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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320496 / 360쪽 113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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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시오랑과 프랑스어 시오랑을 시오랑으로 만들어준 것은 프랑스어다. 모국어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 작업하면서 시오랑의 문체는 완전히 바뀐다. 그는 자신의 프랑스어 사용을 ‘제2의 탄생’이라고 불렀다. 사유의 내용이나 철학적 추구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으나 문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시오랑은 그것에 대해 “내가 쓰는 것 안에 변화는 없다. 나의 첫 번째 책은 이미 암묵적으로, 내가 그 후에 말한 것을 모두 담고 있다. 문체만이 다를 뿐이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외국어 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짧은 문장을 선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차 그 아포리즘적인 글쓰기는 그의 사유 근저에 있는 극소주의(지극히 절제된 언어 표현. 언어의 자기만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극소 지향의 문장)와 잘 어울리게 된다. 잘 쓰려는 욕망, 또는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글쓰기였다. 그의 프랑스어 문체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작가들이 발휘하지 못하는 매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약간 뻑뻑하게 느껴지는 문장. 그러나 그 사이에서 발랄하게 움직이는 유머와 냉소, 아포리즘. 끝까지 밀어붙인 비관주의. 그러나 그 자체로 역설적으로 빛나는 비관주의. 이성, 정념, 금욕주의, 명징함과 패러독스. 시오랑에게 프랑스어 사용은 ‘치유’와 같은 것이었다. 강요된 불편함. 그러나 그 덕택에 잘라내게 된 수사학적 욕망. 그래서 그는 “강압복이 미친 사람을 가라앉혀주듯이 프랑스어는 나를 가라앉혀주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의 순간 안에서 나는 결코 편안하지 않다. 나를 앞서는 것, 나를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하는 것,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태어나지 않은 자였던 수많은 순간들만이 나를 매혹한다. -12쪽
자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신처럼 헐벗고, 비통한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 -16쪽
내가 예순 살에 알았던 것, 나는 그것을 이미 스무 살에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확인을 위한 40년에 걸친 길고 불필요한 작업……. -17쪽
해가 지나갈수록,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든다.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름을 가진 존재 안으로 추락하기 전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25쪽
나는 이상적인 고해 신부를 꿈꾼다.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는 사제. 나는 무덤덤해진 성인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25쪽
객관적이라는 것, 그것은 타인을 사물처럼, 시체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 대해 장의사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67쪽
이 순간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것은 불가역성의 이름 없는 덩어리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고통스럽지 않다. 모든 것은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무의미하다. -67쪽
인간을 허락해줌으로써, 자연은 계산 착오 이상의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은 자연이 자신에 대해 저지른 테러였다. -133쪽
자연 상태의 오랑우탄으로서 인간은 오래된 동물이다. 역사적 오랑우탄으로서의 인간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장한 동물이다. 삶 안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미처 배울 겨를이 없었던 벼락부자. -133쪽
내가 인간을 싫어한다고 해도, 인간 존재를 싫어한다고 똑같이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존재라는 단어 안에는, 인간이라는 개념과 거리가 먼 충만하고 수수께끼 같고, 매력적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153쪽
애벌레의 상태로 그쳐야 했다. 진화를 면제받고, 미완성으로 남고, 원소들의 낮잠을 즐기고, 태아의 엑스터시 안에서 고요히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81쪽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우리의 장점을 의심한다. 이것은 보편적인 법칙이다. 부처 자신도 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가장 악착같이 반대했던 사람은 그의 사촌 중 한 사람이었다. 악마 마라는 그다음이었다. -193쪽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없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그의 반응은 같다. 그 두 가지는 똑같이 그를 괴롭힌다. -194쪽
인간은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죽는 시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은 죽어야 하는 시간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죽는 것이다! -201쪽
아파트 관리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이제 일을 안 하려고 해요. 전부 글을 쓰려고 해요.” 그녀는 그날 자기가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220쪽
어떤 하나의 언어만 붙잡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언어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켜야 한다. 작가에게는, 아파트 관리인 아주머니와 수다를 떠는 것이 외국어로 학자와 면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한 일이다. -279쪽
본질적인 것에 대해 사유할 때마다, 나는 침묵 또는 폭발, 경악 또는 비명 안에서 그것을 얼핏 보았다고 생각한다. 언어 안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282쪽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장 많은 반대에 부딪히는 생각이다. 자신을 자기 안에서 바라볼 줄 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필요한 존재, 더 나아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느끼며,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절대적인 현실, 하나의 전체, 전체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유한 존재와 온전히 동일시되는 순간, 사람들은 신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신이다.
자기 안에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를 벗어나 살 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다는 우연한 사건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평온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290쪽
태어남이 실패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해지고, 그것은 항복한 다음 날 투항한 자가 느끼는 홀가분함과 휴식처럼 보일 것이다. -294쪽
나는 언제나 산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며 살았다. 그런데 사는 일을 견디게 만들어준 것은 내가 1분을, 하루를, 한 해, 또 한 해를 어떻게 넘기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었다 -32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