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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울다

이채형 저 | 도화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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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526289 / 296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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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소설집 
「동무」(1999) 「사과나무 향기」(2011) 「까마귀 울다」(2021) 
장편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2006) 
시집 
「나비 문신을 한 사람」(2015) 

머리말

작가의 말
수록 작품은, 한 편을 빼고 모두 원고지 30장 안팎의 분량이다. 단편소설로는 길이가 짧은 편이다. 소설의 서사와 구성을 가능한 한 단일하게 단순화시켜 보자는 목적으로 시도해 본 것이다. 근래의 단편이 길어진 데 대한 반작용도 없지 않으나, 그보다는 단편의 요체를 외면적인 길이보다 내용 면의 단일 서사에서 찾은 결과이다. 그런 뜻에서 ‘단편’보다는 ‘단편’에 가깝다. 이는 내 나름대로 단편의 한 형태를 완성시켜 보려는 작업이다.

 


 

책 속에서

언제부터였을까, 그날의 아픔과 두려움이 되살아난 것은. 청솔 아래 쓰러져 있던 장끼와 비탈밭 가에 잠들었던 형의 모습이 수시로 꿈속에 나타났다. 식은땀에 젖은 채 눈을 뜨면 다시는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기억의 촉수가 이렇게도 집요할 줄은 몰랐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죽음의 원형이면서, 언젠가 나에게 닥칠 처음이자 마지막 죽음의 상징이었다.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그 고통은 밤의 안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때, 문득 경주 친구가 생각났다. 그가 비약을 완성했는지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그는 한 알의 비약으로 모든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어쩌면 기억의 고통도 그 범주에 들지 모른다. 나는 친구를 찾아 고도로 내려갔다. (「비약」 중에서)

햇살 속을 걸어가며 그는 생각했다. 멀쩡한 구두가 왜 버려졌을까? 몇 가지 유추를 해보다가 문득 구두 주인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그도 봄비 속을 걸어가 엽서를 띄워 본 사람일까? 그러다가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에는 누가 죽으면, 그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나 물건들을 태워 없앴다. 태우기 성가셔서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조금도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 구두를 남긴 채 떠나고, 그 구두를 생전에 알지도 못한 누군가가 우연히 발견하고 이어 신는다. 그것도 계절의 순환만큼이나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봄의 순유」 중에서)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이사가 마무리되고, 경비실 옆 빈 공터에 버리고 간 세간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사를 하면 꼭 저렇게들 남기고 갔다. 그 버림받은 세간들을 둘러보다가 이번에야말로 까무러치듯 놀라고 말았다. 소파와 침대, 옷장과 함께 버려져 있는 화장대 앞에 까마귀 한 마리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지상에 내려온 까마귀! 햇살이 비낀 환한 거울 속에 까만 새의 전신이 걸려 있었다. 땅 위에 내려앉은 까마귀는 날아다닐 때보다 엄청나게 커 보였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율이 일었다. 그 순간, 온 아파트 단지가 한 마리 까마귀에게 점령당한 느낌이었다. 그 음험한 점령자를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단호하고 강인해 보였다.(「까마귀 울다」 중에서)

어느 순간 아작, 하고 조기의 등뼈 씹히는 소리가 났다. 아래위 어금니 사이에서 뼈가 부서지며 나는 소리였다. 그것은 무자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내의 등뼈가 다시 부러지는 듯한 착각에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그 모든 우연과 두려움의 끝에 아내의 부서진 등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아내의 등뼈는 다시 옛날로 돌아올 수 있을까! (「등뼈」 중에서)

그의 낭송은 시의 운율이나 영탄을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거나 깔지 않았다. 별다른 감정의 표출이나 제스처도 없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시의 세상이 아니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도 흔하지 않다. 그 때문에 그가 시집에다 낭송의 방법을 선택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원과 구민회관 앞에서 보았던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그가 낭송하는 시의 한 구절이 내 귀에 날아와 박혔다.

꽃도 제 몰골이 추하면 지고
바람도 제 길이 아니면 잦아들고
별도 제 일생이 다하면 떨어지는 법이다 (「무명씨의 책」 중에서)

그러나 그가 비명을 지를 뻔한 진짜 이유는 그 연극인의 은발 때문이었다. 비교하는 것도 치가 떨렸지만, 교주의 은발은 자신의 은발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별안간 오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견딜 수 없는 모욕감에 휩싸였다. 그것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한 개인의 자부심을 이렇게도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모든 은발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는 머리칼 올올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온몸이 떨렸다. (「시인의 은발」 중에서)

초등학교 한 학년이었던 그 친구는 공교롭게도 별명이 추자였다. 그가 그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우리에게 추자를 나누어준 게 첫째 이유였고, 다음은 그의 생김새 때문이었다. 머리가 뾰족한 데다 얼굴색이 새까맣고, 인상이 매우 야무졌다. 그리고 키는 작았지만 정말 추자처럼 단단한 몸에 성격 또한 당찼다. (「추자」 중에서)

그 후 삼촌은 서울엔 다시 가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한 번 더 연락이 오고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 무렵 삼촌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삼촌은 밤에만 밖으로 나왔다. 낮엔 종일 방에 박혀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마당으로 나왔다. 삼촌은 밤이면 나와 함께 마당의 평상 위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삼촌이 와서 마당 위 하늘의 별이 더 풍성해진 것 같았다. 누워서 바라보면 별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별과 같이 살다」 중에서)

 

 

목차

Ⅰ하늘
비약 ·9
봄의 순유 ·까마귀 울다 ·42
등뼈 ·56
사랑의 전설 ·71
둘레길 돌다 ·85
모년모월모일 ·99

Ⅱ 땅
무명씨의 책 ·115
시인의 은발 ·131
레 미제라블 ·144
시인과 덩굴손과 버려진 발 ·158
키다리와 작다리 ·172
헬스클럽 ·184

Ⅲ 사람
세 사람의 벤허 ·199
추자 ·212
방귀도사 ·225
고시생 ·239
적토마 ·253
별과 같이 살다 ·265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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