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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시보다 수필이 더 매력적인 사슴 시인의 문학 향연!!
미공개 수필 작품 15편을 포함한 115편 전부를 수록
“슬프고 정겹고 향기가 나는” 노천명의 글을 재발견
노천명의 소중한 문학적 자산과 사상적 오류를 되새길 소중한 기회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여성시인 노천명이 남겨 놓은 문학적 자산이 너무도 소중하여 그를 기리기 위해 ‘노천명 전집(종결판)’ 출간 작업을 진행하였다.
『언덕의 왕자』는 노천명 전집(종결판) 전 3권 중 제2권 노천명 수필 전집이다. 「사슴」의 시인으로만 알려진 노천명은 사실은 뛰어난 수필가이기도 하다. 『언덕의 왕자』에는 지금껏 국립중앙도서관 보존문서 서고 속에 깊숙이 파묻혀 잊힌 채 사라질 뻔했던 미공개 수필 작품 15편을 비롯하여, 평생에 걸쳐 집필한 115편의 노천명 수필을 모두 수록하였다.
이들 수필에는 강렬한 여성 의식이 깔려 있다. 이 수필들을 통해 노천명은, 여성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가부장적 담론에 빠져 있는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해 당당하고 용기 있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도 연둣빛 수채화 같은 글솜씨로 슬픔, 눈물, 고통, 외로움, 저항을 행간마다 촉촉하게 적어 놓았다. 시인 정지용은 노천명 수필을 가리켜 “슬프고 정겹고 향기가 나는 글”이라고 극찬했다.
출판사 리뷰
파란만장 했던 삶과 시에 대하여
엄혹한 시대에 태어나 가장 많은 찬사와 비난을 받았던 시인
어제 나에게 찬사의 꽃다발을 던지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
노천명 시인은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진명여학교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험난한 시대의 민족시단에 한국의 마리 로랑생으로 불리며 혜성같이 나타나 시문학을 꽃피운 엘리트 여성 시인이다. 그녀의 아명은 기선이었는데 여섯 때 홍역으로 죽음 직전에 살아났고, 이를 하늘의 명이라 생각하여 천명으로 바꿔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엄혹한 시대를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의 시에는 주로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의 정서가 부드럽게 표현되고 있으며, 전통 문화와 농촌의 정서가 어우러진 소박한 서정성과 현실에 초연함이 녹아 있다.
이 책 『노천명 전 시집』은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와 사후시집 『사슴의 노래』 등 네 권의 시집과 번역시를 포함한 32편의 시를 새로 발굴하여 실었고,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다른 시집에는 없는 친일 시까지 총망라한 최초의 시 전집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단에 극히 드문 황해도 언어 감각과 정서를 가진 노천명 시인은 격랑의 시대에 모더니즘적 경향을 지니면서도 민족과 전통적인 정서를 내포한 시를 발표하고 독자적인 시 세계를 갖게 되면서 한국 여성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이념적 질곡과 억압에서 벗어나 작품의 가치를 순수하게 문학만으로 재평가하는 성숙된 사회를 기대하면서, 독자들이 알아야 할 권리와 궁금증 차원에서 그녀의 친일 시까지 과감하게 실었다.
경기도 고양시 벽제의 장명산 기슭 천주교 묘지에 있는 노천명 시인의 묘는 ‘친일시인’이라는 시민사회의 형벌을 받은 탓에 어떠한 안내판 하나도 없다. 몸뚱어리가 드러난 고대(古代)의 석관묘처럼 봉분 대신 긴 장석이 초라하게 놓인 묘지는 노천명 시인의 언니와 나란히 누워 있다. 당대의 서예가 김충현(金忠顯)의 글씨로 쓸쓸하게 서 있는 시비(詩碑)에는 「고별」 시 끝부분만 새겨져 있다. 유언이나 다름없는 이 시비의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어제 나에게 찬사의 꽃다발을 던지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 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어졌다.
고도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먼 곳으로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배가 떠나면
정든 책상은 고물상이 업어갈 것이고
아끼던 책들은 천덕꾼이가 되어 장터로 나갈 게다.
나와 친하던 이들, 또 나를 시기하던 이들
잔을 들어라, 그대들과 나 사이에
마지막인 작별의 잔을 높이 들자.
우정이라는 것, 또 신의라는 것,
이것은 다 어디 있느냐
생쥐에게나 뜯어 먹게 던져 주어라.
온갖 화근이었던 이름 석 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바다에 던져버리련다.
나를 어디 떨어진 섬으로 멀리멀리 보내다오.
눈물 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村家)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있고 거기 자유가 닫혀지지 않는 곳이라면
첫 시집 『산호림』
노천명 시인의 첫 시집이다. 1938년에 시인이 스스로 만든 자가본(自家本)으로 발간하였다. 자비출판 시집이다. 이 시집은 총 134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표작 「사슴」을 비롯하여 「자화상」 「바다에의 향수」 「교정」 「귀뚜라미」 「국경의 밤」 등 49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 언제나 점잖은 듯 말이 없구나”로 시작되는 ‘사슴’은 그의 고집스런 자아 응시가 낳은 시다. 집시의 피, 길들지 않는 노새, 슬픈 사슴, 궁핍, 비타협적 성향, 재생불능성 뇌빈혈, ‘기댈 데 없는 외로움이 박쥐처럼 퍼덕이는’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시인 노천명의 삶은 그 중심이 매우 불행한 시대에 걸쳐져 있다.
제2시집 시집 『창변』
노천명 시인에게는 제2시집인 『창변』은 8.15해방을 코앞에 둔 1945년 2월 매일신보사가 발행하였다. 이 시집에는 「승전의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노래하자 이날을」 「흰 비둘기를 날리며」 등 다수의 친일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노천명 전 시집』에 삭제하지 않고 모두 공개하였다. 이제는 이런 흠결마저도 노천명 문학의 한 부분으로 수용해야 한다. 워낙 깔끔하고 분명해서 ‘대처럼 꺾어질망정 구리모양 휘어지지’ 않는다고 시 「자화상」에서 자신의 꼿꼿한 성격을 드러냈던 노천명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 일제 말기 다른 많은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에 동조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노천명 인생과 문학의 커다란 오점이다.
제3시집 『별을 쳐다보며』
1953년 3월 30일 부산 피난지에 임시 주소를 둔 희망출판사(대청동 1가 7번지) 발행이다. 표제 시 「별을 쳐다보며」를 비롯하여 전3부 6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한국전쟁 기간 중 부역 혐의로 투옥되어 치른 수난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옥중 시편들과 함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을 담았다’고 시인은 발문에서 밝히고 있다. 표지 그림은 김환기 화백이 맡았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 비해서 도시 취향의 고독으로 침잠(沈潛)해 들어가는 시인의 심정, 전쟁을 겪으며 부딪혔던 일들에 대한 분노, 원망 등 현실에서 받았던 상처를 담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특히 부역 혐의로 수감되어 있는 동안 옥중에서 체험한 고뇌를 읊은 시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제4시집 『사슴의 노래』
이 시집은 노천명의 제4시집이다. 1957년 6월 16일 노천명 시인이 작고한 후 1년 이 되는 1958년 6월 15일 한림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노천명 시인이 죽자 조카 최용정이 흩어져 있던 유고(遺稿)와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서문은 김광섭(金珖燮)이 썼고 이희승은 추도시 「애도 노천명」을, 모윤숙이 ‘사슴의 노래를 모으면서’를 썼다. 출간작업을 진행했던 조카 최용정은 ‘이 시집을 내면서’라는 발문을 썼다. 수록 작품은 표제 시 「사슴의 노래」를 비롯하여 「캐피탈 웨이」 「봄의 서곡」 「아름다운 새벽들」 「유월의 언덕」 「낙엽」 「불덩어리 되어」 「꽃길을 걸어서」 「새벽」 「오늘」 「내 가슴에 장미를」 「어머니날」 「당신을 위해」 「오월」 「나에게 레몬을」 등 42편이다.
처음 시집에 공개하는 미정리 작품
이 『노천명 전 시집』에는 32편의 미정리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 시편들은 노천명 시인이 생전에 펴낸 두 권의 시집과 사후에 유족(조카)이 펴낸 한 권의 시집, 그리고 『노천명 시전집』 등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 29편과 노천명 시인이 번역한 시 3편 등이다. 이는 모두 조선일보, 사상계 등 여러 매체에서 카피하여 확보한 자료들을 한 편씩 시집과 대조를 거쳐 미수록이 확인된 작품들이다. 이 시들 중에는 「환영 반공포로」 같은 반공시, 「김내성 선생을 곡함」 같은 조시와 행사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생전에 여러 신문잡지에 많은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로 미루어 앞으로 이런 성격의 미공개 작품들이 발굴되는 대로 전 시집에 추가 수록할 계획이다.
노천명의 친일시에 대하여
그동안은 노천명 시인이 발표한 친일 시를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에게 「사슴」의 고고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친일 시도 분명 노천명 시인의 작품이기에 이를 보듬는다는 뜻에서 이 전 시집에 모두 수록하였다.
친일문학을 다룰 때 작가 이광수와 함께 노천명 시인도 빠지지 않는다. 노천명은 1941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를 행위를 찬양하거나 동조하는 친일 시를 여러 편 남겼다.
이 전 시집에는, 1945년 2월 25일 발간한 제2시집 『창변』에 수록한 「흰 비둘기를 날려라」 「진혼가」 「출정하는 동생에게」 「학병」 등 9편, 매일신보와 ‘조광’ 같은 친일 매체에 발표한 「싱가폴 함락」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등 친일 시 5편 등 총 15편을 찾아 수록하였다. 이 시편들은 1943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학예부 기자로 일하면서 발표한 작품들인데, 조선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거나 조선인 출신으로 전사한 가미카제 특공대 병사들을 칭송하거나 전쟁 지원을 권하는 내용들이다.
노천명 시인은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 전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빼어난 서정시인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친일 시를 쓴 사실 또한 감추거나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친일의 흔적을 지우기보다는 이를 용기 있게 껴안는 것이 노천명 시인을 평가하는 옳은 방식이라고 판단하였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이를 피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굴곡진 행태를 보인 불행한 지식인의 한 전형으로서 평가하자는 것이다. 역사의 심판은 언제나 준엄하기 때문이다.
한 포기의 배추나 몇 뿌리의 무가 주는 영양 이상의 영양가를 이 한 송이 꽃에서 찾을 줄 안 그 마음의 여유와, 또 좋은 꽃을 내 뜰에서 나 혼자만 보지 않고 여러 사람이 같이 보며 즐기겠다는 그 마음의 아름다움이 내게는 그렇게 신기해서 아침마다 그 꽃을 차창으로 허리를 굽혀 내다보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 이러한 마음의 아름다움이 요즘 세상엔 귀한 것 같다.
내가 아침 우리 집에서 이 차를 타고 신촌 E대학에까지 이르는 30분 동안에 길 좌우에서 나는 실로 적지 않은 수의 교회당들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가톨릭 성당도 있고, 신교의 예배당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정글처럼 날카롭게 하늘을 찌를 듯한 교회 첨탑들을 본다.
거리 동마다 파고들려는 이 교회당 속에 정비례하는 것이 신앙심이라면, 시민들은 좀 더 착해졌어야 할 것이련만, 그런 흔적은커녕 ‘악의 꽃’이 점점 더 만발하는 것만 같다.
- 29쪽 ‘언덕의 왕자’ 중에서
나는 가끔 남대문 장이나 동대문 장엘 가는데, 갈 때마다 나는 참 좋은 교훈을 받아 가지고 온다.
특히 그것은 속셔츠니 군복 바지니 이런 것들을 한 사람 앞에 조금씩 놓고 파는 골목에서다. 그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바로 그 옆골목에서는 양단이며 빌로도며 나일론 등을 수십 필씩 쌓아놓고서는 분세수를 곱게 하고 자 질을 할 때마다 팔목의 순금 팔찌가 싯누렇게 내다보이는 포목상 부인네들에게다 비기면 그들의 자본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를 들를 때마다 저들은 번번이 웃음꽃들을 피우고 있다. 그 얼굴엔 한 사람도 궁기라든가 수심이라든가 근심하는 빛을 찾을 수 없다.
따져 본다면 그들에게 유달리 늘상 이렇게 즐거워 있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그들의 처지란 남의 집 협호에가 들어서 잘해야 방을 하나 둘 빌려 살고 있을 것이 뻔하다. 그런데 그들은 즐겁게 웃으며 산다. 아침이면 일어나는 길로 미군 종이 상자에다 물건을 넣어 가지고 눈을 비비며 남부여대 집을 나와 가지고 이렇게 장사를 하다가는 또 그 굴속 같은 방으로 물건을 가지고 기어들어가는- 이런 생활에서도 그들은 저 벼슬아치들이 부럽잖게 재미나게 즐겁게 사는 것이다.
공산당들이 맨몸뚱이로 내쫓았으나 이들은 이것을 이기고 살아 나와 오늘 또 이렇게 명랑하고 즐겁게 살아 나간다. 이들에게는 훌륭한 내일이 반드시 또 있다. 승리자의 얼굴을 나는 이 여인들에게서 발견한다.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곧 또 이겨 나가는 사람들이다.
- 410쪽 ‘이기는 사람들의 얼굴’ 중에서
나는 봄꽃 중엔 진달래가 제일 좋다. 이는 꽃 자체보다도 어릴 적 이야기를 함께 가진 연유일 게다.
살구꽃을 서울처녀라 한다면 진달래는 촌처녀다. 그는 장미나 백합과 그 운치가 또 다르다. 장미나 백합을 꽃병에 꽂아 보라. 그는 얼마든지 화병에 어울리게 멋들어질 수 있을 것이나 진달래를 꺾어다 놓아 보라. 화병에 어울리게 꽂아놓을 재주가 없을 게다.
그는 오직 산에서 빛난다. 이렇게 진달래를 좋아하면서도 해마다 봄이면 꽃집에나 가서 꺾어다 놓은 것 아니면 산에 갔다 오는 사람들의 손에 몇 가지 들려진 것을 본 외에는 봄직하게 산에 피어 있는 것을 근자엔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 20쪽 ‘진달래’ 중에서
코 없는 얼굴을 그려준 개성이 심한 여류화가요, 또 기막히게 멋진 시인 1인 2역의 재녀才女 마리 로랑상을 나는 전부터 참 좋아했다. 그는 산양(山羊)의 얼굴 같은 여인상을 그의 시작품에다 그려놓아 나는 그의 시와 함께 그림을 보며 마음으로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일전 어느 책에서 그의 사진을 보고는 놀랐다. 발자크가 조르쥬 쌍드를 보고 “저것도 여자냐?”고 “남자가 되려다 여자가 된 사람”이라고 했다더니, 정말 나도 그 순간 이와 같은 말을 마리 로랑상에게 할 수 있다. 키는 6척이 넉넉할 성싶고 머리는 송낙을 쓴 것 같은 모양이 어디로 보나 여장(女裝)을 한 남자지 여자 같지는 않았다.
- 39쪽 ‘마리 로랑상과 그 친구들 ’ 중에서
언제 찾아도 좋고 또 언제나 내가 찾을 수 있는 친구는 독서다. 읽다가 싫증이 나면 집어던지고, 그런가 하다 보면 또 눈이 충혈이 되어 가며 밤을 새워 글 읽기에 반하는 적이 있다.
세상의 온갖 화려한 것을 다 갖다 놓고 나를 그 속에 넣어 놓는 데도 내게서 책을 뺏어 치우고 독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의 금령(禁令)이 내려진다면 단연코 나는 거기서 도망을 계획할 것이다. 독서를 못하면 머릿속에 말할 수 없는 공허를 느낀다. 내 평생의 소원이 마음에 드는 좋은 책들을 천정까지 닿게 쌓아놓고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다가 여생을 마친다면 무슨 또 여한이 있을 것 같지 않다.
- 184쪽 ‘내 한 가지 소원이 있으니’ 중에서
나는 헌 책사(冊肆)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가끔 그 책의 내용이 좋아서보다도 책 꾸밈새가 재미있어서 사 들고 들어오는 수가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는 장정에 특별히 유의를 해 주는 화가가 드물기 때문에 책을 낼 때면 나중에 가서 이 장정 때문에 머리를 써야 하는 데서이지만 어쨌든 시집을 펴보다가 여백을 많이 남기고 짠 것을 보면 좋아서 냉큼 사드는 것이 내 버릇이다. 활자를 한 편으로 몰고라도 종이의 공간을 많이 남겨놓은 것은 재미있다.
여백…. 이 얼마나 좋은 말이냐! 아니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빈틈없이 빽빽한 것은 정말 딱하다. 인생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도 이 여백은 있어 좋은 것이다. 여백의 즐거움이 하필 책 생김새에서만 머무를 것이랴. 이 여백이 없어서 우리는 모두 눈물에 핏발이 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186쪽 ‘여백’ 중에서
서로가 나누인다는 것은 하나의 매력 있는 일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먹기 싫은 음식을 두었다 먹는 일이라든지, 또는 결혼 생활의 권태라는 위험천만한 시기에 바야흐로 부딪쳤을 때, 슬기로운 부인은 마주 으르렁거리는 대신에 재빠르게 트렁크를 집어 들고 어떤 여행을 계획하던 나머지, 하다못해 친정에라도 가는 것이 모두 이 이치와 통하는 일이다.
하루하루 떠날 날이 다가선다. 거기 따라서 나는 하루라도 될 수 있으면 이 집과 같이 해 주려고 일찍 집으로 들어온다. 집 뒤의 녹음이 나날이 짙어져 한창 펴가는 처녀처럼 탐스러워진다. 모든 것이 이같이 아름답게 보임은 다름 아닌 분명 작별을 하는 까닭일 게다. 그러고 보면 작별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아름다워 보이고 그리워지고 이해도 가질 수 있게 되고 동정(同情)을 보내게 되는 일이 이것으로써 생길 수가 있다면 사람들이 구태여 이것을 거부할 까닭도 없지 아니한가.
- 243쪽 ‘작별은 아름다운 것’ 중에서
들어가는 말 | 노천명은 시보다 수필이 더 매력적입니다
일러두기
1. 꽃과 나비
진달래 | 비 | 목련 | 언덕의 왕자 | 아스파라거스의 조난遭難 | 화초
2. 나
마리 로랑상과 그 친구들 | 시골뜨기 | 나의 생활백서 | 시문학詩文學 시절 | 나의 20대 | 책을 내놓고 | 쓴다던 소설 | 서울에 와서 | 골동 | 교우록 | 단상斷想 | 서울 체류기 | 전숙희田淑禧 수필집에 붙임 | 집 얘기
3.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이 오면 | 대춘待春 | 봄과 졸업과 | 포도춘훈鋪道春暈 | 삼오의 달 아래서 | 천춘보淺春譜 | 식목일 | 한식寒食 | 산나물 | 오월의 구상構想 | 오월의 시정詩情 | 오월의 색깔 | 신록 | 모깃불 | 원두막 | 망향 | 귀뚜라미 | 추성秋聲 | 낙엽 | 정야靜夜 | 초동기初冬期 | 성탄 | 세모歲暮 단상 | 눈 오는 밤 | 겨울밤 이야기 | 설야雪夜 산책 | 노변야화爐邊夜話
4. 생활의 발견
내 한 가지 소원이 있으니 | 여백 | 산책 | 직장職場의 변辯 | 야자수 그늘과 청춘의 휴식 | 담 넘은 사건 | 자동차 | 나와 송충이 | 광인狂人 | 문패 | 산다는 일 | 새해 | 술의 생리 | 신문 배달 | 양계기養鷄記 | 어느 일요일 | 캘린더 | 편지
5. 사람
작별은 아름다운 것 | 정情 | 추풍秋風과 함께 가다 | 피해야 했던 남성 | 소감所感 | 젊은 시인에게 | 수상隨想 | 남행南行 | 거리距離 | 노상路上의 코스모포리탄 | 교장과 원고 | 고우故友의 추억 | 단상斷想 | 아름다운 여인 | 어떤 친구에게 | 첫인상
6. 산 바다 여행
해변 단상海邊斷想 | 선경仙境 묘향산 | 관악冠岳 등산기 | 서해 바다의 밤 | 바다 | 산山 일기 | 썰물에 밀려간 해변의 자취 | 금강산은 부른다 | 금강산놀이 후일담 | 바다는 사뭇 남빛 | 바다를 바라보며 | 해인사 기행 | 송전초松田抄 | 여중기旅中記 | 진주 기행 | 대동강변 | 차중기車中記 | 향토유정기鄕土有情記
7. 여성의 눈으로
결혼? 직업? |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다 | 여성女聲 | 이기는 사람들의 얼굴 | 예규공청禮規公聽 | 가야금 관극기觀劇記 | 피아노와 가야금 | 발 예찬 | 국회의 싸움 | 신세진 부산 | 심청전 감상 | 인텔리 여성의 오늘의 사명 | 하나의 역설逆說
부록
발굴자료 | 여류시인 노천명은 왜 평생 독신생활을 하였을까?
연보 | 노천명 시인의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