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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의 꿈 진주성전투 총대장 김천일 의병장 이야기

정찬주 저 | 여백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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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946070 / 372쪽 210 x 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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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충과 효를 두루 갖춘 의병장 나주 출신 김천일 의병장은 임진왜란 역사에 있어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임금을 호위하겠다는 목적으로 거병한 조선 최초의 근왕의병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고장을 지키자는 향토의병은 많았지만 근왕의병은 최초였던 것이다. 두 번째는 조실부모하는 등 온갖 역경을 극복한 김천일 의병장이 문무를 겸비함은 물론 충(忠)과 효(孝)를 두루 갖춘 의병장이었던 점이다. 조선의 혼을 알고 싶다면 김천일을 보라! 김천일 의병장은 중종 32년(1537)에 나주 흥룡마을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출생한 지 이틀 만에 모친을 잃고 반년 만에 다시 부친마저 여의어 외조부모 밑에서 성장한다. 이후 15세 때 처음으로 담양에 사는 숙부를 찾아가 글을 배운다. 19세 때는 전북 태인의 이항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수학(修學)을 한다. 37세 때까지는 나주 극념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초야의 인재로 발탁되어 군기시주부가 되고, 52세 때는 수원부사가 된다. 그러나 토지개혁을 추진하다가 왕실 권력층의 비방과 탄핵으로 파직당하고 나주로 귀향한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이에 김천일 의병장은 나주에서 선조 25년(1592) 5월 16일 창의해서 6월 3일 출병한다. 수원 독성산성에서 왜군을 맞아 수성하고, 용인의 금령역 왜군을 공격하여 승리한다. 이어서 강화도로 들어가 양화도전투와 한양왜군 교란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남하하는 왜군을 추격하여 진주성에 이른다. 진주성에 입성한 까닭은 진주는 호남의 관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0만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남강에 투신, 순절한다. 왜군 역시 큰 타격을 입고 부산 등으로 후퇴한다. 결과적으로 진주성전투에서 총사령관을 맡았던 김천일 의병장은 곡창지대인 호남과 조선을 지켜낸다.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끄는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소설 말미에는 김천일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과 관군, 성민 모두가 사즉사(死?死)의 절박한 심정으로 왜군에 맞섰던 진주성 전투가 자리한다. 작가 정찬주는 《영산강의 꿈》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과거의 치열했던 진주성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충(忠)을 몸소 보여준 김천일에 대한 기억을 아로새기는 일은, 여전히 갖은 수난들로 요동치는 국제 상황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지침을 줄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찬주
저자 : 정찬주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국어교사로 잠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스님에게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았다.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2002년부터 텃밭을 일구며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대표작으로 대하소설 인간 이순신을 그린 《이순신의 7년》(전7권) 법정스님 일대기 장편소설《소설 무소유》 성철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전2권), 4백여 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며 쓴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전3권)을 발간했다.
장편소설로 《광주아리랑》(전2권) 《다산의 사랑》 《천강에 비친 달》 《칼과 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천년 후 돌아가리-茶佛》 《가야산 정진불》(전2권) 《나는 조선의 선비다》(전3권)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행복한 무소유》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법정스님의 뒷모습》 《불국기행》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정찬주의 茶人기행》 등이 있다. 동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를 발간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나주의병군 출병하다
김천일은 노란 대장기를 든 기수 뒤에서 군마를 타고 지휘했다. 이경록 나주목사가 내어준 젊은 말이었다. 평생 병마에 시달려온 몸이 이상할 정도로 가뿐했다. 의병들이 김천일을 볼 때마다 죽창으로 하늘을 찔러댔다. 김천일은 뿌듯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말이여. 니덜의 칼이나 창이제 선비덜의 붓이 아니여.’
금성관 뜰은 3백여 명의 의병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막둥이가 끌고 온 황소도 큰 눈을 껌벅거리며 꼬리를 휘휘 저었다. 김천일은 측근참모들만 데리고 객사 안으로 들어가 먼저 향을 피웠다. 그런 뒤 참모장수들과 함께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향해 4배를 했다. 참모장수들은 일어나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김천일은 한동안 객사 마룻바닥에 이마를 대고 빌었다.
‘임금님께서 몽진 길에 오르셔부렀으니 어찌 원통허고 분허지 않겄사옵니까. 신하로서 불충한 맴이 한없이 클 뿐이니 하루 빨리 북진해서 한양을 되찾겄사옵니다. 신은 구차히 살기를 바라지 않는바 임금님을 위해 붓을 던져불고 칼을 들었사옵니다. 이제 충의로써 죽을 자리를 찾았으니 뭣이 두렵겠사옵니까.’
<나주의병군 출병>(151쪽)

전공을 올리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자 왜군은 더 이상 공격을 못하고 물러섰다. 조총을 허공에다 쏘고 있었다. 퇴각하라는 총소리였다. 바로 그 순간 성문 건너편 산자락에 붙어 있던 매복군이 쏜살같이 달려나와 백병전을 벌였다. 김천일의 작전대로 그와 동시에 성문이 열렸다. 무너진 둑의 격류처럼 의병들이 와아와아!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창끝이 번쩍였다. 왜군들이 칼에 베인 나뭇잎처럼 뒹굴었다. 왜군 수십 명이 성문 앞에 널브러져 의병들 발에 짓밟혔다. 퇴각하는 왜군들이 시신을 수습해 갔지만 버리고 간 것만도 열다섯 구였다.
전투는 정확하게 유시에 시작해서 술시에 끝났다. 김천일은 왜군에게 노획한 것들을 성 안으로 나르게 했다. 왜군 갑옷, 칼, 투구, 군마, 사다리 등을 임시군막 앞에 전시하여 오가는 의병들이 보도록 했다. 열다섯 개의 왜군 수급은 한 쪽 귀만 잘라 소금에 절였다. 왜군의 공격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행재소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두 번의 승리>(224-225쪽)

마침내 한양에 입성하다
나주의병군은 도성 안으로 들어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부터 했다. 거리마다 솥단지를 걸고 죽을 쑤어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줄을 섰다. 솥단지 하나에 줄은 오 리나 되었다. 3백여 명의 의병들 모두가 아침나절 내내 죽을 쑤느라고 용변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김천일이 있는 군막으로 양민들에 의해 관원이 붙잡혀 오기도 했다. 명군 뒷바라지를 한다고 악랄하게 수탈한 관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피난길에서 돌아와 되찾은 식량을 빼앗아 가는 세리(稅吏)도 있었다. 김천일은 그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백성을 돕지는 못할망정 으째서 괴롭히는가!”
“세금을 안 내고 도망쳤던 자이옵니다.”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했거늘 으쩌자고 세금타령을 헌단 말인가!”
김천일은 세리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가 거둬들였다.
“이 칼은 니 모가지를 베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왜적의 모가지를 베고자 날이 시퍼런 것이다.”
세리가 벌벌 떨면서 뒷걸음질하다가 엉덩이에 불이 붙은 듯 사라졌다. 원성이 자자하던 관원들도 붙잡혀 와 김천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김천일은 그들을 나무랐을 뿐 모질게 벌을 주지는 않았다.
<한양백성을 살리다>(319-320쪽)

남강에 투신, 순절하다
왜군이 촉석루 둔덕 머리까지 나타나 길길이 위협하고 있었다. 김천일이 호상에 앉은 채 중얼거렸다.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왜적덜에게 더립힐 수는 읎제. 나는 부끄럽지 않게 죽을 것이다.’
이제는 왜군의 총알뿐만 아니라 화살까지 촉석루로 날아왔다. 김천일을 호위했던 나주 출신의 아병(牙兵)들이 창과 칼을 들고 가깝게 다가온 왜군들과 백병전을 치렀다. 왜군의 시신들이 촉석루 뜰을 덮었다. 그래도 조선관군과 의병군들의 최후방어선은 차츰 무너지고 있었다. 김천일이 김상건을 불러 나직이 말했다.
“상건아, 왜적이 내 몸땡이에 손을 대는 것은 참을 수 읎는 일이어야. 왜놈에게 붙잡히느니 나는 저 남강에 내 몸땡이를 맡길 것이다. 니는 으쩔 것이냐?”
“아부지, 거그가 으디던지 다리가 불편허신 아부지를 부축허고 따라가야지라우.”
“내 아들이로구나. 우리덜이 어처케 왜놈덜에게 붙잽히는 수모를 당허겄느냐?”
김천일은 김상건의 부축을 받으며 촉석루를 내려섰다. 뒷일은 최경회에게 부탁했다.
“최공, 비록 이 못나고 병든 몸땡이는 사라지겄지만 내 넋은 남강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을 것이요.”
“김공, 우리덜 넋이사 곧 만날 것인께 지달려부씨요.”
“그럼, 몬자 가서 지달리겄소.”
김천일은 최경회와 작별하자마자 두 팔을 벌려 김상건을 껴안았다. 그런 뒤 곧바로 남강에 몸을 던졌다. 김천일 부자를 받아들인 남강은 더욱 도도하게 흘렀다. 그러자 양산숙도, 김천일을 수행해 왔던 아병들도 몸을 날렸다. 최경회가 어흑어흑 소리 내며 눈물을 흘렸다. 입술을 깨물어 피가 흘렀다. 김천일, 최경회와 더불어 삼장사(三壯士)로 불리던 고종후도 몸을 날렸다. 장수들이 전복 자락을 휘날리며 낙엽처럼 날리더니 사라졌다.
<일월처럼 빛나리>(364-365)

목차

작가의 말_ 충과 효를 두루 갖춘 의병장

극념당 / 좋은 인연들 / 이별주 / 사나운 봄비 / 왜왕의 야욕 / 왜군 침략 / 동래성전투 /
군량미 확보 / 통곡 / 나주의병군 창의 / 나주의병군 출병 / 삼도근왕군 / 충의를 생각하라 /
선조의 피난 / 충의로운 죽음 / 독성산성 / 두 번의 승리 / 충절과 의리 / 강화도 이진(移陣) /
행궁과 분조 / 선무작전 / 양화도 전투 / 상소문과 편지 / 이광주 순절 / 한양백성을 살리다 /
공성전과 수성전 / 진주성 전투1 / 진주성 전투2 / 일월처럼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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