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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756835 / 119쪽 128 x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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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파란 시선 [27]
출판사 리뷰
박은형의 시는 어두운 대지와 하늘, 강물과 눈 위에 쓰는 생의 첫 연서(戀書)다. 적막과 침묵으로 채색된 통점(痛點)의 흑백판화다. 적요의 빈집에서 허밍처럼 울려 퍼지는 빛과 먼지, 식물의 감수성과 섬세한 감각이 빛나는 시편들이다. 자기 안의 아픈 매듭을 한 땀 한 땀 엮어 가는 서정의 수놓기가 참 애절하고 애틋하다. 시편마다 환절(換節)의 문양과 그늘, 죽은 이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상처, 비감(悲感)의 살과 자문이 생생히 묻어 있다. 그녀에게 풍경은 기억의 아픈 환생이고 세계는 끝없는 변장과 마술의 공간이다. 사람살이의 아픈 울음이 괸 곳, 물외(物外)여서 결코 물외일 수 없는 세속의 땅이다. 사랑이 결빙된 이 세계에서 해동(解凍)의 꿈을 꾸는 시인의 모습이 아프고 아름답다. 라일락 꽃그늘 속에 그녀의 시집을 펼쳐 놓고 단팥죽 한 그릇 먹고 싶은 초저녁이다.
―함기석(시인)
작가의 말
지나온 모든 가을처럼
마음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가까이 있으려고
당신과 멀어지는 날들이다
연두
주남지 왕버들이 연두를 시동 겁니다
넌짓한 마음을 단숨에 뜯어내는 승냥이 떼 같습니다
늦으면 늦은 대로 연두를 따라붙으려
두툼하게 녹이 난 슬픔이나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에 대해 고심합니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폐역의 늦은 당신이라면 단팥죽 한 그릇
빈 식탁이라면 먼지를 보여 주는 흑백 한 문장
다발로 묶어 연두를 실어 갈 당나귀 어디 없을까요
당신과 나의 담장에도 뭉개질 만큼만 놓아기르기로 해요
연두가 그저 몇 걸음의 눈 배웅에 관여하는 거라면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서 꼭 살겠습니다
전승된다면 사랑
죽음이라면 끄덕끄덕 자장가까지
저수지 너른 고독에 찔려 신접의 병상처럼 에는 것
내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였다고 중얼거립니다 ***
먼나무 편지
하지 무렵 저녁나절엔 먼나무 아래로 오세요
수호초 명자나무 목서와 남천
이름도 단단한 꽝꽝나무 번지를 건너면
푸른 깃털의 해거름 자리로 비워 놓는 곳
수종(樹種) 따로 없는 득실한 고요에
내 졸음은 먼 표정 하나 새로 얻지요
입자 큰 정색일랑 꽝꽝 밀봉해 두어요
어제의 통곡이나 고장 난 날씨 따위는
흐물흐물 욕조에 풀어 두고 오세요
존재의 빛으로는 짧게,
무익한 실마리로는 오래 퇴화하는
나와 당신의 분주한 풍경은
소지의 빛 충만한 먼나무에 탕진해 버리자구요
들뜬 목울대와 쉰 창자와 치렁한 주머니
잘못 배운 어른 말투들 변기에 흘려 버려요
이제 그만 무리의 서열을 떠나 먼나무에 연루돼 보세요
딱 슬픔 하나만 개종하지 말고 오세요
하지 무렵 저녁나절이 제격이랍니다
낭창하고 깨끗한 먼나무 피안에 드는 일 말입니다 ***
그 나무 붉은 지문 밑
그럼에도 그 꽃나무 아래서 만나자 했다
그러니까 더욱 그 꽃나무 아래로 찾아오라 했다
새 옷 입는 꿈을 꾸었다는 당신은
차디찬 이월의 매화에 눈썹을 그려 넣자 했다
달콤한 맹세 같은 향기에 부빈 눈과 귀 멀어 보자 했다
나무는 방금 잊히어서 죽었다 울었다 하는 구원과
첫 꽃 구사하는 물색없는 사랑들에 둘러싸여 있다
삼백 년을 저렇듯 기다려서
한 가지 말과 일색의 마음인 꽃잎을 짓는 중이다
제발 만지지 말아 달라는 간청을
헛된 다짐으로라도 지켜 주고 싶게 하는 것이다
붙들 수 없는 꽃잎경을 알아듣게 고쳐 건네는
그 나무 붉은 지문 밑
우리는 그렇게 잠시 서로를 알아보았다 ***
시인의 말
제1부
박꽃 - 11
연두 - 12
꽃집이 있었다 - 14
구름 종묘상 - 16
도화복음 - 17
낭만 관리소 - 18
먼나무 편지 - 20
골목 서사 - 21
천리향 전언 - 22
금지 구역 - 24
가을 공작소 - 26
비의 정원 - 28
동선 - 30
다알리아 - 32
제2부
여행자 - 35
동쪽 - 36
율마 - 38
벌어들인 슬픔에 관한 산책 - 40
미루나무 붉은 서쪽 - 42
검은 꿈 - 44
사슬나무 - 46
차가운 인사 - 48
디아 - 50
빨간 장화를 신은 나디아 - 52
울음사막의 여자 - 54
동굴영원 - 55
배후 - 56
타이밍에 관한 성찰 - 57
헬멧 - 58
제3부
물외 - 63
꽃병의 감정 - 64
작약 - 65
거듭 휘는 봄밤 - 66
눈물의 지도 - 68
반딧불이 생각 - 70
월하정인 - 72
끝 방 - 74
손거울 - 76
전자레인지 - 78
외뿔고래 - 79
저녁 여섯 시 - 80
머나먼 이름 - 81
제4부
거기 누가 가고 있나요 - 85
도라지꽃 - 86
주걱 - 88
가을 인근 - 90
십일월 - 92
손 - 94
투기 - 95
앵두의 폐사지 - 96
자전거 - 97
수양버들 아래 - 98
검진 - 99
미간 - 100
난전 서신 - 101
그 나무 붉은 지문 밑 - 102
해설 김동진 접경의 녹지와 곳곳의 당신 - 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