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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3116047 / 229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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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류모세 선교사와 함께 떠나는 《열린다 비유》두 번째 여행! 아버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돌아온 탕자의 비유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반전! 예수님 버전의 ‘PD수첩’을 통해 밝혀지는 진짜 탕자 이야기를 만나보자. 탕자의 아버지는 왜 순순히 유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탕자가 간 먼 나라는 어디일까? 첫째 아들은 동생의 귀향 소식에 왜 폭풍 분노를 보였을까? 열린다 비유 시리즈는… 예수님의 비유는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온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쳐 ... 류모세 선교사와 함께 떠나는 《열린다 비유》두 번째 여행! 아버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돌아온 탕자의 비유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반전! 예수님 버전의 ‘PD수첩’을 통해 밝혀지는 진짜 탕자 이야기를 만나보자. 탕자의 아버지는 왜 순순히 유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탕자가 간 먼 나라는 어디일까? 첫째 아들은 동생의 귀향 소식에 왜 폭풍 분노를 보였을까? 열린다 비유 시리즈는… 예수님의 비유는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온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쳐 왔다. 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1/3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데, 비유의 대부분이 성서시대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관, 윤리 등을 뒤집어엎는 충격 요법과 깜짝쇼를 즐겨 사용하신다.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치는 이 세상을 한바탕 흔들고 뒤집어엎은 후에 비로소 사랑과 공의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신다. 예수님은 이내 비유를 듣는 청중들에게 회개와 구체적인 결단을 촉구하신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청중들에게 비유의 이해를 돕는 주석서나 해설집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생활 속의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이 땅의 그것과 넌지시 비교하면서 드러내셨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 이미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유를 읽는 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1세기 청중들이 공유하던 공감대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춘향전이나 심청전을 현대인에게 공연할 때 ‘변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배경에 대한 변사의 친절한 설명은 현대인이 공감하고 이해하기 힘든 춘향전과 심청전의 현장 속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셨던 성서시대와 현대인의 간극을 메워주는 변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독자들은 비유의 보화를 파는 즐거움을 경험할 것이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그동안 탕자의 극적인 회심 과정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바람에 둘째 아들의 존재감만 지나치게 부각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분명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교훈과 메시지에서 벗어나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 류모세는 《열린다 비유-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다루면서 비유에 등장하는 세 명의 캐릭터, 즉 아버지,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이야기를 균등하게 안배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만이 예수님께서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 주시고자 한 하나님 나라가 잘 드러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유형의 탕자를 대표한다. 많은 사람들은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오해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분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자기의 뜻과 계획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한편 다른 부류에 속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첫째 아들처럼 하나님을 종교 생활로 섬기며 그분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분의 커다란 사랑을 오해한다. 이들은 유형만 다르다뿐이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탕자’들이다. 우리에겐 새로운 거듭남이 필요하다. 이것이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호소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책속으로 추가 수치를 넘어서… 멀쩡히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당당히 유산을 달라고 요구한 둘째 아들의 행위는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져 나갔고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은 순식간에 아버지의 행동에 모아졌을 것이다. 비유를 듣는 청중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그 호기심의 대열에 동참했다. 과연 아버지는 이 되바라진 아들을 어떻게 치리할 것인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둘째 아들은 공개적인 수치와 함께 심하면 돌에 맞아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신 예수님은 이곳에서 청중의 기대와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놀라운 반전을 시도하신다.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눅 15:12). 아버지는 놀랍게도 그토록 반항적인 아들의 요청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당시 사회에서 이 아버지는 자신의 가부장적 권위를 털끝만큼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둘째 아들의 반항보다 청중을 더 충격에 빠뜨려 곳곳에서 절망과 울분이 짙게 담긴 장탄식이 흘러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이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무척추동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왜 이 아버지는 막강한 가부장적 권위를 이용해 망나니 같은 아들을 따끔하게 호통이라도 치지 않는단말인가? 이 아버지는 과연 바보인가? p. 89-90 첫째 아들의 무섭고 괘씸한 침묵 당시 사회에서 장남에게 주어진 기대와 책임 그리고 특권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첫째 아들의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문제를 간파할 수 있다. 오늘날 중동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1세기 이스라엘 사회에서 양자 간의 극단적인 충돌은 제3자에 의해 중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가정 내에서 발생한 이런 문제에서는 장남이 최우선적인 중재자로 나설 것이 요구되었다. 둘째 아들의 되바라진 요구를 듣던 1세기 유대인 청중의 눈은 일제히 첫째 아들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첫째 아들은 동생과 아버지가 정면충돌 하는 상황을 미연에 막기 위해 중재자로 나서야 했다. 즉 아버지를 잠시 뒤로 빠지게 하고 동생이 아버지에게 사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장남인 첫째 아들의 당연한 책무였고, 이것이 비유를 듣던 청중이 지극히 당연하게 기대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는 침묵했다. 첫째 아들은 동생의 반항 때문에 아버지가 섬뜩할 정도로 공공연한 굴욕을 견디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아버지와 동생의 깨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비유에는 어떤 노력도 했다는 언급이 없다. 또한 동생이 집을 나간 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동생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는 구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이런 첫째 아들의 모습은 청중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이것은 당시의 문화에서 볼 때 장남에게 요구된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것으로 확실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p. 105-106 서프라이즈하고 어메이징한 아버지 탕자 아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 가장 진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비유를 듣던 1세기 유대인 청중에게 주는 이미지는 그다지 산뜻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행동은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한 것이 없었다. 품위도 없고 부끄럽고 더 나아가 풍속을 어지럽히는 행동이었다. 비유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분명 1세기 이스라엘 사회의 문화적 현미경으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이 아버지는 한마디로 ‘신기하고 얼떨떨하고 어메이징’한 아버지였다. 청중은 이 아버지가 여전히 바보요, 최소한의 명예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얼토당토않는 행동을 한 것일까? 탕자 아들의 귀환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방식은 당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아들을 향해 쏟아부을 수 있는 온갖 조롱, 비아냥, 욕설, 심지어 폭행까지도 아버지인 자신에게로 돌려놓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그러고는 무릎 위까지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마치 단거리
목차
프롤로그 성경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예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 성경 구절
01.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예수님을 비난했을까?
성서시대의 테이블 매너(식탁 교제)
02. ‘돌아온 탕자의 비유’, 과연 비유?의 적절한 제목인가?
세 명의 주인공: 아버지, 형 그리고 동생
03. 둘째 아들을 왜 ‘탕자’라고 하는가?
성서시대의 재산상속법
04. 아버지는 왜 순순히 유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하나님은 힘없는 전능자(?)
05. 첫째 아들을 왜 ‘탕자’라고 하는가?
성서시대 장자의 위치와 본분
06. 탕자가 간 먼 나라는 어디일까?
이스라엘 땅에 누비이불처럼 들어와 있던 이방인 도시들
07. 탕자는 왜 갑자기 마음을 돌이켰을까?
돼지치기와 쥐엄열매가 주는 상징들
08. 탕자는 왜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여겨 달라고 했을까?
참된 회개에 대한 가장 생생한 표본
09. 아버지는 왜 먼저 달려가 아들에게 입 맞추고 포옹했을까?
성서시대, 목숨보다 중히 여긴 수치와 명예
10. 아버지는 왜 살진 송아지를 잡는 성대한 잔치를 배설했을까?
신발, 제일 좋은 옷, 반지 그리고 살진 송아지가 주는 의미
11. 첫째 아들은 동생의 귀향 소식에 왜 ‘폭풍 분노’를 보였을까?
첫째 아들, 불평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대역
참고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