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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양악 도입과 그 발자취 프란츠 애커트와 군악대 중심으로

최창언 저 | 93910 역 | 한국학술정보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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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31045 / 358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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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경북 달성 출생. 경기공업전문(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동국대학교 산업기술환경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중동과 국내 건설현장에서 30여 년을 근무했으며 현재 한림이앤씨건축사사무소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1997년 봄 운현궁 앞 회사 창문 너머로 본 고종·명성황후 국혼례의 장엄하고 격조 높은 의례에 매료되어 대한제국에 빠져 가고 없는 제국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한번 가버린 것은 돌이킬 수가 없고 연구는 가고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발표논문
 「소민과 군주의 나라에서 부른 대한제국 애국가」 『황실학논총』 제8호 한국황실학회 2007
 「대한제국 애국가와 시위군악대의 변천」 『황실학논총』 제9호 한국황실학회 2007
 「광무황제의 위민의 의지가 서려 있는 탑골공원」 『황실학논총』 제10호 한국황실학회 2008
 「대한제국의 어기(御旗)와 군기」 『황실학논총』 제13호 한국황실학회 2012
 「대한제국의 시위군악대와 대한제국 애국가에 관한 연구」 『대한제국 애국가 및 근대음악 역사자료 발굴, 복원사업 연구논문집』 (사)대한황실문화원 2018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 근대역사 자료수집 지원 사업


기고
 「소민과 군주의 나라에서 부른 대한제국 애국가」와 「대한제국 애국가와 시위군악대의 변천」을 「시위군악대와 대한제국 애국가」로 재연재 『음악저널』 Vol. 239, 241~250, 252, 253, 255 음악저널 도서출판 작은우리 2009.11, 2010.1∼10, 12, 2011.1, 3
 「애국선열 충혼 기려 민족정기 바로 잡아야 –대한제국 현충원 장충단 복원을 위한 연구(요약)-」 『영웅』 Vol. 5 도서출판 꼬레아 우라 2016
 「한국 양악의 발상지를 품은 열하나 동네」 『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 No. 8 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 2017
 
수상 및 활동 사항
 황실문화재단 제1회 학술상 수상 논문명 「대한제국 애국가와 시위군악대의 변천」 2010.5.15. 
 KBS 1TV 역사스페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금지곡이었다.」 편 임현진 PD께 소재 제공 및 인터뷰 2011년 9월 22일(목) 방영
 CJ E&M 김현정 PD, 작가들에게 시나리오를 위한 시위군악대 관련 소재 제공 및 강의 2012.5.
 대한제국 양악대 창설 117주년 기념 ‘탑골공원 대음악축제’ 자문위원 2018.9.7.
 제2회 탑골공원 대음악축제 시위군악대 복식 등 자문 2019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등록문화재 지정 조사 2020.2.13. (이상만 최창언 오용섭 안형욱)
 대한제국 장례원 악사장 백우용 묘비명 찬 2020.5.22.



 

책 속에서

에커트는 처음에 독일 말도 모르고 서양 악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대원들을 일일이 가르치려고 하였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가르치는, 말할 수 없는 고충을 겪다가 한성관립덕어학교 교사 볼얀에게 부탁하여 독일어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백우용을 3월에 통역으로 뽑아 먼저 백우용을 가르치고 백우용이 다시 대원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교육을 시작하여 오전 9시부터 3시간은 악전과 독보법 시창을, 오후 3시간은 악기별로 주법훈련을 하는데 서양음악을 처음 배우는 대원들에게는 상당한 무리였으며 칠판에 5선을 그리고 음계를 독일명으로 한 음 한 음 선창하면 대원들이 따라서 외우게 하여 이렇게 3개월 동안 기초교육을 끝낸 다음, 성적이 우수한 자는 연주대로, 나머지는 교육대로 분리하여 7월 초에는 50명 중 32명을 행사부대로 편성하였다.3) 에커트 장녀 아말리에도 “일본에서 9개월 걸린 수준에 여기서는 3개월에 능히 달했지요. 한국 분들은 음악적 소질이 풍부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_85~86쪽


대한제국 애국가 제정은 고종실록 광무 6년(1902년) 1월 27일 조에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해 움직이고 선비의 기개를 가다듬어 충의를 위해 떨쳐 일어나고 애국하는 데에는 국가의 악곡과 노래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마땅히 제정할 터이니 문관이 지어 바치라”와 같이 국가 찬진 조령詔令에 따라 에커트의 곡에 문관이 작사를 하고 그 밑에 독일어 가사를 붙인 후 민영환이 발문을 써 광무 6년(1902년) 7월 1일 발행한다. _123쪽


1930년 4월 22일 백우용 군악대장이 장서할 때까지 경성악대는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유야무야의 상태였으며 6월 16일 오후 8시 25분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신간회 경성지회 주최 창립 3주년 기념식에 각 단체에서 9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성악대의 주악으로 개회를 선언하였고 9시 20분 주악으로 여흥에 들어가 개식에 소악을 하고 정악 영산산조, 최승희 무용단의 무용, 기술, 가장행렬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고난사를 그대로 겪으면서 끝내 이악대를 지키던 대원들이 명맥을 이어오다가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하여 1930년 양정고보에 조직된 취주악대를 가르치기도 하고 활동 사진관과 악극단으로 조선소년군 총본부 활동사진 순업반으로 광고대로 전전하기도 한다. _216~217쪽


대한제국 애국가 최초의 가사는 한글 궁체로 7행 9자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영국 국가 God Save the King의 영향을 많이 받아 7행과 같고 아홉 자는 동양의 음양 사상에서 1, 3, 5, 7, 9 홀수는 양의 수며 그중에 9는 가장 길하며 하늘의 힘을 나타내고 방위는 8방의 9번째는 중심을 뜻하여 이처럼 가장 길하고 중심이고 하늘의 힘을 뜻하는 9자로써 국가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_266쪽

목차

글을 다시 내면서
대한제국에 빠지다

1부 ‘대한제국 애국가’의 시작을 찾아서

2부 군악 교사의 초빙과 군악대 조직
2.1 이전의 나팔수와 군악대설치 노력
2.2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의 사행
2.3 군악대설치 칙령 반포
2.4 군악 교사 에커트의 초빙
2.5 프란츠 에커트와 계약
2.6 군악 제2대의 설치

3부 시위군악대의 첫선과 대원들
3.1 교육 착수와 놀랄 만한 연주
3.2 군악대 이전과 음악당
3.3 군악대의 예산
3.4 군악대장 김학수와 백우용
3.5 정교 강흥준과 군악대원들

4부 대한제국 애국가
4.1 애국가 찬진을 명하다
4.2 대한제국 애국가 해설
4.3 각지에서 불린 대한제국 애국가

5부 황립 군악대의 여정
5.1 군악대의 변천
5.2 시위군악대 및 제실음악대의 연주
5.3 이왕직 양악대의 연주
5.4 경성악대의 연주

6부 이 땅에 살다 간 에커트와 마르텔
6.1 에커트의 서울 생활과 세 딸들
6.2 마르텔과 임마꿀라따 수녀의 삶

7부 군악대 관련 움직임의 발자취
7.1 1929년∼1970년대
7.2 1980년∼1990년대
7.3 2000년대

8부 ‘대한제국 애국가’의 명맥을 잇다

참고문헌
부록 Ⅰ
부록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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