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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안타깝게 생을 놓쳐버린, 죽은 자의 소리 없는 절규 그럼에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산 자의 비애 사람들은 그런 재앙에 대해 흔히 말하곤 했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을 거야.” 알렉 주위에서 지옥 같은 폭발이 일어나던 순간, 아마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는 무언가 느끼기도 전에 소멸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 사건은 그들 누구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불은 재가 되고 흙이 되고 풀이 되고 꼬리풀과 주홍별꽃이 되어 사라졌다. 다 끝났다. _본문 230쪽 알렉은 올 때마다 점점 더 오래 머물렀다. 이저벨은 알렉이 그녀의 집에서 보낸 시간의 조각들을 곱씹어보았다. 그 조각들을 모두 합치는 게 가능하다면, 그래서 어떤 모양이 되는지 볼 수 있다면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기억도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있다보면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처음에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그녀 안에 들어와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알렉과 함께 일몰을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 평온한 시골의 농장주택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는 여인, 그녀였던 여자…… 어느 날 알렉은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 아예 없다면 어떨까?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제나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나는 항상 당신에게 갈 거야.” 또다른 어느 날, 알렉은 유난히 불안하고 두려워 보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킨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밤 작전이 끝나면 곧장 당신에게 갈게. 창문을 두드릴게. 잠들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알렉은 그 말을 남긴 채 떠났고, 이저벨은 집 전체가 그녀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그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렉이 자신을 보러 올 것이고 자신은 또다시 다른 삶으로 미끄러져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들로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고 다른 삶의 리듬에 맞춰 몸이 움직일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가 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단 그가 오면 그녀 자신이 다른 여자가 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 말이 몇 주 동안 이저벨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대신할 사람들. 그러나 죽은 자들 없이도 세상이 잘만 굴러간다는 건 오싹한 일이었다. 죽은 자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너무 많은 세월, 인생을 놓쳤다…… 그러니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흘러간 세월은 그들이 놓친 바로 그 세월이었다. 그들은 되찾고 싶을 것이다…… _본문 211쪽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 그것이 있었다. 이제 거의 표면에 떠올라 있었다. 그녀가 안고 있는 생명, 그는 다시 가질 수 없는 생명. 다른 수많은 사람들, 세상은 그들 없이도 채워졌고 계속되었다. _본문 226쪽 알렉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저벨의 머릿속을 깊이 파고드는 기억은 누구의 것일까? 그녀가 세들어 살게 된 집과 벽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군복 외투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국 왕립문학회 회원이자 영국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한 시인이자 소설가 헬렌 던모어의 『외투』는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긴장감이 감미롭게 물결치는 고스트 스토리이자, 열정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로맨스가 있는 역사소설이다. 던모어는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전쟁의 상흔으로 신음하던 영국의 시대상과 이제 막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던 젊은 부부의 모습을 통해 신혼의 단꿈이 지나간 뒤의 허망한 현실, 평온한 일상의 보이지 않는 균열 위로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 안타깝게 생을 놓쳐버린 인간의 애절한 절규, 그럼에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남은 자의 비애를 다채롭게 그려낸다. 접
그들은 두 달 전 결혼했다. 여기는 두 사람의 첫 살림집이었다. 그전에는 필립의 부모가 사는 좁은 집에서 영원처럼 느껴지는 팔 주 동안 함께 살았다. 침대 스프링은 채찍처럼 쩍쩍 소리가 나고 변기 물을 내리면 그 아래 물속에 갇혀 사는 용이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필립의 부모는 이저벨이 어머니, 아버지라 불러주기를 원했다. 마치 그녀와 필립이 아직도 어린애인 것처럼, 그리고 두 사람이 남매지간인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다 자란 어른이었다. 필립은 첫 직장을 구했다. 이저벨은 가정을 꾸릴 것이다. _본무 17쪽
위층에서 집주인이 기침을 했다. 너무 가까워, 이저벨은 생각했다. 한 집을 나누어 세를 놓았지만 그 안의 삶들은 별로 구분되지 않았다. _본문 21쪽
가르치는 일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녀가 속으로 말했다. 아니면 공무원 시험을 볼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넌 필립과 결혼하는 걸 선택했지. _본문 22쪽
필립은 케이크를 잘 먹었고 빵 굽는 냄새도 좋아했다. 그는 셋집 문을 열자마자 말할 것이다. “이 맛에 집에 오지.” 아직 그녀는 집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듣기 좋았다. _본문 34쪽
자기 자신을 지칭하기엔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들이 있지, 이저벨은 생각했다. 아내. 어머니. 그러나 필립은 평생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 자신이 그와 결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_본문 66쪽
그의 얼굴은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필립은 자기 인생에 만족해,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야, 그녀는 생각했다. ‘만족’은 정확한 단어가 아니었다. 필립은 자기 인생에 속해 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었다…… 물론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의 바깥에 있는 것 같을 때가 너무 많았기에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_본문 81쪽
진한 파란색, 거의 남색인 그의 눈은 너무 많은 걸 보아왔기에 그 무엇에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젊었다. 그러나 눈은 그렇지 않았다. _본문 110쪽
그가 집에 오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지? 처음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선명하고 밝은 부분에 남아 있었다. 그가 창문을 두드린 것, 그녀의 소심함, 그리고 유리창 너머에 있던 그의 모습. 그러나 머릿속의 나머지 부분은 그녀 인생 바깥에서 온 기억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마구 밀려드는 기억들이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작고 밝은 부분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알렉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_본문 117쪽
필립을 생각하니 그가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아주 멀게 느껴져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또는 그가 안개 속에 파묻힌 것 같았다. 그래, 그거야. 동쪽에서 몰려오는 안개. 그렇게 멀리서 오는데도 바다 냄새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안개. 그런 안개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_본문 125쪽
이제 그녀는 알렉과 처음 만났던 때가 기억났다. 그 기억은 아주 또렷해지는 반면, 셋집과 필립은 점점 뿌옇게 흐려지고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기억이기도 했다. 농장 주택, 그곳에서의 삶, 그녀였던 여자. _본문 135쪽
그는 때때로 어떤 표정을 보게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면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냥 시선을 피하고 사물함에 옷을 집어넣거나 뭐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죽을상. 그녀는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냥 죽을상이었다. 돌아오지 못할 대원은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그들 안의 무언가는 알았다. 그리고 그 표정을 흘깃 보기만 해도 불운이 따랐다. _본문 149쪽
이렇게 완전하게 현존하는 사람이 어떻게 몇 시간 후에 생명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보다 더 쉬운 일도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녀도 알게 되었다. _본문 151쪽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해.” 고모가 말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걸 원할 거야.” _본문 178쪽
그는 떠났다. 스물일곱번째 작전이었다. 이번 작전을 마치고 세 번을 더 하면 복무가 끝난다. 이제 시작되었다. 알렉은 쪼개진 시간의 틈 밖으로 기어나갔다. 스물여섯번째 작전과 스물일곱번째 작전 사이, 그 틈에서 그는 이저벨을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났다. 너무도 가엾은 케이티 대원들은 이제 대도시로 출격을 나갔다. _본문 182쪽
새로운 곳에 이방인으로 가면 그게 문제였다. 사람들의 과거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_본문 198쪽
외투 9
옮긴이의 말 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