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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원제 : Asan (2008년)
시리즈 : 대산세계문학총서 [104]

블라디미르 세묘노비치 마카닌 저 | 안지영 역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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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37592 / 66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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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한 개인의 내면을 통해서 본, 또 다른 전쟁의 모습 전투병이 아니라 창고와 주택 건설을 위한 공병으로 파병된 질린은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떠난 상급자들로 인해 홀로 창고에 남겨진다. 체첸 반군들과 하루하루 싸우며 창고의 무기와 휘발류를 지키던 그는 체첸 반군의 수장 두다예프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한칼라 지역 일대의 휘발유 왕으로 거듭난다. 게릴라전으로 위험한 체첸의 길을 따라 러시아 부대와 러시아 측 체첸군 부대에 휘발유를 배송하고 그 대가로 배송한 휘발유의 10분의 1을 챙기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번 돈을 부지런히 아내에게 송금하여 러시아의 큰 강 주변에 이층집을 짓고 있다. 한밤중에 휘발유 창고들 사이에 자리한 작은 뜰에서 아내와 통화를 할 때 행복을 느끼는 평범한 가장인 동시에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 무의미한 전쟁의 문법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질린 소령은, 그 속에서 전쟁의 신 ‘아산’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산’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바자노프 장군의 말을 빌리면, 한때 체첸 지역을 휩쓸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항마로 산사람들이 만들어낸 피를 탐하는 전쟁의 신이다. 고대의 아산은 피를 원했지만, 현재의 아산은 돈을 원한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이치라는 이름을 발음상의 이유로 아산 세르게이치라 부르는 데서 온 호칭이기도 하지만, 휘발유가 부족한 이 지역에서 휘발유를 소유한 질린 소령을 체첸인들도, 러시아인들도 아산으로 인정한다. 전쟁 통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주인공 질린 소령을 움직이는 건 결국 멋모르고 전쟁터로 끌려나와 죽거나 체첸 반군의 포로가 되어 끔찍한 일을 겪는 수많은 러시아 ‘애송이’에 대한 연민이다. 그의 내면에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냉혹함과 관용, 두려움과 용기, 냉소와 연민, 선량함과 강퍅함, 부당함과 정의로움 등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작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을 걱정하고,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어 하고, 또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애송이들 때문에 날린 돈을 아까워하면서도 동시에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갈 어린 청년들을 안타까워하는 질린 소령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마카닌은 등장인물들의 축재와 부정에 면죄부를 주지도, 그것을 고발하지도 않는다. 질린 소령이 지키려 애쓰는 최소한의 도덕적 선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전쟁의 신 아산조차 피보다 돈을 구하는 이 새로운 시대에 자신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작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소박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꼼꼼히 그릴 뿐이다. 질린은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기, 이미 애국심이나 일체의 대의명분이 사라지고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기를 나름의 개인주의로 살아내는 인물이다. 그에게 이 전쟁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가 발견한 이 전쟁의 유일한 논리는 ‘승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전쟁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자기 부대를 잃고 떠돌이 병사가 된 올레크와 알리크를 구하고 그 과정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어찌 보면 가장 평범한 소시민인 질린은 소비에트 전쟁문학에서 넘쳐나는 ‘거대한 영웅’은 아니지만, 개인의 양심을 끝까지 따라가고자 했던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이라 할 수 있다.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 개인의 내면을 통해 경험하는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은 매력적인 흡인력으로 독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저자 소개

러시아 서부의 작은 도시 오르스크에서 건축기사였던 아버지와 러시아 문학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이후 체르니콥스크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수학과 체스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960년, 모스크바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후 10여 년간 고등교육기관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극작 수업도 받았다. 1965년 장편소설 『직선』으로 등단했고, 1971년 극작으로 학위를 받은 후로는 출판사 ‘소비에트 작가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에서 일하며 ‘아름답지만 심장을 뛰게 하지는 못했던’ 자신의 전공 영역을 떠난다. 소비에트와 포스트소비에트 시절을 아우르며 독자층을 보유한 매우 드문 작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격변하는 시대에 민감하게 공명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캅카스의 사로잡힌 자』(1994)와 이미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언더그라운드, 혹은 우리 시대의 영웅』(1998),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발표된 『공포』(2006), 『아산』(2008), 『두 자매와 칸딘스키』(2011)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블라디미르 마카닌은 2017년 11월 1일, 로스토프나도누 근교의 작은 마을 크라스니에서 타계했다. 

역자 소개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문학연구소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동화의 나라, 한국》, 《코레야 1903년 가을》(공역)이, 지은 책으로 《러시아어로 작문하기》(공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P. 35 높이 자란 풀들이 신경을 건드린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소령 나부랭이야, 왜 이렇게 설쳐대니? 네놈이 뭐라고. 네놈이 뭐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위장복을 입은 똥 같은 놈아, 도대체 누구 일에 끼어드는 거냐? 네놈 집에 마누라와 딸이 있어. 매일매일 네놈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쟁은 전쟁이고, 네놈은 네놈이야. 기억해라…… 너는 그냥 복무하는 것뿐이야. 너는 그냥 캅카스에서 복무하는 거야.
등 뒤로 땀 한 방울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땀방울이 기어 내려온다…… 높이 자란 풀들!…… 너는 저 어린놈의 새끼들이 불쌍한 거다. 저 녀석들이 풀밭과 관목 사이에 널브러져 있게 될 것이 안타까운 거다!…… 너무너무 젊은 애들인데!…… 하지만 정직하게 봐라. 그놈들은 죽이러 온 놈들이다. 죽이고 죽으러 온 놈들이다…… 전쟁이니까. 


P. 107 나는 다리가 없는 한 어린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이제 막 현관에서 길로 나섰다…… 텅 빈 바지 자락을 끌며 기어서. 곧장 내 아래로 기어왔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마을은 폭격하지 않습니까?”
중위는 짧게 답했다.
“불쌍하니까요.”
연민이 약한 감정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연민은 하찮은 감정이다. 그런데도 그놈은 갑자기 튀어나온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어쩌겠는가! 중위가 말한다. 저는요, 이런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연민이 이 전쟁에서 남은 유일하게 위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P. 336-337 내전이 되어가면 전쟁은 응당 더 잔혹해진다. 이해 불가한 어떤 것이 되어간다…… 전쟁을 하지만 전투병은 아닌 나는, 단지 나를 위해서(내 내면에서 이 상황을 소화하기 위해서) 마침내 이 전쟁에 대한 어떤 설명을 찾아냈다. 아주 단순한 설명을. 전쟁은 그 자체로는 부조리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전쟁은 부조리하다, 승자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그러니 승자가 없는 동안은 질문을 던지지 말자. 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야?…… 누가 먼저 때렸는지 따지는 것은…… 아이들 말싸움이니까.
승자가 밝혀지고 나면, 곧(어쩌면 천천히) 이해할 만한 이유들과 피할 수 없는 결과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건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그리고 모두를 자기(그러니까 타자가 아닌 자기들의) 자리에 세워놓을 것이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다른 논리는 있을 수 없다. 

목차

아산

옮긴이 해설 · 아산―‘우리 시대의 영웅’
작가 연보
기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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