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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테마소설 > 대하/역사/전쟁소설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우리 민족은 대대손손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특히 진주는 두류산의 넓은 품이 내어준 풍부한 물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토지는 기름지고 인심은 후덕했다. 거기에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이 더해지면서 진주 사람들은 두류산처럼 품이 넓고 의로워 임진왜란 때는 가차 없이 왜적들에게 대항했고, 부패한 권력에는 스스럼없이 목숨까지 던지며 저항했다. 그러나 부패한 권력은 바뀌지 않았다.
역사이래 민초들의 외침을 들어 준 지도자는 없었다. 임금이 바뀌고 왕조가 사라져도 늘 그랬듯이 역사는 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민초들은 살아남아 다음 세대를 이어나갔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나는 이 끈질긴 민초들의 삶을 소설 1862,에 담고 싶었다.
어머니의 꺽진 넋두리가 날실처럼 베틀방에서 새어 나왔다. 땅뙈기 한 평 없는 양반집에 시집와 애옥살이로 오 남매를 키웠으니 지칠만했다. 유계춘은 베틀방을 힐끗 보았다. 베릉빡(바람벽)에 삐져나온 지푸라기가 거년스럽다. 광 옆 자투리땅에 대쪽을 엮어 진흙을 발라 까대기를 지었다. 지금이야 동짓달이라 추위에 견딜 만해도 덕천강이 새파랗게 얼어붙으면, 안채야 남향이라 그나마 따뜻해도 모로 앉은 베틀방까지 햇볕이 들 리 없어 어머니도 겨울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수익의 밭에 보리가 된서리를 맞았는지 시퍼렇다. 서릿발 때문인지 논바닥이 버름했다. 밟아주지 않으면 내년 보리농사도 글러 보였다. ‘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라며 서안을 물리며 아전들의 갓걸이 놀음을 비아냥거리던 아버지가 설핏했다. 어렸을 때여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지금에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죄다 도망가고 마을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껏해야 격쟁이니 산호 따위밖에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망궐례 때 격쟁이라도 하려면,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목사나 우병사 앞까지 나아가기도 어려워 유계춘은 철시를 염두에 두었다.
내평들을 지나 덕천강을 건넜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한낮 햇볕 때문인지 숙숙하게 들렸다. 밤새 내린 눈으로 내평들은 하얗게 햇살을 산란시켰다. 찔레 넝쿨에서 영실을 쪼아 먹으려던 참새 떼가 미륵산으로 날아올랐다. 덕천강 강변에 모래밭을 개간한 땅에 목화 대가 앙상하게 남아 지난해 소출을 가늠하게 했다. 지난여름은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 오는 바람에 목화 수확이 줄어 오승포는 고사하고 이승포 공납도 어려울 거라고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집집이 두 냥씩 추가하면 되겠지만, 도결이니 통환이니 소문도 무성해 함부로 나서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수년간 군포 공납이 지체되어 더는 미뤄달랄 수도 없었다. 목화 수확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댔다가 인징이니 족징이니 마을이 또다시 시끄러워질 것이다.
정지우 생각이 옳은 것 같았다. 남면이라도 마을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다. 내평리만 해도 그렇다. 이명윤과 정자약, 그리고 정내명의 의견은 유계춘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등소를 하자는 축이고, 등소 따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유계춘의 의견과 팽팽하게 맞섰다. 이웃 마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잣거리를 철시해야 장사꾼들과 도붓장수들도 참여할 것이다. 정지구의 말대로 처음부터 철시하자고 방을 붙이면 우병영에서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러잖아도 집을 들쑤셔놓았는데, 당장 병사를 풀어 주모자를 잡아들이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작하기도 전에 일을 그르칠 수 있었다.
“동지들 유계춘이 우병영 진무청 옥사에서 풀려나 곧바로 이곳으로 왔소!”
이계열이 초군들에게 유계춘을 소개하자 깜깜하던 수청거리에 횃불이 순식간에 타올라 대낮처럼 밝았다. 시위꾼들은 머리에 두건을 매고 농기구를 들었다. 낫, 쇠스랑과 곡괭이 심지어 지겟작대기까지 들어 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횃불 넘어 두류산 천왕봉이 내려다보았다.
농기와 영기가 저잣거리에 펄럭거렸다. 농사지대본, 천하대장군, 마을을 대표하는 각양각색의 깃발들이 하늘에 나부꼈다. 시위꾼들의 노랫소리도 하늘 높이 그리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온 세상을 다 덮을 것처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유계춘은 가슴이 울컥했다. 억압받지 않아도 열심히 농사지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거로 여겼다. 그러나 늘 배고파 허덕였다. 배곯아 죽은 부모를 등에 업고 깊은 산속에 내다 버려 굶어 죽어가는 처자식을 보았을 것이다.
박규수는 진주까지 오는 길에 여러 고을을 들러 그곳 상황도 함께 점검했다. 죄를 짓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뢰배들을 보고 놀랐다. 아전들과 목민관이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횡포를 일삼으니 농민들이 국법을 두려워할 리 없었다. 되려 대들었다.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었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농민들을 탓하기에는 관리들이 너무 썩었다. 매관매직이 저들을 분노하게 했을지언정 목숨을 내버릴 만큼 무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분명히 지식이 있는 자가 저들을 충동질했을 것이다. 조신 출신이나 은거 지식인의 사주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행태는 집단 봉기이며, 고을 수령을 감금하고 재산을 빼앗았다. 그것도 모자라 인명을 살상했다. 그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이는 농민들이 스스로 깨우쳐 저지른 소행은 분명 아니었다. 봉기는 농민들이 했지만, 그 뒷배를 찾아 반드시 벌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당장 조사하기는 어려워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작가의 말
프롤로그
1부, 천왕봉을 바라보다 · 15
2부, 두류산에 눈이 내리다 · 149
3부, 얼어붙은 덕천강 · 259
4부, 광풍이 몰아치다 · 353
5부, 들불 · 461
에필로그
해설 _1862년, 그 해 임술년 / 이병렬 · 533
일러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