의 작품을 보내주었는데, 출판인 사무엘 피셔는 이 소설들에 무척 만족해했고 이제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토마스 만에게 권유했다. 그래서 토마스 만은 최초의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다. 


 



1900년 토마스 만은 1년 만기 지원병으로 육군에 입대하지만 행군 도중에 발가락에 생긴 건초염으로 입대 3개월 만에 제대하게 된다. 이듬해 1901년 10월 ‘한 가문의 몰락’이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초판이 나왔다. 
1903년 토니오라는 한 혼혈아를 통해 시민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예술가의 숙명을 그린 단편 <토니오 크뢰거>를 발표하고, 비슷한 시기에 그 주제 역시 시민성과 예술성의 또 다른 변주에 불과한 <트리스탄>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아이러니 수법이 특히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 단편이다. 
1905년 2월에 뮌헨 대학 수학 교수인 프링스하임의 딸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고, 그해 11월에 장녀 에리카 만이 출생한다. 1909년에는 독일의 어느 소공국을 무대로 하는 중편 <대공전하>를 발표하여, 고독한 예술가적 존재를 사랑과 결혼에 의하여 삶의 세계와 손을 잡게 한다. 1911년 5월 휴양지에서 존경해 오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거 소식을 접한 것을 경험으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발표한다. 이것은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 중 가장 긴 단편소설로서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피셔 출판사가 아니라 히페리온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1915년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는 에세이적 논설문 <프리드리히와 대동맹>을 발표했고, 이어 ≪한 비정치인의 고찰≫의 집필에 들어가 이 작업에 꼬박 2년간 몰두했다. 600쪽이 넘는 대단한 분량의 저작이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프랑스적 민주주의나 문명 개념을 독일의 문화 개념과 대립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방대한 저작 ≪한 비정치인의 고찰≫은 토마스 만의 사상의 한 전환점이자 작가 생활의 요약인 동시에 과거와의 작별이었다. 
1922년 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어린 시절의 책≫을 출간했고, 보수적 정치관을 지양하는 연설문 <독일 공화국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하면서 독일 청년층에 민주주의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화사절 자격으로 국외로 강연 여행을 다니는데, 이때 형 하인리히와의 형제 논쟁이 그 해결점을 찾게 된다. 1924년, 전쟁으로 집필이 중단되었던 대작 ≪마의 산≫이 출간된다. 


 



1926년에 이루어진 토마스 만의 두 번의 여행, 즉 프랑스 수도 파리와 고향 도시 뤼베크로의 여행은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프랑스 지식인 단체는 <인간성의 이념에 근거한 독일의 정신적 경향>에 대한 강연을 위해 토마스 만을 초청했고, 뤼베크에서는 한자동맹 도시의 항구 700주년 기념식에 연사로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이후 2년 동안 성서적 연작소설에 침잠하면서 구약성서 중의 창세기에서 그 소재를 찾은 4부작 장편소설 ≪요제프과 그 형제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29년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대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지만,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이 없었으면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듬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비판한 단편 <마리오와 마술사>를 출간하는데,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어떤 우발적 살인사건이 그려진다. 
괴테 서거 100주년인 1932년에 즈음하여 토마스 만은 <시민시대의 대표자로서의 괴테>, <작가로서의 괴테>라는 강연을 하면서 인류애의 고귀함을 역설한다. 이듬해 1월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자,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후 국외로 강연 여행을 떠나 그대로 망명한다. 스위스 취리히 호반에 거처를 정한 후, 당분간 정치적 활동을 자제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른 망명 문학가들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치 정권에 대한 토마스 만의 첫 공개적 반박은 1935년 4월 니스에서 개최된 ‘지식인연합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유럽이여, 경계하라!>라는 제목으로 그 포문을 열었으며, 연이어 이듬해 6월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인문학과 휴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자유의 살해자에 대한 비판과 강건한 민주주의의 필연성’, 즉 진보에 대한 능동적 옹호가 필연적인 이유를 강도 높게 피력했다. 


 



1933년 이후 4부작 연작소설 ≪요제프과 그 형제들≫의 1, 2, 3부가 각각 <야코프 이야기>, <청년 요제프>, <이집트에서의 요제프>라는 부제로 1∼2년 간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에 대해 빈과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지의 신문 논평들은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독일의 언론계에서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토마스 만은 이제 마지막 4부를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다른 책을 너무 쓰고 싶어서 그 계획을 당분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4부는 1943년에 가서야 <부양자 요제프>라는 부제로 출간되었다. 이 4부작 ‘요제프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토마스 만이 순수 집필에 바친 시간은 1926년 12월부터 1943년 1월까지 13년이었다. 물론 괴테를 패러디한 ≪바이마르의 로테≫와 <뒤바뀐 머리>를 쓴 1936년 8월부터 1940년 8월까지가 제외된 기간이다. 
토마스 만의 세 개의 대표 소설−즉, 20대 후반에 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50대에 쓴 ≪마의 산≫, 그리고 70대에 접어들면서 완성한 ≪요제프과 그 형제들≫−이 세 소설을 토마스 만은 스스로 평가하면서, 처음 것은 독일 소설이었고, 두 번째는 유럽 소설, 그리고 세 번째는 신화를 토대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인간에 관한 노래라고 말하며, 이것은 보다 풍요롭게 전개되어 간 정신의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어느 한 편지에서 밝힌 바 있다. 


 



1940년에 발표된 <뒤바뀐 머리>는 인도 설화의 패러디로, 인도의 전설을 빌려 삶과 정신과의 조화적 종합이라고 하는 이상 실현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에 토마스 만은 히틀러 타도를 위해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서 제안한 <독일 청취자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4년 6개월 동안 매월 한 번 정도 방송을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 정권의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호소한다.
1944년 토마스 만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선거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되며 루스벨트는 그해 11월 대통령에 당선된다.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토마스 만은 사방에서 요청해 오는 사회적 의무와 강연으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그는 아도르노와 토론 및 논의를 계속 진행했는데, 왜냐하면 당시 그는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서의 한 부분, 즉 순수 음악적인 성격의 장을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1947년 초 ≪파우스트 박사≫가 완성된다. 이 작품에서는 1587년의 민중본에서 출발한 파우스트 모티브의 수백 년 전통이 새롭게 파악되고 변형되며 해석된다. 소설은 자서전 형식이며, 독일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삶의 내용을 기록하는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곡가의 삶을 서술함과 동시에 음악적 창조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음악에 관한 소설이지만, 20세기의 독일적 상황과의 연관하에서는 독일인들에 관한 소설이다. 


 



1948년 여름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다시 잡고 ≪파우스트 박사의 성립≫이라는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소설’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을 그는 단 3개월 만에 탈고했고, 이 연대기는 ≪파우스트 박사≫의 생성 과정 및 계획, 형상화에 대해 보고하는 일기다. 
1951년 발표된 ≪선택된 인간≫은 ‘착한 죄인’에 대한 설화의 아이러니적 해석이자 중세에 성립된 오이디푸스 동기의 기독교적 판본의 패러디, 즉 중세문학의 패러디다. 어딘지 모르게 동화의 경계에 있는 듯한 설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모든 의미에서 이 ≪선택된 인간≫이 나의 후기작품”이라고 칭한다. 


 



195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기만당한 여인>에서 토마스 만은 다시 ‘삶’과 ‘죽음’ 사이의 복합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끌어내었다. ≪선택된 인간≫의 발표 직후 토마스 만은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다시 집필하기 시작한다. 이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집필 기간이 무려 50년이라는 점과 자서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토마스 만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토마스 만의 다른 모든 작품이 주도면밀한 가공에 따라 완결되어 출간된 데 반해, 이 작품은 세 번이나 미완의 단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1922년 <어린 시절의 책>, 두 번째는 1937년 암스테르담에서 펴낸 확대판, 세 번째는 1954년 <회상의 제 1부>가 그것이다. 


 

역자 소개

  • 역자 : 장지연
1958년 부산에서 출생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독문학, 조직신학을 공부
중앙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 박사 과정을 마침
최근까지 동 대학에 출강.
번역서로 <새내기 여성학>, <신의 대리자 샤르딕>, <뒤렌마트 드라마 선집> 등 다수와 <원미동 사람들>을 독일어로 공역한 < Die Leute von Wonmidong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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