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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232646 / 33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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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일본의 근대는 19세기 후반의 최선진국으로 국민국가 건설에 착수한 유럽 열강을 모델로 형성되었습니다. (9쪽)
바지호트의 『자연학과 정치학』은 ... 정치학에서 ‘자연학’적 차원을 개시해, ‘정치적 자연’을 강화하고 발전시킬 동력으로 ‘자유’에 바탕을 둔 정치, 즉 ‘토의에 의한 통치’의 확립을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14쪽)
‘관습의 지배’에 인류의 자유가 구속되어, 독창성은 정체됩니다. 그러한 세계를 종결시켜 인류를 ‘관습의 지배’에서 해방시킨 것이 ‘근대’의 역사적 의미였습니다. 바지호트는 그것을 ‘토의에 의한 통치’의 확립이란 명제로 집약합니다. (29쪽)
바지호트의 ‘근대’ 개념은 ‘토의에 의한 통치’를 중심 개념으로 하고, ‘무역’ 및 ‘식민지화’를 파생 개념으로 삼은 것입니다. (38쪽)
오가이는 카테이의 자손에게 남아 있던 편지를 통해, 하나오카 세이슈를 점묘하면서, 당시의 지적 공동체가 얼마나 풍요로운 존재였는지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정치적 공공성’의 전단계로서의 ‘문예적 공공성’이 기능했습니다. (68쪽)
일본에서는 타이쇼 말기부터 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작동했지만, 만주사변과 5.15사건으로 상징되는 1930년대 초기에 연이은 내외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정당정치의 권위가 흔들리게 됩니다. 정치학자 사이에서도 ‘데모크라시의 위기’를 부르짖는 사람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데모크라시’를 대신할 이데올로기로서 일종의 ‘입헌주의’가 부상했던 것입니다. (88쪽)
나는 앞으로 일본의 권력 형태가 일찍이 1930년대에 로야마 마사미치가 제창한 ‘입헌적 독재’라는 경향, 실질적으로는 ‘전문가 지배’라는 경향이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입헌 데모크라시’가 어떻게 대항할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90쪽)
일본의 경우에는 ... 국가주의적 측면이 중시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내무성을 추진기관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습니다. 정치적 리더가 동시에 경제적 리더가 되었습니다. (95쪽)
1930년대 초 오랫동안 금본위제를 지지했던 영국이 여기서 이탈하고,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탱했던 국제협조주의를 방기함으로써, 국제적 자본주의 그 자체가 붕괴합니다. 그때 이노우에는 경제지도자 및 정치지도자의 기반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위기는 일본의 ‘토론에 의한 통치’ 그 자체에까지 미쳤던 것입니다. (163쪽)
본국의 ‘법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영토를 포함한 국가가 ‘식민지제국’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의 ‘식민지’에 대해서 ‘법의 지배’에서 해방된 본국에 의한 제약 없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지배가 미쳤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67쪽)
일본이 식민지제국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청일전쟁 전후입니다. ... 일본의 자본주의가 불평등조약 아래 자립적 자본주의에서 조약 개정 후의 국제적 자본주의로 전환한 시기였습니다. (168쪽)
일본이 ‘자유무역 제국주의’를 통한 ‘비공식제국’의 확대보다도, 현실의 식민지 영유를 우선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상이 경제적 이익에 관심을 두기보다 군사적 안전 보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으로, 일본 본국의 국경선의 안전 확보에 관한 관심과 불가분했습니다. (174쪽)
식민지 관제 개정의 기본적 방향은, 하나는 식민지 통치의 탈군사화, 특히 탈육군화였고 또 하나는 식민지와 본국의 ‘동화’였습니다. 그러한 식민지 입법 개정의 방향을 내세운 것은 반드시 일본의 자발적인 기획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1919년에 조선에서 폭발한 3.1독립운동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내셔널리즘을 시작으로, 남만주 등 다양한 내셔널리즘에 직면한 일본 정부의 이른바 불가피한 대응에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200쪽)
타이쇼 후반기 이후, 주로 1920년대 ‘동화’ 정책과 관련해, 일본의 정부 당국자는 식민지라는 명칭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연상하는 것도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동화’ 정책의 특징이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217쪽)
제국주의의 유산을 탈제국주의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동화’ 정책의 근저에 있었습니다. (217쪽)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전반의 일본 ‘지역주의’는 한편에서는 군사력을 주요 수단으로 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 중국 등 여타 민족주의를 부정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나중에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대동아’에서 구미의 선진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219쪽)
일본도 한국도, 각각의 근대사를 일국사로서 쓸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일본의 근대는, 한국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근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일본의 근대에 가장 중요한 특질 중 하나는 아시아에서는 예외적인 식민지제국의 시대를 가졌다는 것에 있지만, 그 시대의 인식은 같은 시대의 한반도 전체의 현실 – 오늘날 이야기되는 한국에서 ‘식민지 근대’의 현실 – 에 대한 인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양국 근대의 불가분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양국이 역사를 공유하는 첫걸음입니다. 이것은 또한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31쪽)
당시 일본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비이데올로기화해 대국 소련의 경제 건설이란 시련을 거친 가장 실용적인 계획경제 이론으로 간주되었습니다. (239쪽)
일본 근대는 메이지 유신 전후의 ‘폐불훼석’ 정책과 운동으로 상징되듯이, 전근대로부터 ‘신’을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246쪽)
교육칙어는 입헌군주제 원칙과 충돌을 회피하면서, ‘정치적 국가로서 메이지 국가’의 배후에 ‘도덕 공동체로서 메이지 국가’를 출현시켰습니다. (273쪽)
식민지제국은 일본 근대에서 최대의 부정적 유산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식민지였던 타국의 정치,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일본 자신에도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285쪽)
일본 근대는 막말 일본을 기점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은 동시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를 모델로 한 토쿠가와 요시노부 정권의 근대화 노선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란 슬로건은 당시 이 근대화 노선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으로 만들어져, 후쿠자와 등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287쪽)
‘강병’ 없는 ‘부국’ 노선의 자명성에,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습니다. ... 전후 일본의 근대화 노선 자체에 수복이 극히 곤란할 정도의 심각한 좌상을 남겼습니다. (289쪽)
일본에서는 ‘안전 보장 환경’의 변화를 강조하고, 나아가 군사력 강화(‘강병’)의 필요성마저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후 부국노선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강병’의 주장을 다시 소환하는 듯합니다. (290쪽)
앞으로 일본이 걸어야 할 길 ... 지금까지 일본 근대화를 떠받치던 사회적 기반을, 이제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국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동체에 두고, 그 국제공동체를 잘 조직 운영함으로써, 글로벌한 규모로 근대화 노선을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시아에 대한 대외평화의 확대와 국가를 넘어선 사회를 위한 교육이 불가결합니다. (291쪽)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는, 단락적인 보호주의 충동과 일국주의로 향하는 좁은 시야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워싱턴 체제는, 그 좌절에 이르게 된 다양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군축조약에 바탕을 둔 평화적이고 현실적인 다국 간 질서라는 점에서, 무질서와 무이념으로 흐르는 오늘날의 세계 및 일본에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워싱턴 체제의 중요한 유산을 헌번 제9조에 남긴 일본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302쪽)
나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제적 대화 이외에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교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도 ‘총론’은 없어서는 안 되고, 그에 대한 공헌이 ‘노년기 학문’의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305쪽)
이 책에서 내가 시도했던 것은 일본 근대를 대상으로 한 ‘직관’에서 ‘개념’으로 인식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었고, 이 책은 결과보다는 그 의도에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11쪽)
서장 일본의 모델, 유럽 근대는 무엇인가?
제1장 왜 정당정치가 성립했는가?
1. 정당정치 성립을 둘러싼 문제
2. 막번체제의 권력 억제 균형 메커니즘
3. ‘문예적 공공성’의 성립: 모리 오가이의 ‘사전’이 갖는 의미
4. 막말 위기 하 권력 분립론과 의회제론
5. 메이지 헌법 하 권력 분립제와 의회제의 정치적 귀결
6. 체제통합 주체로서 번벌과 정당
7. 미국과 비교해 본 일본의 정당정치
8. 정당정치의 붕괴와 ‘입헌적 독재’
제2장 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을까?
1. 자립적 자본주의로 가는 길
2. 자립적 자본주의의 네 가지 조건
\t(1) 정부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실험
\t(2) 국가자본의 원천인 조세제도의 확립
\t(3) 자본주의를 담당할 노동력 육성
\t(4) 대외평화의 확보
3. 자립적 자본주의의 재정 노선
4. 청일전쟁과 자립적 자본주의로부터 전환
5. 러일전쟁과 국제적 자본주의로 가는 결정적 변화
6. 국제적 자본주의 지도자의 등장
7. 국제적 자본주의의 몰락
제3장 왜, 어떻게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1. 식민지제국으로 발을 내딛은 일본
2. 일본은 왜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3. 일본은 어떻게 식민지제국을 형성했는가?
\t(1) 러일전쟁 후: 조선과 관동주조차지 통치체제의 형성
\t(2) 타이쇼 전반기: 주도권 확립을 노리는 육군
\t(3) 타이쇼 후반기: 조선의 3·1독립운동과 그 대응
4. 새로운 국제질서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지역주의’
\t(1) 1930년대: ‘제국주의’를 대신할 ‘지역주의’의 대두
\t(2) 태평양전쟁 이후: 미국의 ‘지역주의’ 구상과 그 후
제4장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인가?
1. 일본 근대를 관통하는 기능주의적 사고양식
2. 기독교의 기능적 등가물로서 천황제
3. 독일 황제와 대일본제국 천황
4. 「교육칙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5. 다수자 논리와 소수자 논리
종장 근대의 경과로부터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다
1. 일본 근대의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인가?
2. 일본 근대가 도달한 곳은 어디인가?
3. 다국 간 질서의 유산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저자 후기/ 역자 해제/ 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