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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69328 / 28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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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16세기는 아들과 딸의 차별적인 구별이 없었고, 여성의 바깥 출입이 자유로웠으며, 여성의 학문과 예술활동이 장려되었던 시기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 眉巖日記 )>를 중심으로 16세기 양반가정의 일상생활사를 기술한 것이다. <미암일기>는 1567년에서 1577년까지 약 11년에 걸쳐 거의 매일같이 한문으로 기록한 유희춘의 개인일기로, 미암과 부인 송덕봉, 그들의 자녀와 일가친척 및 수많은 노비들이 서울과 시골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이야기체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6세기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꿈과 사랑 등 정신적 생활사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기존 연구에서 소외된 감이 없지 않았던 목욕이나 등불, 화장실 같은 일상 생활의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기술하고 있어, 16세기 역사에 관심 있었던 분들에게 반가운 책이 되겠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 기획의도 16세기 양반 가정의 일상생활사!!!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또 하나의 조선이 있었다. 바로 임진왜란 이전 16세기까지의 조선이다. 16세기 이전의 조선은 성리학적 체계가 사회 전체적으로 완벽하지 않았고,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확정되지 않아서 고려시대의 생활문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련 자료의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의 자료들이고, 그 이전의 자료는 정치적 자료인 왕조실록에 주로 의존하는 바라서, 일반적으로 남존여비가 우리 고유의 전통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최근 생활사 ... 1. 기획의도 16세기 양반 가정의 일상생활사!!!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또 하나의 조선이 있었다. 바로 임진왜란 이전 16세기까지의 조선이다. 16세기 이전의 조선은 성리학적 체계가 사회 전체적으로 완벽하지 않았고,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확정되지 않아서 고려시대의 생활문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련 자료의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의 자료들이고, 그 이전의 자료는 정치적 자료인 왕조실록에 주로 의존하는 바라서, 일반적으로 남존여비가 우리 고유의 전통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최근 생활사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16세기의 조선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조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이 책은 당시의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핵심 자료로 언급되는 를 연구한 저작이다. 미암 유희춘이 십여 년에 걸쳐 거의 매일 작성한 한문일기인 에 나타난 일상생활의 편린들을 방대한 문헌 연구에 의존하여 추적한 결과 우리는 당시의 생활상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낸 소중한 저작을 갖게 되었다. 2. 생활사의 중요성 한국사 연구가 정치사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은 이미 새롭지 않고, 생활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생활사 연구 성과는 그리 흔하지 않은데, 학자들은 무엇보다도 그 원인으로 구체적인 일상 생활에 대한 기초자료 연구 부족을 지적한다. 개인일기나 시문 등 이른바 일차적인 사료로 취급되지 못하던 문헌들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정치사의 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역사적 풍경을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성리학에 기초한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그 정치 이념이 언제 어떻게 각 지방의 생활문화로 정착되었는지는 다만 왕조사를 통해서는 도저히 포착되지 않는 지점들이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정치사를 넘어서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생활사 연구의 중요한 시도로 평가할 만 하다. 몇 시에 출근을 했는지, 용변을 본 후에는 어떻게 처리를 하였는지 등 시시콜콜한 생활 이야기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주고 받는 대화와 그들이 맺는 사회관계 등 문화적 함의가 깊은 내용까지 당시의 생활상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3. [미암일기]란 미암 유희춘이 1567년부터 1577년까지 11년 여에 걸쳐 한문으로 작성한 개인 일기. 유희춘은 1513년 전라도 해남에서 태어나 홍문관 수찬, 무장 현감,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다.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선조 임금이 즉위한 뒤 학문이 해박하다는 이유로 귀양이 풀려 홍문관에 복직하였다. 저서로는 , 등이 있으며, 기대승, 송손, 이황, 이이, 허준, 정철 등과 교유하였다. 자호 미암은 고향 해남의 진산 금강산에 있는 미암바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그의 일기는 조선시대 개인 일기 중 가장 방대하며, 일찍부터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선조실록 편찬에도 중요한 사료로 채택되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조선총독부에서 활자로 인간한 바 있으며, 담양향토문화연구회에서 한글로 번역한 바 있다. 현재 보물 260호로 지정되어 종가인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모현관에 소장되어 있고, 모현관 뒷편에는 미암의 사당이 있다. 4. 픽션과 논픽션의 상생(相生)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의 번역에 그친 작품이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암일기를 토대로 당시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에서 크게 여섯 가지 테마를 뽑아내었다.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부부갈등, 노후생활이 그것인데, 일기 중에서 각 테마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장면을 추출하고, 기존의 방대한 연구를 종합하여 해당 장면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전제한 후, 마치 소설처럼 해당 장면을 복원하였다. 예를 들어서 말이 병이 나서 마의(馬醫)를 불러 침을 놓는 장면이 있는데, 먼저 말이 당시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그 쓰임새와, 말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을 한 후, 마의가 등장하는 장면을 서술하였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만 그 생생함에 있어서 소설의 문법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의 장점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생활사라는 새로운 방향의 역사 연구를 위한 새로운 서술방식인 것이다. 5. 내용 구성 - 관직생활 미암이 함경도 종성에서 충청도 은진으로 유배지를 옮겨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새 임금이 즉위함에 따라 그가 경연관으로 차출되었다는 조서(詔書)가 내려오는데, 이에 따라 미암은 급히 서울 소건청동에 살 집을 마련하여 혼자서 서울로 올라온다. 임금은 그를 정5품 홍문관 교리에 제수하여 경연에서 학문을 강론하도록 하는데, 이로써 그는 20여 년 간의 기나긴 귀양살이를 마치고 1567년 11월 55세의 나이로 다시 홍문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한다. 1장에서 5장까지는 미암이 다시 홍문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1567년 11월부터 부인이 딸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는 1568년 9월까지 그의 관직생활과 관련된 주변 일상을 재현한 것이다. 예컨대 미암의 출퇴근 모습과 경연 모습, 가계의 수입·지출과 경제활동, 관직생활의 필수적인 수단인 노비와 말, 기타 가족을 맞기 위한 새집 마련 등등을 설명과 이야기로 재현하였다. - 살림살이 1568년 9월 덕봉은 딸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담양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창평 수국리에 새집을 짓고 있었다. 말년에 손자들을 데리고 한가롭게 노후생활을 보낼 집이었다. 하지만 미암이 혼자 사는 것을 못내 걱정하던 그녀는 '부인이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갈 뜻이 있다'라는 일기의 내용처럼 벌써부터 서울로 올라오고자 하였다. 6장에서 11장까지는 이처럼 덕봉이 서울로 올라와 각종 살림을 주관하는 모습을 차례대로 재현한 것이다. 예컨대 집안의 살림 점검과 제사를 지내는 모습, 미암의 의복수발과 서책 정리,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앓게 되는 질병까지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 나들이 덕봉은 살림을 주관하면서 틈나는 대로 여가생활을 즐겼다. 매달 한두 번씩은 부녀모임을 가졌고,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으면 매번 나가서 구경하였다. 또 평생 시와 문, 편지 등을 써서 『덕봉집』이란 문집을 남기기도 하였다. 12장에서 15장까지는 1569년 여름부터 미암이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는 동년 9월까지의 일기를 토대로 덕봉의 여가 생활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울러 당시 사람들의 꿈에 대한 관심, 여성들의 화장법과 옷차림, 관리들의 전별풍습 등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 재산증식 마침내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내려온 미암은 본격적으로 재산 증식을 도모한다. 먼저 처가인 담양으로 내려가 인근 지방관에게 식물을 부탁하거나 군사를 요청하고, 본가인 해남으로 내려가 첩과 함께 생활하며 47칸짜리 새집을 건축한다. 16장에서 20장까지는 이처럼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내려오는 1569년 9월부터 홍문관 부제학에 제수되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1569년 12월까지의 일기를 토대로 미암의 재산증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부부갈등 1569년 12월 홍문관 부제학에 제수되어 서울로 올라간 미암은 1570년 내내 혼자서 지루한 관직생활을 계속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덕봉이 보고 싶고, 또 해남의 건축일도 마저 끝내고 싶어서 이 해 11월 또다시 휴가를 요청하여 고향으로 내려온다. 이번에도 그는 담양에 들렀다가 곧 해남으로 내려가 첩과 함께 생활하며 새집을 짓는다. 덕봉은
목차
이른 새벽에 출근하여 임금께 학문을 가르치다/17
봄철 녹봉을 받던 날에/29
마의를 불러 말을 치료하다/39
노비는 양반의 수족이라/45
중부 장통방으로 이사하다/55
부인이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다/65
비로소 서울 살림을 주관하다/73
자기 조상의 제사는 자기가 지내야/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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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로 무러나 한가롭게 지내다/229
며느리 김씨가 본가로 돌아가다/237
큰손자 장가가는 날/247
생일을 맞아 집안잔치를 열다/257
후일담/2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