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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허공

이서진 저 | 도화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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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526180 / 230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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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풍등」에서 옆방 새댁네에 침입한 도둑들과 맞서다 죽은 남자가 아내인 은형과 어린 딸을 불러내는 목소리는, 그들과 같이했던 일상들을 가질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더욱 아프고 절절하다. ‘당신을 기다린다’는 꽃말을 가진 자작나무 밑에 뿌려진 남자는 오늘도 자신을 찾아온 은형 곁에서 걷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지만 실체가 없다. 그런 실체 없는 남자 목소리는 고통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두껍게 응축된 은형의 삶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 목소리는 은형을 숨 쉬게 하는 생명이자, 은형을 향한 사랑이다. 죽어 말 못 하게 된 남자에게 목소리를 주고, 그의 언어를 만들어 주는 작가의 배려는 독자들에게 죽음과 사랑에 관한 깊은 성찰을 일깨워 준다. 중편 「봄 없는 겨울」은 가족들이 개인이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느끼는 불신, 반감, 실망, 회피 등의 다채로운 감정을 다루고 있다. 대학생이 된 후 따로 나가서 살겠다는 딸 마리는 결국 남편과 몸싸움을 벌이고 경찰까지 출동한 후에야 집을 나가버린다. 선혜는 신산한 마음으로 재현과 살림을 시작한 곳이자 마리를 만난 은곡을 찾는다. 어부였던 선혜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은 후 엄마는 산벚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던 봄날 또 다른 욕망을 찾아 집을 나간다. 선혜가 일곱 살 때이다. 보육원에서 성장한 선혜는 4대 독자인 재현을 만나 결혼한다. 결혼 후 아기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던 선혜는 어느 날 부엌문 앞에 버려놓은 아기를 만나 시댁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마리가 온 다음 해에 서른셋이던 남편이 일을 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가던 중 죽는다. 시댁에 사망보험금을 비롯해 전세보증금까지 빼앗긴 선혜는 어린 마리를 데리고 은곡을 떠난다. 가사도우미를 하며 ‘결손가정’ 편견 속에서 힘겹게 살던 선혜는 마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한다. 하지만 남편은 마리가 선혜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태도가 달라진다. 그런 데다 임신을 한 선혜가 몰래 아이를 지우는 바람에 점점 더 멀어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선혜는 은곡의 바람과 햇빛, 노을, 밤하늘의 별들이 그립고, 그때처럼 환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의 지금은 봄 없는 겨울이다. 어떤 해결책도 내놓기 어려운 막다른 궁지에 처한 선혜의 계절은 가혹한 현실의 무게 앞에 정당한 해결책을 강구하기조차 어렵다. 이토록 막다른 궁지에 이른 선혜의 계절은 봄 없는 겨울이고, 가족의 가치 때문에 고통받지만 역설적으로 몸속 깊이 침윤된 가족을 지키려는 욕망의 현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빈틈없는 구성과 서사로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붉은 환幻」은 지적장애인 시누이를 둔 양희의 일상과 욕망이 이중구조 얼개로 직조된 작품이다. 변두리에서 남편과 함께 식당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양희는 아이들 양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 시어머니도 귀찮고, 생리 뒤처리를 못 해 흰 벽을 지천으로 검붉게 만드는 시누이는 더욱 지긋지긋하다. 그런 시누이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아이들을 보며 양희는 그녀가 행방불명이 되어 어딘가에서 죽기를 바란다. 양희는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식당을 하는 처지라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지적, 지체장애인들을 수용하는 개인 사설수용기관 애심원에 봉사를 다닌다. 양희는 애심원 원생이 만들어 준 전을 고맙게 받아 들고나와서는 길거리의 개에게 던져준다. 시누이가 사라졌다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듣고도 식당일이 끝날 즈음에야 남편에게 말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이튿날이 되어도 시누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양희는 딸애가 흘린 생리혈이 그저 귀하고 대견하다. 가혹한 현실의 무게에 벗어나려는 양희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동시에 정당화라는 것의 함의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 작품은 일부러 외면해 왔던 현실을 가시권으로 불러들이고, 감추고 싶거나 그래서 무시한 현실을 과감하게 노출시킨다. 사회 언저리 현실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면에서 남다른 가치와 의미를 확보한다. 표제작인 「당신의 허공」은 실향민 아버지와 딸인 자경의 갈등, 엄마의 아픔과 회한의 여운을 조밀한 문장으로 촘촘하게 엮고 있다. 집 마당에 핀 해당화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간절함과 그 옆에서 평생 참담해 하는 엄마의 모습. 따스한 봄도, 열정의 여름도, 투명한 가을도 없이 겨울밤의 뒷산에서 웅웅거리는 솔바람 소리만 들리는 아버지 등에 관한 묘사는 절묘하다. 그것은 고향을, 미래를 약속한 약속을 여인을 눈앞에 두고도 50년이나 가지 못하는 아버지의 처지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부양할 의무만 지닌 가난한 집 남자와 결혼한 자경은 마흔이 넘어서야 그 의무에서 벗으나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좀처럼 생기지 않고 완경이 된다. 그동안 어려운 가정형편을 핑계로 몇 차례 아이를 지운 벌을 받는가 싶다. 자경은 자신에게서 임신의 기대를 저버린 남편과 사이가 멀어지고,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서 발견한 부모님이 이어 쓴 노트를 통해 자경은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그 인생을 정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은 자경의 과거이며, 자경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앞으로의 시간이 바뀌기를 바라는 자경의 욕망이다. 그래서 그동안 이해 못 했던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이후의 시간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미래가 새롭게 열리기를 갈망하는 자경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는 현재적 지평에서 과거와 미래를 인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자경의 회한 섞인 울음이 해당화의 알싸한 형기와 겹치는 결말은 오랫동안 기억에 선연하다. 「11월 블루스」는 자신과 나이가 같고 태어난 달과 날이 같고 심지어 시간까지도 몇 분 차이로 거의 같은 남자를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아내와 이혼 하려고 발버둥 치는 철부지 남동생과 중산층 가정에서 평탄하게 성장해 부모의 사업체를 이어받아 순탄하게 가정을 꾸려가는 남편을 둔 여자 역시 남편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런 여자가 자원봉사 하는 곳에서 만난 남자를 사랑하다가 헤어진다. 여자는 이따금 사무치게 남자가 그립지만 현실로 그를 덮어버리는데, 남자가 북한산 등반 중에 추락사한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남자가 떠나간 후 여자는 여전히 무탈하게 지내지만 남자의 존재가 자기의 삶 중간쯤에 찍은 점 하나를 느낀다. 그 점이 박힌 뿌리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이 이야기에는 여자의 마음 풍경이 감각적인 회화로 나타난다. 그래서 얼핏 적막하고 쓸쓸한 풍경 속에 들어간 것 같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정서를 품은 이야기는 손에 잡힐 듯 투명하면서도 안개 속처럼 아련하다. 이처럼 소설집 『당신의 허공』은 등장인물들의 고통과 고해의 끝과 시작이 겹치는 자리에서 그들의 메마른 눈에 맺힌 눈물이 그 어떤 분노와 연민보다 오래오래 기억된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에서 이서진 작가가 불러내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응시와 관심이다. 그 관심이 주위를 일깨우고 그것은 다시 뼈아픈 감각으로 치환되어 주위를 흔든다. 그렇게 투명한 감각이 피어나고, 그렇게 피어난 감각은 앎이 되고 그것으로 각인된 시선의 끝에 외로운 인생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서진 작가의 소설집 『당신의 허공』은 지금 우리 주변부 현실을 실감 나게 들려주는 사실적 재현이자. 우리 시대 음화(陰?)의 증언이다. 접기

저자 소개

  • 저자 : 이서진
저자 : 이서진
강원도 거진에서 태어났다. 강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수료했고, 2006년 〈문학마당〉 신인상에 「해당화 피고 지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중편소설 「동행」이 당선되었고, 중편소설 「빨간눈이새」로 김만중문학상과 중편소설 「그림자정원」으로 원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달의 뒤편에 드리운 시간들』과 『낯선 틈』이 있다.

머리말

작가의 말
삶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수많은 어긋남을 생각한다.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참혹한 스러짐도 있었을 테다. 그건 지독한 결핍이 되고 이루어질 수 없을 간절한 향망으로만 떠돌지 모른다.
이번 책에는 그렇듯 쓰러져버린 이들을 소환했다. 긴밀한 관계에서의 죽음 때문에, 혈연이 아니기에 받아야 하는 제도와 사회적 분리의 내침 때문에 또는 풀어내지 못한 갈등으로 영원히 교통할 수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 장애로 다르다고 금기시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사정이 타인에게는 제 손에 박힌 가시보다 못할 남의 일이라 일별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주저앉은 폐허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며 아린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감정을 누르려고 키보드에서 움직이던 손을 놓고 자주 창밖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면 모니터의 커서는 계속 써나가라고 깜박이며 재촉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들을 향한 안쓰러움의 강도는 덜하지 않다. 그래도 참담하고 쓸쓸한 궤적들을 풀어내 줄 수 있어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나마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여기, 그들의 어긋난 삶을 아프게 부려놓는다.

 

책 속에서

은형은 도로 쪽으로 무겁게 발길을 돌렸다. 나는 어둑해지는 길을 걷는 은형이 걱정되어 옆에서 따라 걸었다. 은형은 몇 발자국 걷다가 멈춰서 자작나무를 돌아보았다. 눈에 눈물이 어렸다. 어디선가 써늘한 바람 한 자락이 슬몃, 불었다. 바람에 쓸린 나뭇잎들이 사르락 소리를 냈다. 어느 나무의 우듬지에 앉아있던 새 한마리가 어두워지는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숲에서 조금 떨어진 정류장에 왔을 때 마침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은형이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가며 서러움을 쓸어내릴 것에 내 가슴은 무너졌다. 애처로움에 은형을 안았으나 몸짓은 가 닿지 못 하고 은형은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은형은 자리에 앉아 어둠이 내리는 숲의 자작나무 쪽을 애틋하게 바라보았으나, 차창 밖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은 여전히 실체가 없었다.(「풍등」 중에서)


재현과 마리와 함께했던 지난날 강을 타고 흐르던 바람결은 안온했다. 햇빛은 윤기 나게 퍼져 내렸고 서로의 눈에 담기던 노을빛은 충만했다. 밤하늘의 반짝이던 별들은 달디 단 위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스러져 버렸다는 사실에 휘청, 선혜는 무릎이 꺾였다. 안간힘으로 베란다 난간을 움켜잡는 입에서 조각조각 해체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 딸…… 마리…… 허물어지는 극통이 가슴을 휘저었다.
지난 몇 년간 어린 마리가 가졌던 허기지고 쓸쓸했을 아픔이 사무쳤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휘둘리며 허청댔을 것에 자신의 아픔은 생각나지 않았다. 마리가 겪었을 아픔만이 부풀며 괴어올랐다. 단단하게 묶어줄 줄이 끊어져 물 위를 떠다니는 부표처럼 막막했을 거였다. 당연한 줄 알았던 어미가 피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사실에 기가 막혔을 테다. 계부의 냉대를 받아야 했던 서러움은 얼마나 깊었을 건가. 따뜻이 등 쓸어 주어야 했으나 다그치기만 했던 어미의 무딤을 얼마나 원망했을 건가.
선혜의 코가 겨자 먹은 듯 매움했다. 목울대에 단단하고 커다란 울음덩이가 걸려 고통스럽게 뻐근했다.(「봄 없는 겨울」 중에서)


지천으로 검붉었다.
피 묻은 손이 흰 벽에서 마구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살 벌어진 엉성한 부채 모양이 무수히 찍혔다. 언뜻 보면 여름날 맨드라미 꽃 같았다. 하지만 잎도 줄기도 없이 모가지 부러진 처참한 꽃떨기였다.
이…… 이……쁘……지?(「붉은 환幻」 중에서)


오래전 뜨거운 볕 아래서 죽자 사자 해당화 뿌리를 파 뒤집으려 했던 젊은 엄마의 모습이 겹쳤다. 그때의 엄마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해당화 꽃이야 해마다 달리 피고 지지만 줄기와 뿌리는 본질인 것을. 그처럼 아버지 가슴을 지탱하고 있었던 건 줄기와 뿌리였으며, 스치는 바람결에도 하르르 흔들리는 선홍색 홑꽃잎이 아니라는 걸.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진정이 제발 그랬길 바라는 간절한 기구가 자경의 내면에서 자욱이 피어올랐다. 해당화의 알싸한 향기가 코에 짙게 스몄다. 가슴 안까지 밀려들어 요동치며 휘돌았다. 그간 한껏 내뱉지 못했던 자경의 울음과 지난 날 부모의 울음이 꽃향에 뒤섞여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해당화꽃들이 거기에 휩쓸려 무덤에 갇히듯, 뚝뚝 떨어져 내렸다. 범람하는 회한의 울음 속에서 선연하도록.(「당신의 허공」 중에서)


돌아오던 길에 당신 고향 부근을 다시 지나왔어요.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로 저녁 해가 장엄하게 내려앉았어요. 붉은 구슬 같은 해는 차의 속도에 따라 빨라지거나 느려졌어요. 그처럼 내게서 당신이라는 존재도 빠르게 혹은 천천히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어요. 당신이 말하던 붉은 저녁 해의 충만감은 텅 빈 공허가 되었어요.
기행을 다녀온 내 일상은 허청거렸어요. 수시로 울음자락이 목을 밀고 울컥거렸어요. 간절한 그리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기를 열어 당신의 번호를 누르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절망이 내리눌렀어요. 그 힘겨움을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나날들은 물밑 같은 가라앉음이었어요. 당신과의 관계만 정리하면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던 건 내 단순함이었고, 당신의 무게가 일상에 깊게 스며들었다는 게 당혹스러웠어요.(「11월 블루스」 중에서)


 

목차

작가의 말

풍 등
봄 없는 겨울
붉은 환(幻)
당신의 허공
11월,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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