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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291611 / 222쪽 142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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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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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F.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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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남우현
- 14,400
- 16,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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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본문 중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이념을 넘어서 일본 국교와 같은 종교성으로 국민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기생충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천황제 파시즘적 일본 군국주의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그것의 재현을 꿈꾸는 허황이며, 이웃 나라를 깡그리 무시하는 폭력적 행위다.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국민을 종교적 신념으로 하나로 묶어내는 “천황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상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_서론 중에서 제3차 내각 이후 “강한 일본을 되찾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연속 3선을 바라보게 된다. 그때 그는 도쿄가 아닌 가고시마현에서 총재 출마를 선언하면서 “반아베파”를 잠재우기 위해 “삿쵸”가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외쳤다. 이것을 흔히 현대판 “헤이세이 삿쵸동맹”(平成薩長同盟)이라고 부른다. 아베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메이지 유신으로 군사 대국이 되어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유린하여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면서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강한 일본에 대한 삐뚤어진 동경에 지나지 않는다. _제1부 “천황제의 태동과 발전”의 “헤이세이 삿쵸동맹” 중에서 현장에서는 신사참배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의 척도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이것이 학교마다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향은 국공립학교보다 미션 계통의 학교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은 “미션학교”가 적국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아닌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션학교는 오히려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기독교인들도 일본과 천황을 사랑하는 애국자라는 사실을 사회에 드러내어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다. _제1부 “천황제의 태동과 발전”의 “신사참배의 시작” 중에서 일본에서 종교는 권력에 습합되어야 존재할 수 있었다. 신앙에 근거하여 권력에 항거하는 종교적 실천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마음의 문제로 환원시켜야 했다. 권력에 방해되거나 저촉되는 신앙과 교리는 행동으로 드러내기보다 마음에 잠재워야 했다. 곧 신앙의 내면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시야마 전투는 일본에서의 권력과 종교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일본에서 신앙과 양심에 근거하는 종교적·윤리적 행동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문제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종교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바로 여기서 성립되었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종교와 권력에 대한 한 단면” 중에서 그들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서구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로부터 이탈하고 변형된 것으로서 개인주의적이고 제국적이며 침략적이기 때문에,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적 이데올로기 안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일본적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교 그리스도파”가 될 때 참된 기독교가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일본적 기독교”라는 주제는 지금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서 일본 교회를 달구고 있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천황교에 매몰된 일본적 기독교” 중에서 그리하여 주님과 교회를 배반하는 의미에서 국가에 서약할 수 없다며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하여 교수직을 박탈당한 바르트와는 달리, 일본의 대표적인 바르트 신학자들이었던 쿠마노와 쿠와타는 국가의 침략행위에 오히려 지원 사격조로서 가담했던 것이다. 패전 후에도 그들은 어떠한 회개나 반성 또는 자숙도 없이 일본 신학계의 선생으로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들은 바르트를 일본어로 번역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신앙과 신학을 번역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위험한 길을 피할 줄 아는 요령”에 익숙한 자들로서, 목사와 학자의 양심을 버린 엉큼한 삯군들이었다. 그들이 구사하는 바르트 신학이란 습합적이고 잡거적인 사고에 굴절되고 일본화되어버린 “일본적 바르트주의”였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일본기독교단이 대동아공영권에 있는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서한”에 대한 비판 중에서 기독교계와 정치계에 보란 듯이 다시 등장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천황 절대화라는 일종의 병리적 형태의 열광주의적 신보수주의로서, 신제국주의를 꿈꾸는 천황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복음 선교는 결단코 천황제와의 대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철저하게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 천황제 투쟁을 선교적 사정거리 안에서 확보하지 못한다면, 일본에서의 기독교는 언제까지나 “일본교 그리스도파”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일본 기독교의 현재” 중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이념을 넘어서 일본 국교와 같은 종교성으로 국민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기생충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천황제 파시즘적 일본 군국주의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그것의 재현을 꿈꾸는 허황이며, 이웃 나라를 깡그리 무시하는 폭력적 행위다.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국민을 종교적 신념으로 하나로 묶어내는 “천황교”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상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_서론 중에서
제3차 내각 이후 “강한 일본을 되찾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연속 3선을 바라보게 된다. 그때 그는 도쿄가 아닌 가고시마현에서 총재 출마를 선언하면서 “반아베파”를 잠재우기 위해 “삿쵸”가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외쳤다. 이것을 흔히 현대판 “헤이세이 삿쵸동맹”(平成薩長同盟)이라고 부른다. 아베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메이지 유신으로 군사 대국이 되어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유린하여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면서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강한 일본에 대한 삐뚤어진 동경에 지나지 않는다.
_제1부 “천황제의 태동과 발전”의 “헤이세이 삿쵸동맹” 중에서
현장에서는 신사참배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의 척도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이것이 학교마다 마을마다 경쟁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향은 국공립학교보다 미션 계통의 학교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은 “미션학교”가 적국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아닌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션학교는 오히려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기독교인들도 일본과 천황을 사랑하는 애국자라는 사실을 사회에 드러내어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다.
_제1부 “천황제의 태동과 발전”의 “신사참배의 시작” 중에서
일본에서 종교는 권력에 습합되어야 존재할 수 있었다. 신앙에 근거하여 권력에 항거하는 종교적 실천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마음의 문제로 환원시켜야 했다. 권력에 방해되거나 저촉되는 신앙과 교리는 행동으로 드러내기보다 마음에 잠재워야 했다. 곧 신앙의 내면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시야마 전투는 일본에서의 권력과 종교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일본에서 신앙과 양심에 근거하는 종교적·윤리적 행동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문제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종교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바로 여기서 성립되었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종교와 권력에 대한 한 단면” 중에서
그들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서구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로부터 이탈하고 변형된 것으로서 개인주의적이고 제국적이며 침략적이기 때문에,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적 이데올로기 안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일본적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교 그리스도파”가 될 때 참된 기독교가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일본적 기독교”라는 주제는 지금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서 일본 교회를 달구고 있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천황교에 매몰된 일본적 기독교” 중에서
그리하여 주님과 교회를 배반하는 의미에서 국가에 서약할 수 없다며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하여 교수직을 박탈당한 바르트와는 달리, 일본의 대표적인 바르트 신학자들이었던 쿠마노와 쿠와타는 국가의 침략행위에 오히려 지원 사격조로서 가담했던 것이다. 패전 후에도 그들은 어떠한 회개나 반성 또는 자숙도 없이 일본 신학계의 선생으로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들은 바르트를 일본어로 번역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신앙과 신학을 번역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위험한 길을 피할 줄 아는 요령”에 익숙한 자들로서, 목사와 학자의 양심을 버린 엉큼한 삯군들이었다. 그들이 구사하는 바르트 신학이란 습합적이고 잡거적인 사고에 굴절되고 일본화되어버린 “일본적 바르트주의”였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일본기독교단이 대동아공영권에 있는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서한”에 대한 비판 중에서
기독교계와 정치계에 보란 듯이 다시 등장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천황 절대화라는 일종의 병리적 형태의 열광주의적 신보수주의로서, 신제국주의를 꿈꾸는 천황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복음 선교는 결단코 천황제와의 대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철저하게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 천황제 투쟁을 선교적 사정거리 안에서 확보하지 못한다면, 일본에서의 기독교는 언제까지나 “일본교 그리스도파”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_제2부 “천황제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의 “일본 기독교의 현재” 중에서
서론
제1부 천황제의 태동과 발전
1. 천황제: 사전적 정의
2. 천황제의 유래와 배경
(1) 농경사회와 제사
(2) 고대 일본의 왕권
(3) 신상제
(4) 습합의 시작
(5) 천황의 신격화 시작
(6) 황실 제사의 쇠퇴와 재흥
3. 근대 천황제의 태동
(1) 사상적 배경
① 미토학
② 국학
(2) 정치적 배경
4. 헤이세이 삿쵸동맹
5. 메이지 유신(1868-1889년)
(1) 교학성지(??聖旨, 1879년)
(2) 군인칙유(1882년)
보충 (1) 야스쿠니 신사
6. 국가 통합의 기축으로서의 천황
7. 천황교의 성립
8. 천황교의 법제화: 대일본 제국 헌법
보충 (2) 국민 주권
9. 대상제(大嘗祭: 다이죠우사이)
보충 (3) 상징제 천황제
10. 황국사관 세우기
11. 교육칙어(1890년)
보충 (4) 국체(??)
12. 국가신도 확립
13. 신사참배의 시작
14. 미노미션 신사참배 거부 사건(1930-1939년)
(1) 발단
(2) 제2차 거부
(3) 기독교계의 반응
15. 천황기관설에 대한 국체명징론
제2부 천황교 안에서 시작된 일본 개신교
서론
1. 종교와 권력에 대한 한 단면
2. 기독교의 시작과 천황제 누룩
3. 천황제 이데올로기 안에서의 종교의 자유
4. 교육과 종교의 충돌
5. 천황교에 매몰된 “일본적 기독교”
6. 무사도에 접목된 기독교
7. 일본에서 시작된 교회의 특징
(1) 구마모토 밴드
(2) 삿포로 밴드
(3) 요코하마 밴드
(4) 세 밴드의 합일점
8. 삼교회동(三敎?同)
9. 일본기독교회의 바르트 신학 수용
보충 (5) 칼 바르트: 1920-30년
10. 종교단체법
11. 치안유지법
12. 대동아공영권: 대동아전쟁
13. 국체론(천황교 원리주의)
보충 (6) 국가총동원법
14. 교회의 황민화
15. 일본기독교단의 성립
(1) 일본기독교단의 창립
(2) 일본기독교단의 목적
보충 (7) 황기 2천 6백 년
16. “일본기독교단이 대동아공영권에 있는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서한”
(1) 공모
(2) 내용 요약
(3) 비판
17. 패전 후 일본기독교단
(1) 총참회갱생운동
(2) 카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18. 패전 후 일본기독교단과 전쟁의 책임
19. 일본 기독교의 현재
(1) 역사 새로 쓰기
결어
참고문헌




































