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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

시리즈 : 황금알 시인선 [118]

강흥수 저 | 황금알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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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205713 / 12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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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시인은 삶을 가장 낯설고 척박한 것으로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긍정하고 삶에의 의지를 확인한다. 그에게 있어 삶의 허무주의적인 성격의 긍정은 허무주의의 긍정으로 귀결하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삶의 긍정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죽음은 세월 따라 졸음처럼 육체에 스며들”지만 “컹컹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아직 깨어 움직일 때라는” (「잠과 죽음」) 사실을 각성하거나, “악 쓰듯 짖어대는 노점상가의 개소리조차 뜨겁게”(「땡볕 소리들」) 살아가는 생명의 한 현상으로 보는 데 잘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척박한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 안에 이미 그것의 구원이 놓여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헛된 삶의 시간을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그 안에서 최소한의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악몽을 살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인의 이러한 태도를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강흥수 시인의 시가 빛나는 지점은 세속적 남루와 비애를 껴안는 데 있다. 그것은 인위와 지적 조작과는 거리가 먼 간절한 일상의 마음에서 울리는 음성이다.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충남 안면도에서 태어나, 2001년 시집 『마지막 불러보는 그대』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02년 『한국시』 및 『공무원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루지 못하여 더 아름다운 사람아』 『잡초의 꿈』 『영혼의 지하철』 『인연은 뿌리 깊은 약속』 『아비』 등이 있다. 공무원문학상, 한국시 대상을 수상했다.

머리말

*시인의 말
고뇌

참나무 잎사귀처럼 싱그러운 시를
살아생전 어찌하면 쓸 수 있을까
동네 한 바퀴 거닐면서
칸트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겨 봐도
햇살 받으며 노자처럼 명상에 잠겨 봐도
내리꽂히는 영감 한 조각 없는 나날들
후회 없는 생애를 영위하는 것이 어렵듯이
시가 곧 인생이라서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일인가
움 돋는 새싹처럼 희망이 되는
푸른 시 쓰기가 정녕코 절벽 오르기 같은 것이던가
오늘도 풀지 못한 내 인생 최대의 숙제 거리

 

 

책 속에서


1부

새벽길


누구였을까
가지런히 첫 발자국 찍으며 간 사람
가로등도 없는 산골
반사되는 눈의 빛에 의지하여
아득한 아침으로 앞서간 눈 같은 사람
파르르 떨리는 참나무 잎사귀 소리에
외롭지는 않았을까
소복소복 눈꽃 피운 아름드리 소나무가
포근하고 든든한 길동무였을까
백지 같은 세상에 새길 만들며 간 사람
그대였을까



물방울 소리


또옹또옹
수돗물 한 방울 한 방울
양은물통에 떨어지는 소리

투명한 물방울 따라서
청아한 봄이 오는 소리
온밤 내 사근사근 스며드는 소리

꿈 못 이루는 인생길 나그네
마음속 가야금 튕기는 소리
정든 사람 아롱다롱 떠오르는 소리

또옹또옹
겨울 문턱 갓 넘어온 봄이
부푼 희망으로 가슴 뛰는 소리


봄밤


메들리로 합창하는 개구리 소리에
둥근 달도 강강술래로 흐르는데
홀로 늙어가는 총각처럼
소쩍새는 밤새워 잠 못 이루고
멀리 떠나가 돌아올 수 없는
어린 시절 그 동무들 사무쳐
소슬히 마당을 거닐면
쏴아아 가슴을 훑고 가는 댓바람 소리


그림자 친구


오후 네 시의 긴 그림자가 발걸음을 이끌어 간다
생각해보면 저 그림자 친구가 참 고맙다
이 세상에 함께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내가 웃을 땐 빙긋이 웃고
춤출 땐 덩달아 덩실거리고
주저앉아 있을 땐 옆에 앉아 마냥 기다려주고
땡볕 아래나 진흙뻘이나 잠자리에서조차
나와 늘 함께했다
빛과 호흡하면서 나를 받쳐주고
나의 가장 낮은 곳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오늘 이 순간까지 동행했다
내가 외로울수록 더욱 밀착해주던 친구
내 모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나
떠벌린 적이 결코 없는 입 무거운 친구다
꼭 하늘이 보내준 하늘 친구 같다
이 세상 하직할 때도 함께 떠날 친구
참 고맙다


인생살이 꿈속을 걷다

참새들이 아이들처럼 마냥 들떠 재잘거리고 길가 옆 시냇물 따라 송사리 떼 이리저리 노닐고
여기저기 민들레꽃 해맑게 웃고
담뿍담뿍 쑥 돋은 들판
풍선처럼 한껏 마음 부풀어 하염없이 가고 있었어
어디로 가는지 어떤 목적으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엇 하나 지닌 것 없이
당연한 것처럼 걷고 또 걷고 있었지
초록 들판 끝 막다른 길에 나타난
쫘악 벌린 뱀 아가리 같은 시커먼 동굴
어둠 속에 삼켜질 것만 같아 내키지는 않았지만
되돌아갈 수도 없고 진입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수렁텅이에 빠져드는 듯한 두려움
때로는 쥐가 찍찍거리며 발등 스치며 지나가고
벽을 더듬거릴 때는 물컹한 것이 쥐어져
등줄기에 서늘한 땀이 흘러내리기도 했어
동굴 천장에서 머리 위로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은
폭포보다도 더 둔탁하고 차갑게 느껴졌지
적막에 에워싸인 동안은 죽음보다도 공포스러웠지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던 동굴을 통과하니
주먹 단감들이 가을 햇살을 주렁주렁 품고 있었네
음식 제공한 감나무 아래 폭신한 잎사귀 위에서
감처럼 달콤한 낮잠도 잤어
얼굴 스치는 소슬바람에 문득 깨어보니
산봉오리에는 늙은 노을이 숨 고르고 있었네
뒤쫓아 오는 밤보다 앞서 숙소 찾아 서둘러 가노라니
저승길처럼 깊이 가늠 안 되는 계곡에 놓인 줄다리
귀신들의 아우성 같은 바람은 귓구멍을 파고들고
칡넝쿨 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건너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지
출렁대는 줄다리를 걸음마처럼 기우뚱기우뚱 딛다 보니
다행인지 필연인지 떨어지지 않고 건너긴 건넜어
애달픈 부엉이 소리 휘감아 도는 산허리를 터벅이는데
앞을 휙휙 가로막는 눈발과 몸을 때리는 휘돌이바람
바위 디뎌 미끄러지고 뒹굴고 가시에 긁히기도 하면서
올라갔던 것보다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노라니
푯대 깃발처럼 아득히 가물거리는 불빛
낯선 세상의 희망불이지만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아
기쁨이 분수처럼 솟구쳤어
의도하지 않았던 모험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주저앉고 싶던 다리가 참나무처럼 불끈 팽팽해졌어


잠과 죽음


진도 안 나가는 둔탁한 책과 눈싸움을 벌이다가
방바닥에 벌러덩 누웠는데 형광 불빛이 째려본다
오른팔로 눈 채양 그늘을 만들어 막다가
아예 팔을 두 눈에 올려놓아 깜깜 속에 잠기는데
문득 깜깜한 잠과 죽음이 동류일까 궁금해진다

잠은 두 눈이 감겨야 드는 것인데
흔히 잠들었다고 표현하는 두 눈 감은 죽음
그렇다면 현실보다 즐겁고 황홀하던 꿈속과 같이 저세상은 근심 없이 콧노래 흥얼거리는 천국일까
아니면 학교 숙제와 시험에 시달리는 악몽과 같이
이 세상에서 못다 한 소임 때문에
채찍 맞으며 땀투성이로 일하는 지옥일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잠은 필연코 깨어나듯이
죽음은 환생으로 연결된 영원선상의 꿈같은 것일까

죽음은 세월 따라 졸음처럼 육체에 스며들고
잠은 나날이 죽음과 친해져 닮아 가는데
아직은 깨어 움직일 때라는 듯
컹컹 개 짖는 소리 들려온다



꿈속의 꿈


꿈속에서 꿈을 꾸었어
이십 대 초반 아가씨 세 명이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아가씨가 곡식 가늠하는 말을 집어 던졌어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복부를 정통으로 맞고 하혈하는
아리따운 아가씨
길바닥 흔건히 적실 정도로 피 흘려 생사 넘나들더니
땅거미 스산하게 깔릴 무렵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
그런데 같은 꿈을 오 일 동안이나 연거푸 꾸는 거야
꿈속의 꿈을
이틀째 꿈부터는 사고로부터 피하게 하고 싶은데
루게릭병 환자처럼 말도 손짓도 안 되는 거야
다급하고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지
그렇게 그 아가씨는 오 일 동안 꿈속에서 죽어갔어
첫사랑 아가씨의 얼굴인 듯도 싶고
연애 시절의 아내인 듯도 싶고
미지의 여인인 듯도 하여
가슴이 허물어져 내리는 심정이었지
흉흉한 생각들이 생활을 휘감아 돌던 어느 날 오후
그 여인이 목련꽃 하얀 미소를 지으며 찾아왔어
고맙다면서 내 덕분에 살아남았다면서
유체 이탈한 내 모습이 오 일 동안 밤마다 나타나
공중에 뜬 채 무엇인가를 안타깝게 전달하더라고
오 일째가 돼서야 겨우 그 까닭을 깨닫고
친구들과 외국여행을 취소했는데
예약했던 비행기는 추락사고로 사상자가 많았다고

겹겹의 꿈들은 현실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 여인은 내 생활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지금도 아련한 꿈속의 여인

 

 

목차

1부
새벽길·10
물방울 소리·11
봄밤·12
그림자 친구·13
인생살이 꿈속을 걷다·14
잠과 죽음·17
꿈속의 꿈·18
죽음의 문·20
꽃상여·21
오한·22
아름다워 슬픈 꿈·23
가위눌림·24
꿈속의 고갯길·26
할미바위 할아비바위·27
용마굴·28
용오름·30
죽음이 두려운 까닭·31
오래된 찬란 앞에서·32
비바람 치는 낙화암·33
거룩한 본능·34
불안의 원천·35
경고·36
인생 화가·38

2부
나무를 읽다·40
낙엽을 밟으며·42
의와 고와 과와 와·44
색깔에 대하여·45
폭탄주·46
숙명·48
억새 숲에서·49
폭우 속에서·50
외양간·51
최성봉·52
외딴집·54
마늘처럼 고추처럼·55
빌딩숲·56
숨어버린 장미꽃에게·57
왕따성·58
땡볕 소리들·59
나의 길·60
미친개·61
역 태풍·62
바람의 하프 연주·63
지하철 풍경·64
거지 습성·65
첫날·66

3부
집·68
산등성이·71
빗물이 쓰는 문장·72
무화과의 여름·73
가을날 아침·74
진달래꽃 같은 시·75
고향 가는 길·76
시의 식곤증·78
막걸리가 장미꽃이 되다·79
나 홀로 노래방·80
설레게 하는 여자·81
우린 진짜거든요!!!·82
질투·84
안방 모기·85
있으나 마나 한 남자·86
역행하는 여자·87
불쌍한 시인의 아내·88
참 잘했다·89
시어머니와 며느리·90
그나마 건졌네·91
김장하기·92
안방 의자·93
횡단보도·94
가슴 속 무덤·95
눈빛 미소·96

해설 | 김홍진
근원 회복과 악몽을 살아내는 방식·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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