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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 편지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원제 : The Apology (2019년)
ISBN : 9791156758358 / 208쪽 133 x 19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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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왜 피해자는 31년 전에 죽은 가해자에게 사과 편지를 쓰게 했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으로 살기 위해 선택한 ‘나를 위한 고백’ 이브 엔슬러는 아버지에게 다섯 살 때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10대 이후에는 학대, 폭행, 가스라이팅 등 잔혹한 폭력에 시달렸다. 힘든 시간을 버텨온 그는 폭력의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가 되어 극작가로서 여성의 몸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사회운동가로서 각종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엔슬러 역시 시간이 지나도 절대 흐려지지 않는 과거의 상처로 평생을 휘청거렸다. 그는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잔혹한 기억에서 한 발짝 더 벗어나기 위해, 본래 누려야 했던 온전한 삶을 되찾기 위해 두렵지만 있는 힘을 다해 고통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엔슬러는 가해자인 아버지가 딸인 자신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일을 ‘상상’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묻어둔 진실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왜 사과 편지일까? 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목소리로 책을 썼을까? 이미 사망한 가해자를 불러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을 둘러싼 질문들 앞에 엔슬러는 말한다. “그는 결코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해야만 한다. 상상 속에서라면 경계를 넘어 꿈을 꿀 수 있고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 현실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 이 편지는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그에 필요한 말을 아버지에게 부여하고 사과의 언어로 표현하게 해 마침내 나를 자유롭게 만들려는 노력이다.”(15~17쪽) 엔슬러는 가해자이자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소환하여 그가 자신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낱낱이 밝힌다. 그리고 왜 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그의 삶 전체를 되짚어보고, 피해를 겪을 당시 자신의 감정이 어땠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현실과는 다른 결과” 즉,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명백히 밝히고 인정하며 진심으로 꺼내는 사과를 받는 일은 이브 엔슬러가 선택한 ‘마침내 나를 자유롭게 만들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피해자가 가해 사실을 고발하고 고통을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먼저 읽고 해제를 쓴 은유 작가는 말한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말하곤 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커다란 고통일수록 버전을 달리해서 써보라고. 다른 시점, 다른 입장, 다른 시제, 다른 장르로 같은 경험을 다뤄보면 그 사건의 본질은 선명해지고 고통은 옅어질 수 있다. 이 책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의 기록이라서가 아니라 ‘기록할 수 없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206쪽) 은유 작가의 말처럼 엔슬러는 가감 없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사건의 본질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세상에 내놓은 이브 엔슬러는 자신의 이름을 ‘브이V’로 바꾸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을 선언했다. 역자 후기에서 김은령 <럭셔리> 편집장은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버지의 잔혹한 기억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나게 되었고 원망도 회한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물려준 성과 이름으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97쪽) 성폭력, 학대, 폭행, 방임, 가스라이팅…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끔찍한 폭력을 고스란히 복원하다 사과 편지 속 아버지는 딸에게 성적인 학대를 일삼고 심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른 이유를 자신이 복종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데서 찾는다. 그로 인해 권위와 남자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가족이라는 왕국 속에서 아내와 아이는 엄격하게 다뤄야 할 자신의 소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살던 자신에게 커다란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 딸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였다고, 그래서 자기 안에 꽁꽁 숨겨둔 탐욕스러운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다섯 살 아이를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아버지는 말한다.(70쪽)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드러날까 봐 딸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고, 가족 모두가 딸을 가족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딸을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넣어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도록 조종했다고 이야기한다.(104~107쪽) 아버지가 꺼내놓은 이 기막힌 이야기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더불어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 정신은 온전했어. 나는 특권을 누리는 고압적인 남성이었다. 너는 나의 아이였다. 나의 소유물이었지,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어. 그러지 않을 때 규율과 처벌을 실행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었다. 바로 내가 키워진 방식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겪은 대로 너를 다루고 있었어. 내가 배운 대로 하는 것뿐이었지.”(113쪽) 그는 끊임없이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악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사회적·정신적으로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은 그런 상황을 묵인하고 아버지가 저지르는 폭력과 학대에 동조하며 엔슬러를 고립시킨다. 편지는 가감 없이 이브 엔슬러가 겪은 아픔을 묘사한다. “피자 가게. 대단치 않은 싸구려 음식점. 가족의 저녁 식사. 마티니가 없다. 짜증이 난다. 자리에 앉아 불안해하는 너. 부산스러운 움직임. 똑바로 앉아, 이브.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내가 잔소리를 하지만 너는 즉시 반항한다. 미련한 계집애 같으니. “아니, 싫어요.” 퍽. 내 주먹이 너의 멍청한 얼굴 한가운데로 날아간다. 너의 코에서 피가 솟는다. 붉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테이블보에 선홍색 얼룩이 생긴다. 너는 얼어붙은 채 경멸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네 얼굴은 흘러내린 피로 가득하다. 가족들은 공포에 떤다. “크리스, 얘 데려가서 좀 씻겨.” 네 엄마는 너를 데리고 서두르듯 레스토랑을 가로지른다. 하지만 너는 레스토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얼굴을 보여주려는 듯 멈춰 선다.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가족들에게 수치를 안겨주려는 듯. 밖으로 나온 나는 네 팔을 꽉 잡는다. 주차장으로 너를 끌고 가 차 안으로 밀어 넣는다. 너는 뒷자리에 앉아서 훌쩍인다. “입 다물어, 이브. 그 더러운 입 다물지 못해?”(125~126쪽) 이쪽으로 와, 얼른. 거기 서. 벽에 기대서란 말이야. 내가 말을 할 땐 내 눈을 봐야지. 내 눈을 보라고. 목요일 밤에 어디 갔었어? 숨을 참으며 너는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크게 말해, 이브, 크게 말하라고! 어디 갔었어? 누구랑 갔어? 이브, 누구랑 갔냐고! 수업 마치면 집에 와 있겠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그러지 않았더구나. 거짓말한 거야? 거짓말했어? 거짓말을? 감히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이 더러운 거짓말쟁이 같으니. 거짓말이나 해대는 네 머리를 잡는다. 새로 나무 패널을 두른 벽에 너의 머리를 박아버린다. 쾅. 네 머리를 벽으로 밀어댄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머리. 조각조각 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어리석은 거짓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테다. 쾅, 쾅. 네 머리를 부숴버리겠어. “여보, 크리스. 얘는 아주 뼛속까지 썩었어. 얼른 부엌에 가서 칼 가져와.” 네 엄마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서 망할 칼 가져오라니까. 네 엄마는 방에서 나가버린다. 그러곤 돌아오지 않는다.(127~128쪽) 엔슬러는 평생을 끊임없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생각하고 공부하고 놀고 꿈꾸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음 편히 쉴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그는 당시 자신이 느꼈던 절망을 아버지의 언어를 통해 이렇게 표현한다. “침몰하는 삶에 대한 무력감, 스스로를 향한 미움, 나와 네 엄마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 대한, 더하여 너를 이곳에 있게 만든 무정한 세상에 대한 숨 막히는 분노,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두려움. 돌아갈 곳 없는 상황.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넌 아무런 희망이 없는 폐소공포증의 감옥 속에 갇힌 처지였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었니? 어떻게 살아남았니?”(137~138쪽) 고통과 슬픔, 원한과 분노를 쉼 없이 담아내며 읽는 사람을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우는 이 책은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을 위협하고 정신을 무너뜨리는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자신을 옭죄던 목줄을 잘라내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브 엔슬러가 서서히 자아를 드러내며 스스로 인생을 결정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아버지가 느낀 당혹감을 드러내는 부분(148~166쪽)은 엔슬러 자신이 더 이상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생존자로 거듭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보여준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 오랜 시간 상처를 돌보며 상처와 살아가는, 여전히 사과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여성을 위해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이브 엔슬러가 진심으로 듣고 싶었던 말을 담아낸다. “나는 다섯 살 때 너의 몸을 가졌다. 나는 너의 신뢰를 배신했다. 너는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고, 허락할 수도 없었다. 동의란 없었다. 너는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뿐이다. 나는 너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다. 나는 너에게서 가족에 대한 개념을 파괴해버렸다. 너를 영원한 자기 증오와 죄의식 속에서 살게 했다. 나는 너를 착취하고 학대했다. 진정한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도록, 친밀함에 대해 폐소공포를 느끼도록 만들었지. 내가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179~185쪽) 엔슬러가 온 힘을 다해 써내려간 아버지의 사과 편지는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겨 안타깝게 생각한다’ 같이 책임 회피에 급급한 형식적인 태도가 아닌,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인지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일련의 단계를 거치는 태도가 진정한 사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엔슬러는 2019년 ‘TED우먼’ 강연에서 가해자의 사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미 세상을 떠난 가해자를 상상하여 쓴 사과 편지를 통해 자신은 무엇을 얻었는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죽기를 바랐고, 감옥에 가길 원했다. 그가 변하길,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기를 바랐다. 사과는 기억하는 것이다. 사과는 일어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얘기하는 것이다. 사과는 우리가 대면한 지금의 문제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성폭력 생존자 이브 엔슬러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끔찍한 폭력을 근절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세계를 누비며 성폭력 희생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리고 그들이 치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피해자가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있다. 그런 그는 《아버지의 사과 편지》라는 절절한 고백을 통해 희망한다. 여성들에게 상처를 입혀온 남성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사과하기를. 상처와 함께 살아가며 여전히 사과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를. 이 고통스러운 폭력을 끝내는 세상이 오기를.
P. 15 이제 기다림은 끝내기로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다. 그는 결코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해야만 한다. 상상 속에서라면 경계를 넘어 꿈을 꿀 수 있고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 현실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P. 18 내게 편지를 쓰는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유약함을 뜻했다. 대신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썼지. 나는 편지를 써야 할 만큼 상대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어. 그러면 내가 우위를 잃고 불리해질 테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이상하구나. 네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것이고 말하지도 않았을 이야기란다. 하지만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건 진실이니까.
P. 29 내 행동을 정당화하지도, 합리화하지도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그보다는 나의 행동과 의도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에게 이해나 용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야.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고백을 하려는 것이지.
P. 30~31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네가 이야기한 엄격한 기준을 따르고, 내가 저지른 일을 범죄로 인정했어. 내 행동과 혹독한 태도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너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똑바로 대면했다. 하나의 인간으로 널 바라보며 너의 내면에서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내 행동에 깊은 회한과 후회가 느껴지더구나. 나로 하여금 그런 일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함으로써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어.

추천의 말
독자에게
사랑하는 에비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